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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도 그랬지만 몇일전에도 센카쿠열도에서 중국과 일본의 전투기가 대치했었다는군요 아마 언론에는 안나오지만 수시로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듯.... 문제는 이런일이 반복되다 어느순간 오발이나 오인사격 혹은 접촉사고가 일어나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수도 있다는 사실.
인간의 무기가 돌칼과 몽둥이를 시작으로 금속 칼과 창을 사용하고 이후 탱크와 전투기를 사용하는 시대가 됬음에도 여전히 투쟁본능과 이기심은 버릴수 없을것입니다
인류가 핵전쟁을 반복한다면? SF가이드/대재앙 이후 이야기 (22) 2014년 02월 20일(목)
SF관광가이드 지난 회에 소개한 전면 핵전쟁을 소재로 한 과학소설들 가운데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리대왕>은 별개로 치더라도) 과학소설 독자층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아온 고전은 월터 M. 밀러 2세(Walter M. Miller, Jr.)의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 A Canticle for Liebowitz, 1957>이다. (엄밀히 말해 윌리엄 골딩은 순수문학 작가이고 넓은 의미에서나마 과학소설 장르로 볼 수 있는 작품은 <파리대왕>과 <후계자들 The Inheritors, 1955> 밖에 쓰지 않았다.)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이 겨누는 냉소적인 풍자의 칼날은 과거 지식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문명이 후퇴한 가운데 뭐가 뭔지도 모르는 문헌을 성화(聖化)하여 권력 강화 수단으로 써먹는 인간의 탐욕스러움뿐 아니라 톤 따데오의 시대로부터 다시 600년이 지나 리보위츠의 기술문헌을 실제 과학기술에 다시 응용할 수 있게 발달한 미래에도 여전히 전면 핵전쟁을 반복하는 이기적인 어리석음에 겨눠진다. 리보위츠의 문헌이 발굴된 지 약 1,200년 이상 지나 또 다시 핵무기를 대량생산하게 된 시대, 강대국들은 패권을 잡기 위한 야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핵개발을 위한 과당경쟁을 멈추지 않아 세상은 다시 전면 핵전쟁의 위기에 휩싸인다. 핵폭탄의 참화 속에 불타는 수도원과 사람들을 뒤로 한 채, 수도원에서 오랜 세월 보관해온 리보위츠 성인(聖人)의 이른바 ‘메모라빌리아 장서’들은 선발된 소수의 수도사들과 함께 우주의 식민지로 길을 재촉한다. 그들의 우주선에는 지구가 아예 우주의 먼지가 되거나 인류가 절멸할 경우에 대비해 교황 후보가 타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대단원을 통해 “끝없이 잘못을 반복하여 자멸을 초래하는 인류를 과연 신은 용서하실 것인가? 그리고 그 이전에 인류는 그러한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 핵폭탄의 공포가 절정에 다다른 1950년대에 씌어진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은 2차 대전 도중 잿더미가 되어버린 몽뜨 카시노(Monte Cassino) 수도원의 참화를 목격한데서 작가가 영감을 얻었다고 하며 러셀 호밴(Russell Hoban)의 <리들리 워커 Riddley Walker, 1980>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 주제에 관한 한 가장 문학적으로 성공을 거둔 과학소설로 평가되었다.
과연 새로운 밀레니엄을 가뿐히 넘어선 이 시대에 인류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전면 핵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문명을 보존하기 위해 기댈만한 곳은 (밀러가 예견했듯이) 교회와 수도원뿐일까? 정말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유럽의 중세가 시작되던 무렵의 수도원처럼, 앞으로도 문명의 위기가 닥쳤을 때 그 동안 습득한 지식을 쌓아두는 동시에 그 가치를 알아볼만한 곳은 종교의 울타리 안쪽밖에 없을까? 과학과 문명의 르네상스는 그것(이성/합리성)과는 정반대되는 이념(독실한 복종)으로 충만한 곳에서만 싹을 틔우는 역설적인 운명을 타고 났단 말인가? 소설에서 시사하듯 지식은 곧 권력이고, 권력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지식을 보유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성전(聖戰)이 국지전의 성격으로 격하되고 종교 선택의 다양성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무신론자와 일부 날라리 종교인의 차이가 분명치 않은 이 시대에, 다시 말해서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념체계라기보다는 복잡다단한 현대생활의 피로를 풀어주고 개인의 안식을 베풀어주는 쉼터들 가운데 하나로 위축된 현실에서, 세상의 종말이 눈앞에 닥쳐왔을 때 과연 종교적인 장소들만이 인류의 지식과 문명을 보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왜 작가들은 대재앙만 일어나면 인류사회가 열에 아홉은 원시상태로 퇴행하리라 속단하는 것일까?5) 아예 지구가 결딴난다면 모를까. 아무튼 실제로 이런 위기가 닥치면 대다수 생존자들은 종교에 기대느니 전후 복구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실제로 돌아오는 혜택은 이쪽이 훨씬 더 크니 말이다, 자신을 위해서나 자식들을 위해서나.
지식을 응용하려고 생각마라. 인간이 신성을 알 때까지는 결코 그런 일을 시도하지 마라. 그래봐야 되지도 않는다. ---- 과학적 사고를 억압하는 종교조직의 폐해에 관해 과학자 톤 따데오가 꼬집는 대목에서 발췌(<리보위츠를 위한 찬송> 국내 번역판, 2000, 제2권 56 ~ 57쪽) 요약하면, 남겨진 문헌들의 참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수도사들이 필사해서 복제해둔 과학지식이 후세의 과학자들에게 과학 르네상스의 계기를 마련해주지만 그로 인해 급속하게 발전한 문명이 다시 전면 핵전쟁을 몰고 온다는 작가의 순환적 운명론은 의미심장하다. 아울러 밀러가 평생 카톨릭 교인으로 남았음에도 말년으로 갈수록 교회와 심한 갈등을 빚었다는 사실은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이 기독교를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그리지는 않는 다는 점과 일맥상통한다. 작가는 전통적인 기독교에 현대적 휴머니즘을 결합함에 따라 때때로 교리에서 일탈하는 논쟁을 작품 속에 끌어들인다. 원폭 후유증 중환자들을 안락사 시킬 것인지 그리고 피폭 결과 머리 두 개를 갖고 태어난 인간에게 두 개의 영혼을 인정하고 각기 다른 두 번의 세례를 줄 것인지 같은 문제들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아마 어떤 성직자도 생각해보지 않았을 이 얼토당토않은 상황에 극도의 현실감을 부여함으로서, 밀러는 종교를 믿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그것을 조롱하는 세상 사이의 불협화음을 신랄하게 그려낸다. 지금까지 열거한 여러 미덕 덕분인지 하인라인이나 아시모프 같이 여러 걸작들을 끊임없이 쏟아내야만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과학소설 작가들의 보편적인 숙명과는 달리 밀러는 다수의 단편을 쓰기는 했지만 이 장편 단 하나로 스타덤에 올랐다. 역설적이지만 <리보위츠를 위한 찬송>은 기독교 정통교리에 충실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불문하고 가슴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소통의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닐까? 핵전쟁을 빌미로 인류의 운명을 염세적으로 바라본 이 장편은 대재앙 이야기라는 하위 장르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아류작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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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을것 같네요. 시간내서 한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어찌하여 문명이 순환을 해도 그렇게 순환을 하게 되는지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