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잭콘필드는
세계적인 불교학자이자
서양의 대표적인 명상 지도자이다.
태국과 인도등지에서 불교 승려로 수행하였고
세계 각지에서 위빠사나 명상을 지도 했다.
이 책 깨달음 이후 빨랫감은
여러가지 사례를 통해
저자의 방대한 지식을 꺼내놓았다.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지않음을 말하고 있으며
오히려 그 이후의 삶이 더 힘들고
인내의 시간들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우리의 삶은 여인숙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깨달은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거기엔 깨달은 행위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놀라운 말은,
깨달음은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가 없음을 말해준다.
그것은 단지 해탈의 순간에 존재할 따름이다.
살아있는 것은 그 자체가 신비함 자체다.
우리의 진정한 본성에 대한 힌트는
주변에 언제나 널려 있다.
마음이 열리면 몸도 변화한다.
가슴이 열리면 영적 삶의 모든 요소들이 드러난다.
깊은 의문, 뜻밖의 시련, 본연의 순수 –
이 중에 어떤 것이든지 반복되는 일상 너머로
눈을 열도록 우리를 재촉할 수 있다.
안전이란 십중팔구 미신이다.
자연에는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길게 보자면 위험을 피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것에 맛서려고 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
삶이란 ‘위험을 무릎쓴 모험’일 뿐,
그 외에 그 아무 것도 아니다.
수행의 시작과 함께,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갑갑하고
흉측한 껍질들로 덮여 있었는지를
자각하게 된다.
기도든 명상이든 헌신이든,
이를 통해 드러나는 첫 번째 비밀은
우리 몸에 각인된 습관적인 긴장이다.
용서할 줄 아는 지혜로운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과거의 짐을 평생 가지고 다녀야만 한다.
죽음과 탄생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죽음에 의해 재생이 일어난다.
죽음과 외로움에 직면하고 나면
우리는 사는 것이 두렵지 않으며,
삶은 우리 발아래서 꽃을 피운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디나 거룩한 땅이 된다.
인간은 고통의 근원을 알지 못한 채
소유욕과 탐욕으로써,
폭력과 증오로써 행복을 얻고자 발버둥친다.
우리는 착각과 무지로써 행동하고,
그 당연한 결과로 고통을 겪는다.
우리의 집착과 아귀 다툼은
필연적으로 상실과 고난을 가져오지만
그 모든 것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
그리고 행복을 찾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행해진다.
우리는 언제나 실제로
눈 앞에 있는 것보다 좀더 특별하고,
더 크게 나온 것을 만들어내려고 애쓴다.
찾아 온 모든 깨달음은
거기에 이미 있는 것을 만들어내려고 애쓴다.
찾아온 모든 깨달음은
거기에 이미 있는 것으로
확인시켜주는 것일 뿐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고된 수행은
이 무상한 현실을 알아차려
그 속에 정신을 잃고 빠지지 않기 위한 것이다.
은총이나 깨달음의 순간에
우리는 실제로 붓다에 둘러싸이게 된다.
만나는 모든 존재들 속에서 ‘불성’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몸 속에서
모든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생명의 거미줄이,
열대 우림이,
소나무와 버섯,
미토콘드리아가
우리 자신임을 경험할 때마다
우리는 분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지혜로운 내려놓음은
삶으로부터 초연히 물러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 그 자체를 온 가슴으로 껴안는 것이다.
지금의 현실 앞에 온전히
가슴을 열고자 하는 의지이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에
가슴을 열고자 한다면
어떤 것도 소외시켜서는 안된다.
자유와 깨달음은 오로지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에서만 찾을 수 있다.
신을 사랑하고자 한다면
그의 모든 창조물 또한 사랑하기를 배워야만 한다.
우리 자신,
복잡하고 불완전한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성숙한 영적 삶의 목표는
이 신성한 전체성을 발견하여
우리 삶 속에 체득하는 것이다.
자잘한 일 하나하나와 매순간들이
다 온 우주의 반영이며,
온 우주에 이바지한다.
아이를 잠자리에 눕히는 일,
청구서를 지불하는 일,
고객의 말에 귀기울이는 일,
주유소 직원에게 기름값을 내는 일,
편지를 쓰거나 메모하는 일,
사람을 만나서 함께 식사하는 일,
사업을 계획하는 일,
정원에 물을 주는 일 –
이 모두가 깨어난 가슴을 몸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우리가 이 진실을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도리어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냥 시작하라.
하나씩 하나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