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無心)을 쓰라 / 우두법륭 (牛頭法融) 선사
恰恰用心時 恰恰無心用 * 恰恰 꼭. 바로. 마침
흡흡용심시 흡흡무심용
적절히 마음을 쓰려할 때는
적절히 무심(無心) 그것을 쓰라.
曲淡名相勞 直設無繁重
곡담명상노 직설무번중
자세한 말 명상(名相)에 지치게 하고
바로 설하면 번거로움 없나니.
無心恰恰用 常用恰恰無
무심흡흡용 상용흡흡무
무심을 적절히 쓰면
항상 쓴 대로 적절히 무(無)임 되리
今設無心處 不與有心殊
금설무심처 불여유심수
그러기에 이제 무심 설해도
유심(有心)과 전혀 다르지 않으니라
* 우두산 법융(法融 594-657). 선종 제4조 도신(道信)의 제자.
도신의 아래 제5조 홍인 계열을 동산종이라 하고,
법융 계열을 우두종이라 한다.
도신과 법융, 스승과 제자의 간곡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등록에는 이렇게 전한다.
4조 도신선사가 멀리서 기상을 관찰하고
그 산에 기이한 사람이 있음을 알고
몸소 찾아가서 절에 있는 스님에게 물었다.
此間有道人否。(차문유도인부)
‘여기에 도인이 있는가’
曰出家兒那箇不是道人。(왈출가아나개부시도인)
스님이 대답했다.
‘출가한 사람이 누가 도인이 아닌 이가 있겠습니까’
祖曰。阿那箇是道人。(조왈 아나개시도인)
4조가 다시 물었다. ‘누가 도인인가’
僧無對。別僧云。(승무대 별승운)
그 스님이 대답을 못하고, 다른 이가 말했다.
此去山中十里許有一懶融。(차거산중십리허유일나융)
‘여기서 산 속으로 십리쯤 들어가면 게으름뱅이가 하나 있는데,
見人不起亦不合掌。莫是道人。(견인불기역부합장 막시도인)
사람을 보아도 일어나지도 않고 합장도 하지 않는데
그가 혹 도인 일런지도 모르겠네요’
祖遂入山見師。端坐自若曾無所顧。(조수입산견사 단좌자약증무소원)
조사가 산으로 들어가니
법융이 단정히 앉아서 태연자약하여 돌아보지도 않았다.
祖問曰。在此作什麼。(조문왈 재차작심마)
조사가 물었다.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師曰觀心。(사왈관심)
법융이 답했다. ‘마음을 관찰합니다.’
祖曰。觀是何人心是何物。(조왈 관시하인심시하물)
‘관찰하는 것은 누구이며 마음이란 어떤 물건인가.’
師無對便起作禮。師曰。(사무대편기작례 사왈)
법융이 대답을 못하고 벌떡 일어나 절을 하고 말했다.
大德高棲何所。(대덕고서하소)
‘대덕은 어디에 계시는 어른이신지요.’
祖曰。貧道不決所止或東或西。(조왈 빈도부결소지역동역서)
조사가 말했다.
‘빈도는 일정하게 사는 곳이 없이 동서남북으로 다닌다네.’
師曰。還識道信禪師否。(사왈 환식도신선사부)
‘그러면 도신선사를 아십니까’
曰何以問他。(왈하이문타)
‘어째서 그를 물으십니까’
師曰。嚮德滋久冀一禮謁。(사왈 향덕자구기일예알)
‘오랫 동안 덕음을 들었으므로 한 번 뵙기가 소원입니다.’
曰道信禪師貧道是也。(왈도신선사빈도시야)
‘도신이 바로 나요.’
師曰。因何降此。(사왈 인하강차)
‘어떻게 여기까지 강림하셨습니까.’
祖曰。特來相訪。莫更有宴息之處否。(사왈 특래상방 막경유연식지처부)
‘특별히 그대를 찾아 왔다네.
이 밖에 쉴만한 곳이 따로 없겠는가 ?’
師指後面云。別有小庵。遂引祖至庵所。(사지후면운 별유소암 수인조지암소)
법융이 뒤를 가리키며
따로 조그만 암자가 있다며 조사를 이끌고 암자로 가니
繞庵唯見虎狼之類。(요암유견호랑지류)
암자 둘레에는 호랑이들만 우글거렸다.
祖乃舉兩手作怖勢。師曰。(조내거량수작포세)
조사가 두 손을 들면서 겁내는 흉내를 내자 법융이 물었다.
猶有這箇在。(유유저개재)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았습니까.’
祖曰。適來見什麼。(조왈 적래견심마)
조사가 되물었다. ‘지금 무엇을 보았는가.’
師無對。(사무대)
법융이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少選祖却於師宴坐石上書一佛字。(소선조각억사연좌석상서일불자)
조금 있다가 조사가 법융이 좌선하는 바위 위에
부처 불(佛)자를 하나 쓰니
師覩之竦然。(사도지송연)
법융이 이를 보고 송구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부터는 부처님을 깔고 앉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祖曰。猶有這箇在。(조왈 유유저개재)
그런 법융을 보고 조사가 물었다.
