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진주 스리랑카 紀行 <2011년 4월>
♣ 경이(驚異)의 성채(城砦)와 시기리야(Sigiriya)의 미녀들
담불라에서 1시간 1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시기리야와 1시간 40분 정도의 폴론나루와는 하루에 모두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내 체력을 감안하여 하루에 여유 있게 한곳씩만 보기로 하고 시기리야로 향했다. 세계적인 유적지(인류문화유산)임에도 불구하고 도로가 엉망이고 교통편(버스)도 형편없어 스리랑카의 경제사정을 말해주는 듯 안타깝다.
유럽인들이 죽기 전에 꼭 가 보아야 할 여행지 중 첫 번째로 꼽는다는 시기리야 성채는 수 km밖에서도 한눈에 들어오는 거대한 원통 모양의 검붉고 둥근 바위(높이 180m) 꼭대기에 건설되었던 왕궁으로 이 시기리야 성채(城砦)는 아름답고도 슬픈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180m의 바위산 위의 시기리야 성채 / 수직의 절벽을 돌아 오르는 길
AD 5세기, 궁녀소생의 서출이었던 카샤파 1세(싱할라 왕조 제65대 왕)는 아버지가 이복동생(왕비 소생의 嫡子)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아버지인 국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하는데 정적들에 의한 암살의 두려움에 이 바위산 꼭대기에 궁전을 세우고 이 위에서 18년간 통치하다가 결국 이복동생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여 자살하였다고 한다.
수직의 바위벽을 쪼아 만든 계단과 좁은 바위벽 통로를 올라야만 하는 이 요새는 지금 보면 어떻게 오르내렸는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또 바위산 아래는 엄청나게 넓고 깊은 해자가 바위산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데 악어가 우글거렸다고 한다.
관광객을 위하여 바위벽에 붙여 설치한 철 구조물인 원통형 계단과 지그재그 식 철 계단을 울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오르다보면 당시 바위벽을 쪼아 만든 옛 계단흔적이 보인다. 철망사이로 내려다보아도 아찔한 수직에 가까운 바위절벽을 저 계단으로 어떻게 기어 오르내렸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원통형 나선 계단을 7~80m 쯤 오르면 바위벽을 파내어 만든 높이 2m, 길이 10m 정도의 작은 통로(회랑)가 보이는데 이곳 벽면에 그 유명한 시기리야의 미녀들(Lady of Sigiriya)이 기다리고 있었다.
풍만한 여인들을 그린 프레스코 채색화는 원래 5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는데 1500여 년의 세파에 대부분 훼손되고 지금은 18명의 그림만이 남아있다. 일부는 훼손이 심하기도 하지만 몇 개는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현란한 색채로 당시의 복식(服飾)과 장신구 등을 보여주고 있다. 가슴을 드러낸 반라의 이 프레스코화는 그 아름다운 색채와 관능미로 지금도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이 그림의 모델은 카샤파 1세의 후궁들이라는 설과 천상의 무녀 압살라를 그린 것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너무나 사실적인 묘사와 색깔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너무나 아름다운 시기리야의 미녀들(Lady of Sigiriya) 프레스코화(5세기)
이곳을 지나 비스듬히 옆으로 돌아 올라가면 바위산 중턱쯤으로 제법 넓고 평평한 공간이 나타나고 나무들도 자라고 있어서 쉴 수 있는 작은 공터가 있다. 이곳에서 고개를 젖히고 쳐다보면 다시 까마득히 철 계단을 지그재그로 올라 정상에 이르는 길이 보인다.
바위산 중턱에 있는 사자 발(足) 문. 몸통과 머리는 없어지고 발만 있다.
왕은 이곳에 다시 바위산을 오르는 돌계단을 파고 그 입구에 입을 벌린 어마어마하게 큰 사자를 설치해 놓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머리와 몸통은 없어지고 발(獅子足)만 남아있다.
예전에는 이 사자의 두 발 사이를 지나 사자 몸통 속을 통과하여야 위로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자는 불교를 수호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상징성이 있다고 하는데 카샤파 1세는 이곳에 다시 사자를 세워 지키게 함으로써 암살의 두려움을 털어내고자 했던 모양이다.
사자발 문 앞에서 바라보면 계단은 마치 사자 목줄기를 따라 머리 위로 오르는 형상이다.
산의 정상은 제법 평평하고 넓은데 당시의 왕궁건물은 남아있지 않지만 주춧돌과 축대가 흩어져 남아있다. 탁 트인 사방으로는 푸른 나무가 뒤덮인 밀림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악어가 우글거린다는 호수(늪지)들이 시야에 들어오는데 풍경이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시원하다. 스리랑카는 단위면적당 악어와 코끼리가 세계에서 가장 많다던가......
이 시기리야 성채의 또 하나의 신비는‘물의 정원(Water Garden)’이다. 꼭대기 왕궁터의 조금 낮은 곳에 정교하고도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물의 정원은 대략 사방 10m 정도의 야외 풀장모양인데 맑고 푸른 물이 그득하여 관광객들이 발을 담그고 있다. 이 바위산 꼭대기에 샘이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빗물이 고였다면 썩거나 더러울 텐데 나도 손을 씻어 봤지만 비교적 깨끗하고 시원하다. 이 물의 정원에서 왕궁으로 오르는 계단이 서너 군데 남아 있는데 바위벽을 쪼아 정교하고도 아름답게 설계된 계단이 귀엽고도 놀라웠다.
인도 아잔타 석굴사원과 거의 같은 시기에 조성된 이 시기리야 성채는 고대 세계 8대 경이(驚異: 8th Wonder of the Ancient world)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한다.
바위산 정상의 시기리야 성곽 유적 / 바위산 정상의 물의 정원(Water Garden)
첫댓글 바위산 절벽 가보고 싶네요 ..
절벽을 오르는 모습 아찍 아찔!!
물은 아름답고 평온을 주는 듯..
사자의 발과 낭만님이 잘 어울리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다툼이..
요즘 이북에서 계속 싸우자고 하니 걱정..
독일 처럼 통일을 해야하는데..
형제간에 싸움 언제나 끝이 나려는지 ..
구경 잘 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