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괴정동에 위치한 해인정사(주지 수진스님)를 지난 7월24일 찾았다. 해인정사로 가는 길은 가파르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차량운행이 어려울 정도의 경사진 길을 차로 10여분 올라야 한다. 그 길을 기꺼이 걸어서 사찰을 찾는 신도들이 꽤 많다. 이날도 백중기도를 위해 많은 신도들이 절에 오르고 있었다. 무엇을 찾아 힘든 비탈길을 오르는 것일까.
해인정사가 건립된 것은 불과 15년 전. 1997년 불사를 시작했다. 마을에서도 한참 산길을 올라야 하는 위치에 있던 해인정사는 당시까지만 해도 나무로 불을 때고,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 두어 채가 전부였다.
“1997년에 해인사 강주(승가대학 학장) 소임을 접고 이곳에 왔어요. 참선공부를 하려고 선원에 가기 위해 잠시 쉬려고 온 건데, 초하루 법회를 위해 신도들이 꽤 많이 오는 거예요. 그때 부처님 법을 배우겠다고 이 불편한 시설로 오는 신도들을 보면서 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치면서 발심 출가한 수진스님은 봉암사와 해인사, 통도사 극락암 등서 10년간 안거에 들며 간화선 수행을 했다. 이후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해인사에서 강주로 활동하며 학자로서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다시 선원을 가려는 마음에 잠시 이 작은 암자에 머물렀다. 그런데 첫 법회에서 충격을 받았다. 공양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신도들은 비빔밥을 받아들고 여기저기에 걸터앉아 식사를 해야 했다. 재래식 화장실에, 건물은 낡아 있었다. 그런데도 신도가 왔다. 최신 시설을 갖춘 집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 불편한 곳에 왜 올까. 답은 하나였다. 해인사 강주 스님이 왔다는 말에 “부처님 법을 듣고 싶어서”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스님은 ‘선원에 갈 것인가, 이곳에 머물 것인가’ 많은 고민을 했다. 게다가 몇몇 신도들은 스님께 교양대학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들의 요청을 무작정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최소한 제대로 된 공양간과 화장실, 법당을 짓자고 결심했어요. 신도들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빨리 불사를 마치고 선원에 가자 생각했죠. 전체적인 불사를 구상하고 1년에 2동의 건물을 지었습니다. 결국 5년 동안 10개 동의 건물 불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불사가 지금 부산을 대표하는 사찰의 하나인 해인정사로 성장했다. 해인정사는 ‘해인불교경전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봄.가을로 모여 경전을 집중 공부한다. 그 중 수진스님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경전강의가 <화엄경>이다. 탄허스님(1913~1983)이 1977년 월정사에서 한철 동안 <화엄경>을 강의했는데, 수진스님은 당시 대중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로 이 강의를 들었다. 스님은 당시를 “누우면 천장에 부처님께서 대중에게 <화엄경>을 설하시는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기뻤다”고 회고했다.
“부처님께서는 대중의 근기를 살펴보고, 이에 맞춰 설법을 하셨어요. 하지만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대중을 특정하지 않고 가감 없이 깨달은 바를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렇다보니 부처님의 사상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경전이지요. <화엄경>은 원융회통 사상이 잘 나타난 경전이며,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화엄경>에서는 ‘하나가 곧 일체이며, 일체가 곧 하나’라는 점을 강조한다. 즉 내가 곧 너이며, 네가 곧 나다. 우리는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상호 연관을 맺고 있는 존재라는 가르침이 화엄사상이다. 사회와 정치가 점점 대립으로 치닫는 시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화엄사상은 반드시 필요한 가치다. 수진스님은 역사적으로 작은 국가였던 신라가 통일의 대업을 이루고 당나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도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국민적 대통합을 이룬 힘이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경전 한 권이 삼천대천세계와 같습니다. 또 그 가르침은 하나의 티끌 속에도 있고, 일체의 티끌에도 있습니다. 즉, 마음을 알면 일체가 서로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가르침은 지천에 널려 있다는 의미지요. 삼세 일체의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바로 마음을 보면 됩니다. 일체유심조의 가르침이 바로 <화엄경>을 통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화엄경을 설명하는 수진스님의 목소리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 느껴진다. 스님은 <화엄경 청량소초>를 번역 중에 있다. <청량소초>란 중국 청량국사(淸凉國師 ?~839)가 화엄경 80권에 소 60권과 초 90권을 달아 해설한 것으로, 우리글로 번역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바쁜 일정에도 매일같이 번역에 매달린 결과 현재 90% 이상을 번역한 상태. 스님은 이르면 내년에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수진스님은 금정총림 범어사 율학승가대학원 초대 원장, 조계종부산불교연합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동명대학교 불교문화학과 석좌교수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명대는 동명목재를 운영했던 동명 강석진 거사가 1977년 “세계 최고의 불교대학을 만들고 싶다”는 원력으로 설립한 학교다. 여러 사정으로 일반대학으로 설립됐지만, 그 정신을 살려 불교문화학과를 운영 중에 있다. 강석진 거사는 종종 수진스님의 은사인 문성스님을 찾아와 차담을 나누고, 부처님 가르침을 전해 들었다. 그 인연으로 “불교문화학과 운영이 어렵다”는 요청을 받고 교수로 활동하게 된 것.
