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한 알
조인선
나는 탯줄이 가는 줄 알았다
송아지 탯줄처럼 저절로 끊어지는 줄 알았다
의사는 가만히 가위를 내밀고
나는 곱창처럼 주름진 굵은 탯줄을 잘라 냈다
사과 꼭지를 잘라 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탯줄처럼 사과 꼭지는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사과 한 알을 떨구면서 나무는 얼마나 아팠을까
배꼽 같은 꼭지가 키워 낸 맑은 사과 한 알
몸과 몸이 이어진 줄 하나에 삶이 있었다
죽음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다
아내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다듬으며
고생했다고 하자 아내는 베트남 말로 엄마를 찾았다.
ㅡ 시집 『노래』 (문학과 지성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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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만 해도 탯줄을 제대로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아내가 아기를 낳을 때 남편들은 현장으로 들어갈 수가 없고 밖에서 대기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은 남편이 산고로 고통받는 아내 옆에 지켜서서 위로와 응원을 하고, 또 아기의 탯줄을 끊으며 새 생명에 대한 공감대를 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통해 아기 아빠 역시 더 훌륭한 가정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라 판단됩니다. 다만 최근들어 출산율이 계속 감소하며, 2023년에는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은 0.7에 불과하다고 하는군요. 시골에서는 어린아이는 차지하고라도, 젊은이들을 보기도 쉽지 않은게 현실이긴 합니다만.
이 詩는 아내가 출산하는 것을 목격한 경험에 사과를 수확하면서 느낀 감회를 더해 생명의 소중함과 어머니의 위대함에 대해 노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시인은 오랫동안 시골에서 축산업에 종사해 온 농민시인이라 합니다.
이 詩에서는 먼저 탯줄을 자르면서 새롭게 깨달은 마음을 경건한 어조로 표현하면서, 사과를 수학하던 경험을 통해 사과 한 알을 키우고 떨구면서 사과나무가 겪었을 아픔을 떠올립니다. 탯줄이 생명을 잇는 역할을 충실히 끝내고 죽음으로서 새 생명이 태어났듯 사과꼭지 역시 그러하였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시인은 결국, 이러한 과정에서 태어나는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 동시에, 자신을 희생시키며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어머니의 위대성에 대해서도 예찬하고 있군요.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