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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江陵)이 본관(本貫)인 성씨(姓氏)들
<강릉의 역사 요약>
강릉(江陵)은 기원전부터 성읍국가(城邑國家)로 성립하였던 예맥족(濊貊族)이 세운 동예(東濊)가 있던 지역으로, AD 127년 이후에는 창해(滄海)와 임둔(臨屯)에 속하였다.
동예(東濊)는 기원전 82년부터 기원후 4세기까지 오늘날의 함경남도 남부 부근에서 강원도 강릉, 경상북도 영덕군에 이르기까지 동해안 지역에 넓게 퍼져 있었던 예맥계 부족사회 집단이다.
이곳 강릉은 AD 313년(고구려 미천왕 14년)에 하서랑(河西良) 또는 하슬라(河瑟羅)라 불렸다.
그러다 AD 550년(신라 진흥왕 11)에는 신라의 영토로 편입되었고, AD 639년(선덕여왕 8년) 2월에는 북소경(北小京)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AD 658년(무열왕 5년)에는 말갈족과 인접해 있다는 이유로 북소경(北小京)을 폐지하고 하서주(河西州)로 개편하여 도독을 두었다.
AD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비로소 명주(溟州)로 개편하여 명주도독부(溟州都督府)를 두었고 9군 25현을 두어 관할(管轄)하였다.
AD 936년 (고려태조 19년)에는 동원경(東原京)이라 불렀고, 조선시대에는 강릉에 임명된 관리가 머물던 건물인 임영관(臨瀛館)이 들어서게 된다.
그 후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우계(羽谿), 연곡(連谷)의 두 현(縣)을 두었다가 1260년(원종 1년), 공신(功臣) 김홍취(金洪就/강릉 김씨)의 고향이라 하여 경흥도호부(慶興都護府)로 승격되었으며 1389년(공양왕 1년)에는 강릉대도호부(江陵大都護府)가 설치되었고 1789년(정조 12년)에 강릉부(江陵府)가 되었다. 그 이후, 1896년(고종 33년)에는 강릉군(江陵郡)으로 개칭된다.
1931년에 들어 강릉면(江陵面)이 강릉읍(江陵邑)으로 승격되었고, 1955년 강릉읍, 성덕면, 경포면을 통폐합하여 강릉시(江陵市)로 승격하면서 명주군을 분리시켰다가 1995년 강릉시(江陵市)와 명주군(溟州郡)을 다시 강릉시로 통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1. 강릉 김씨(江陵金氏)
①숭열전(崇㤠殿)-신라 29대 태종 무열왕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
②명주군왕릉(溟州君王陵/崇熱殿)
-강릉 김씨 시조(始祖) 김주원(金周元)의 묘
※신라 태종 무열왕 6세손인 김알지(金閼智)의 21세손
③신라 태종(太宗) 무열왕(武烈王) 영정(影幀)
-강원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산 285번지
강릉 김씨의 시조(始祖)는 김알지(金閼智)로 나온다.
김알지(金閼智)는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등장하는 전설의 인물인데 신라(新羅) 김씨 왕가(王家)의 시조(始祖)이기도 하고 경주 김씨(慶州金氏), 강릉 김씨(江陵金氏), 연안 김씨(延安金氏)의 시조(始祖)로 모시는데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說)들이 있기도 하다.
