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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파
김 성 한
이(虱)가 뻐기는 데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빈대나 벼룩과는 유가 다르다는 것이다. 더구나 구린내 나는 뒷간 똥틈에서 빠져나온 파리 따위와는 얘기가 안 된다는 것이다. 자기가 이같이 멋들어지게 사는 데는 전생의 인연도 있을 것이요, 무엇보다도 태생부터 특출하다는 것이다.
우선 김대감님댁 다다미방에서 내노라고 훌찍훌쩍 뛰는 벼룩이란 작자만 하더라도 그 족보를 캘진대 미친개의 사타구니에서 났다는 것이다.
미친개의 사타구니에서 났으면 꼬리에나 붙어살면서 똥묻은 엉덩이나 핥아먹고 처박혀 있을 것이지 주제넘게스리 문턱을 넘어 식모방에 들어와서 판을 치다가 요새 와서는 감히 대감님 방에까지 침범해 들어왔으니 아니 꼽기 그지없다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밤이 되면 자정이 지난 후에도 대감님께서 몸소 일어나셔서 전등을 켜옵시고 벼룩인가부다고 야단치시는 품이 무엄하게도 대감님 옥체까지 침범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빈대라논 놈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온돌방 장판지가 찢어진 틈바구니에 어린애 똥이 흘러들어가서 말라붙은 지저분한 구멍에서 났다는 것이다.
똥에서 나온 자라 똥같이 너지분하다는 것이다. 해가 뜨거나 불이 켜지기만 하면 바늘끝도 들어갈락말락한 벽틈으르 내뺐다가도 어둡기만 하면 허깨비같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겁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로 말하면 우선 출생지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동물치고는 영장이라고 뻐기는 인간들 중에서도 또 으뜸이라고 뽐내는 백인(白人)의 몸에서 났다는 것이다. 백인도 그지 백인이 아니라 미인(美人)의 평이 자자한 백계노인 여자의 몸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같은 몸이라도 자기가 난 곳은 다른 놈이나 년들이 나온 곳과는 비교도 안 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명맥이 아득한 옛날부터 미래 영원히 연결되어 있는 국부의 음모 기슭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는 태생으로 말하면 만물의 영장 인간과 조금도 다름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기가 오늘날까지 치른 세상 풍파로 말하면 시골띠기 마당쇠나 개똥녀 따위 인간보다 월등 낫다는 것이다. 상해 공동조계에서 매소부라는 벼슬로 날리는 모체의 사타구니에 기식하면서 인간의 제작과정 아니 파종과정을 면밀히 관찰함으로써 사도(斯道)의 오묘한 진리를 터득하였다는 것이다.
삼십여 명의 호위병으로 위의를 갖추고 와서는 문밖에 배치해 놓고 유유히 들어와서 천천히 옷을 벗고 알몸뚱이로 인간 창조과정을 시범하는 고관으로부디 마상에서 늠름한 자세로 휘하부대의 열병 분열을 사열하던 일본군 대장의 벌거벗은 모습으로부터 길가에 벌여놓은 과부의 사과 광주리를 발길로 차서 관의 위엄을 최고도로 발휘하던 순검의 때가 덕실덕실한 볼기짝으로부터 문을 들어서 바지만 벗어 팽개치고 다짜고짜 덤벼들어서는 미구에 거품을 물고 씩씩 거리는 쿠리[苦力]의 똥내나는 엉덩이에 이르기까지 인간 군상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는 것이다. 자기의 심원한 지식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시발점이요, 이로부터 오랜 세월을 두고 겪은 풍파는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이루고도 남음이 있다는 것이다. 더 적절한 표현을 빈다면 자기가 더듬어 온 가시길은 세계사가 더듬은 길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중공군이 본토를 점령하지 않았던들 자기는 아직 상해의 그 벽돌집 찬란한 고대광실에서 모체의 따뜻한 숲속에 파묻혀 안온한 생활을 보내고 있으리라는 것이다. 더구나 모체인 백녀(白女)는 이 한국사람들같이 걸핏하면 남을 해지려고 덤비는 따위 각박한 근성은 전연 없고 오히려 자기를 애무해 주더라는 것이다. 각박하다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적어도 자기 동족 ‘이’에 대해서는 중국사람들과 같이 각박한 자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손톱을 맞부딛쳐서 무자비하게 압살하는 한국사람도 남부럽지 않게 각박하지마는 이빨로 깨물어서 피를 빨아먹는 중국사람에 대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는 것이다. 자기도 그런 변을 당해서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것이다. 중공군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시정부 고관과 사바사바해서 비행기로 홍콩에 날아온 모체와 더불어 자기도 홍콩에 도착한 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이다. 상해에서 흥청대던 경기라고는 볼 수 없고 본토에서 물밀듯 들여덤비는 바람에 방 하나 똑똑한 것을 얻지 못하고 씽그러진 오막살이 한 간을 점령한 모체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영업을 벌여놓는 통에 죽을 삔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상대는 대개 쿠리인지라 한번 오면 달라붙어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때와 땀이 뒤범벅이 되어서 이상야릇한 물이 철철 흐르는데다가 종이를 쓸 줄 모르는 친구들인지라 몇 해씩 묵은 똥냄새가 의복과 하반신에 매어서 아주 숨이 쿡쿡 막히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한두번이면 꾹 참기라도 하련만 하루에도 칠팔 회는 아주 적은 편이니 견디어 배길 재간이 없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일대 결심을 하지 아니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서깊은 모체를 떠나는 것이 선결문제였다는 것이다.
