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두리해안사구는 연안류와 조류에 의하여 연안의 해저에서 운반된 모래가 파랑과 밀물에 밀려 올라와 사빈과 모래펄을 만들면서, 그 모래가 바람의 작용으로 운반·퇴적된 해안지형이다.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는 충청남도 태안반도 서북부 신두리 해안 만두부(bay head)에 형성된 모래펄의 배후를 따라 형성된 길이 약 3.4㎞, 폭 0.5∼1.3㎞의 모래언덕이다.
이곳은 연안의 해저가 대체로 모래로 구성되어 있어서 간조시에 넓은 모래펄이 노출되는데다가, 겨울철에 강력한 북서풍을 바로 받아들이는 위치에 해당하여 대규모의 모래벌판이 형성될 수 있었다. 2001년 11월 30일에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되었는데, 지정구역은 1,702,165㎡이다.
태을암(太乙庵)의 창건주와 창건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조선시대에 경상도 의성현(義城縣)에 있는 태일전(太一殿)을 이곳 태안읍 백화산으로 옮겨오면서 태을암을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태을암’이란 명칭은 단군(檀君) 영정을 모신 태일전에서 연유했다는 설이 있지만 문헌상의 기록은 없다. 경상도 의성에 있던 태일전을 충청도 태안 지역으로 옮겨온 이유는 민생의 안전과 평안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현재 태일전은 없고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이 있는 위쪽 약 200m 지점에 그 터만 남아있다. 1962년 10월 1일 전통사찰 제40호로 등록되었다.
태안마애삼존불상이 바라보는 위치에 태을동천 글씨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동천(洞天)은 도교가 지상의 현세에서 만나볼 수 있는 유토피아 낙원복지의 이상향을 말한다. 보통 무릉(武陵)이나 도원(桃源) 또는 동천(洞天)이라는 말에는 풍광이 좋고 선비들이 공부에 힘 쓸만 한곳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태을동천에서 흐르는 샘물
안흥성(안흥진성)은 근흥면 정죽리 안흥항의 뒷산에 위치해 있는데, 조선조 제17대 효종 6년(1655)에 축성된 것이다. 축성 연유를 살펴보면 경기사인 김석견이 왕에게 상소하여 안흥진성의 축조를 청원하니 왕이 지경연사인 이후원을 불러 안흥진성 축조의 필요성을 하문하였다. 이에 왕이 충청감사에 명해 안흥진성을 축조케하니 인근 19개 읍민이 동원되어 10여년만에 축성되었다. 안흥성은 이후 240년간 내려오다 조선조의 고종 31년(1894년) 동학혁명때 성내의 건물이 모두 소실되고 이에 따라 성곽은 자연히 폐성되고 말았다. 지금도 성곽과 동.서.남.북의 성문이 비교적 원형대로 남아 있으며 동문은 수성루, 서문은 수홍루, 남문은 복파루, 북문은 삼성루라 불렸다. 안흥성은 둘레 1,568m, 높이 3.5m에 이르는 석성(石城)으로 2020년 11월 2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국립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바닷속 문화유산을 발굴·보존·전시·활용하는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소속 기관이다. 2007년 이후 태안 앞바다에서 여러 척의 고려시대 고선박과 수만 점의 유물을 발굴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전시하기 위해 2018년 말 건립되었다. 현재 서해 중부해역에서 발굴된 난파선 8척과 수중문화재 3만 여점을 보존·관리하고 있으며, 2018년 12월 2개 전시실을 부분 개관한 이후 2019년 나머지 전시실의 내부 단장을 끝내고 전면 개관했다. 보물「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 및 죽찰」과「청자 퇴화문두꺼비모양 벼루」를 비롯하여 서해에서 발견된 약 1,3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배인 마도1호선을 실물크기로 만든 재현선도 볼 수 있다.
안흥 나래교는 안흥 내항과 신진도를 잇는 해상 인도교로 2007년 유류 피해로 인한 어민들의 시름과 지역 주민들의 관광 및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고자 개통되었으며, 앞으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비롯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많은 기대를 갖고 있다.
한편 안흥 나래교의 뜻은 지역명인 안흥과 태안군의 새인 갈매기가 날아간다 라는 합성어를 의미하고 있다.
편집: 내포문화연구원 회원 박성환
사진: 송경녀(사무국장),이재실 회원이 보내 주신 사진과 본인 소장 사진을
바탕으로 편집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