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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열풍이 분다. 지난해 10월,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전 세계에 한국문학의 위상을 각인시켰다. 독서가 힙한 취미로 여겨지고, 문학 명소 기행은 인기를 얻고 있다.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는 2월, 문학과 자연이 흐르는 전남 장흥으로 향한다. 장흥은 많은 문인들을 배출한 문학의 도시다. 문학뿐만 아니라 자연도 잔뜩 머금은 곳이다. 겨울 장흥 바다의 자연 속에서 매생이가 자란다. 물이 빠지면 대나무 발에 붙은 초록빛 매생이들이 찬찬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 장흥에서, 문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신비로운 자연으로 뒤덮인 산을 오른다. 문학이 살아 숨 쉬는 산책길을 걷고, 문학학교에서 문학의 향기를 맡는다. 바닷물이 빠지면 길이 열리는 섬에 발을 내디딘다. 소설 속 배경이 된 마을과 편백 숲에서 도시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간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사찰에서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만난다. 문학과 자연 사이를 가만가만 거닐어본다. 글 김민선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신비로운 기암괴석의 향연 천관산]
호남 5대 명산 중 하나다. 수많은 봉우리와 기암괴석들이 천자의 왕관과 닮았다고 해 ‘천관산’이라 이름 붙었다. 천관산의 정기는 특출하여 산기(山氣)를 받으려는 고승들이 수도하기에 적합해 수많은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장흥의 문인들은 경이로운 자연을 머금은 천관산에게서 영감을 받았다. 이청준 작가는 작품 내에서 천관산을 다양한 형용으로 묘사하고, 위선환 시인은 천관산을 주제로 ‘천관산 오르는 길에는’이라는 시를 썼다. 직접 마주한 천관산은 하늘에 닿을 듯 고고하게 서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잔뜩 뿜어낸다. 천관산의 등산 코스는 구룡봉 코스, 불영봉 코스 등 다양하다. 이번에는 탑산사 주차장에서 시작하는 불영봉 코스로 천관산을 타본다. 등산 초반은 경사가 심하지만, 불영봉에 도달한 뒤에는 전보다 평탄한 길이 기다린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호흡이 가빠질 때쯤, 바위에 몸을 기대고 주변을 둘러본다. 새가 찌르르 우는 소리, 억새가 바람에 흩날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웅장한 산세와 세월의 흔적이 담긴 기암괴석의 아름다움에도 취해본다. 산 아래의 크고 작은 마을, 그 너머에 펼쳐진 다도해의 경관을 바라보다가 숨을 고르는 것도 잠시 잊는다. 천관산과 그 절경이 문학적 감수성을 두드린다.
천관산은 사계절 찾기 좋은 산이다. 봄은 선홍빛의 동백꽃, 가을은 은빛의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하산한 뒤엔 산 아래에 있는 천관산문학공원을 거닐며 문인들의 문학 구절이 적힌 문학비를 감상한다. 천관산 기슭에 소재한 천관문학관에 들러 장흥 문인들의 삶과 작품을 들여다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문학의 숨과 향기를 따라 한승원 문학산책길과 한승원 문학학교]
한승원 작가는 딸 한강 작가의 뿌리다. 그는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목선’ ‘까치 노을’ 등 그의 작품 대다수는 고향 바다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의 문학작품을 기념하기 위해 한승원 문학산책길이 조성됐다. 산책길에는 그의 작품 속 문학 구절이 적힌 시비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산책길 옆에 흐르는 바다는 작가의 작품 세계에 몰입하게 해준다. 푸른 바다를 끼고 초록빛 솔숲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을 받으며 시를 감상해본다.