어느날 새벽 날이 밝기 전에 모체가 잠든 틈을 타서 정든 고향산천을 등지고 침대머리에 나와 찢어진 톰에 들어가서 깊이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였으나 신통한 묘안이 나오지 않길래 덮어놓고 요댐에 오는 놈의 꼬리에 붙어서 이 지긋지긋한 방을 영영 하직하기로 결정하였다논 것이다. 다음에 들어온 놈도 역시 구린내 나는 쿠리더라는 것이다.
황홀경에서 씨근덕거리는 그자가 침대머리에 벗어 팽개친 검은 옷갈피에 들어가 숨을 죽이고 있노라니까 이윽고 옷을 줏어 입고 쇼알라쇼알라 중얼거리며 거리에 나서더라논 것이다.
하루종일 거리를 찔룩찔룩 돌아다니다가 석양에 산허리 돌등에 앉더니만 윗통을 홀랑 벗고 일대 토벌작전을 개시하더라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검은 옷을 턱 펼치니 허연 이들은 또렷또렷하게 나타나서 숨을 재주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 수가 많은 것을 보고 쿠리 공(公)은 희색이 만면해서 한놈 한놈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어금니 사이에 떡 끼이고는 상하로 부딪는 이빨로 일대 폭발을 감행한 연후에 빙그레 웃으면서 침을 꿀꺽 삼키더라논 것이다. 거인 쿠리 공의 그 엄청난 아가리는 한마리 따위는 통채로 샴켜도 시원지 않은가 보아서 끝판에 가서는 한손을 웅키고 한손으로 쓸어 담아서 십여 마리를 단박 입속에 넣고 딱딱딱…… 하더라는 것이다. 자기는 글자 그대로 혼비백산하고 정신이 아찔해서 기절할 뻔했다는 것이다. 바로 목덜미에 닿는 부분 솜속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두 눈만 또부락 또부락 해서 사생결단으로 엿보고 있노라니까 어지간히 잡아서 보이지 않는지 주욱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도루 줏어입더라는 것이다.
