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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삼국지☆
 
 
 
카페 게시글
역사게시판 을지문덕이 문관이다?
Ψhonguo kim 추천 0 조회 108 04.05.29 16:20 댓글 1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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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4.05.29 18:07

    첫댓글 전 뭐가 을지문덕이 문관이라는 주장인지 모르겠군요 /./... 위인전에 을지문덕이 무관이 아닐까요 ..

  • 작성자 04.05.30 18:19

    사실, 그 위인전이라는 것이... 주업적을 제외한 거의 모든 게 허구라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의 고구려본기에서 을지문덕이란 이름은 열 번도 나오질 않는 걸로 압니다. (더 많이 나올지도 모르지만...)

  • 04.05.31 12:02

    저도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어느 책에선가 본적이 있네요..강감찬장군은 문관이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을지문덕장군도 문관출신이라는...그런데..삼국시대에 고구려나 백제, 신라에 대한 사료가 많지않고 더군다나 고려에 대한 자료또한 충분치않아서 딱히 판정지울수는 없을꺼라 생각합니다..

  • 04.05.31 12:04

    조선시대 경우 사료가 분명해서..무과시험까지 있는 내용이 있는바 조선시대에 양반을 구성하는 요인도 문반과 무반을 칭하여 양반이라 했던것처럼 자료가 충분하다면 유추해볼만하지만...그래서..전 동북아시아의 유목민들의 전쟁사를 보면서 느낀점을 바탕으로 유추해보건데..

  • 04.05.31 12:05

    당시 삼국시대..그리고 중국에선 위진남북조 시대에서 수당으로 넘어간 시대 이 시기에 각 나라의 정치구도상이나 내용면에서 딱히 문관과 무관을 구별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다만 그들이 정치에 입문하면서 벼슬의 직위에 따라 자신의 역활이 분류되었다고 생각이 드네요..

  • 04.05.31 12:13

    즉.. 귀족 자제들은 어릴적에 문무에 걸쳐 양쪽 모두를 교육받고 훈련하면서 성장했다고 생각이 드네요..실제로도 그러했고..삼국시대 인재들의 교육에서도 귀족자제들은 문무양면에 다 교육을 받는 문무일치였다는 점이 문관과 무관이란 출신으로 구분짓는게 어렵다고 봅니다..사실상 무관시험이란것도 고려후기에

  • 04.05.31 12:15

    등장하는 것도 그러하고...결론적으로...당시 시대상으로 고구려는 무를 숭상하면서 자제들을 문무양면에 걸쳐 교육하고 양성했다는 점에서..문관 무관으로 구분짓는것 자체가 성립이 안된다고 봅니다..

  • 04.06.02 03:08

    별님 말에 찬성 전쟁을 수행하는 문관인지 내정을 하는 무관인지 그 구분자체가 성립안된다는..

  • 04.06.04 15:59

    문관 무관 구별이 안되었다구요? 그러면 왜 무신정변이 일어났는지요? 결정적으로 문무차별이 있었기 때문에 무신난이 생긴건 아니고요? 무신들도 불만이 많았을 겁니다

  • 04.06.04 15:58

    참고로 김부식인가? 그 삼국사기 쓴 분 있죠? 그분 아드님이 정중부한테 못된짓을 했지요 ㅇㅂㅇ;; 수염을 태웠다나? 그래서 정중부의 원한을 사고그후 정중부 -> 경대승 -> 이의민 -> 최충헌 -> 최우 그다음 ???의 60년 최씨정권이 시작되지요

  • 04.06.05 15:57

    바보냐? 무신정변은 고려때잖아!!

  • 작성자 04.06.06 00:13

    문관과 무관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다라... 그렇진 않습니다. 같은 문관이라도 '전략가'와 '정치가'의 차이가 있었고요. 삼국지를 보면 엄연히 그 차이가 납니다. 물론 태사자같은 몇몇 특종(?)들이야 자신이 정치도 하고 전투도 합니다만...

  • 작성자 04.06.06 00:15

    대표적인 전략가로는 육손이나 만총, 이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내정과는 거리가 멀고 전장에서 종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그들이 직접 칼을 들고 싸움을 지휘하지는 않습니다. 또, 그래서는 군의 사기가 높을 수가 없고 큰 숫자의 적을 막아내기란 무리입니다.

  • 작성자 04.06.06 00:18

    말씀드렸듯이 살수에 휩쓸린 적들이 아무리 많다해도 아직 수나라의 병사는 배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후방에서 급하게 끌어모은 고구려군이 그 배로 많은 병력들을 물리치려면? 당연히 장수의 용맹이나 용병술이 빛을 발휘하는 것이죠. 제갈량이나 기타 문관들이 적은 군사로 많은 군대를 물리친 적이 있다고는 하나

  • 작성자 04.06.06 00:20

    어느 정도 상대가 될 법한 머릿수가 가춰져있고 또 물리치더라도 '전멸'까지는 시키지 못합니다. 그런 기적적인 짓거리는 대부분 무장들이 앞장을 서지요. 유수구의 감녕이라던가, 합비의 장료라던가... 수십배, 수백배 되는 적진을 헤짚으며 적들을 격퇴하는 건, 문관들의 배짱으로는... 제 생각엔 힘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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