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는 사람들 중 일부는 실력 있는 전문의가 진찰을 하고 최첨단 장비로 검사를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들은 몸이 아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픈 것이다. 자신은 아프거나 괴로운데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니 답답한 마음에 온갖 민간요법을 사용해보지만, 오히려 문제만 더 크게 만들 뿐이다. DSM-5(DSM 참조)에서는 신체 증상 장애(somatic symptom disorder), 전환 장애(conversion disorder), 질병 불안 장애(illness anxiety disorder), 허위성 장애(factitious disorder)를 신체 증상 및 관련 장애(somatic symptom and related disorder)로 분류하고 있다.
신체 증상 장애는 한 가지 이상의 신체 증상을 호소하고, 자신의 신체 증상에 대한 걱정과 염려를 과도하게 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신체 증상으로는 통증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통증처럼 구체적이지 않고 피로감처럼 막연한 것도 가능하다. 이들은 자신의 신체 증상이나 걱정에 대한 반대 증거를 접하더라도 자신의 증상이 심각하다는 생각을 잘 포기하지 않는데, 신체 증상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6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이 진단을 내릴 수 있다.
전환 장애는 마음의 문제가 몸으로 전환되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구체적으로는 감각 기관의 이상이나 사지 같은 수의적 운동의 마비가 주된 특징이다. 이를 반영해 DSM-5에서는 전환 장애를 기능성 신경 증상 장애(functional neurological symptom disorder)라고도 한다. 여성들에게서 주로 나타나 한때 자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히스테리(hysteria)라고 불렸던 이 장애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계기였다.
혹시 이들이 거짓으로 증상을 만들어 꾀병(maligering)을 부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마비된 사지는 아주 강하게 자극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꾀병도 아니고, 아픔을 참는 것도 아니다. 2007년 6월 8일, MBC 라디오 <두시의 데이트>에서 한 청취자가 DJ에게 보낸 문자 사연이 소개되었다.
오빠, 119구급차 타보셨어요? 지난 밤 헤어진 남자 친구한테 다시 만나달라고 징징대다가 갑자기 다리에 마비가 와서 119구급차에 실려갔어요. 부끄럽습니다.
전환 장애는 개인의 욕구와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프로이트 시대에 이 증상이 많았던 이유도, 그리고 우리나라에 아직도 많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라디오로 문자를 보낸 청취자가 헤어진 남자 친구에게 징징대지 않고 당당하게 다시 만나달라고 요구했거나, 혹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확히 표현했더라면 다리가 마비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건강염려증(hypochondriasis)이라고도 하는 질병 불안 장애는 자신의 신체 증상이나 기능을 잘못 해석해 심각한 질병에 걸렸다는 두려움이나 생각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요즘처럼 건강과 질병에 대한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건강상태에 관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관심은 때로는 도를 넘어서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체크하고 진단과 처방까지 내리게 하고, 온갖 건강보조식품을 섭취하므로 자신의 질병을 스스로 다스리려 한다. 사실 이 정도의 반응은 요즘 기준으로는 평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질병 불안 장애인 경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병명을 확인받기 위해 의사를 찾아간다. 의사가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해도 믿지 않으며 자신의 진단명을 확인받기 위해 소위 닥터 쇼핑(doctor shopping)을 한다. 이들은 구체적인 진단명을 가지고 의사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의 진단을 입증해 줄 많은 증거와 증상을 의사에게 하나씩 설명해야 직성이 풀린다.
이 진단을 받기 위해서는 이러한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일시적인 건강이나 질병에 대한 걱정이라면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이다. 질병 불안 장애는 신체 증상 장애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질병 불안 장애가 질병 자체에 대한 집착이라면 신체 증상 장애는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것이 주된 특징이다. 또한 유의미한 증상이 존재한다면 신체 증상 장애이고, 신체 증상이 존재하지 않거나 미약한 강도라면 질병 불안 장애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허위성 장애는 환자의 역할을 하기 위해 신체적이거나 심리적인 증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꾀병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꾀병과 허위성 장애를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꾀병의 경우 분명한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경제적 보상이나 심리적 위로를 기대하는 것, 법적인 책임을 회피하는 것, 학교에 결석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허위성 장애는 현실적인 이득이나 목적이 없다. 단지 환자 역할을 하려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상의 장애는 신체 증상을 호소하기 때문에 먼저 의학적 검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의학적 검사 없이 정신 장애(이상심리학 참조)라고 진단해서는 안 된다. 환자 본인도 수긍하지 못할 뿐더러 실제로 마음이 아니라 몸이 아플 수 있기 때문이다. 검사 결과 몸에 이상이 없을 때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