앞발로 가슴을 어루만지면서 소리는 내지 않도록 조심에 조심하면서 길게 숨을 내쉬었다는 것이다. 쿠리 공이 움찍 일어서는 품이 전쟁이 끝난 모양이라 안심이 되더라는 것이다. 안심이 되고 보니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릴 것이 신새벽에 백녀를 떠난 후 입에 풀칠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각박한 친구의 살결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큰 화를 입을 것은 빤한 노릇이지마는 굶어 죽으나 잡혀 죽으나 죽기는 매일반이 아니냐고 용기를 가다듬어서 목덜미를 딱 깨물고 피를 쪽 빨았다는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입에 문 피가 목구멍을 넘어가기도 전에 쿠리 공의 어마어마한 손가락에 그만 덥석 잡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온몸이 오싹하였으나 애써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왕 죽는 바에는 먹고나 죽자고 입속의 피를 꿀꺽 삼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쿠리 공은 두 손가락 사이에 끼인 자기의 감촉이 달랐던지 한손을 쓱 펴고 손바닥 한복판에 자기를 놓더라는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보다가 다음 순간 지극히 만족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 손가락으로 뒤적거리며 등 허리 뱃통 할것없이 샅샅이 검토하고 나서는 침을 꿀꺽 삼키 더라는 것이다. 자기는 부르르 떨었다는 것이다. 금방 그 지옥 같은 아가리에 들어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은 조리고 식은땀이 물 흐르듯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쿠리 공은 자기처럼 배때기가 똥똥하고 살결이 희고 큼지막한 이는 일찌기 보지 못하였던지 아주 감탄 삼탄하면서 입에 침을 흘리며 손바닥에서 손등에 옮겨놓고 완상하다가 다음에는 그 검은 옷섶에 이동하였다가 나중에는 한쪽 필을 불씬 거두고 뜸자리 위에 얹어 놓더라는 것이다. 물실호기라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서 몇 백길 되는 땅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다행히 땅바닥은 풀밭이어서 숨을 데가 얼마든지 있는지라 우선 배짝 말라붙은 풀뿌리 구멍에 틀어박혔다는 것이다. 쿠리 공은 ‘타마비’를 연발하면서 한사코 찾더라는 것이다. 돌멩이를 하나 하나 집어내고 풀 한 포기도 열 번은 더 들춰보더라는 것이다. 어지간히 찾다가 그만 돌아가려니 했더니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늘어붙어서 갈 기색이 안 보이더라는 것이다.
해가 떨어져서 어두워서야 또 ‘타마비’를 연발하면서 구린내 나는 바지끝을 찢어 돌멩이에 얽어매어 표식을 해 놓고 열다섯 번도 더 뒤돌아보면서 가더라는 것이다.
그날 밤은 뜬눈으로 밝혔다는 것이다. 백녀의 품안에서 괜스리 뛰처나왔다고 후회막심하였으나 어쩔 도리가 없더라는 것이다. 하여튼 별이 총총한 밤하늘 아래 풀속에서 연방 한숨을 쉬면서 신세타령을 하였다는 것이다. 신세타령 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이 아닌지라 기회를 엿보아 근사한 놈의 꼬리에 붙어서 도로 인간 사회에 돌아갈 궁리를 하면서 날이 밝기만 고대하였다는 것이다.
동녘 하늘이 훤하게 밝아올 무렵 발자욱 소리가 들리기에 풀꼭대기에 올라가서 모가지를 빼어들고 가까이 오는 것을 가슴을 조이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 와서 허리를 구부리고 헝겊을 처맨 돌멩이를 찾아든 얼굴을 보니 다름이 아닌 어지께 쿠리 공이더라는 것이다.
자기는 기겁을 했다는 것이다. 풀 꼭대기에서 기어내려온 것이 아니라 겁걸에 마구 떨어져서 제 구멍으로 굴러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날이야말로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변을 당한지라 진짜 이십년 감수했다는 것이다. 쿠리 공은 우선 웃통을 벗어 던지고 턱 엎드리더니만 눈을 땅에 붙이고 수색을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다섯 시간이나 걸려서 한바퀴 훑어보고 나더니 이번에는 마지까지 홀랑 벗어 버리고 속옷 바람으로 덤벼들어서 낱낱이 풀을 뽑아 가지고 잎사귀니 가지니 뿌리니 할 것 없이 조사하더라는 것이다.
이제는 할 수 없이 죽었구나 단념하고 자뿌라져 있노라니까 과연 자기가 드러누운 풀 포기를 조심스레 잡압배더라논 것이다.
빼어서 쳐드는 마람에 구멍 입구에 모래알이 굴러 박히더라는 것이다. 이것 이야말로 하느님의 은덕이라고 맨 앞발을 모아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는 것이다. 쿠리 공이 오랜 시간을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길가에 휙 집어 팽개치는 바람에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심(再審)을 할까 두려워서 마음이 안 놓이기에 어둡기만 고대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어두워도 쿠리 공은 가지고 온 가마때기를 퍼 놓고 자빠져 자더라논 것이다. 날이 밝으면 또 수색을 시작할 터인데 속은 간데없고 처량하기가 그지없더라는 것이다.
