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문가문 - 01편 이후락家
대한민국에 수많은 명문가문 가운데 왜 하필 맨 첫번째로 후라이 이후락의 집을 들먹이는가?
대머리 까진 놈도 있고, 귀 늘어진 놈들도 있는데 왜 하필 이후락이냐?
그 이유는 길이길이 남아야 할 이후락의 업적이 역사 속에 묻혀가고 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후락은 수많은 업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있다.
대머리 까진 놈은 그래도 국회에 출석하기도 하고, 절에 좀 가 있기도 했다.
귀 늘어진 놈은 추징금이나 많이 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민중들이 대머리 까진 놈하고 귀 늘어진 놈은 때려죽이라고 난리다.
그런데 여기에 반해 박정희정권을 사실상 세우고 지탱해 온 부정축재자 이후락에 대해서는 조용하다.
내가 친구들을 붙잡고 무작정 물었다.
"혹시 이후락을 아느뇨??"
역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설령 이름 석자는 어디서 들어봤더라도 구체적으로 이후락이 어떤 인물이며, 그 인물이 어떤 업적을 통해서 오늘날 자신의 가문을 한국의 명문가문 반열에 올려놓고 지금도 대한민국 주류로서 떵떵거리고 사는 건지 잘 모르고 있었다.
울산을 대표하는 인물로 울산시민들이 선정하기도 하는 등 아주 가관이다.
우선 이후락이라는 사람은 박정희 밑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호가호위했다.
대통령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사람으로써 대한민국에 "떡값"이라는 말이 처음 회자되게 만든 사람이다.
"떡을 들고 다니다 보니 떡고물이 묻었다..."
이 천인공노할 말을 스스럼없이 한 분이다.
그런데 이 분이 받아쳐드신 떡고물이 무려 194억원이다.
70년대 초에 194억원이 얼마나 큰 돈인지 알아보기 위해 당시 서울에 그래도 사람이 살 만한 집 한칸을 마련하신 나의 모친에게 물었다.
"당시 얼마 주고 집을 사셨나요?" "200만원." 요즘 서울의 웬만한 집값이 2-3억 간다는 것을 감안할 때 이후락은 떡고물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2조원에 가까울 만큼 쳐 잡수신 것이다.
이것은 대머리와 귀 큰 놈의 수준에 거의 근접하는 것이다.
당시 김종필, 이후락을 비롯해 전두환 신군부에게 박정희정권 하 부정축재자로 몰린 사람들이 해먹은 돈이 밝혀진 것만 총 887억원이었다. 지금 돈으로 치면 10조원이다.
이후락 이분은 얼마나 낯짝이 두꺼우신 분인가? 우리는 이런 배짱을 배워야 한다.
혼자서 2조원을 쳐 잡수시고도 떡고물이라고 말하는 저 배짱...
다들 알다시피 이후락은 박정희 시절 공무원이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공직자가 떡고물을 직무 중에 2조원씩이나 쳐 잡수신 것이 과연 자랑할만한 명예인가?
그것이 대가성있는 뇌물이든, 어떤 덜떨어진 놈들이 그냥 갖다 쳐 바친 것이든 이후락같은 공무원 10명만 있으면 대한민국은 거덜난다.
또 상식적으로 어떤 미친놈이 대가없이 이익을 수수하게 해 주겠는가도 한번 생각을 해 봐야 한다.
그 이익과 대가성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수사 기법상의 어려움일 뿐 공무원 이후락에 대한 민중들의 도덕적 평가는 그와는 별개다.
미국 의회의 보고서에도 이후락은 스위스에 비밀정치자금을 예치하고 관리하는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이후락 아들의 증언에 의하면 박정희가 스위스에 예치한 비밀자금이 60억달러.
당시 수출 100억 달러 달성 어쩌구 떠든 것과 비교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후락이 관리한 박정희의 스위스계좌는 박근혜로 명의가 바뀌었다고 한다.
전두환이 10, 26 이후 박근혜를 스위스로 보내 돈을 찾아와서 민정당 창당 자금으로 썼다는 설도 있다.
그 때 따라갔던 보안요원이 수고비로 5만달러를 받았다고 고백한 바도 있다.
