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비엔날레신작 19점은 누가 훔쳐갔는가?
이영준(큐레이터)
비엔날레의 정신
비엔날레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베니스 비엔날레가 그 기원이다. 하지만 베니스 비엔날레도 시간의 흐름속에서 여러 형태로 변해왔다. 결론적으로 이야기 하면 서구에서도 지금과 같은 비엔날레의 성격은 1990년대에 만들어진다. 광주나 부산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 지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서구의 눈치를 보며 비엔날레를 발전시켜왔다. 왜 그럴까?
거칠게 정리해보면 1895년 4월 30일 시작된 베니스 비엔날레, 비엔날레가 만들어진지 정확하게 1년후 1896년 4월 5일 근대올림픽이 열린다. 국가주의 혹은 국제주의는 당시를 지배했던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이며 여전히 21세기에도 위세를 떨치고 있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혹은 월드컵을 보면서 열광하는 정신 속에는 20세기의 어두운 버릇이 그림차처럼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어쨌든 초기 비엔날레 정신에는 국가주의가 상징처럼 스며들어있다. 한국은 1995년 마지막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의 국가관에 이름을 올린다. 비엔날레 100년만에 이룬 쾌거(?)다. 국가대표선수들이 경합하는 장으로써의 비엔날레는 한동안 유지된다. 그들 중에 선별해서 대상을 주고 금상을 주고 황금사장상과 특별상을 수여해 왔다. 미국은 1964년 로버트 라우젠 버그가 특별상을 수상한 것을 대대적으로 알리며 자신들이 세계미술의 중심임을 선전하는데 베니스 비엔날레를 이용하기도 하였다.
비엔날레가 현재와 같이 ‘동시대 미술의 실험장’으로 인식되는 데에는 하랄드 제만의 역할이 컸다. 1955년 카셀도큐멘타가 만들어지지만 여전히 국가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하지만 1972년 하랄드 제만이 제5회 감독이 되면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장으로 변모시킨다. 이 전시로 인해 제만은 보수적인 카셀시로부터 법적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제만의 실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80년에 지금의 본 전시에 해당하는 젊은 신인작가들을 위한 ‘아페르토’전을 베니스에 기획한 사람도 제만이다. 그 이후 국가주의 중심으로 개최되던 베니스비엔날레도 동시대 미술의 실험장으로 천천히 변모해 갔다. 그리고 1999년 하랄드 제만이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으면서 국가관 전시를 더욱 강하게 해체해 버렸고, 작가선정에 있어서도 대륙별 국가별 안배를 하지 않았으며, 특히 여성작가와 중국작가들을 과감하게 참여시켰다. 유목주의를 내세워 이탈리아관을 다른나라 작가들로 채운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런면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비엔날레의 실험성은 서구에서도 1990년대에 와서야 완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니 여전히 실험중이라는 표현이 옳다.
전세계적으로 1990년대에 대부분 만들어진 비엔날레들은 전시감독의 역할이 거대해진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술’을 보여주는 장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미술의 제도적인 장치가 부족한 도시에서 나름 비엔날레는 하나의 제도로 안착되어가고 있다. 미술관이나 화랑, 광범위한 작가군과 콜렉터, 비평가 및 큐레이터 등 미술계가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규모의 도시는 그렇게 많지가 않다. 그래서 프랑스의 리용, 영국의 리버풀, 한국의 광주나 부산에서 비엔날레가 개최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쨌든 1990년대 이후 비엔날레의 정신은 지금 미술계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재 진행되는 미술’에 대한 ‘맥락화’이다. 이를 전제로 부산 비엔날레를 분석해 보자.