밤도 깊어서 행인도 없고 조용해지자 지친 몸이라 저절로 잠이 들었다는 것이다. 어느때나 되었는지 분명치 않으나 하여튼 쾅 하고 벼락치듯 하는 소리에 놀라 깨니 곤드레반드레 취한 작자가 옆에 쓰러져 있더라는 것이다. 천재일우의 기회라 얼른 그자의 목덜미에 들어가서 내의 단에 몸을 감추었으나 원래 술고래인지라 꼼짝도 않고 코를 골더라논 것이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라 이것도 하느님의 깊은 고려에서 나온 기연이라고 활개를 치면서 옷단에서 나와 살점을 물어뜯고 피를 양껏 들이켰다는 것이다. 그 작자가 어찌나 술이 취했는지 끄떡없기에 배를 두드리면서 먹을 대로 먹고 마실 대로 마셨다는 것이다.
팔자란 기묘한 것이라 이것이 인연이 되어서 한국으로 날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그자는 어떤 무역회사의 한국 지사에 근무하는 서기나부래기라 이튿날 출발을 앞두고 이곳 장사치들이 베풀어 준 송별연에서 이같이 취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튿날 그 악착같은 쿠리 공을 영원히 등지고 이곳을 떠나 시내로 빙빙 돌다가 오후가 되자 홍콩 비행기 장을 떠나는 캐트(CAT) 편으로 수륙만리 여의도 공항에 도착하였다는 것이다.
이것만으로 일대 풍파이지마는 서울에 도착한 때부터 지금 기식하고 있는 김대감댁에 이르기까지의 우여곡절도 여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선 이 무역회사 서기 나부래기 옆구리에 붙어서 사흘에 한 번은 꼭 종삼(鍾三)이네 집에 출입하였다는 것이다. 홍콩에서 백녀의 이같은 거동에 덴지라 종삼이네 계집에게는 절대 붙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이 서기 나부래기가 근무하는 무역회사에 생활이 어떻구 집이 어떻구 하면서 여자 대학생이 취직해 들어왔다는 것이다. 서기 나부래기는 이 여자 대학생에게 홀딱 반해서 중국말을 가르지노라는 조목으로 가까이 가서는 ‘셰셰’구 ‘거텐중’이구 ‘이얼싼쓰우’구 어찌구 하는 사이에 눈이 맞아서 여자네 집에 출입하게 되고 가끔 동침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 대학생에게는 삐짓한 약혼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껍데기는 약혼자이지마는 부부가 된다는 그 행동을 삼년 전에 시작하였으니 알맹이는 부부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자가 근래에 와서 부산에 근무하게 된 것을 기화로 편지에는 ‘나의 사랑하는 A씨’구 어쩌구 그럴듯한 문구를 나열하면서도 짱골로를 만나면 숫처녀도 그런 숫처녀는 없다는 듯이 아양을 떨어바쳐서 ‘한국에 이런 여성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감탄케 하였다는 것이다. 거리가 떨어지면 정도 떨어진다는 식으로 천리를 떨어진 A가 서울로 출장을 와도 그다지 반가운 마음은 없고 정은 도리어 매일 상종하는 짱골로한테 쏠렸다는 것이다. 여자 대학생도 현대 한국여성인지라 싫어졌으니 그만 파혼하자고 얘기할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을 버리고 중국사람하구 결혼해요’ 하면, 보통 한국사람은 중국인을 호떡 장사 이상으로는 보지 않으니 마음에 찔리는 바가 없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A가 상경한 날, 낮에는 아무도 모르는 여관방에서 그가 그 행동을 요구하기에 합당한 핑계가 없어서 이에 응하였고, 밤에는 A가 자기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못하니 오지 않으리라고 단정하고 중국 서기 나부래기하구 동침하였다는 것이다. 그 딸에 그 에미였다는 것이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는 격으로 무역회사 사장이 이것을 눈치채고 웃음꺼리로 친구한테 얘기한 것이 신문기자의 귀에 들어가고 신문기자논 바로 A의 친구라 단박 통지하니 부산서 부랴사랴 올라와 신새벽에 여자 대학생네 집 문을 다짜고짜 열어제끼자 동침하는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일대전쟁 이 벌어져서 때리고 맞고 쓰러지고 하는 바람에 이(虱)는 그만 온돌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수많은 발바닥이 머리 위를 오고가고 거울이 부서지고 하는 통에 짓눌려 죽을 뻔하였으나 몸이 작은 덕분에 이렇다 할 상처는 입지 않고 간신히 책상다리에 붙어서 목숨만은 건졌다논 것이다. 