‘아직도 그런 것이 남았는가.’
師未曉乃稽首請說真要。(사미효내계수청설직요)
법융이 아직 깨닫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참 법문을 말해주기를 청했다.
祖曰。夫百千法門同歸方寸。(조왈 부백천법문동귀방촌)
조사가 말했다.
‘백천가지 법문이 모두 마음으로 돌아가고,
河沙妙德總在心源。(하묘사덕총재심원)
간지스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묘한 공덕이
모두 마음에 근원이 있다.
一切戒門定門慧門神通變化。(일체계문정문혜문신통변화)
悉自具足不離汝心。(실자구족불리여심)
온갖 계율, 선정, 지혜, 해탈의 법문과 신통변화가
모두 제대로 구족해서 그대의 마음을 여의지 않으며,
一切煩惱業障本來空寂。(일체번뇌업장본래공적)
온갖 번뇌와 업장이 본래 공적하며,
一切因果皆如夢幻。(일체인과계여몽환)
온갖 인과 모두가 꿈과도 같다.
無三界可出。無菩提可求。(무삼계가출 무보리가구)
삼계를 벗어날 것도 없고 보리를 구할 것도 없다.
人與非人性相平等。(인여비인성상평등)
사람과 사람 아님이 성품과 형상에 있어서 평등하며,
大道虛曠絕思絕慮。(대도허광절사절려)
대도(大道)는 비고 넓어서 생각과 걱정이 모두 끊어졌다.
如是之法汝今已得。(여시지법여금이득)
更無闕少與佛何殊。(갱무궐소여불하수)
이러한 법을 지금 그대는 얻었다.
조금도 모자람이 없으니 부처와 무엇이 다르랴.
更無別法汝但任心自在。(갱무별법여단임심자재)
다시 딴 법이 없으니 그대는 그저 마음 따라
자재로이 살아가면 된다.
莫作觀行。(막작관행)
관행(觀行)을 닦지도 말고
亦莫澄心。(역막징심)
마음을 맑히려 하지도 말고
莫起貪瞋。(막기탐진)
탐욕과 성냄을 일으키지도 말고
莫懷愁慮。(막회수려)
근심걱정도 하지 말아라.
蕩蕩無礙任意縱橫。(탕탕무애임의종횡)
탕탕(蕩蕩)하게 걸림 없이 마음대로 종횡(縱橫)하라.
不作諸善不作諸惡。(부작제선부작제악)
선을 짓지도 말고 악을 짓지도 말라.
行住坐臥觸目遇緣。(행주좌와 촉목우연)
總是佛之妙用快樂無憂。(총시불지묘용쾌락무우)
다니고 멈추고 앉고 누움에 보는 것 만나는 일이 모두 부처님의
묘한 작용(妙用)으로서 언제나 즐거워서 근심이 없다.
故名為佛。(고명위불)
그러므로 부처라 한다.’
師曰。心既具足。(사왈 심기구족)
何者是佛何者是心。(하자시불하자시심)
법융이 물었다. ‘마음에 이미 다 갖추었다 하면
무엇을 부처라 하며 무엇을 마음이라 합니까.’
祖曰。非心不問佛。(조왈 비심불문불)
問佛非不心。(문불비불심)
조사가 답했다. ‘마음 아니면 부처를 묻지 못할 것이니
부처에 대해 묻는 그것이 마음 아님이 없다.’
師曰。既不許作觀行。(사왈 기불허작관행)
於境起時心如何對治。(어경기시심여하대치)
‘관행(觀行)을 닦지 말라 하시면
경계가 일어날 때는 어떻게 다스리리까.’
祖曰。境緣無好醜。(조왈 경연무호추)
‘경계인 인연은 좋고 나쁨이 없다.
好醜起於心。心若不彊名。(호추기어심 심약불강명)
妄情從何起。(망정종하기)
좋고 나쁨은 마음에서 일어나니, 마음이 억지로
이름을 짓지만 않는다면 그릇된 생각(妄情)이 어떻게 일어나겠는가.
妄情既不起。真心任遍知。(망정기불기 진심임편지)
망정이 일어나지 않으면 참마음(眞心)이 맡아 두루 알게 되나니,
汝但隨心自在無復對治。(여단수심자재무복대치)
그대는 다만 마음을 따라 자재로이 할 따름이지,
다시 상대하여 다스리려하지 않으면 된다.
即名常住法身無有變異。(즉명상주법신무유변이)
이것을 이름하여 상주법신은 변함도 다름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吾受璨大師頓教法門。今付於汝。(오수찬대사돈교법문 금부어여)
내가 찬(璨 3조 승찬)대사의 돈교법문(頓敎法門)을 받았다가
이제 그대에게 전하노니
汝今諦受吾言只住此山。(여금체수오언지주차산)
그대는 지금 내 말을 잘 듣고 이 산에만 있으라.
向後當有五人達者紹汝玄化 (향후당유오인달자소여현화)
이 뒤에 다섯 사람의 달자(達者)가 나타나서
그대의 현묘한 덕화를 이으리라.’
출처 : 학림사 오등선원 / 글쓴이 : 여산
출처 : 가장 행복한 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