하이에나의 밥상
이용희
저녁 식탁을 차린다.
남편은 더운 날씨에 집 안에서 생선을 구우면 더 덥다고 갈치를 담은 프라이팬을 들고 마당으로 나간다. 방금 마트에서 사가지고 온 갈치다. 그 뒤에 대고 한 마디 한다.
“바싹 구어 와. 지느러미까지 씹어 먹게.”
당연하다는 듯 남편은 대답이 없다
나는 전생이 하이에나였는지도 모른다. 하이에나는 몸체가 큰 육식동물들이 먹다 남긴 먹이를 먹고사는 수줍음이 많은 동물이란다.
나의 식습관이 하이에나를 닮았다고 느끼는 것은 커다란 고깃덩이를 탐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순 살 덩이를 덥석 가져다 먹어 본 적은 없다. 생선은 머리와 꼬리를 먼저 발라 먹고 씹을 수 있는 가시는 모두 씹어 삼킨다. 물론 눈 두 개는 벌써 내 입에 들어가고 난 후다.
나의 이 습성을 평생 보아 온 남편은 내가 젓가락을 들기도 전에 두 눈알을 숟가락에 담아 내 앞에 얌전하게 내민다. 생선의 머리와 꼬리, 지느러미까지 모두 내 차지가 되고 남편은 큰 육식동물이 되어 순 살만을 덥석 집어가는 상황이 이어진다.
그뿐이 아니다. 닭고기도 목 부위와 날개와 작은 다리는 내 것이 된다. 혹시 내장에 콩팥이나 간 따위가 붙어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처럼 특이한 맛을 즐기는 나는 남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내가 즐기는 그런 부위를 좋아하는 누구인가와 한 상을 받았다면 당연히 식탁에서 전쟁을 치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나는 왜 이런 식성을 갖게 되었을까. 막내인 나에게 언니와 오빠들은 큰 짐승이 되었기 때문일까.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화로 위 석쇠에 올려놓으셨던 생선의 가시를 잊지 못한다. 노릇노릇해지다 못해 진한 고동색이 되면 그 씹는 바삭거림과 고소한 식감 속에 행복해진다. 그 가시들의 양은 언제나 적었고 위까지 내려가기도 전에 입안에서 녹아버리는 듯했다.
아이가 둘, 남편과 아버지까지 다섯 식구일 때가 있었다. 닭 한 마리를 삶는다. 둥그런 상 앞에 둘러앉으면 분배가 시작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국그릇에 닭다리 하나씩을 떼어서 담는다. 딸과 남편의 그릇에 날개 하나씩을 떼어서 담는다. 남는 것은 당연히 목과 가슴뼈에 붙어있는 작은 살덩이와 계륵에 남아있는 핏덩이다.
그것을 내 그릇에 담아놓고 발려먹기 시작한다. 하이에나의 식사는 살을 발려내고 뼈를 씹느라 남들보다 오랫동안 그 맛을 음미하며 즐길 수 있다. 그보다 더 한 장점은 배가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한 번도 내 고기의 양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다. 마치 수학의 공식이라도 되는 듯한 행위가 끝나고 나면 어느 철학서의 한 구절 같이 이 성찬이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서러움도 아쉬움도 물론 없다. 왜냐 하면 그 고기의 맛이 이 세상 최고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나는 좋아하는 고기의 맛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했고 내 식구들이 맛있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그 한 끼의 식사가 나의 위와 가슴을 채웠다.
어느 날부터 나는 이런 고기답지 않은 부위들을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환경이 그렇게 나를 길들였는지, 체구처럼 위까지 작게 태어 난 때문인지 모르지만 지금도 나는 이러한 나의 식성이 부끄럽지 않아 만족하고 즐기며 살아간다.
남이 버리는 뼈에 붙은 고기에 자꾸 눈이 간다. 갈비를 대충 뜯고 버리는 것을 보면 그 뼈에 붙은 고기에 미련이 따라간다. 버리지 못하는 습성 때문일까 싶지만 요즘 같이 쓰레기로 몸살을 앓는 시대에는 하이에나의 식습관도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덩치가 큰 동물들이 아무렇게나 먹고 버려진 많은 음식물 같은 쓰레기들이 난무하는 시대이다. 그렇지만 한 수저의 밥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본다. 배고팠던 때를 생각하면 남겨서 버릴 수는 없다는 이웃들도 본다. 사회는 점점 변화하고 삶의 생활 방식도 달라져간다. 배고픔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들 앞에서 배가 고팠던 옛날을 되 뇌일 이유는 없어서 나도 그들을 따라가려고 한다. 그렇지만 뼈까지 꼭꼭 씹어 먹는 식습관은 현대인들에게 낯설 듯해서 변명 같은 말 한마디를 던진다.
“나는 아무래도 전생이 하이에나였나 봐.”
남편이 마당에서 구워온 갈치가 프라이팬에서 자글자글 끓는다. 파내어 줄 눈알이 없어 아쉬운 남편은 지느러미를 떼어 준다.
“잘 익었지?”
하이에나의 이빨이 무서운가 보다.
24.07.02
24, 강원수필 자유제 원고
첫댓글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생선을 발라 살코기는 가족에게 주고
자신은 남들이 먹지 않는 부위를 맛나게 먹는
하이나!
가족을 위한 헌신!
정말 아름답습니다.
옛날 울 엄마 생각 아련합니다.
생선도 귀한 시절!
조기 몇 마리 사 오면 본인은 먹지도 못하고
뼈를 발라 살코기만 자식에게 주든 일!
닭 다리뼈에 살코기가 조금 묻어있으면
닭 다리 물렁뼈까지 먹는 모습에 눈물 흘립니다.
먹다가 반은 버리는 요즘 세상!
하이나 밥상!
알뜰하게 발라 먹는 것.
음식물 쓰레기 치우는 데도 큰 도움이 되는 것
나라 사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