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매((冬梅) 이야기
수많은 나무수종 중 매화(梅花)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한겨울 눈 속에서 고아한 자태로 피어나는 매화의 결기는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홀로 은은한 향기를 품어내는 올곧은 선비정신이 배어있다. 그래서 선인들은 “오동은 천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였다. 추워 얼어 죽을망정 곁불은 쬐지 않겠다는 대쪽 같은 선비정신에 다름이 아니다. 이처럼 매화는 모진 한파와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는 삶의 상징으로 송·죽·매의 세한삼우(歲寒三友)요, 매·난·국·죽의 사군자(四君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매화 가운데에서도 동지섣달에 피는 동매(冬梅)는 조매, 한매, 설중매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최고로 친다.
부여의 백마강변에는 의미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있다. 바로 부여 동매이다. 규암면 진변리 부산서원(浮山書院) 입구에 있다.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 선생이 1642년 중국에 갔다가 세 그루의 매화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진다. 1943년 2월에 간행된 부여 관광안내서에 보면 고목이 된 동매가 바로 옆 초가지붕보다 두 배쯤 높게 치솟은 모습으로 실려 있다. 그 사진의 설명문에는 보통 매화는 4월에 꽃이 피지만, 이 매화는 설 전후 아주 추울 때 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약 300년 전에 중국에서 들여온 세 그루 중 한 그루로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두 그루는 이미 고목이 되어 죽었고, 남은 한 그루마저도 일제말기에 매화나무 밑에 쌓아둔 볏짚더미에 불이 붙어 매화나무가 타버렸다고 한다. 현재 있는 나무는 그 후손쯤으로 여겨져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를 알려주는 나무로 충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여 보호되고 있다.
매화나무가 있는 규암면 진변리의 마을 이름은 백강마을이다. 이경여 선생의 호를 딴 이름이다. 부산서원은 이경여 선생이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했던 서원이다. 서원 옆에는 동매가 있다. 마을 옆에는 백마강에 떠있는 산이라는 의미의 부산(浮山)이 있다. 백마강을 낀 부산의 언덕에는 대재각(大哉閣)이 있다. 그 안에는 자연 암반에 글씨를 새긴 각서석(刻書石)이 있다. 1657년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백강 이경여가 올린 북벌의 장계에 대한 효종의 비답(批答)을 새긴 것이다.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이다. “지극한 고통은 마음에 있으나,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구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절대군주의 비통어린 심정과 결기가 담겨져 있다. 백강 선생의 지조와 절개로 일관한 일생과 효종의 우국충정(憂國衷情) 그리고 동매를 고려할 때 백강마을의 상징은 바로 지조와 절개라고 하겠다.
2011.5. 5. 부여 군수 이용우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은 1642년(인조 20년) 선천부사 이계라는 자가 최명길, 이경여 등 배청친명(排淸親明)파를 청나라에 밀고하여 청나라에 잡혀가 억류되었다가 이듬해 소현세자(昭顯世子)와 같이 귀국하여 우의정이 되었다. 이때 청나라의 동매화(冬梅花)를 가져왔는데 이를 부여 백마강변 백강마을에 심어 지금까지 충청남도 문화재로 부여 백강동매(白江冬梅) 불리며 전해지고 있다.
1657년(효종 8년) 5월5일 인재등용(人才登用), 치국안민(治國安民), 양병보국(養兵保國), 경제부국(經濟富國), 북벌계획(北伐計劃)등 천여어(千餘語)에 달하는 우국충정의 상소를 올렸다. 효종이 비답(批答)을 내리어 명심(銘心)하겠노라 하면서 지통재심(至痛在心)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말을 적었다.
‘지극한 아픔이 가슴에 있다’는 의미의 ‘지통재심(至痛在心)’은 병자호란의 치욕적인 강화(講和)를 했다는 아픈 심정이요,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문다’는 의미의 ‘일모도원(日暮途遠)’은 계획하였던 북벌계획에 대한 심정이다. 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물어 가고 있다는 왕의 초조하고 애달픈 심정을 나타내고 있다. 비답을 받은 백강은 “크도다(大哉) 왕은(王恩)이여!”하며 한없이 울었다고 한다. 충성된 신하와 어진 임금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의 대화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