시조(始祖)는 다시 원시조(元始祖)와 비조(鼻祖), 시조(始祖)로 나누어지는데, 신라(新羅)의 태종 무열왕 김춘추(金春秋)가 비조(鼻祖), 신라시대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이 그다음의 시조(始祖), 또 중시조(中始祖)라 하여 김영진(金英珍), 김영길(金英吉), 김영견(金英堅)이 나오고 이어서 김종기(金宗基), 김헌창(金憲昌), 김신(金信)으로 이어진다.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 나오는 기록(記錄)>
신라시대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임명받은 강릉 김씨(金氏)의 시조 김주원(金周元)은 신라 혜공왕(惠恭王) 때에 시중(侍中)을 들던 신하였다고 한다. 이후, 신라 제37대 국왕(재위:780~785)이었던 선덕왕(宣德王)이 사망한 후 처음에는 김주원(金周元)이 왕으로 추대되었으나, 홍수 때문에 입궐(入闕)하지 못하자 당시 신라의 최고 관직인 상대등(上大等)에 있던 김경신(金敬信)이 시자(侍者)의 농간으로 원성왕(元聖王)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김주원은 강원도 명주(溟州/현 江陵)로 물러났는데, 2년 후 조정에서 명주군왕(溟洲郡王)으로 임명하고 명주(溟州)와 울진(蔚珍)을 식읍(食邑)으로 내렸다. 이후 후손(後孫)들이 본관(本貫)을 강릉(江陵)으로 결정하였는데, 이것이 강릉 김씨의 시작이다.
강릉 김씨(江陵金氏)는 신라 시대에 진골(眞骨) 귀족(貴族)의 지위를 누렸던 조상의 자손들이다.
<강릉 김씨 인재들>
◉정치계 ▶김진선(金振兟)-강원도지사 ▶김윤기(金允起), 김주남(金周南)-건설교통부 장관
(국회의원) ▶김진구(金振九), 김진만(金振晩), 김인기(金寅起), 김택기(金敬起), 김흥기(金興起)
<강릉김씨 집성촌/南韓>
세종특별자치도: 연서면 / 경기도: 양주시, 김포시, 용인시 /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강릉시, 철원군
충청남도 당진시: 천안시 /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강릉김씨 집성촌/北韓>
경기도: 장단군 / 황해도: 안악군 / 평안북도: 철산군 / 함경북도: 부령군
2. 강릉 최씨(江陵崔氏)
도시조(都始祖): 소벌도리(蘇伐都利) 시조(始祖): 최흔봉(崔欣奉), 최필달(崔必達), 최문한(崔文漢)
①황산사(篁山祠)-시조 최필달 위패봉안 사당
②황산사비(篁山祠碑), 최규하(崔圭夏) 송덕비(頌德碑)<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③시조(始祖) 최필달(崔必達) 영정(影幀)
-강릉시 운정길 21번길 27(운정동)
강릉최씨(江陵崔氏)는 시조(始祖)를 전주계(全州系), 경주계(慶州系), 강화계(江華系)로 달리하는 세 계통으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강릉최씨는 경주최씨 계통에서 갈라져 나온 충무공(忠武公) 최필달(崔必達)을 시조로 하는 계통이 있고, 전주최씨 계통에서 갈라져 나온 대경공(大卿公) 최흔봉(崔欣奉)을 시조로 하는 계통도 있다.
또, 상계 계통은 알 수 없으나, 고려 충숙왕의 부마로 화성도위(華城都尉)에 봉해지고 벼슬이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이른 충재(忠齋) 최문한(崔文漢)을 시조로 하는 계통도 있다.
강릉최씨 중 경주계파는 고려시대의 경흥부원군(慶興府院君)이었던 최필달을 시조(始祖)로 하고 있다.
경주최씨 상계보에 따르면 그는 경주최씨의 시조 최치원의 후손인 최승로(崔承老)의 증손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치운(崔致雲)과 최수성(崔壽城)을 들 수 있는데 최치운은 시조(始祖) 최필달(崔必達)의 16대손으로 세종 때 명신(名臣)으로, 형옥(刑獄)에 밝아 ‘무원록(無寃錄)’을 주석하였다.
최수성은 최치운의 증손으로 성리학의 대가였으며, 시문, 서화, 음률, 수리 등 다방면에 뛰어났다.
경주계(慶州系) 강릉최씨(江陵崔氏)는 낭장공파(郎將公派), 양근파(楊根派), 비인공파(庇仁公派), 용연동파(龍淵洞派), 행정파(杏亭派), 안동파(安東派), 수헌공파(睡軒公派), 문정공파(文正公派), 해창공파(海窓公派), 춘천파(春川派), 황주파(黃州派), 고성파(高城派), 정선파(旌善派), 생원공파(生員公派), 신리파(新里派), 경성파(鏡城派), 태안파(泰安派), 제학공파(提學公派), 충주파(忠州派), 장단파(長湍派), 냉정파(冷井派), 의주파(義州派), 덕원파(德源派), 능주파(綾州派), 사간공파(司諫公派)의 25개 파(波)로 분파되었다.
