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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야크존 - 히말라야 트레킹 원문보기 글쓴이: 야크지기
day 9. 하누밀 - 피슈 - 리남 / 20km (8.31) |
리남에서 수박을 먹다
아침을 먹고 7시 30분 출발했다. 우리처럼 쿡과 마부를 대동한 팀은 탁자에서 쿡이 요리한 화려한(?) 식사를 한다. 독립 트레커나 단지 말만 빌린 사들은 각자 알아서 해결한다. 홈스테이가 가능한 곳이면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 캠핑장에 있는 식당이 열려있다면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다.
어제 이곳에는 네 팀이 왔다. 우리보다 먼저 온 팀은 독립 트레커인 독일 영감님이고 우리보다 나중에 두 팀이 더 왔다. 독일 커플팀은 그들은 우리처럼 쿡과 마부를 모두 동원한 팀이다. 제일 나중에 온 팀은 30대 독일 여성과 50대 프랑스 남성 커플이다. 작은 텐트 하나를 둘이 설치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 탁자에서 차를 마시는데 텐트 옆 나무 아래 침낭에서 프랑스 남자가 나온다. 노숙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팬티바람이다. 우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취침문화다. 한국사람은 팬티만 입고 잠을 자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서양 영화에는 그런 차림으로 자는 모습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서양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일상적인 풍습인 모양이다.
그들은 어제 저녁을 따로 먹더니 오늘 아침도 따로 먹는다. 남자는 찻집으로 가고 여자는 아침을 먹고 있는 우리 곁을 지나 우리팀 주방텐트로 들어가 반갑다는 듯이 인사를 나눈다. 나중에 가이드 빔이 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들은 레에서 만나서 뜻이 맞아 백패커 스타일로 잔스카르 트레킹을 나섰는데 어제 의견충돌이 일어나 오늘 헤어지기로 했단다. 여자는 우리 주방에서 아침을 얻어먹고 혼자 떠났다.
오늘의 목적지 리남까지 가는 길은 가도가도 끝없는 지루한 길이다. 오전 9시 40분 피드모(3490m)를 지나서부터 보이기 시작한 장글라가 오후 1시 40분 피슈(3450m)를 벗어날 때까지 4시간 동안 왼편으로 지겹도록 보인다. 풍경의 변화가 없으니 더 지루하다. 그 사이에 땡볕 아래에서 장글라를 내려다 보며 점심을 먹었다.
그나마 피슈까지는 양반이었다. 피슈부터는 피곤한 찻길이 시작되는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드넓은 광야에 엄청난 바람이 분다. 어제까지는 대부분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여정이라 특별히 바람을 느끼지 못했다. 물론 고개마루에서는 당연히 바람이 불었다.
여기는 네팔 좀솜의 깔리 간다키 강바람을 무색케 하는 맞바람이 몰아친다. 깔리 간다키와 다른 점은 그곳은 강바닥이고 이곳은 벌판이라는 점이다. 벌판이긴 해도 동쪽으로 넓은 잔스카르 강이 흐르는 계곡이 있어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가 되는 모양은 같다. 먼지를 막는데 버프가 큰 도움이 되었다.
광야는 끝나고 바위 덩어리들이 흩어져 있는 지루한 자갈길이 이어진다. 도로공사중이다. 바위에 <리남 5km>라고 쓰여 있다. 3시 25분이다. 허리가 아픈 백산스님이 힘든지 아주 멀리 처져 있다. 가이드 녀석은 정신없이 혼자 앞서 가고 있다. 점심 먹고 말을 미리 보내 버렸다. 평지라고 하니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가이드하랴 견마잡으랴 귀찮기도 하겠지만 처음부터 견마잡이를 하기로 했으니 직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이 녀석은 꾀를 부린다. 틈만 나면 말을 먼저 보내려고 한다. 보통은 그렇게 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런 끝없는 평지길에서 허리 아픈 사람은 더 힘든다. 이런 길은 정상 컨디션인 나도 말을 타고 가고 싶을 정도다.
리남에는 오후 4시 30분에 도착했다. 피슈에서 7km 거리를 3시간 가까이 걸렸으니 평지길임을 생각하면 상당히 느린 운행이다. 지루한 9시간 운행으로 기진맥진 한 상태가 되었다. 물도 다 떨어져 시냇물을 마셨다. 맛은 없지만 맛을 따질 처지가 못된다.
역시 트레킹은 굴곡이 있는 고갯길이 훨씬 낫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오후 1시 20분에 운행을 마치지 말고 와따루처럼 두 시간 더 가는 피드모까지 가는 게 나았다. 그랬다면 오늘 오후 2시 30분이면 리남에 도착할 수 있다.