‘달 긷는 집’으로 불리는 한승원 문학학교는 한 작가가 문학도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그의 삶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학학교 위쪽에는 한 작가의 집필실인 해산토굴이 자리한다. 그의 호 ‘해산’과 집을 낮추는 말 ‘토굴’을 합쳐 ‘해산토굴’이라 지어졌다. 문학학교에 들러 해설사로부터 이 학교와 해산토굴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해설을 들은 뒤에 학교 마당에 서 있으면, 드넓은 득량만의 풍광과 달그랑거리는 풍경 소리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소망으로 피어난 소등섬]
득량만 남포마을에 위치한 신비로운 섬이다. 어머니들이 먼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간 가족을 기다릴 때 호롱불을 켜놓고 무사 귀환하기를 빌었다고 해 ‘소등섬’이라고 불린다. 이청준 작가의 소설이자 동명 영화 <축제> 촬영지이며, 일출·일몰 명소로 유명하다. 평소에는 바다 위에 둥둥 떠 있지만, 하루에 두세 번씩 바닷물이 빠지면서 섬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다. 소등섬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열려 있지 않으니, 만조 시간과 간조 시간을 파악한 뒤 방문하는 게 좋다.
여명이 짙은 시간, 주홍빛 하늘을 등지고 있는 소등섬으로 들어가본다. 섬과 마을을 잇는 돌다리는 파도가 만들어낸 세월의 흔적 때문인지 곳곳이 깎여 있다. 섬 내부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당 할머니 조각상이 자리한다. 주변에는 사람들의 소망이 쌓인 돌탑과 ‘소등할머니 행운 우체통’이 있다. 소망을 담아 적은 손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 배달해준단다.
소등섬 한 바퀴를 둘러보니, 마침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해가 떠오른다. 소등섬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소망 하나 남겨본다.
[소설 속 세계에 온 듯한 선학동 유채마을과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
선학동 유채마을은 이청준 작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아름다운 경관으로도 유명한데, 봄에는 노란 유채꽃이, 가을에는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며 마을을 뒤덮는다. 마을을 걷다 보면 곳곳에 세워진 나무 팻말에 이 작가의 작품 설명과 그의 작품 속 구절이 적혀 있다. 겨울인데 올곧게 펴 있는 유채꽃이 초현실적 감각을 깨워준다. 마을 근처에는 ‘선학동 나그네’를 영화로 제작한 <천년학> 촬영지가 있으니 함께 둘러봐도 좋겠다.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이하 우드랜드)는 신비로운 숲속 세계 같다. 우드랜드는 빽빽하게 솟아있는 40년생 이상의 편백나무 숲속에 있다. 편백이 피톤치드를 뿜어내며 사람들에게 건강한 기운을 전해준다. 사람들을 따라 편백 숲길을 걸으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본다. 알록달록한 조각품과 모험심을 자극하는 놀이터를 보니,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하다. 우드랜드에는억불산 정상과 연결된 무장애 데크(덱) 로드인 ‘말레길’, 천일염과 편백으로 조성된 ‘편백 소금 찜질방’, 숲속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한옥촌’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다. 우드랜드 전체를 제대로 구경하려면 하루도 부족할 듯싶다.
[천년의 시간이 깃든 보림사]
860년, 신라 현안왕 때 보조선사 체징이 가지산에 창건한 사찰이다. 우리나라에 선종이 처음 들어와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보림사에 첫발을 디딘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면 동서남북의 사천국을 다스리는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어마어마한 크기와 장엄함에 위압감이 든다. 천왕문을 지나 보림사 경내 중심으로 들어서니 고요하고 차분한 공기가 감돈다. 남북3층석탑 및 석등, 보조선사탑비 등 수많은 유산과 보물이 보림사에 잠들어 있다. 2층으로 된 전각‘대웅보전’과 철조 비로자나불좌상이 모셔진 ‘대적광전’은 수려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예술이 가득한 보림사가 문인들 작품 속 일부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보림사 경내 중앙에는 천년 약수라 불리는 ‘보림약수’가 자리한다. 가지산 비자나무 숲과 야생차밭 기운을 한껏 머금은 맑은 약수란다. 몸의 기운이 맑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모금 마셔본다. 고즈넉한 보림사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면, 잔잔한 감동이 인다. 보림사에 방문한다면 보림사 뒤편에 위치한 보림사 티로드(Tea Road)를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늘 푸른 비자나무 숲과 야생차밭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우리밀 빵집-그랑께롱>
건강한 빵을 찾는다면 드넓은 밀밭을 품고 있는 ‘그랑께롱’에 들러보자. 그랑께롱은 장흥 농부의 빵집이다. 주인장 선강래 씨(55)가 직접 재배한 밀로 빵을 굽고 있다. 농부 제빵사로 불리는 그가 장흥으로 귀농한 지도 약 13년째다.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에서 자급자족하기 위해 장흥에 오고,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밀을 재배하다가 밀의 부가가치를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런데 제가 먹을거리나 환경에 대한 주제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직접 재배한 밀로 빵을 만들면 되겠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이를 위해 제빵 공부를 하고,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직접 재배한 밀로 건강한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견과류 빵, 바게트, 치아바타 같은 빵들을 만들어요. 명절이나 성탄절 시즌에 어울리는 제품을 만들기도 하고요.”