서기 나부래기가 녹아웃되어서 쫓겨나고 A라는 청년도 여자 대학생의 낯짝에 검푸른 가래침을 뱉고 가버리자 난리는 평정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난리가 터진 날부터 그는 여자 대학생의 육체에 기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후도 세상의 눈을 속여 중국 요릿집에서 몇 번 서기 나부래기와 재미나는 운동을 전개하는 장면에는 빼놓지 않고 있었으나 데데해서 그자한테는 도로 갈 생각이 안 나기에 분냄새가 풍기는 보들보들한 몸뚱이에 그냥 남아 있기로 결심하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된 셈이지 모르나 여자 대학생은 그후 얼마 안 가서 서기 나부래기와 헤어져서 새로운 남자와 어깨를 걸고 다니며 땐스라는 괴상망칙한 운동도 하고 극장이라는 어두컴컴한 고장에도 들어가고 가끔 여관이라는 집에 들어가서 누워서 하는 운동을 하더라는 것이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단 한 가지 참지 못할 것이 있어서 이 모체에서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다름 아니라 이 모체가 룸바니 맘보니 하여 가지고는 엉덩이를 이상야릇하게 내휘젓는 바람에 왼통 지진이 일어난 것만 같아서 정신이 아찔해지고 멀미가 나고 막 구역질이 나서 견딜 재주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단단히 결심하고 기회만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러던 차에 여자 대학생은 또 어떤 다른 청년과 눈이 맞아서 단박 여관에 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운동을 개시하더라는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칠까 보냐고 그 청년의 겨드랑 숲속에 매달렸다는 것이다.
청년의 겨드랑으로 이동한 후로는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으나 극도의 식량난에 굶어 죽을 뻔하였다는 것이다. 세상 어디서나 한쪽에서 아프면 한쪽에서는 시원하고 한쪽에서 배부르면 한쪽에서는 매고픈 것이 하느님의 법칙이지만 이것은 너무나 심하였다는 것이다. 첫날밤에 내의를 벗어 놓자 빨래통에 들어갈까 두려워서 어두운 틈을 타고 이불 속에 숨었더니 가장자리에 소독약이라는 가루를 쪼옥 뿌리는 통에 얼씬도 못하였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이틀을 꼬박 굶으면서 지혜를 짜서 생각던 끝에 묘안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새로 빨아서 다리미질한 내의 속으로 기를 쓰고 기어들어갔다는 것이다.
아침에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자 그자는 예기한 대로 줏어입더라는 것이다. 이불에 소독약까지 뿌리는 자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뼈도 못 추릴 판인지라 배고픈 것도 허리를 졸라매고 참았다는 것이다. 그지 이자의 몸에서 빠져나올 궁리만 하면서 기회만 오기를 고대하였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다방에서 큰소리치고 길가에 나가면 수없이 악수하고 제 애비가 굉장한 사람이라고 뽐내고 춘부장한테 부탁해서 이 적산을 꼭 뺏아주게 연고자라는 건 아주 보잘 것 없는 반편일세 어쩌구 하는 작자에게 염려없다고 장담하고는 맥주에 양식을 먹고 해가 떨어지자 멋드러진 자동차에 몸을 비스듬히 기대더라는 것이다.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것만 같아서 차 안에서도 가슴이 조마조마했다는 것 이다. 다행히 차는 로타리에서 구부러져서 돈암동을 향하기에 약간 안심이 되더라는 것이다. 마침내 문패도 없는 대궐 같은 집에 쑥 들어가서 차가 서는데 안에서는 왈츠곡이 흘러나오더라는 것이다. 그는 여기서 잘 왔다고 앞발로 가슴을 문질렀다는 것이다. 신이 나서 방으로 들어가는 이자의 소매끝에 붙어서 한바퀴 휘둘러보니 말상을 한 사내, 호박 같은 계집도 있고 기름이 번질번질한 쥐새끼 같은 남자, 양갈보 못지 않게 고상(?)하게 차린 여자들도 있는데 서로 얼싸안고 빙빙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모두들 옷차림만 하이카란 것이 아니라 입도 아주 하이카라여서 미스니 마드모아젤이니 무슈니 미스터니 하는 꼬부랑 말을 주고받더라는 것이다. 이자가 들어서자 파마를 부채 모양으로 해서 갈라 붙인 여자가 ‘아유 무슈 p’하면서 달려와서 제창 모가지를 껴안더라는 것이다. 옷차림과 입은 매우 하이카라였으나 상판은 틀림없는 메주 상판이더라는 것 이다. 메주거나 장이거나 내가 살 길은 이 여자의 그 고귀(?)하고 깨끗(?)한 몸뚱아리로 옮기는 데 있다고 단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모가지를 껴안은 채 식탁으로 가서 위스키를 한잔 두잔 마시다가 마침 정전된 틈을 타서 마구 붙잡고 키스라는 거동을 열렬하게 전개하더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이 주신 천재일우의 호기라고 그자의 소매 끝에서 메주의 어깨로 얼른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어깨에서 목덜미까지의 거리를 달릴 때는 뒤에서 방치찜이라도 하는 듯싶어서 정말이지 진땀이 부쩍부쩍 흘렀다논 것이다. 생김생김부터가 미욱하게 생겨 먹었으니 문제 없다고 배고픈 김에 목덜미의 살을 마구 뜯어먹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까딱 않고 있길래 놈과 년의 주둥아리가 맞붙은 줄만 알고 은근히 걱정하면서도 목덜미는 여전히 뜯어먹 었다는 것이다.
