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한 교파. 장로교는 16세기 스위스계의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설립되어 영국에서 발전한 교파로, 한국 개신교 교파중 가장 교세가 큰 교파이다. 〔연혁〕 〈성립〉 한국의 장로교회는 실질상 1876년 만주에서 이응찬(李應贊)이 세례를 받고 성서번역에 착수함으로써 그 초석이 놓여졌다
한국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한 교파. 장로교는 16세기 스위스계의 종교개혁자들에 의해 설립되어 영국에서 발전한 교파로, 한국 개신교 교파중 가장 교세가 큰 교파이다.
1 연혁
(1) 성립
한국의 장로교회는 실질상 1876년 만주에서 이응찬(李應贊)이 세례를 받고 성서번역에 착수함으로써 그 초석이 놓여졌다. 그러나 선교역사는 84년 9월 미국 북장로교의 의료선교사 H.N. 알렌(1858∼1932)이 인천에 도착한 날로부터 시작되며, 한국 장로교회의 공식적인 기점은 85년 4월 H.G. 언더우드(1859∼1916)가 한국에 도착함으로써 이루어졌다. 그 후 계속하여 마포삼열·이눌서·데이비스 등의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하였고, 황해도에서는 84년 이미 한국인 중심의 교회가 설립되어 있었으며, 93년에는 남북장로회 선교회가 합하여 선교공의회를 조직하고 한국 장로교회의 조직체제를 갖추었다. 1901년에는 선교사들만의 공의회가 한국인 대표를 합하여 <조선예수교장로회공의회>를 조직, 한국인과 선교사의 협의체제를 형성하였고,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를 설치하였다. 1907년 9월 17일 예수교장로회 조선노회(朝鮮老會)가 평양에서 조직되었고, 신학교에서는 제 1 회 졸업생 7명을 배출하여 목사안수가 있었다. 졸업생들은 제주도·블라디보스토크 등의 선교사로 파송돼 한국인에게 전도사업을 벌였다. 12년 9월 1일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총회>가 평양(平壤)에서 조직되어 명실 공히 대한예수교장로회 시대가 출항하게 되었다.
(2) 수난
한국 장로교회는 1919년 3·1운동이 벌어지면서 수난기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좌절과 허탈에 사로잡힌 한국민족에게 복음은 더 절실한 요청으로 부각돼 오히려 이때부터 장로교회는 예상 밖의 성장을 계속했다. 22년에는 조선예수교장로회 헌법이 제정 공포되어 완전히 신앙 노선과 조직체계·교권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38년에 들어서면서 일제의 한국 교회에 대한 노골적인 탄압은 구체화되어 신사참배(神社參拜)를 계기로 더욱 심해졌다. 장로교회에서는 처음부터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거부하는 태도를 취해 조선총독부로부터 국가의식이라는 명목으로 신사참배를 강요당해 왔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이를 끝까지 거부하고 나섰으므로 조선총독부는 총회간부를 무력으로 협박 및 매수하여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불법으로 가결시켰다. 그러나 숭실대학·숭실중학 등의 예수교장로회 산하 학교에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조처를 당했고, 주기철(朱基徹) 목사 등 많은 성직자·신도들이 이 문제로 순교·피검 등을 당하였다. 일제의 탄압은 더욱 심해져 42년 조선예수교장로회는 해체되고 <조선장로교단>이라는 명칭으로 일본교단에 소속되고 말았다.
(3) 분열
광복과 함께 한국교회는 원상태로 복귀하여 1946년 남한의 모든 노회가 재조직되어 6월 12일 서울에서 총회가 열렸다. 그러나 여기에 북한노회는 참석할 수가 없어, 이북은 5도 연합노회가 잠정적으로 합하여 교회를 수습키로 하였다. 47년 남북총회가 대구(大邱)에서 열려 남북총회를 정식 장로회총회로 인정, 이 총회를 제33회 총회로 하였다. 한편, 장로회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전향의 문제, 신앙 보수의 문제가 엇갈려 51년 고려파 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로 갈라졌고, 뒤이어 신학방법론의 문제로 54년 근대주의와 에큐메니즘을 표방하는 기독교장로회와 예수교장로회의 분립이 있었다. 그후에 다시 59년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WCC)가 용공적(容共的)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분열이 생겨 제44회 총회에서 WCC 노선을 반대하는 합동파(合同派)가 60년 12월 13일 합동총회를 새로 조직하였다. WCC노선을 지지하는 통합파(統合派) 역시 60년 12월 17일 새문안교회에서 통합총회를 새로 조직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78년부터 여러 장로회의 재일치를 위한 접근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으며, 83년 미국 연합장로교와 남장로교의 일치에 자극을 받아 계속하여 통합파·합동파는 각각 합동원칙을 마련하고 여러 차례의 접촉과 대화·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2 교리
웨스트민스터 신조에 기초한 12조항을 교리적 표준으로 삼고 있다. 즉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신도개요서, 성경 대소 교리문답 등을 표준으로 삼고 믿는다. 12조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신구약성서를 정확무오(正確無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② 하나님의 유일성과 무소부재(無所不在) 및 전지전능을 믿는다. ③ 삼위일체의 교리를 믿는다. ④ 하나님의 창조섭리와 거룩하신 뜻을 믿는다. 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인류를 지으시고 주관하심을 믿는다. ⑥ 모든 인간은 금세와 내세에 있어서 그 행한 대로 하나님의 공평한 진노와 형벌을 받음이 마땅하다. ⑦ 하나님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인류구원을 이루신다. 그는 성령(聖靈)의 권능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죄가 없는 분이다. 그러나 자기 몸으로 화목제물로 삼으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사 하느님 오른편에 앉으셔서 그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재림하신다. ⑧ 성령은 사람에게 죄를 깨닫게 하사 그 마음을 밝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신다. ⑨ 하느님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녀로 삼으셨다. ⑩ 그리스도가 세운 세례와 성찬의 성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합하는 표정으로 삼는다. 이 성례는 주님이 오실 때까지 지속하며 교우와 더불어 교통하는 표이다. ⑪ 신자의 본분은 입교하여 서로 교제하고 그리스도의 성례와 기타 법례를 지키며 주의 법을 복종하며 항상 기도하며 주일(主日)을 거룩하게 지킨다. ⑫ 최후의 심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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