그가 만든 빵 대부분은 설탕, 버터, 우유가 들어가지 않고, 물, 밀, 소금 등이 들어간다. 담백함과 고소함, 밀의 깊은 풍미가 빵에 가득 담겨 있다. 그랑께롱 빵은 빵집에 들러 직접 구매할 수도 있지만, 애플리케이션(앱) ‘밴드’를 통한 택배 주문이 대부분이다. 앞으로도 늘 빵 굽는 농부로 살아갈 선씨는 “빵집 내부를 활성화하고, 밀이 1년 동안 어떻게 자라는지, 어떻게 빵이 되는지 경험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고 전한다. 문의 0507-1407-0851
<차(茶)로 쉬어가는 시간-장흥다예원>
쉼이 필요할 때 ‘장흥다예원’에서 몸과 마음을 충전해보자. 이 다예원은 청태전을 이용한 힐링 문화 쉼터를 표방하는 곳으로 장내순 씨(58)가 운영한다. 청태전은 삼국시대 때부터 전해진 우리나라 전통차이자, 장흥에서 만들어 마신 발효차를 말한다.
“2002년쯤 전남 강진 백련사에서 ‘백련다원’을 운영했어요. 그때 차에 관해 공부하다가 장흥의 차 문화와 청태전의 역사를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됐죠.”
장씨는 장흥이 야생차밭이 많은 것에 비해 차 문화가 활발하지 않아 아쉬웠다. 장흥의 차 문화를 활성화하고, 청태전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그 바람을 담아, 2006년에 장흥으로 귀향해 장흥다예원을 열었다.
“장흥다예원을 운영하면서 자생 야생차밭을 관리하고 있어요. 차밭에서 직접 채다한 찻잎으로 청태전뿐만 아니라 녹차, 황차 같은 것들을 만들어요.”
장씨는 장흥다예원에서 청태전 만들기와 차 명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장흥다예원을 방문한 체험객들은 차를 즐기며 평화로운 시간을 얻고, 장흥 차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갈 수 있다. 앞으로 장씨의 꿈은 장흥다예원에 치유농장을 조성하는 것. 또 다른 쉼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 차의 가치를널리 전하고 싶단다.
문의 010-9430-5177
<장흥을 그리다-백년의봄 꿈아트샵>
정남진 장흥토요시장 부근에 자리한 ‘백년의봄 꿈아트샵(이하 백년의봄)’은 장흥의 역사와 이야기를 담는 공방이다. 위종만(53)·박영숙(47) 씨 부부가 이 공방을 운영 중이다. 2012년쯤, 부부는 남편 위씨의 고향인 장흥으로 귀촌했다. 그 이후 ‘달항아리공방’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고, 2021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장흥의 문화예술을 활성화하는 데 일조하고 싶었어요. 미술 체험 프로그램을 열고, 장흥과 관련된 역사와 이야기를 미술로 풀어나가려 했죠.”