그 외 고려 충숙왕의 사위였던 부마(駙馬) 최문한(崔文漢)은 삼중대광(三重大匡) 벼슬을 지내다 말기에 강릉(江陵)으로 낙향했는데, 그 자손들이 강릉과 충북 충주에 문호(門戶)를 열고, 현재는 삼척(三陟), 양양(襄陽), 평창(平昌)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최문한계(崔文漢系)에는 부사공파(府使公派), 통정공파(通亭公派), 참봉공파(參奉公派), 훈도공파(訓導公派), 참의공파(參議公派), 충순위공파(忠順衛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판서공파(判書公派), 교수공파(敎授公派), 부정공파(副正公派), 진사공파(進士公派), 참판공파(參判公派) 등이 있다.
또 대경(大慶) 최흔봉(崔欣奉)을 시조로 하는 전주계(全州系)도 있는데 그는 전주최씨에서 갈라져 나간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구체적인 상계(上系)가 고증(考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전주계 강릉최씨의 주요 인물로는 조선 세조(世祖) 때 이조참판을 지낸 최자점(崔自霑), 성종(成宗) 때 이조판서를 지낸 최세건(崔世楗), 인조(仁祖) 때 진주목사를 지낸 최응천(崔應天) 등이 있다.
이들 전주계는 희경공파(希慶公派), 대사간공파(大司諫公派), 예성공파(睿聖公派), 전서공파(典書公派) 등으로 나뉘어 있다.
<강릉 최씨 인재들>
◉정치계 ▶최각규(崔珏圭)-강원도지사 ▶최규하(崔圭夏)-제10대 대통령,
▶최돈웅(崔燉雄)-제8,14,16대 국회의원, ▶최명희(崔明熙)-제30~32대 강릉시장,
▶최문순(崔文洵)-제36~38대 강원도지사, MBC 사장, 제18대 국회의원
▶최순영(崔順永/여)-제17대 국회의원 ▶최연희(崔鉛熙)-제15~18대 국회의원,
▶최욱철(崔旭澈)-제14,15,18대 국회의원 ▶최종영(崔鐘泳)-제13대 대법원장,
▶최종원(崔鍾元)-국회의원
◉학계 ▶최양희(崔陽熙)-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한림대 제11대 총장
▶최장집(崔章集)-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언론계 ▶최승돈(崔承燉)-아나운서, ▶최승호(崔承浩)-MBC 사장,
▶최종구(崔鐘球)-제7대 금융위원장
<강릉최씨 집성촌/南韓>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고성군, 동해시, 삼척시, 영월군, 인제군, 정선군, 춘천시, 횡성군
경기도: 파주시 / 충청북도: 충주시 / 충청남도: 보령시 / 경상북도: 문경시, 안동시, 울진군
경상남도: 합천군
<강릉최씨 집성촌/北韓>
강원도: 고성군 / 황해도: 연백군 / 평안남도: 용강군 / 평안북도: 의주군, 후창군
함경남도: 단천군, 문천군 / 함경북도: 경성군, 명천군, 성진군
3. 강릉 박씨(江陵朴氏)
원시조(原始祖): 혁거세(赫居世) 거서간(居西干) 비조(鼻祖): 신라 파사왕(婆娑王) 시조(始祖): 박순(朴純)
①경양사(鏡陽祠)-박제상의 위패를 모신 사당-강릉시 저동 293번지 ②치산서원(鵄山書院)-울산 울주군
③박제상(朴堤上/신라/울산 鵄山書院 忠烈廟) ④박순(朴淳) 영정(조선시대)
강릉박씨(江陵朴氏)의 시조(始祖)는 박순(朴純)이다.