천성이 미욱한 건 별수 없는 법이니라고 안심하고 있었더니만 요것이 ‘익스큐즈 미’ 어쩌구 하면서 일어서더라는 것이다. 이거 큰일났다고 부랴부랴 전격적으로 밖에 나와 접어놓은 카라 밑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낭하에 나오기가 무섭게 목덜미를 문지르고 잔등을 긁고 젖통을 만지고 야단법석 하다가 그만 변소에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간이 콩알만 해서 꼼짝도 않고 있노라니까 웃통을 넹쿵 벗어가지고 한손으로 올리쓸고 내리쓸고 열심히 쓸더라는 것이다. 안팎을 다 쓸고 나서 두서너 번 툭툭 털어서 또 멩쿵 입고 나오더라는 것이다. 이만 지만 미욱한 것이 아니로구나 너 따위한테 잡힐 거면 홍콩서 쿠리한테 일찌감치 죽었겠다, 요 메주야 하고 코웃음을 쳤다는 것이다.
나와서는 그 사내와 ‘무슈 p, 미스 킴’ 어찌구 하면서 얼싸 안고 빙빙 돌아가더라는 것이다. 요것도 같은 족속인가 보아서 빙빙 돌아가는 데는 아주 취미가 있는 모양으로 땀을 철철 흘리면서도 그냥 붙어서 엉덩이와 두 다리를 이리저리 씰룩거리더라는 것이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데다가 배고프던 김에 성찬을 먹고 나니 잠이 솔솔 들어서 ‘에라 모르겠다. 너는 돌아라, 나는 잔다’고 잤다는 것이다.
얼마나 잤는지 통 몰랐다는 것이다. 자몽차 문이 열렸다가 쾅 하고 닫히는 바람에 놀라 깨니 메주는 으리으리한 집 대문을 들어서는 길이었다는 것이다.
눈부신 자동차가 왔다갔다 하고 집이 굉장한 품으로 보아서 돈냥 있든지 세력이 상당하든지 곡절이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관에 들어서자 아씨 어찌구 대감님께 어쩌구 하는 것을 보니 여간한 집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낭하를 꼬불꼬불 돌아 이층 메주 방에 들어서니 벽장식이니 침대니 테블이니 응접 셋트니 모두가 상해에서 날리던 백녀 따위는 문제도 안 되더라는 것이다. 더구나 여왕을 모시는 시녀 모양으로 젊은 여자들이 달려들어서 옷을 벗겨주고 모자를 걸어주고 심지어 양말까지 벗겨주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손발이 명신이라면 몰라도 말짱한 것이 침대에 자뿌라져서 병신 행세를 하는 데는 메스꺼워서 못 배기겠더라는 것이다.
젊은 여자가 조심스레 양발을 벗기고 있는데 ‘요년아 아파. 손이 왜 그렇게 농군 손 같어? 더럽게스리’ ‘손이 터서 그래요’ ‘손은 그렇다구 옷은 왜 그꼴이야?’ ‘제가 옷이 어딨나요’ ‘사람이 옷두 없어?’ 하는 데는 정이 뚝 떨어지더라는 것이다.
가만히 보니 심부름 드는 여자가 월등 낫게 생겨 먹었더라는 것이다. 너도 팔자가 기박하구나 하고 동정이 들어간데다가 메주의 돼먹지 않은 소갈머리를 보니, 요것도 이불에 소독약을 뿌릴 위인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이때 메주는 침대에서 불쑥 일어나서 내의을 벗어 팽개치고 새것을 줏어 입더라는 것이다.