어쨌든 이후락이 검은돈을 얼마나 많이 받아먹었는지 이후락의 부인과 자식들에게 영어회화를 가르쳤던 사람의 말에 의하면 집에 돈 봉투를 들고 오는 사람이 하도 많다 보니 집주인이 내방객으로부터 받은 봉투를 소파 밑에 밀어 넣어 두었다가 깜빡 잊어 버려 청소하던 식모가 당시 돈 수백, 수천만원짜리 수표가 든 돈 봉투를 주운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코흘리개이던 이후락의 셋째 아들 이동욱이 모씨의 집에 놀러왔다가 모씨의 어린 딸에게 돈 세는 법을 가르쳐 준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폐를 한 장씩 넘기면서)"돈은 1억, 2억, 3억... 이렇게 세는 거야"
박정희가 뒈지고 나서 전두환이 껍죽거리면서 조사 좀 하는 것 같더니 어느새 유야무야 다 처리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구렁이 담 넘어가듯 종결지어졌다.
큰 깡패들이 나타나면 동네 양아치들이 숨을 좀 죽이고 사는 그 정도였을 뿐이다.
공무원이 2조원이나 처먹은 사건에 대해서 아무런 단죄도 없이 그 불법적인 이익을 그대로 인정한 채 대중의 망각을 틈 타서 도리어 그 막강한 금력과 배경으로 명문가문 행세까지 하게 됐다.
그 엄청난 돈으로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 초월읍 도평리, 기가 막힌 명당터에 대저택을 지어놓고 왕처럼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아닌가?
별장과 그 부지가 무려 9000평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해수욕장에도 붉은 지붕과 크림색 외관, 1층의 고급스러운 테라스와 2층의 이국적인 인테리어를 갖춘 무지하게 예쁜 별장을 지어놓고 있다.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고 한다면 이게 말이 되느냐 이 말이다.
김재규의 옥중수양록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혁명적 방법이 아니고 무엇으로 시정할 것인가.
지금도 천하를 활보하고 있는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김정렴, 오정건, 장동운, 길재호 등 수많은 부정치부자의 재산을 혁명적 방법이 아니고 무슨 방법으로 환수하겠는가.
지금 참여정부의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이나 김승규 국가정보원장이 이후락의 1000분의 1이라도 뇌물을 먹었다면 과연 조중동은 가만히 있겠는가?
왜 이후락이 뇌물 처 잡수신 건 용서가 되고, 이병완실장이나 김승규원장은 안되는 거지?
조중동이 그 이후라도 이후락의 비리나 부정에 대해 무섭게 질타하고 심층취재한 적 있나?
천문학적인 돈만 받아먹은 게 아니라 한승헌 사법개혁위원장에 의하면 "김대중 납치사건"도 이후락의 작품이라고 한다.
야당의 대통령후보이자 정치지도자인 김대중 씨를 일본 동경에서 백주대낮에 납치하여 국내로 끌고오는 황당한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것이다.
김대중납치사건은 박정희에 대한 이후락의 과도한 충성이 빚은 참극이었다.
물론 박정희의 암묵적인 동조 내지는 방관이 있었겠지.
그 뿐이 아니다. 71년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에게 패배하고 김대중 후보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박정희에게 패한 것이 아니라 이후락에게 졌다."
당시 이후락은 관권, 금권선거의 총 책임자였다.
이런 짓거리까지 하고도 그 패거리들이 뚫린 입이라고 민주주의 운운하는 거 보면 기가 차다.
최종길 교수 의문사에 대한 진상조사가 활발하지만, 나는 불만이다.
당시 이후락같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고방식을 가진 부도덕한 인간들에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이 어디 최종길 교수 뿐이겠는가?
최종길 교수는 서울 법대 교수이고, 그 가족들도 어느 정도 사회적인 지위가 있으니 이나마 진상규명의 노력이 있는 것이지,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그 정점에 박정희가 있고, 그 밑에 HR이라고 불리던 이후락이 있는 거 아닌가?
그 끔찍한 국가적 폭력 "실미도 사건"의 책임도 이후락에게 있다.
경향신문을 강탈한 것도 이후락이다.
평생을 남 뒤나 캐고, 약점이나 잡아서 공작하고, 대한민국을 우간다같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헌신했다.
국가의 녹을 먹는 민주공화국의 공직자가 국민은 어떻게 보든지 말든지 박정희 눈에만 들면 된다는 식으로 온갖 아부를 하였다.
이후락은 교활한 인물로 매우 유명하다. 그의 교활한 삶을 자세히 보면 기가 차다.
김정렬은 이런 말을 했다.