강릉박씨(江陵朴氏)의 기세조(起世祖) 박순(朴純)은 신라 군주 파사(婆娑/신라시대 국왕) 이사금(尼師今)의 35세손으로, 1174년(고려 명종 4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보문각시어(寶文閣侍御), 이부시랑(吏部侍郞)을 거쳐 좌승선(左承宣)·한림학사(翰林學士)·중추원사(中樞院事)·남경유수(南京留守)를 지낸 뒤 병부상서(兵部尙書)와 공부상서(工部尙書)에 이르렀다.
또 상장군(上將軍)을 겸하면서 석린(石隣)의 모반을 평정하는 공을 세워 보정정국공신(保定靖國功臣)에 책록(策錄)되었으며, 정당문학(政堂文學)과 검교태부(檢校太傅)에 특채(特採)되었다.
신종 때는 좌복야(左僕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가 되어 계림군(鷄林君)에 봉해졌는데 훗날 강릉(江陵)으로 내려가 여생을 마쳤다고 한다.
박순은 고려 고위직 평장사(平章事/부총리급)로 추증(追贈)된 박소(朴篠)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고려 명종 4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보문각시어(寶文閣侍御:고려 때 유신들이 경서를 강론하던 기관의 종5품직)를 거쳐 남경(南京:지금의 서울) 유수(留守)를 지냈으며 병부상서(兵部尙書/정3품) 겸 대장군으로 있을 때 석린(石隣)의 모반을 평정한 공로로 보정정국공신(保定靖國功臣)에 올랐다.
강릉박씨(江陵朴氏)의 또 다른 시조(始祖)인 박제상(朴堤上:363~419)은 신라 제5대 군주 파사(婆娑) 이사금(尼師今)의 5세손으로 대아찬(大阿湌)을 지냈다.
박제상(朴堤上) 유적지는 울산광역시 치산서원(鵄山書院), 망부석(望夫石), 은을암(隱乙庵) 등 박제상 관련 유적들로 1997년 10월 9일에 울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박제상(朴堤上)의 기록을 보면, 신라 눌지왕(訥祗王)의 아우를 구하기 위해 왜국(일본)으로 건너가 미사흔(未斯欣)을 구출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결국 잡혀서 왜국의 신하가 되라고 하자 거부하다 불에 타 죽은 신라의 충신이다.
그리고 남편이 왜국(倭國/일본)으로 가고 난 후 해변에서 한없이 바다만 바라보며 남편을 기다리던 그의 부인은 망부석(望夫石)이 된다.
아내, 그리고 그의 가족을 기리기 위해 조선시대(朝鮮時代)에 마을 유림(儒林)과 후손(後孫)들이 치산서원(鵄山書院/神母祠)을 지었으나 187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에 의해 훼철(毁撤)되었다가 1991년 복원되었다. 박제상 위패와 영정을 모신 충렬묘(忠烈廟), 부인을 모신 신모사(神母祠), 자식의 영정을 모신 쌍정려(雙旌閭) 사당이 있는 치산서원(鵄山書院)과 2008년 개관한 충렬공박제상기념관(忠烈公朴堤上記念館), 박제상 추모비(追慕碑) 등이 울산(蔚山)에 있다.
<강릉 박씨 인재들>
◉정치계 ▶박인균(朴仁均)-강원도의회의원 ◉예능계 ▶박하나(朴荷娜)-배우
<강릉최씨 집성촌> 강원 강릉 강동면 하시동리
4. 강릉 함씨(江陵咸氏)
시조(始祖): 함혁(咸赫) 중시조(中始祖): 함규(咸規)
①오봉서원(五峯書院) 집성사(集成祠) ②숭선제(崇先齋) ③숭선제 숭인문(崇仁門)
-강릉시 성산면 오봉서원길 28-7
양평 사나사(舍那寺) 내 함씨각(咸氏閣) / 시조 함혁(咸赫) 영정 봉안 / 함왕산성 유적
-경기도 양평(陽平) 용문산(龍門山) 최고봉은 용문봉(1,157m), 장군봉(1,065m), 백운봉(941m) 등이 있는데 등산가들이 사랑하는 등산로가 잘 가꾸어져 있는 산행코스가 있다.
