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의 나이에 동갑내기 대모님의 손에 이끌려 세례를 받던 날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그날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일기장에 적었었다.
첫영성체로 새로 나는 아이들을 보며
주일 교중 미사가 시작되는 성당 안이 유난히 밝고 환한 느낌 이었다. 게다가 새 떼들이 지저귀는 듯 재깔대는 소리들이라니. 화 관을 얹은 미사보를 쓰고 흰 드레스를 입은 어린 소녀들과 흰색 셔 츠에 감색 반바지 차림의 어린 소년들이 앞자리를 채우고 앉아 있 었다. 참, 첫영성체가 있는 날이지. 줄지어 제대 앞에 나아가 성체 를 영하는 아이들의 표정들이 한껏 고양되고 긴장되어 보였다. 처 음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의식이니 그럴 법도 하겠 다.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를 기념하는 제사 전례는 아름답고 장엄한 교향악과도 같다. 말씀 전례가 끝나고 평화의 인사를 나눈 후 성체 를 영하기 전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라고 고할 즈음에는 언제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신부님이 제병과 포도주를 들어 올리실 때, 전례의 절정에 이르러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 고 목을 길게 빼어 지켜보는 것은 성체와 성혈로 변화하는 신비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미사가 끝난 뒤 아이들은 꽃다발을 들고 상기된 표정으로 기념 촬영을 하는데 그들 못지않게 성장을 한 부모들이 묻는다. "오늘 기분이 어때?"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길에는 대견함과 함께 이 거친 세상 에서의 든든한 의지처, 버팀목, 안전지대를 마련해 준 것 같은 안 도감이 배어 있다. 이 아이들이 가는 길에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하 시리니----. 나 역시 첫영성체를 받는 어린아이들의 마음이 어떨까 궁금하여 그들의 대화에 염치없이 귀 기울인다. 그들은 "기뻐요" "좋아요" "좀 이상해요"라고 단순히 대답한다. 그들의 감정이나 기분이 대답처럼 단순할 리는 없을 것이다. 일상 적 생활을 벗어난 특별한 의식, 하느님을 받아들이고 그 세계에 속 하게 되었다는 특별한 느낌을 섬세히 표현하거나 스스로 이해하기 에는 언어와 마음이 아직 어릴 터일 뿐이리라. 아이들은 오늘, 하느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 평생 그 뜻에 따라 바르게 살리라고 일기장에 기록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열심한 신 자가 되거나 어쩌면 불신자, 냉담자가 되기도 하고, 믿음에의 회의 와 방황의 늪에 빠지는 고비도 겪게 될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 '오 늘'은 생애의 중요한 이정표와 분기점이 되기도 할 것이고, 유년기 의 아름다운 장면으로 회상될 것이기도 하고, 더러 신앙이 없는 삶 을 살게 되더라도 '그런 어린 날이 있었지.' 라고 미소롭게 돌아보 아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먼먼 훗날, 인생길에 지치고 고 단할 때, 길을 잃었을 때, 오늘의 이 기억이 따듯한 위로와 인도의 손길이 되기도 하리라. 50대 중반의 나이에 동갑내기 대모님의 손 에 이끌려 세례를 받던 날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그날 나는, 너무 늦지 않게, 너무 멀리 가기 전에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일 기장에 적었었다. 미사가 끝난 후 차 나눔을 하며 친근한 사람들과 안부를 주고받 는 성당 뜰에 햇살이 은총처럼 가득하다. 햇볕은 따뜻하고 숲에 둘러싸인 성당 주변은 평화로움과 밝음이 가득하다.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 여자와 남자와 아이들이 뒤섞여 있지만 이 시간, 이곳에서는 모두 신의 품 안에서 의심 없이 안도 하며 노는 작은 아이들일 뿐이다. 성당 울 밖을 벗어나자마자 곧 삶의 근심 걱정과 오욕 칠정에 휘둘릴지언정 지금 이 시간에 누리 는, 하느님 세계에서의 작은 피조물이라는 단순한 행복감과 평화! "이슬 맺히고 종달새 날고 달팽이 기고 주님 계시니 세상 좋아 라."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 구절 위에 갓 피어오르는 새순 같은 이이 들의, 생애 처음 성체를 받아 모신 기쁨까지-----, 여기서 더한 평 화가 있으랴. 나란히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 산 밑에 자리 잡은 성당의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주일날 우리 부부의 주요 일과이다. 남편은 성가대 의 합창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기도 하고 강론 시간에 꾸벅뿌벅 졸 다가 간간 섞이는 신부님의 재담에 하하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리 기도 한다. 늙고 커다란 그의 안에 숨어 있는 천지한 어린아이가 슬며시 얼굴을 내미는 것이다. 성인이 되면서부터 이제까지 한 사 회인으로, 사내로 살면서 자신의 역할과 관습 속에 굳게 가두어 두 었던 '그' 가 긴장 없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는 때 이기도 하다. 머리가 허옇게 세어 가는, 초로에 접어든 우리 부부지만 돌아올 때는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좋은 동무 같다. 나는 가끔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에 어리둥절해지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욕심 없이 깨끗하게 잘 늙고 잘 죽고 싶다는 생각은 해 왔지만 남편과 함께 손잡고 특정 종교의 신앙인으로 살 아 간다는 것은 내 노년의 그림에는 없었던 것이다. 인생은 이렇 게 예상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