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는데, 순전한 나드라는 향유 한 근이었습니다. 한 근은 약 373g(373ml) 정도입니다. 그리고 이 향유의 가격은 약 300데나리온 이상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1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니 현재의 가치로 따지면 약 3천만 원 이상의 가격의 고가입니다.
이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모두 붓는 것을 본 가룟 유다는 분개했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낫다는 표현을 합니다.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마태복음 16:8에서는 허비(虛費)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드 향유는 몇 방울씩만 사용해도 충분한 향유이기에 그저 몇 방울만 예수님께 발라드려도 충분할 텐데, 그 옥합의 향유를 모두 부었으니 가룟 유다는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향유를 다 부어버린 것이 정말 허비일까요? 어쩌면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인간의 논리적인 판단이나, 합리적인 계산으로 볼 때에는 그렇다고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판단하는 것에는 매우 중요한 하나의 초점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누구신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 만주(萬主)의 주(主),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하나님 되신 분, 모든 것의 주인 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는 그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 않으신 분입니다. 향유 한 옥합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향유를 주님께 드린다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존귀에는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향유는 허비가 아니라 여전히 부족함입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다 쏟아붓는다 하더라도 지나친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부족합니다. 정말 허비일까요? 아니오! 오히려 부족함입니다!
왜 가룟 유다는 분개(憤慨) 했을까요?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의 값이 나가는 것이라면 팔아서 이러한 일, 저러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조차 아마 이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을 돕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을 돌아보셨습니다.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소외계층으로 여겨지고 있는 고아와 과부를 늘 돌아보셨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과 존귀가 무시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 가야 할 영광과 존귀가 무시되고 그것이 인간에게 향해서는 안 됩니다.
마리아야말로 주님을 주님으로 대접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행한 일을 복음을 증거할 때마다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신 예수님께 최고의 존중을 드린 헌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여인의 허비를 “거룩한 허비”, “거룩한 낭비”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내 계산적인 판단에서가 아니라, 내 생각이나 논리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 삶의 가장 최우선이 되는 삶으로 우리 삶을 거룩한 허비로 드리겠다는 고백으로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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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하우스 고양 공동체예배 설교
2026년 3월 15일(주일)
제목/ 거룩한 허비(虛費)
성경본문/ 요한복음(John) 12:1~8
설교자/ 안창국 담임목사
https://youtu.be/wKAWhLLslVw?si=uCYfAw3OV7R5w39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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