용문산 봉우리 중 이름이 함왕봉(咸王峰/947m)도 있는데 산등성이에 함왕산성(咸王山城) 유적도 있다.
♣사나사(舍那寺)는 산스크리트어(語)로 ‘비로자나(毘盧舍那)’인데 우리말로 ‘비로사나’, 줄여서 ‘사나사’로..
바위 구멍에서 함왕이 탄생했다는 전설의 함왕혈(咸王穴)<경기도 양평 용문 산록(山麓)>
조선시대 강릉함씨 함헌(咸軒)이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孔子)진영을 가지고 와서 서원을 건립하고 모셨는데 훗날 주자(朱子)와 송시열(宋時烈)의 영정도 모셨다.
함씨(咸氏)는 본래 강릉함씨(江陵咸氏, 관향: 강릉특별자치도 강릉시)와 양근함씨(楊根咸氏, 관향: 경기도 양평군) 등으로 나뉜 한국의 성씨였다. 하지만 함혁(咸赫)을 원조(原祖)로 하는 동원분파(同源分派)이므로 1936년 병자보(丙子譜)를 편찬할 때 합보(合譜)되어 본관(本貫)을 구분하지 않는다.
함씨(咸氏)의 선계(先系)인 함혁(咸赫)은 마한(馬韓) 소국(小國)의 왕이었다는 설, 중국 한(漢)나라의 대장군이었다는 설(說)과 중국 당나라의 병부상서(兵部尙書), 평장사(平章事)였다는 설이 존재하는데, 용문사(龍門寺), 사나사(舍那寺), 함왕성(咸王城)과 함왕혈(咸王穴) 등 문화재와 지역 설화를 근거로 마한(馬韓)의 왕이었다는 설이 대체로 타당성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한다.
함혁(咸赫)은 경기도 양평(楊平) 용문산(龍門山)을 중심으로 소국(小國)을 세우고 다스렸는데, 후손들은 혁(赫)의 첫 세거지(世居地)인 양근(楊根, 경기도 양평군의 옛 지명)을 본관(本貫)으로 하였다.
신라의 함씨는 호족(豪族) 가문이었는데 신라 중기(中期), 신(信)은 원성왕과의 왕위쟁탈전에서 패한 김주원(강릉 김씨의 시조)을 보좌하여 현재 강원도 강릉인 명주(溟州) 지역으로 가서 그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함규(咸規, 생년 미상~945년)는 함씨의 중시조(中始祖)이자 고려의 개국공신(開國功臣) 권신(權臣)인데 고려 초기, 광주(廣州)의 대 호족(豪族)으로 양근함씨(楊根咸氏)였으나 개국공신이었으므로 태조로부터 왕씨(王氏) 성을 사성(賜姓) 받아 왕규(王規)가 된다.
