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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3일 마산~진주 경전선 복선화 공사가 완공 후 100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추억 속으로 사라진 진주시 강남동에 위치한 옛 진주역.
새 역사로 역이 옮겨간 뒤 벌겋게 녹이 슬어 있는 철로.
기관차의 방향을 전환시키는 장치인 전차대.
진주역이 처음 생길 때 만들어진 차량정비고.
더 이상 승객이 들어오지 않는 텅빈 승강장. 기차는 그리움이다, 기차는 기다림이다. 기차는 추억이다. 기차는 여행용 가방이다. 기차는 일렬로 늘어선 측백나무다. 기차는 흰 구름이다. 기차는 기적소리다. 기차는 산모롱이다. 기차는 12월 31일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떠나보내고 떠나온 것이 어디 한둘이랴. 연일 차고 매서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외출이 귀찮아 계속 이부자리 속에서 꼼지락거리고 있다. 오늘은 진주역에 위치하고 있는 근대문화유산 202호 ‘차량정비고’엘 가 볼 참이다. 그런데 움직이기가 싫다. 엎치락뒤치락 반복해서 하리스 알렉시우의 목소리로 그리스의 반체제 작곡가 테오토라스키의 곡 ‘기차는 여덟시에 떠나네’를 듣다가 노래의 잔영을 안고 나는 저녁나절이 다 되어서야 진주역으로 간다.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가슴속에 이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이제 더 이상 기차가 들어오지 않는 진주역은 쓸쓸하다. 찬바람 한 줄기가 진주역 외벽을 훑고 지나간다. 춥다. 10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진주역은 새 역사로 옮겨져 갔다. 진주역 앞 역전식당도, 역전슈퍼마켓도, 그리고 꾀죄죄한 가영여인숙도 다 찾는 이가 없어 볼품이 없다. 기차 도착시간에 맞춰 승객을 기다리던 택시들도 이제 더 이상 보이지 않고, 휴대폰을 얼굴에다 대고 어딘가로 계속해서 전화질을 해대던 젊은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무심한 표정으로 기차표를 쥐고, 마산으로 갈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하동으로 갈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굳게 닫혀 있는 진주역 앞에서 나는 잠시 난감해 한다. 아무리 흔들어 봐도 굳게 잠겨있는 문은 꼼짝을 않는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던 나는 역 건물 왼편에 커다란 입구가 하나 있음을 발견한다. 갑자기 마음이 환해진다. 멀리 망진산 너머 진양호 쪽으로 석양이 지고 있다. 기차가 들어오지 않는 플랫폼, 히말라야시다 속에 박혀 있던 작은 새 몇 마리가 후두둑 날아간다. 저 무심한 것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가 짹짹거리고 있다. 그 많던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은행나무는 헐벗어 나목이다. 삼십 년 전 이맘때쯤 나는 이 플랫폼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밤새 밤기차를 타고 목포엘 갔었다. 하동을 지나, 순천을 지나, 캄캄한 전라도 땅을 달려, 먼먼 서쪽 항구도시 목포엘 갔었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서정춘 ‘죽편1’ 전문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가며 그때 우리는 무슨 얘기를 했던가? 무엇을 얘기하며 웃고 떠들고 즐거웠던가? 이제 그 기억들은 다 사라지고 없지만 아침 유달산에 올라 바라보던 해는 아직도 또렷이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가도 가도 캄캄했던 전라도 길, ‘밤에, 전라선 열차를 타보지 않은 者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마라’고 한 이는 안도현이다. 그때 그 무렵 우리는 얼마나 기차를 좋아하고 시를 좋아했던가!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후략- 그 시절엔 웬만한 이라면 이 시 ‘사평역에서’(곽재구)를 줄줄이 외웠다. 그리고 이 한 편의 시 때문에 기차를 탔고, 연인을 만났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낡고 낡은 역 앞 여인숙에서 우리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없는 플랫폼에서 나는 잠시 허탈해 한다. 서울 가는 KTX가 들어오고 새 역사로 역이 옮겨간 지 이제 겨우 두 달, 철로는 이미 벌겋게 녹이 슬어 있다. 카메라를 메고 이리저리 철길 위를 걸어 다녀도 누구 하나 저지하는 사람이 없다. ‘새마을호는 아주 빨리 온다/ 무궁화호도 빨리 온다/ 통일호는 늦게 온다/ 비둘기호는 더 늦게 온다/ 새마을호 무궁화호는 호화 도시역에만 선다/ 통일호 비둘기호는 없는 사람만 탄다’고 빠른 것과 느린 것,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성토한 백무산 시인의 시도 이제는 옛말. 오늘날의 기차는 오로지 속도만이 중요이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맹목만이 중요할 뿐이다. 저기 빨간 벽돌건물이 보인다. 멋지다. 나는 이제 쓸모가 완전히 없어진 ‘차량정비고’를 향해 걸어간다. 두 개의 아치형 입구가 참 이국적이다. 짧은 겨울 석양이 저 아치형 입구로 드리워진다. 맞아, 이거다. 이걸 보고 싶었다. 빨간 벽돌건물과 아치형 입구와 짧은 겨울 석양의 그림자! 100년 진주역 역사와 함께한 ‘차량정비고’는 2005년 9월 14일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202호’로 지정됐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팽개쳐진 듯 내버려져 있다. 진주시민들 대부분이 새로 생긴 아파트와 백화점과 음식점은 잘 알면서 이 차량정비고는 모른다. 나는 기차를 수리하느라 시끌벅적했을 당시를 떠올려본다. 언제일지는 몰라도 이 건물을 경상대학교로 옮겨 보전할 거라고 한다. 그런데 어딘가 미심쩍고 탐탁지가 않다. 그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공연장을 하든지, 전시장을 하든지, 향토박물관을 하든지, 하여간 현 위치에서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할 것 같다. 차량정비고 외벽엔 여기저기 총탄자국이 있다. 6·25전쟁 때의 상흔이라고 한다. 그렇다. 여기 이 자리, 이곳에서만 상처도 상처이고 추억도 추억이다. 이 건물은 옮겨지면 안 된다. 옮겨지면 이제 더 이상 추억이 아니고 기억이 아니고 예전의 그것이 아니다. 차량정비고 앞 전차대(기관차의 방향을 바꾸는 시설)도 마찬가지다. 이것 역시 반드시 지켜내야 할 유산, 진주역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신기한 보물이다. 전차대는 종착역이나 차량기지에 주로 설치되어 있던 것으로 기관차(특히 디젤기관차)의 방향을 180도 전환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이다. 천양희 시인은 ‘기차를 기다려보니 알겠다/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긴 길인지’라고 했다. 바꾸지 말고, 옮기지 말고, 기다려보면 어떨까. 우리들의 추억이 스며 있는 곳, 진주역은 사라지면 안 되니까. 나는 아직도 허름한 옷들을 입고 완행열차를 기다리던 촌로들을 잊지 못한다. 속도와 목적을 향한 맹목만으로 우리네 인생이 달려간다면 그건 너무 무시무시하고 무섭다. 나는 진주역 어딘가에 꽃망울을 매달고 있을 동백나무를 찾아 두리번거려 본다. 추억이란 본래 쓸쓸하고 허전하고 허망하고 그래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봄이 오면 다시 경전선을 타고 순천엘 가고 여수엘 가 보아야겠다. /글·사진=유홍준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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