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섭 칼럼] 한국 최초의 라디오 CM 송, 극장 CF 그리고 일본 최초 라디오 CM 송
진로 CM 송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모두 민간방송이 본격화된 것은 1945년 8월 15일 일본 패전 이후의 일이었다.
물론 미국의 민방이 모델이었다. 독점을 싫어하는 미국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NHK 방송 독점에 대항하는 민방 제도를
도입했는데 1950년 말 민방 라디오가 개국했다. 그리고 이듬해 9월 1일에 일본 최초의 라디오 CM 송이 등장했다.
(해방 전 동북 3성, 흔히 부르던 만주와 대만에서는 상업 라디오가 있었으나 본토에서는 신문의 반대로 민방이 없었다.)
8.15 광복과 함께 한국에서 민방의 시작은 1954년 12월 15일 개국한 기독교방송 CBS였으나, 초기에는 광고가 없었다.
방송광고의 시작은 ‘56년 5월 12일에 개국한 KORCAD(호출부호 HLKZ)였다. 슬라이드와 말뿐인 광고였다. CM 송이 등장한
것은 ’59년 4월 14일 개국한 부산 MBC였다. ‘59년 11월에 한국 최초의 라디오 CM 송 “야야야 야야야 차차차”로 시작하는
진로 소주 광고가 전파를 탔다. 50초짜리 이 광고 노래는 술을 마시든 안 마시든 또한 연령 차이 없이 히트곡이었다.
중앙일보 ’96년 6월 5일 기사에 따르면 작사는 동양방송 라디오 편성국장 손권식(예명: 손 문)이 “진로 파라다이스”로 가사를
만들었고 당시 부산 문화방송 악단장 허영철이 작곡했다. 이 노래는 64년이 지난 지금도 널리 퍼져 흥을 돋우는 한국의 명곡
가운데 하나처럼 되어 있다. 진로는 이 노래 저작권을 주장하지 않고 무료로 제공했다.
1962년 고 신동헌 화백이 만든 진로소주 ‘파라다이스’ 편
고 신동헌 화백 (출처, 나무위키, 씨네21)
1959년 진로 CM 송을 방송하던 시기에는 아직 방송 광고는 자유 천지이던 시절이었다.
“진로(眞露)‘, 우리말로 고치면 “참이슬“이라는 이름의 시작은 이 소주 회사가 창설된 곳의 이름에서 땄다 한다. 평양에서 남포로 가는 철로 역 이름 가운데 하나가 진지동(眞池洞)인데, 그 머리글자 “진(眞)”과 이슬 “로(露)” 자를 합친 이름이라 한다. 진로 광고 노래는 가사를 살펴보면, ’50년대 한국 사회 이모저모가 드러난다. 찌든 가난을 말할 것도 없지만 한편 이런 삶 속에서도 뚫고 나가려는 투지도 엿보인다. 광고 측면서 보면 한국에서 처음으로 광고 노래가 데뷔해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
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60년대 초의 CM송 전성시대는 이 광고의 성공이 자극되었을 것이다. 일본 최초의 CM 송은 고니시로꾸(小西六) 카메라 광고 노래다. 그런데 가사 어디에도 광고주 이름이 없다. 그 이유는 “청취자의 반감“을 사지 않으려고 일부러 광고주의 이름을 뺐다는 말이다. NHK의 광고 없는 공영방송에 젖어 온 지 오래된 일본인 청취자임을 고려하면 일리있는 이야기이다. 물론 뒤에 민방 TV의 등장도 있어 이런 일은 사라졌다. 일본 최초의 라디오 CM 송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필자의 임의 번역임.)
“나는 아마츄어 카메라 맨. 멋진 카메라 둘러 메고
귀여운 아가씨, 따뜻한 햇볕에 세워 놓고
앞에서, 옆에서 쳐다보며, 저쪽 봐요. 이쪽 봐요.
아 찰칵“
일본 최초의 라디오 CM 송
진로나 일본 카메라 광고나 그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청취자 시장 조사를 한 기록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광고 효과가 뛰어났던 것은 진로 광고일 것이다. 그것은 이 라디오 광고나 나간 뒤 64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는 데에서 나타난다. 진로 광고는 신동헌(申東憲) 화백의 끈질긴 노력으로 극장 CF로 발전한 것이 남아 있다. 지금 보면 하찮아 보이는 진로 소주 극장 광고 제작에는 눈물 어릴 만한 노력이 숨어 있었다. 신동헌의 진로 극장 광고는 뛰어난 애니메이션이라는 측면에서도 높이 살 가치가 있는 광고이다. 아마도 두 광고 모두 명예의 전당이 있다면 수록될 만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광고이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
첫댓글
신인섭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 드립니다.
이분은 우리나라 아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살아있는 전설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