"이후락이는 말이오, 국군 창건 당시에 대위로 시작한 놈이오. 그 보다 나이도 위고 계급도 위였던 박정희가 소위로 시작했는데 말이요. 해방 직후 귀국한 일본군 장교 출신들은 모두 군사영어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거기를 수료하면 일본군 시절의 계급을 참작해서 국군 장교로 임관시켰거든. 그런데 이후락이는 끝까지 자기가 일본군 대위였다고 우긴 거야. 하도 우기니까 미군 측에서도 사실을 뻔히 알면서 대위로 임관시켰지. 사실상 그 때부터 이후락이는 미군 측과 거래가 있었겠지"
박준규는 이후락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5.16 후 감옥에 잡혀 들어갔을 때 이후락이가 내 옆방에 있었는데 이 자가 얼마나 약던지 삽살개처럼 굴더니 먼저 빠져나가더구먼."
물론 박정희라는 사악한 인물이 부하들을 그렇게 만들어 이용한 측면이 많다.
또 사람을 써먹고는 헌신짝 버리듯 버리는 식으로 용도폐기하는 것도 물론 박정희의 특기다.
어떻게 보면 이후락은 피해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정을 해 주기에는 죄악이 너무 크다.
또 이후락은 미국 CIA가 박정희 주변에 심어놓은 첩자라는 얘기가 있다.
게다가 이후락은 박정희의 반민주적 행각을 앞장서서 도와준 악질 앞잡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적 민주주의를 주창하며 민중의 인권을 짓밟았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대통령을 욕하면 중앙정보부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다가 죽여버리기도 하고, 각종 죄목을 붙여서 간첩으로 만들기도 하는 그런 민주주의였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노동조합 만들려고 하는 사람을 잡아다가 가두어 버리는 그런 민주주의였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국가정보기관이 정치인들을 시도 때도 없이 도청하고, 약점을 잡아 협박하는 그런 민주주의였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지성인이라는 대학교수나 대학생들이 자기 생각을 담은 글 한 줄 발표하게 하지 못하게 하는 체제였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는 유신헌법을 비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긴급조치로 처벌할 수 있게 하고, 긴급조치를 위반한 사례를 허락없이 발표하거나 신문에 보도하면 다시 긴급조치 위반이 되도록 만들어 놓은 체제였다.
이것이 박정희가 제시한 국가비전이었고, 이후락은 이 국가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충직한 개노릇을 마다하지 않은 자였던 것이다.
물론 개노릇을 하면서도 한눈을 팔면서 열심히 떡고물을 주워먹었던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좋다. 개노릇도 좋고 떡고물 주워먹었던 것도 좋다.
그러나 이 대명천지에 뻔뻔스럽게 한국의 명문가문 행세를 하는 꼴만은 제발 보고 싶지가 않다.
이후락과 형님 동생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신진자동차의 김창원, 극동건설의 김용산, 대농의 박용학, 한국화약의 김종희, 호남정유의 서정귀 등이 소위 말하는 이후락 5인방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한화그룹의 창업자 일명 "다이너마이트 김" 김종희다.
SK 창업자 최종건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이들은 모두 이후락과 사돈을 맺게 됐다.
이후락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큰 아들 이동익은 박정희의 고교동창이자 당시 끗발 좀 날리던 호남정유 사장 서정귀의 딸과 결혼했다.
작은 아들 이동훈은 한화 창업자 김종희의 딸 김영혜와 결혼했다. 그러니까 현 한화회장 김승연과 처남 매부지간이다.
막내 아들 이동욱은 SK그룹 창업자 최종건의 딸 최예원과 결혼했다.
이렇게 보니까 무지하게 그럴싸하지 않은가?
박정희치하의 최대 이권이 무엇이었는가?
미국 석유회사 칼텍스와 유니언 오닐사의 한국 내 합작선 선정이 가장 큰 이권이었다.
결국 이 엄청난 이권은 이후락 큰 아들의 처갓집인 호남정유와 이후락 둘째 아들의 처갓집인 한화그룹 계열사 경인에너지가 먹었다.
게다가 막내아들의 처갓집인 SK는 유공을 먹었으니...
헐 요즘 종이신문들이 이후락에게 치매기가 있다는 둥 말년이 불행하다는 둥 하면서 연막작전을 펴고 있다. 좆을 까라, 씹쌔들아...
이후락이는 젊을 때부터 바둑을 많이 두고, 비상한 두뇌를 지닌 인물이라서 내가 보기엔 절대 치매 안 걸린다. 이제 겨우 여든인데 벌써 엄살은...
요즘 교통사고만 안나면 90세까지는 다 살 수 있다.
그리고 젊을 때부터 그렇게 잘 쳐먹고 살았는데 뭘 죽는 시늉을 하나?
그 죄값을 다 치루고 가야지, 그냥 편안하게 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후락에게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라야 말이지.