<강릉 함씨 인재들>
◉재계 ▶함영주(咸泳周)-하나금융 회장, 은행장 ▶함영준(咸泳俊)-(주) 오뚜기 회장
▶함태용(咸泰埇)-하나은행장, 장기신용은행 회장
◉학계 ▶함돈희(咸燉憙)-하버드 응용물리학과 교수, 한국인 최연소 교수임용(28세)
▶함재봉(咸在鳳)-UNESCO 사회과학국장,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함인석(咸印碩)-경북대 총장, 경북대 의대 학장
▶함기선(咸基善)-한서대학교 총장,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함종규(咸종규)-성인장학재단 이사장, 한서대 초대총장
▶함의근(咸의근)-서울대 의예과 명예교수, 서울대병원 부원장, 대한암학회 회장
▶함태영(咸泰永)-인제대학교 의대 명예교수, 상계백병원 원장
▶함준수(咸준수)-한양대 구리병원장, 한양대병원 부원장
▶함택수(咸택수)-남해화학 사장, 함택수(咸택수)-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함봉진(咸봉진)-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함혜현(咸혜현)-부경대학교 교수, 행정고시 수석합격(1999년)
▶함대영(咸대영)-2012년 수능 만점자, 서울대 수리통계학과 졸
▶함성득(咸성득)-고대 행정학과 교수, 한국 대통령학회 회장
▶함원훈(咸원훈)-성균관대학교 약학대학장
▶함신익(咸신익)-미국 예일대학교 졸, 음악대학 교수, KBS 교향악단 상임 지휘자
▶함영림(咸영림:여)-이화여대 음악대학장
▶함인희(咸인희:여)-이화여대 사회과학대 학장
▶함승욱(咸승욱)-중앙대학교 자연과학대 학장
▶함승덕(咸승덕)-충북도립대학교 총장
▶함익병(咸익병)-에스더 클리닉 원장, 이지함 피부과 원장
▶함규진(咸규진)-서울교육대학교 교수
◉법조계 ▶함윤근(咸윤근)-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함귀용(咸귀용)-(주)바디프랜드 부회장,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군계 ▶함병선(咸炳善)-육군중장, 합참 작전참모본부장, 국방대 총장, 제2군단장, 육군훈련소장
▶함덕선(咸德善)-육군중장, 제11군단장, 제26 보병사단장
▶함세영(咸세영)-육군소장, 제28보병사단장
▶함원용(咸元龍)-해군소장, 해군작전사령부 부사령관,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함희성(咸희성)-육군소장, 제8기계화보병사단장
▶함태상(咸태상)-공군소장, 함준호(咸俊鎬)-육군준장, 제7사단 제1연대장, 제5사단 부사단장
▶함창호(咸창호)-해군준장, 4국군기무사 처장, 해공군 기무부대장
◉언론계 ▶함영준(咸永準)-주간조선 편집장, 조선일보 국제부장
▶함세웅(咸世雄)-가톨릭 정의구현사제단 설립,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평화방송 사장
◉재계 ▶함윤성(咸윤성)-SK D&D 대표이사
▶함철호(咸哲鎬)-T-way항공 대표이사,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본부장
▶함기호(咸基浩)-한국 휴렛패커드 대표이사 사장
◉정계 ▶함영훈(咸영훈)-뉴질랜드, 인도네시아 대사 역임
▶함명철(咸명철)-싱가포르, 체코 대사, 유엔대표부 차석대사
◉기타 ▶함소원(咸素媛:여)-1997년 미스코리아 태평양 진(眞) 당선
▶함석헌(咸錫憲)-민권운동가
이 밖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 영역의 천재들이 즐비....
<강릉함씨(江陵咸氏) 집성촌/南韓>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주문진읍, 고성군, 양양군
<강릉함씨(江陵咸氏) 집성촌/北韓>
강원도: 판교군, 강원도 김화군 / 평안남도: 문덕군
5. 강릉 유씨(江陵劉氏)
원시조(原始祖): 유전(劉筌) 시조(始祖): 유승비(劉承備) 중시조(中始祖): 유창(劉敞)
사당(祠堂) 영성재(永誠齋) / 문희공 유창을 모신 해천재(蟹天齋) / 기적비각(紀蹟碑閣) / 유비(劉備) 영정
-전라북도 진안군
시조(始祖) 유승비(劉承備)의 아버지는 대제학 유연(劉沿)이고, 어머니는 연안이씨(延安李氏)다.
증손자인 유창(劉敞)은 1371년, 고려 공민왕 20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성균좨주(成均祭酒) 등을 역임하고, 조선 개국공신(開國功臣)에 책록(策錄)되었고, 옥천부원군(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강릉유씨(江陵劉氏)는 조선시대 문과(文科) 급제자(及第者) 8명을 배출했다.
한민족 계통의 유씨(劉氏)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고구려 동천왕(東川王) 시대의 장수인 유옥구(劉屋句)인데, 이후 같은 성씨를 가진 인물로는 발해 출신의 유충정(劉忠正)도 있다.
또 실제로 유씨(劉氏)는 왕족인 대(大)씨, 유력 귀족인 고(高), 왕(王), 이(李), 양(楊), 장(張), 오(烏), 두(竇)씨 등 발해의 49가지 귀족(貴族) 성씨(姓氏) 중 하나이다.
