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들어서서 군부정권이 무너지고, 이른바 열린, 참여의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됨에 따라 한국의 대중매체는 그간의 옷을 벗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이는 가히 칭찬을 들을 만 하지만 사실 어찌 보면 그럴만한 일도 아니다. 대중매체의 존재의 이유가 대중조작이 아닌 대중에게 진실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건데, 그들의 개선은 당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대중의 삶에 있어서 타매체를 통한 정보 습득이 전무후무한 현재상태에서 언론이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는 점 또한 대중매체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함의 중요한 원인이자 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선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언론은 그 거대한 권력을 남용하여 대중을 지배하고 있다. 이른바 조작 왜곡 비약 등이 바로 그것이다. 어찌보면 이전의 군부세력에 대한 도구로써 이용되던 언론이, 최근에는 그 핵심으로 들어앉아 가장 보수적인 권력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여기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대중매체의 영향력이 현대의 대중에게 있어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매체 중에서도 공중파를 타고 전해지는 텔레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굳이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이야기는 것은 신문이나, 책, 인터넷과 같은 매체들도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타매체에 비해 텔레비전이 자극적인 요소가 강하고, 또 신문과 같은 매체를 접할 때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대중들이 유독 텔레비전에는 비판적 시각을 접은 채 텔레비전에 빠져들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고 있노라면 허탈해진다. 쇼프로그램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모두 잘생기고, 멋진 사람들뿐이다. 게다가 그들이 들고 있는 가방이며 걸치고 있는 옷가지들은 몇 백만원을 넘는 경우도 허다하고, 드라마 속에서는 고가의 가구들과 값비싼 장식품들이 즐비하다. 언제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집을 예쁘게 꾸며놓고 살았는지, 언제부터 사람들이 그렇게 전부 예쁘고 일류대학을 졸업하여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있었는지 나로서는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최근 문제시되었던 맞선프로그램을 예를 들어 살펴보자.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던 맞선프로그램에서 조차 여자는 예쁘고 날씬한 사람만이, 남자는 일류대학을 졸업하여 안정적이고 비전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만이 나오는 추세가 고정화되었다. 그리고 절찬리에 종영된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짝짓기 프로그램은 그 오락적 요소가 풍부하고, 시청자들을 텔레비전 앞에 붙들기는 하였으나, 오락의 질이 매우 낮은, 즉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시청자로 하여금 외모절대주의적 사고, 단편적 사고를 심어주었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에서 남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능력으로, 여자를 평가하는 기준은 외모로 제시하면서 대중들은 그러한 편견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깊게 심게 된 것이다.
조작된 프로그램을 통해서 사회의 문화적 정신적 조류가 유행처럼 변해 가는 현 시점에서 위와 같은 프로그램이 갖는 문제의 심각성은 더 중첩되다. 극을 통해 세상에 대한 혹은 인간에 대해 갖는 편견 역시 그 무게감이 크다. 매체를 통해 보여주는 소수의 삶을 전체로 확대시켜 편견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환경에 대해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사고가 의식 저변에 깔리게 되거나, 혹은 자신의 위치를 너무나 망각해버리거나 어떤 사람은 어떻더라 라는 매체의 기준을 현실로 착각하여 사회화 과정에 방해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등의 문제점을 양상하게 된다.
이러한 외모지상주의와 능력중심주의는 크게 보자면 물질만능주의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물질이라면 안 되는 게 없다는 식의 사고를 가진 현대인들은 물질이 곧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성형유행마저도 그러한 물질 만능주의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호사스런 가구와, 장식품들, 큰 집, 좋은 자동차들도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하고 그런 모습을 마치 일반적인 것처럼 보여주는 드라마에서 우리는 저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편견을 갖게 된다. 지나친 확대일 수 있지만, 독신자들이 많아지는 것은 그 만큼 배우자 선정에 있어 기준이 높아진 것의 적극적인 반영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텔레비전은 사회적 산물이기에 사회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하는 논쟁을 해보게 되는데, 물질만능주의가 만연한 사회를 텔레비전이 반영한 것인지, 텔레비전이 물질 만능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그것이다. 드라마가 현실을 전혀 배제하여 이상적인 내용만을 방영한다면, 시청자들로 외면받고 만다. 그러나 현실의 모습을 자칫 과장하여 드러내면 사회적 물의를 조장한다고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을 떠나서, 그리고 중용을 지키기의 어려움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대중매체의 영향력을 생각해보면 대중매체가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사회의 기조로 여겨지는 신속성의 압력에서 살아남으면서도 다시 한번 더 생각하며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각 방송사마다 하고 있는 방송평가 프로그램이 보다 실질적인 논의가 이루어지기 위한 질적 향상과 개선이 필요하리라 본다. 매번 비슷한 내용의 비판을 반복하고 더구나 그러한 비판조차 실제로 반영되어 개선되지 않는다면, 방송평가 프로그램은 단순히 보이기 위한 장치로 밖에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꿈같은 드라마, 대리만족을 느끼는 프로그램도 좋지만, 우리의 현실을 다시한번 되새기고 자신을 자각하고, 보다 긍정적인 사고를 가질 수 있는 매체로, 즉 하나의 사회 구성요소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더불어 시청자 또한 바보상자라는 텔레비전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람직하게 키울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내가 받아들여야 할 것, 내가 비판해야 할 것을 분명히 아는 시청자들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