2014 부산비엔날레 주제에 대하여
알려져 있다시피 2014 광주비엔날레는 ‘터전을 불태우라’라는 다소 선정적인 슬로건을 주제로 선택했다. 광주비엔날레의 태생을 생각하면 이번 전시는 그 주제 면에서는 가장 돋보이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 전시에 대해서는 ‘역대급이다’ 혹은 주제에 비해서 ‘평이하다’는 극단적인 평가들이 오가고 있다. 광주비엔날레는 ‘경계를 넘어’를 시작으로 지구의 여백, 인+간, 멈춤, 연례보고, 만인보 등 다양한 주제들로 개최되었다. 후발 비엔날레 주자치고는 그 주제들이 너무도 평이했다. 물론 비엔날레가 개념을 줄 세우는 전시는 아니지만 도전적인 주제의식을 느낄 수 있는 키워드는, 글쎄 별로다. 그런면에서 제시카 모건의 이번 주제는 그 자체로 상당한 임팩트를 준다. 젊은 큐레이터답게 도전적인 의식이 느껴지고 무엇보다도 광주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담기위한 주제라고 평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디어시티 서울은 주제가 ‘귀신, 간첩, 할머니’다. 처음 들었을 때 내 귀를 의심했다. 이 도발적이면서도 소박한 언어들이 현란과 현학으로 가득찼던 기왕의 비엔날레 주제들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어서였다. 2014 미디어시티 서울 감독을 맡았던 박찬경은 귀신은 등록되지 않은 역사, 즉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던 원혼들이고, ‘간첩’은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에 고초를 겪거나 왜곡된 삶을 산 사람들을 통칭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러한 시대와 역사를 견뎌온 여성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해왔다. 다시말해 그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시아의 역사와 종교 그리고 전통문화였던 것이다. 미디어 시티 서울을 보면서 ‘최초의 Made in Korea 국제비엔날레’ 라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늘 서구를 바라보거나 서구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데 익숙해 져버린 우리의 버릇을 비웃기라도 하듯 감독은 ‘귀신, 간첩, 할머니’를 전시장으로 호출해 낸다.
그런 반면 ‘세상 속에 거주하기’라는 주제를 내걸었던 부산비엔날레는 지역성이나 장소성 보다는 예술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기능에 대한, 보다 덩치가 큰 질문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케플랑은 “예술은 세계에 거주하기 위한 윤리적이고 미적인 효율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 중략 - 이들(예술가)은 좀 더 심오하고 쉽사리 정의하기 힘든 개념들을 작동하게 만드는 ‘세상에 대한 통찰’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하며 다양한 개념으로 작품을 맥락화 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아트쇼가 아니라 비엔날레 아닌가? 그야말로 작가들이 생각하는 ‘세상속에 거주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생각의 버릇’에서 잠시나마 빠져나오게 하는 일이어야 하지 않은가? 케플랑이 보여주는 ‘세상속의 거주’는 별다른 마찰이 없는 너무도 온화한 이미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마치 ‘모든 것이 세상 속에 거주하는 일’이라 주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2014 부산비엔날레 ‘작가’들
광주비엔날레는 36국가에서 105명의 작가(본전시)가 참여하였고, 미디어시티 서울은 17개국 42개팀 혹은 개인이 참여하였다. 그리고 27개국 77명이 참여한 부산비엔날레. 이렇게 숫자만 보면 별문제가 없어 보일 뿐 아니라 한 국가 당 3명 내외의 작가 참여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놀라운 사실들이 숨어있다. 부산비엔날레에서 공개한 본 전시 작가 리스트를 보면 프랑스 작가가 77명중 23명이다. 33.47%. 그리고 한국작가 10명중 윤영화, 김수자는 프랑스에서 유학한 작가들이고 권하윤은 프랑스 레지던시 상카르트 입주작가이며 이배, 이수경, 한순자는 재불화가이다. 한국작가 10명중 6명이 프랑스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람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알제리작가 아싼 스마티(Assan Smarti)는 프랑스에서 태어난 작가이자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이며, 중국작가 찬 카이 유엔(Chan Kai-Yuen)과 황 용 핑(hwang yong ping)은 재불 중국작가이다. 알제리 작가 자멜타타(Djamel Tatah)는 매그재단에서 전시도 했고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이고, 베네주엘라 국적의 엘리아스 크레스핀(Elias Crespin), 이스라엘 국적의 요셉 다둔(Yoseph Dadoune)은 프랑스에서 태어난 작가들이다. 이들을 합하면 12명이 추가되어 35명에 이른다. 77명중 35명을 프랑스에서 공수해 온 것이다. 뿐 만 아니라 국경의 개념이 거의 없는 유럽의 작가들은 거의 80%가 넘는다. 앞서 언급했던 헤럴드 제만이 국가별 대륙별 작가 안배를 해체한 것을 케플랑은 엉뚱하게 지금 구현한 것이다. 물론 그 이유가 명확하다면야 이런 비판을 왜 하겠는가? 이런 전시를 위해 부산시민은 40억원의 세금을 고스란히 바쳤다.
부산비엔날레 신작 19점은?
