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1:26~31,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드를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사도들에 의하여 복음이 빠르게 예루살렘을 넘어 광역한 이방 지역으로 퍼져나갈 때였습니다. 세워진 교회들마다 성령의 은사가 풍성히 임하고 자생적인 교회 조직들이 힘있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방탕하고 육신적인 이방인의 삶을 살던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어 교회의 일원이 되어 신앙 생활을 시작하였지만, 신자들이 곧장 천사로 변화되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타락한 육체의 본성이 교회 안에 있는 많은 성도들에게 현저하게 나타났습니다.
한 예로 사도 바울의 강력한 복음 증거와 성령의 풍성한 역사하심으로 세워진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처음에는 신앙 생활을 잘 했으나 사도 바울이 떠난 후에 그들을 많이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성도 가운데 어떤 사람이 죄질이 나쁜 간음죄를 범했는데도 이를 알고도 묵인했습니다. 성도 중에 우상 제물인 줄 알면서도 먹는 일도 일어났습니다. 당파를 만들어 서로 반목하면서 분쟁했습니다. 예배를 무질서하게 드렸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도권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많이 교만해졌습니다. 자기들이 최고인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 가지고 있던 타락의 본성이 신앙 안에서 들어와서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꼿꼿하게 일어났습니다. 타락의 본성은 신앙 안에서도 교묘하게 변장한 채 나타나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만은 조금만 틈이 있거나 꺼리만 생기면 순식간에 본색을 드러내는 악덕입니다.
교만의 본성은 자기애입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죄의 본질인 자기애가 깊이 뿌리를 내린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그 타락의 본성이 자기를 드러내고 자랑하며 남을 깎아내리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자존심을 절대 꺾지 아니하며 순종하기 싫어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이 자기애를 십자가에 못박습니다. 이제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이제는 자기의 죄인 됨을 알고 자신의 부패함과 무가치함을 깊이 깨닫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이제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갑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갑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고백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도 인간의 깊은 타락의 본성인 자기애와 교만이 자꾸만 일어납니다. 조금만 숨쉴 틈만 있으면 그것들은 틈을 비집고 올라옵니다. 그리하여 자기를 자랑하려고 용을 씁니다. 자존심을 세우고 사람들 앞에 자기를 나타내려고 애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지혜로우시기에 자기의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교만하지 못하도록 만들곤 합니다. 자기 안에 타락의 본성이 여전히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의 무가치함과 더러움과 영원히 형벌받아 마땅한 죄인 됨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실패를 경험하게 만듭니다. 고난을 당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인간 스스로 안에 있는 죄성으로 인하여 타락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스스로를 의인인 줄 알았으나 너무나 무력하게 죄의 밥이 되고 사탄의 조롱거리가 되고 하나님의 일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허락하십니다. 이로써 우리 자신이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요 죄인 중에 괴수요 지옥의 아랫목에 떨어질 진노의 그릇에 불과한 것을 깨닫게 만듭니다. 절망하게 만들고 비천하게 만들고 무력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그래야 겸손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멸망 길를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주님 앞에 엎드려 은혜를 갈망하기 때문이요 그래야 주님 손에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신자의 덕목은 겸손입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깊이 자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철저히 깨닫는 깊이가 곧 신자됨의 증거입니다. 그렇게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온전히 돌립니다. 그런 사람만이 자신을 진정으로 감출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의 통로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나이 사십 세 때에는 자아가 강했습니다. 자기 동족을 위하여 큰 일을 해보겠다고 나섰을 때 그는 애굽인을 주먹으로 쳐서 죽이고 모래 속에 파묻어 숨겼습니다. 자기 자신이 대단해보였습니다. 자기 동족이 자기를 열렬히 따를 줄 믿었습니다. 