이후락의 사돈인 SK그룹 창업자 최종건과 조선일보 방일영과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물론 이후락도 방일영과 깊은 관계였다.
방일영만?? 동아일보 김상만과도 깊은 관계였다.
"형님의 형님은 형님이다"라는 공식이 있지 않은가?
설마 그런 깊은 관계를 가진 조선일보, 동아일보에서 이후락 아직도 잘 먹고 잘 사니까 얼른 조지라는 칼럼을 쓰지는 못할 거 아닌가?
이후락 둘째 아들의 처남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인데 굶어죽게 내버려두기야 하겠는가?
게다가 이후락 둘째 아들의 처남 김승연의 장인어른이 얼마 전까지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있던 5선 의원 서정화다.
지금도 한나라당 고문으로 있다.
서정화가 중정 차장 출신이니 이후락을 모를 리 없다.
이후락에 대한 진상조사라도 하겠다고 하면 아마 쌍심지를 켜고 덤벼들 것이다.
게다가 이후락의 사돈인 서정귀가 서정화의 6촌형이다.
게다가 김승연의 동생 김호연을 통해서 대한민국 모든 재벌이 또 다 얽히게 된다.
또 이후락 아들의 처남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의 큰아버지 김종철이 국회의원을 여섯 번이나 해먹은 사람이다.
김승연의 작은 아버지 김종식도 국회의원이었다.
내가 요즘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서정화를 왜 이렇게 특별대우하는가를 의심스러워서 알아봤더니 얼마전에 죽은 윤덕주가 숙명학원 이사로서 자랑스런 숙명인상을 비롯해서 숙명학원에서는 거의 영웅으로 취급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숙명학원 발전기금도 심심하면 내고, 한국 농구계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이다. 윤덕주는 이후락의 사돈 서정귀의 마누라다.
껄껄... 신문쪼가리들, 윤덕주가 박정희의 절친한 동창 서정귀의 마누라이며 그 덕분에 끗발 좀 날렸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농구계의 대모이며 숙명의 큰 별이 떨어졌대나 뭐래나.....
헐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대한농구협회 회장이 열린우리당 이종걸 의원이라는 사실이다.
이후락의 사부인 윤덕주가 죽었을 때 조사를 낭독하기도 했다.
실눈을 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어쨌든 또 이후락의 막내며느리 최예원의 사촌 오빠가 SK 최태원 회장이다.
사촌 올케가 바로 그 악명 높은 노태우의 딸 노소영이다.
이 노소영의 동생 노재헌의 부인이, 그러니까 노태우의 며느리가 신동방그룹 신명수회장의 딸 신정화다.
신명수는 노태우의 비자금을 관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신정화의 이모가 송원자다. 이 송원자의 남편 이봉서, 그러니까 노태우 며느리 신정화의 이모부 이봉서가 요즘 이회창 정계복귀를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우리 민주개혁세력은 보고 있다. 이봉서는 이회창의 경기고등학교 후배다.
그 주변에는 아남그룹 회장 김주진과 한국유리공업 회장 이세훈 등이 있다.
이 이봉서의 딸 이원영이 이회창의 군대 안간 큰 아들 이정연과 결혼을 했다.
이로써 이봉서와 이회창은 사돈지간이 되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이후락의 영향력이 건재하다는 증거가 된다.
이후락 - 전두환 - 노태우 - 이회창은 한 통속이라는 강력한 증거다.
노태우의 며느리 신정화 쪽으로 가다보면 전두환이 또 나온다.
신정화의 아버지 신명수의 동생 신영수의 아들, 그러니까 신정화의 작은 아버지의 아들이 이희상 한국제분 회장의 딸 이유경과 결혼을 했다.
이유경의 형부가 전재만이다.
재만이 아버지가 바로 전두환이다.
전두환 아들 전재만의 마누라 이윤혜의 동생 76년생 이미경의 시어머니가 송광자다.
송광자의 조카가 이원영이다.
이원영의 시아버지가 이회창이다.
이회창의 구기동 자택이 전두환의 며느리 이윤혜의 명의로 되어있던 것은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다.
이렇듯 이후락가는 여전히 막강하게 대한민국 명문가문 행세를 하며 여전히 대한민국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것이다.
☆ 예니아빠님이그려주신 이후락 집안 혼맥도 ☆
예니빠님이 위의 쩜억개(피투성이)님의 글을 도표로 정리해주심
내일은 한국 명문가문 제 2편 "홍진기가"에 대해 알아봅시다.
필명 : 점억개(피투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