수진스님은 “서구에서 창조신화는 이미 무너졌다. 창조자에 대한 신앙이 무너진 서구사회에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불교의 가르침이 매우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며 “동명대 불교문화학과는 이런 세계적 흐름을 선도하는 인문학의 중심 사상을 연구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수진스님은 “동명대 내에 현재 세계선센터를 공사 중에 있다. 130여 평 규모로 올 가을 개원예정이다. 선센터가 개원하면 학교와 부산의 위상이 한층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전했다.
조계종 부산불교연합회장으로서 활동에 대해 물었다. 스님은 ‘지도자 교육’을 강조했다. “1000명을 포교하기보다, 각각 1000명을 포교할 인재를 100명 육성하는 것이 낫다”는 스님은 “법을 정상적으로 전해줘야 불교가 건전해지고, 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 미래 불교를 위해 바른 불교를 전해줄 지도자를 육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시작한 ‘부산불교지도자를 위한 특강’에 수백 명의 불자들이 동참하고 있다. 또 성도절을 맞아 부산시민을 대상으로 봉행하는 연합법회, 조계종 교육원 인증 승가교육 과정 운영 등을 조계종 부산불교연합회의 주요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연합회의 목적은 힘의 응집이 아니라 정법포교에 있습니다. 대학 졸업자가 많고, 복지혜택이 날로 늘어나는 우리나라에서 왜 날이 갈수록 자살을 하는 사람이 늘어날까요? 마음을 훈련시키지 못해서 그럽니다. 불교는 마음을 알아차리게 하고, 훈련시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가진 종교지요.”
현재 부산에는 310곳의 조계종 사찰을 비롯해 1200여 곳의 사찰이 있다. 얼마 전 부산지역 교회가 사찰 숫자를 넘어섰다는 개신교 언론의 보도내용을 전했다. 수진스님은 “사찰이 한 곳 생기면 적어도 20명 이상의 불자들이 늘어난다. 종단을 떠나 사찰이 많다는 것은 곧 불교가 잘된다는 의미”라며 “종단을 떠나 모두가 같은 불자라는 인식하에 서로 융합하며 불교를 위해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찰을 운영하고, 지역불교 활동을 하고. 빡빡한 일정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수진스님은 수면시간이 불과 2시간 내외에 불과하다. 보통 1시 넘어서 잠에 들어 3시 예불시간에 일어난다.
“처음 출가했을 때, ‘수행자가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잠 많이 자면 언제 수행할 것이냐’는 은사 스님의 말을 듣고 잠을 끊어버렸어요. 잠을 자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6개월간 눕지도 않고, 잠과 싸움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구슬을 삼킨 것처럼 목에 무언가가 올라왔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더니 어느 순간 잠이 확 달아나 버렸습니다.” 이후 스님은 2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단다. 그리고 그 원력으로 불교의 발전을 이끌고 있다.
수진스님은 …
1971년 부산 마하사에서 문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74년 범어사 승가대학을 시작으로 경전공부에 매진했다. 1984년 봉암사 선원을 시작으로 해인사, 통도사 극락암 등서 10년간 정진했다. 1993년부터 1999년까지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을 역임하고, 1999년 부산 해인정사를 중창했다. 현재 금정총림 범어사 율학승가대학원장과 동명대 불교문화학과 석좌교수, 대한불교조계종부산불교연합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불교신문2936호/2013년8월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