시대적인 흐름과 성씨(姓氏)의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 유씨(劉氏)는 실질적으로는 고구려와 발해(渤海)에 기원을 두며, 고려 때 뿌리를 내렸고 조선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활약했음이 가장 유력하다.
<강릉 유씨 인재들>
◉정치계 ▶유창순(국무총리), ▶유재흥(국방장관), ▶유각종(동자부차관), ▶유진순(충남지사),
▶유옥우, 유민상, 유용근, 유기천, 유기수, 유수호, 유승민(이상 국회의원),
◉군인 ▶유흥수(육군소장), ▶유재남(육군소장), ▶유남규(해군소장)
◉학계 ▶유기천(서울대총장), ▶유영대(전북대총장), ▶유석옥(건국대총장), ▶유원동(숙대교수),
▶유희세(고려대 교수), ▶유태종(고려대 교수), ▶유현종(소설가), ▶유준상(미술평론가),
◉언론계 ▶유봉영(조선일보 편집국장), ▶유승범(합동통신 편집국장)
◉재계 ▶유성연(삼척탄좌회장), ▶유충근(경향건설사장), ▶유승윤(건국대재단이사장)
◉국가대표 탁구선수 ▶유남규
◉개그맨이자 방송인 ▶유재석
<강릉유씨(江陵劉氏) 집성촌>
서울특별시: 강동구 상일동, 강일동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당수동 / 화성시 우정읍 멱우리 / 김포시 걸포동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 신월리 /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 / 장성군 북이면 오월리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부안면 상등리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
6. 강릉 성씨(江陵成氏)
시조(始祖): 성척(成戚)
강릉성씨(江陵成氏)는 전국에 있는 인구수가 3천 명 정도밖에 되지 않은 까닭인지 사당이나 유적 및 인재를 거의 찾을 수 없다. 강릉 성씨(江陵成氏)는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를 본관(本貫)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姓氏)이다.
시조(始祖) 성척(成戚)은 고려시대(高麗時代) 예빈경(禮賓卿)을 지낸 송흔적(訟昕迪)의 6대손으로 본성은 송(訟)씨였으나 고려 목종의 휘인 송(訟)자를 피하여, 그의 할머니 성인 성(成)씨로 고쳤다고 한다.
성척(成戚)의 할아버지인 송초성(訟硝盛)이 창녕성씨(昌寧成氏) 시조(始祖) 성인보(成仁輔)의 사위였음으로 그의 할머니 성을 따라 개성(改姓)한 것이라고, 강릉 성씨 을축보(乙丑譜)에 기록이 있으나, 창녕 성씨 족보에는 기록이 없다고 한다. 강릉 성씨는 일찍이 관향(貫鄕)인 강릉에 터를 잡아 누대에 걸쳐 세거(世居)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강릉 성씨 을축보에 의하면, 3세 성의권(成誼權) 이후에 지금의 강원도 고성(固城)을 세거지(世居地)로 삼고 있으며, 5세(五世) 성자화(成自和)가 삼척에서 살았다고 한다.
7세(七歲) 성선(成善)이 4형제를 두었는데, 갑자사화 때 강릉 성씨(成氏)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이후 많은 자손들이 창녕성씨(昌寧成氏)로 흡수되는 비운도 겪었다고 한다.
<강릉성씨(江陵成氏) 집성촌>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성산면, 주문진읍, 고성군, 양양군
◈ 강릉이 본관(本貫)인 각(各) 성씨(姓氏)의 인구수
①강릉 유(劉)씨: 302,511명(2015년)
②강릉 김(金)씨: 179,593명(2015년)
③강릉 최(崔)씨: 148,716명(2015년)<국내 53위>
④강릉 함(咸)씨: 80,659명(2015년)<국내 60위>
⑤강릉 박(朴)씨: 15,866명(2015년)
⑥강릉 성(成)씨: 3,475명(2015년)
♣ 수원 백(白)씨: 354,428명<작성자의 성씨/본관 水原(單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