물론 시간이 없어서겠지만 국제적인 전시하면서 자국의 작가를 이렇게 많이 등장시키는 것은 큐레이터로서는 매우 오만한 태도이다.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 사태가 있었을 때 오광수 전 위원장은 김성연은 국제적 경험이 없고 올리비에 케플랑은 국제적인 네트워크가 풍부한 사람이라 공동감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결국 전시결과를 봤을 때 케플랭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는 너무도 빈약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전설적인 큐레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전시에 대해 성실하게 리서치하는 큐레이터가 있을 뿐이다. 그런면에서 케플랑은 작가리서치를 매우 불성실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불성실함은 비엔날레의 신작에서도 묻어난다. 미디어시티 서울은 ‘귀신, 간첩, 할머니“라는 뚜렷한 개념 때문에 대부분 신작으로 제작되었으며 일부 오래된 작품들도 뚜렷한 주제에 호응하는 필연적인 작품들이었다. 광주 역시 그 주제가 만만치 않아 107점의 작품중 35점이 신작이다. 신작이 많다는 것은 작가와 큐레이터가 전시의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했다는 하나의 증거이며 이는 ’동시대미술의 실험적인 장‘으로써의 비엔날레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렇다면 부산비엔날레에서 밝히고 있는 2014년 신작들은 과연 신작들인가? 부산비엔날레 홈피에서 보면 총 19점이 2014년 신작으로 소개되어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2014년에 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구현하기 위한 작가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들어간 작품이 많아야만 생동감 있는 비엔날레가 될 수 있다. 많은 일반관객들이 고려제강 전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대부분의 작품들이 그 공간에 맞춘 새로운 작품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번 부산비엔날레에 참여한 작품들은 인터넷에 작가이름만 입력하면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 그만큼 오래된 작품들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장소에서 소개되어 익히 알려진 작품들을 한곳에 모아놓은 전시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먼저 부산 비엔날레가 자랑하는 일본의 치하루 시오타의 작품도 이미 소개된 작품으로 부산 비엔날레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작품은 아니다.1) 운반해온 작품이라는 뜻이다. 한국작가 한경우의 작품도 2014년이라 소개되어 있지만 거의 동일한 작품이 2011년에도 발표되었다.2) 피에르 나니우(Pierre LANIAU)의 작품도 이미 과거에 소개된 작품이었으며3) 안젤리카 마쿨(Angelika MARKUL)의 작품도 마찬가지다.4) 알랭 플레셔(Alain FLEISCHER)5)와 앙쥬 레시아(Ange LECCIA)6)의 작품이 2014년으로 표기된 이유도 알 수가 없다. 이미 과거에 너무도 많이 소개된 유명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2014년 신작이라 표기되어 있지만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작가가 제작한 작품은 작가의 과거 작품을 봤을 때 거의 없어 보인다. 심지어 아니쉬 카푸어, 왕루엔, 필립 꼬네, 파브리스 위베르 등 명성있는 작가들의 작품도 대부분 소품이거나 오래된 구작들이었고 심지어 국내 콜렉션도 간간히 눈에 들어왔다. 개인 소장가나 화랑에서 임대했을 가능성이 많으며 운송리스트를 보면 어디서 작품이 나왔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2014 부산비엔날레는 일종의 불량식품이다. 유사 비엔날레 혹은 아트쇼를 만들어 놓고는 비엔날레라는 레테르를 붙여 놓았다. 만약 프랑스 리용비엔날레에 한국 큐레이터가 한국작가를 1/3데려가고 한국에서 유학하거나 한국에서 작업하는 외국작가를 절반정도 데려가 전시하면 프랑스 국민들은 가만히 있을까? 느슨한 전시주제에 시각적인 임팩트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고 ‘세상속에 거주하는’ 방식이 너무도 광범위해서 무엇이 주제인지를 알 수 가 없다. 전시내용이 어떻든 국제적인 큐레이터로써 기본적인 성실함을 확인 할 수없는 김빠진 비엔날레를 보는 기분이다. 월드 프리미어(세상에서 처음으로 개봉하는 영화)가 없는 영화제가 있는가? 영화제에 맞추어 처음으로 개봉하려는 영화가 많을수록 그 영화제의 영향력과 권위가 높은 것이다.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월드 프리미어가 없는 영화제를 보는 참담한 기분이 든다......그리고 부산비엔날레 신작 19점은 과연 누가 훔쳐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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