아니꼽기 그지없더라는 것이다. 메주가 침대 위에 자뿌러지자 여자는 벗어 놓은 것을 걷어안고 조심조심 문을 열고 나오면서 ‘오그라질년’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더라논 것이다. 자기 생각에도 틀림없이 오그라질년이었다는 것이다. 더 생각할 것 없이 이 여자와 동고동락할 작정으로 그의 치맛자락에 늘어붙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사는 김대감댁이요 메주는 그 딸이요, 여자는 식모라는 것이다.
이날부터 불쌍한 식모의 샅은 적게 뜯어먹고 자정이 지나면 원정을 나가서 애새끼들을 뜯어먹으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살기는 정말 잘 사는가 보아서 돈이 흥청대고 고기가 흥청대고 쌀이 흥청대고 옷이 흥청 대고 자동차가 흥청대고 비까번찍 하는 손님들이 흥청대더라는 것이다. 대부니 승진이니 죽일놈이니, 그 따위는 당장 없애 버린다느니 귀속 재산을 뺏느니 하는 따위 듣지 못하던 얘기가 줄창 입에 오르더라는 것이다. 차츰 물정을 알게 되었으나 대부란 건 대낮에 은행 사무실에서 하는 것이요, 귀속 재산 일은 관재청에서 하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야밤중에 방구석에서 하는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영장(靈長)이라는 인간들이 하는 일이라 별로 관심도 없었으나 좀 이상하더라논 것이다.
그러던 중에 하루는 죽을 뻔하였다는 것이다. 응접실에 손님들이 주욱 돌아앉아서 얘기하는 판에 식모가 커피라는 검은 물을 풀어 가지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사장이니 국장이니 대감이니 총재니 회장이니 교장이니 하고 어마어마한 얘기가 오고가는 것을 보니 어마어마한 사람들인 모양이라고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호기심에서 식모의 소매자락에 바싹 나가 붙었다는 것이다. 대감 관상은 상지상이웨다 하는 바람에 그 쪽을 돌아다보니 생겨먹은 꼴이 틀림없는 관상쟁이더라는 것이다. 상지상을 빤히 눈앞에 보면서 상지상이라고 하는 따위 관상이라면 나도 보겠다고 방심하고 비웃는데 무정한 식모는 번쩍 손을 쳐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더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커피잔을 나란히 놓은 상 위에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뭐냐! ’ 고 대감의 벼락같은 호통이 터져나왔다는 것이다. 손님
들은 잠자코 식모는 부르르 떨고 자기는 겁읕 집어먹었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오늘은 죽는 날이라고 생각하니 처량하기 짝이 없더라는 것이다.
식모가 덥썩 잡는 바람에 숨이 쿡 막히더라는 것이다. 이때 우습게 보았던 관상쟁이가 ‘얘, 너 그걸 보자’ 하기에 식모는 손을 척 펴더라는 것이다. 관상쟁이는 눈 한번 깜박이지 않고 뚫어지게 보더니 ‘대감 이거 이만저만한 길조가 아니웨다. 복록이 무진하고 만사 형통할 길조에 틀림없으니 소중히 기르시오. 보시오. 이는 이라도 하꾸라이요’ 하더라는 것이다. 이가 무슨 길조겠느냐 당장 없애 버리라고 호통하는 것을 관상쟁이는 굳이 말리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감은 무서운 얼굴로 식모를 쏘아보기에 식모는 그를 손에 꾹 쥐고 낭하로 나왔다는 것이다.
대감은 변소 가는 척하고 뒤따라 나와 ‘얘, 너 그걸 죽이지는 말아라’ 하더라는 것이다. 손님이 물러간 뒤에 대감의 분부로 대감께서 거처하시는 방 벽 장 구석에 특별한 장(檻)을 마련하고 자기를 집어넣더라는 것이다. 부드러운 솜자리는 지극히 편하고 먹을 것은 무진장이라논 것이다. 대접도 융숭해서 식모나 운전수 따위가 잘못 건드렸다가는 대감한테 큰코 다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날부터 이 방에서 엮어지는 역사는 모르는 것이 없고, 또 빈대와 벼룩이 못나게 굴어서 일대 풍파가 일어나던 재미있는 얘기도 있으나 다 후일로 밀고 이만 한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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