가슴을 펴고 으쓱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이 무엇인가 대단한 일꾼으로 헌신하는 자부심이 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쓰실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어울릴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도구가 되기에는 인내와 지혜도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도망자로 만들어버립니다.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년 동안이나 양이나 치는 목자로 푹푹 썩게 만들어버립니다. 자아가 죽고 야망이 죽고 교만이 죽어야만 쓰임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이 팔십이 되었을 때 그는 겸손해졌습니다. 그는 고분고분해졌습니다. 자아가 산산히 깨졌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고 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들을 부르실 때에 멀쩡하게 부르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잘 나가던 사람도 졸지에 무지렁이같이 만들어놓고서 부르십니다. 뼈를 하나 탁하니 분질러 꺾어놓고 부르십니다. 세상에서 완전히 실패한 자, 물질적으로 파산 직전에 있는 자, 마음에 깊이 상처가 있는 자, 죄에 깊이 빠져 더 이상 소망 없는 자, 환경이 너무 답답하여 사방에서 에워쌈을 당한 자, 질병의 고통에 시달린 자, 가정사로 인하여 홧병들린 자, 이러 저러한 이유로 다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 멸시받는 자들입니다. 고린도 교회 때나 지금이나 이러한 문제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까닭이 어디 있느냐? 이는 겸손해야 은혜받고 겸손해야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해야 쓰임받기 때문입니다. 또 겸손해야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가만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능력의 도구로 쓴 것들을 보면 참 보잘것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세가 양떼를 몰던 그 호렙산 지팡이는 80세 모세만큼이나 후줄근하고 볼품없고 늙고 주름졌을 것입니다. 그 지팡이를 가지고 하나님은 온갖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사사 삼갈은 소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군사 육백 명을 쳐죽여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삼손은 나귀 턱뼈 한 개로 적군 천 명을 쳐 죽였습니다. 여인 야엘은 방망이 하나로 적장 시스라를 쳐서 죽었습니다. 다윗은 냇가의 돌멩이 한 방으로 천하대장군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지극히 작고 보잘것 없는 도구로 큰 일을 이루신 까닭은 인간 자신을 자랑할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셨음을 드러내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에게 삼만 명 이상의 이스라엘 군사들이 몰려들었을 때 하나님은 숫자가 너무 많아서 미디안과 싸움에서 이기게 되면 자기들의 숫자가 많아서 이겼다고 자만할까 싶다고 삼백 명만 남겨 미디안을 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취하실 영광을 인간이 스스로 가로채지 않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를 부르실 때에 갈릴리 어부들과 세리들을 부르신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자기 스스로 잘났다고 뽐내지 못하도록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쓰실 때에도 그가 그의 많은 학문과 문벌을 자랑할까봐 그로 하여금 교회를 핍박하는 큰 죄를 범하도록 허용하셨습니다. 이로써 바울 스스로가 고백하기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고전 15:9)고 하였듯이, 자기의 죄 값 때문에 늘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가 주의 일을 감당할 때 큰 능력을 행하였고 삼층천도 올라가 보는 큰 계시를 보았을 때에도 하나님은 어김없이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심으로써 늘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고 교만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교만하면 능력이 떠납니다. 교만하면 은혜가 떠납니다. 교만하면 마귀의 종이 되고 맙니다. 겸손할 때 쓰임받고 은혜받고 능력받고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형통함, 건강함, 능력과 재능과 소유가 많음이 혹시라도 우리의 교만을 일깨우고 자만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식게 만들지 않도록 주의하십시다. 두려워합시다. 또한 다른 것을 다 잃는다 해도 만약 우리에게 주님 안에서 감사함,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감격, 성령의 능력이 머무는 은혜가 있다면 기뻐하고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주신 목적과 이유가 오직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를 높이고 그와 더불어 행복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을 얻으면 다 얻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얻어도 하나님을 잃으면 다 잃은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삶, 쓰임받는 복된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들의 피값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부르심의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성령의 감동 가운데 한평생 한평생 하나님의 영광만 추구하는 삶을 사는 성도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