피드모에도 당연히 캠프사이트가 있다. 하누밀을 야영지로 선택한 것은 가이드와 마부들이 자기들 기준으로 좀 더 편리한 캠프사이트를 선호한 결과다. 우리로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다. 어쨌든 힘들게 왔지만 오픈 토일렛이라는 사실만 빼면 넓은 초지에 있는 리남 캠프장은 마음에 든다. 멀리 대히말라야 산군의 설산이 반겨주고 있다. 잔스카르에서 처음 히말라야를 만났다.
오늘 덥고 피곤한 운행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런 때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뽀송뽀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대청마루에서 수박을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만큼 덥고 피곤한 걸음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꿈이 이루어졌다. 저녁 먹고 나온 후식이 수박이다. 깜짝 놀라 쿡에게 수박이 어디서 났느냐고 물어보니 처음부터 가지고 왔단다. 그것을 트레킹이 끝나가는 여기서 내 놓은 것도 오늘의 힘든 여정에 대한 계산에서 나온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오직 상상으로만 기대했던 일이 눈 앞에 나타나니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공간에 흩어져 있던 수박을 이루는 분자들이 갑자기 뭉쳐 수박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어제 빔에게 안입는 폴라텍 상의를 주었다. 오늘은 쿡에게 중학교 다니는 아들 주라고 반팔 티를 주니 아주 좋아한다. 룸비니 근처 테라이 지방에 사는 쿡은 이곳 라다크에서 시즌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는단다. 아들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애뜻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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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밀 - 피드모 - 피슈 - 리남
갈수록 넓어지는 잔스카르 강
강 건너로 풍화된 절벽은 병정들이 도열해 있는 듯한 모습이다. 무스탕에서도 자주 보이는 풍경이다.
무스탕과 다른 풍경은 이런 톱니 모양의 바위산이다.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듯한 모습이 경이롭다.
강가에 많이 피어 있는 야생 관목. 열매는 식용으로 맛이 시큼하다.
넓은 경작지가 있는 피드모
경작지를 가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쌓은 돌담
온 가족이 나와 추수를 하고 있다.
아침 새참을 먹고 있다가 내가 지나가니 "차 한잔 하세요~" 한다(실제로는 '티'라는 소리만 알아들었지만 그런 뜻이리라).
티베트 차 한잔 얻어먹고 싶었지만 돌담에 막혀 가지는 못하고 아이를 불러 사탕을 주었다.
피드모를 지나다. 아주 넓은 벌판에 있는 마을이다. 보건소도 있다.
피드모를 벗어나는 중
넓은 벌판은 끝나고 다시 강가로 가는 길이 나왔다. 이런 독특한 바위산은 잔스카르의 특징이다.
강가에서 만난 씩씩한 독일 염감님
가던 길 돌아서면
강 건너로 장글라가 나타났다. 넓은 평원에 있는 마을이다. 장글라는 옛날 잔스카르 왕국의 수도였다. 지금도 왕궁이 있고 빔에 의하면 그곳은 현재 무료 홈스테이로 머물 수 있다고 한다. 프랑스 남자와 헤어진 독일 여성은 장글라로 갔다. 와따루도 장글라로 간다고 했다. 오른쪽 협곡으로 마르카밸리로 이어지는 트레일이 있다.
바위 언덕 위에 있는 장글라 곰빠
드넓은 잔스카르 계곡
피슈 도착. 지치기 시작한다. 마을에 가게가 없어 강가 피슈 캠프장으로 가 사이다 한 병 사 먹고 계속 걸었다.
타작하는 부부. 바람이 엄청 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바람부는 광야. 앞에 가는 가이드 빔.
뒤에서 따라 오는 백산스님
멀리서 짚차가 한 대 나타났다.
피슈까지 가는 트레커를 실은 차다.
강 건너 산 아래 차자르 마을. 어느곳이건 강렬한 느낌의 바위산이 있다.
보울더가 흩어져 있는 찻길
도로공사 인부들의 숙소 통과
아래 길을 놓아두고 다시 절벽을 깎아 길을 내고 있는 공사현장
넓은 리남 캠프장. 하늘이 넓어 밤에 많은 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화장실이 없어 오른쪽 산아래 보울더 뒤로 가는 불편함이 있다. 앞에 보이는 산은 대히말라야 산군이다. 트레킹이 끝나간다는 뜻이다.
더위에 지친 운행 중 생각난 수박이 실제로 나타났을 때의 놀라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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