부부는 도자기·비누·가죽 등의 공예 체험, 장흥 문인들의 작품을 담는 소품제작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다. 공예가인 박씨가 전반적인 공방 운영을 맡고, 농부이자 화가인 위씨가 도자기공예 수업을 진행한다. 백년의봄의 체험 프로그램은 예약 후 참여 가능하다. 체험 프로그램 운영뿐만 아니라 역사가 담긴 컬러링 북 등을 제작해 온 부부. 앞으로도 장흥의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일을 할 계획이다.
“장흥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을 만들고, 지역 문화인들을 통한 엽서나 책도 제작하고 싶어요. 문화예술이 살아 숨 쉬는 장흥이 되는 그날까지요!”
문의 061-867-7757
[장흥의 맛이 담긴 맛집]
<참나무로 굽는 굴구이 ‘남포수산’>
자연산 석화구이(굴구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자연산 굴이라 양식 굴보다 고소하고 바다의 향을 잔뜩 품고 있다. 남포수산의 대표 메뉴인 굴구이를 주문해본다. 굴이 뜨거운 장작불 위에서 구워지다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입을 쩍 벌린다. 굴이 익으면 제공된 목장갑을 끼고 칼을 이용해 굴을 꺼내 먹는다. 탱글탱글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고소함이 일품이다. 11~3월까지 겨울시즌에만 주로 영업하니, 그 사이에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문의 010-9945-3603
<제철 매생이가 일품 ‘명희네음식점’>
매생이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다이어트에 좋고, 철분과 칼슘이 다량 함유돼 있어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매생이탕을 한 술 뜨자 구수하면서 신선한 바다의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입안에 들어가자 제대로 씹을 새도 없이 금세 목으로 넘어간다. 부드러운 식감과 감칠맛이 특징인 매생이탕을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추위에 언 몸도 금세 따뜻해진다.
문의 061-862-3369
<싱싱한 바지락으로 만든 회무침 ‘장흥 갯마을’>
바다를 바라보며 바지락회무침을 즐길수 있는 곳. 바지락회무침은 신선한 바지락과 아삭한 채소, 매콤새콤한 양념으로 만든 음식이다. 바지락회무침정식을 주문하면 다양한 밑반찬과 바지락회무침이 나온다. 먼저 빈 그릇에 밥과 바지락회무침을 담고 비빈 다음 김에 싸 먹는다. 바지락회무침을 다 먹었을 때쯤, 담백한 누룽지를 맛보면 완벽한 한 끼 식사 완성이다.
문의 061-862-1203
<사계절 보양식으로 제격 ‘황칠나라’>
황칠백숙을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황칠백숙은 닭을 황칠나무나 진액을 넣고 푹 삶아 만드는 요리다. 주문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등장한 황칠백숙에는 목이·새송이 등 여러 종류의 버섯과 부드러운 육질의 닭이 들어 있다. 국물은 황칠나무향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맛은 맑고 개운하다. 닭과 버섯의 조합은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과 담백한 맛 덕분에 잘 어울린다. 황칠나라는 주로 예약제로 운영 중이니, 전화 후 방문하는 게 좋다.
문의 061-864-5288
<한우·표고버섯·키조개의 조합 ‘정남진한우식당’>
‘장흥삼합’을 판매하는 식당이다. 장흥삼합은 장흥지역에서 난 한우고기·표고버섯·키조개를 한 번에 구워 먹는 음식이다. 정남진한우식당에서 이를 맛보고 싶다면 1층에서 한우고기를 구매한 후, 2층에서표고버섯, 키조개와 함께 구워 먹으면 된다. 불판에 먼저 한우고기를 올리고, 고기의 한쪽 면이 익을 때쯤 표고버섯과 키조개를 올린다. 기호에 따라 참기름이나 절인 양파, 깻잎 등에 싸 먹어도 좋다. 장흥의 맛을 제대로 즐겨보자.
문의 061-864-1415
첫댓글 죽 읽어내리다 그랑께롱에서 미소가. ㅎ
남도 여행을 꽤 했는데 장흥은 한번도 가보지 못했어요. 올해 꼭 시간 내어 가보고 싶네요. 멀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