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랴 여행2 - 안탈랴 구시가지 칼레이치에서 시계탑을 지나 호텔을 찾아가다!
5월 27일 지중해안의 휴양도시 시데 Side 에서 10시에 호텔을 나와 배낭을 메고는
원형극장과 아고라를 보고는 대로를 걸어 20분 거리인 교외에 오토가르에
도착해서는 11시 돌무쉬를 타고 10여분을 달려 마나브가트 시내에 도착해 내립니다.
도로를 건너니 정류소가 있어 오토가르까지 가는 불편을 들수있어 좋은데 지역을 운행하는
중형 버스인 “마나브가트 Manavgat" 회사 버스 를 타고 아스펜도스 Aspendos 와
악수 Aksu( 페르제 Perge) 를 거쳐 13시에 안탈랴 오토가르 Antalya Otogar 에 도착합니다.
건물내의 매점 Bufe 에서 20리라에 교통카드 하나를 구입해서는 둘이서 타니 두번 찍는데
한번에 2.1 리라씩 빠져나가는데 50분을 달려서 구시가지 칼레이치 Kaleici 에 도착합니다.
칼레이치 Kaleici 에 내려서 보니 공화국 광장 이라고 불리는 크고 넓은
광장인데 말을 탄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의 동상 이 서 있으며
여긴 언덕이라 붉은 지붕을 가진 집들이 내려다 보이는게 경치도 훌륭합니다.
오스만 투르크 는 1,453년 비잔틴(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피노플을 함락한 이래 유고와
헝가리를 삼키고 빈을 포위하며 아프리카에 이르는 거대한 영토는 유럽을 위협하는
존재였으나 노제국은 쇠약해져 그리스가 독립하고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영토가 줄어듭니다.
군인을 동경한 케말 은 군사중등학교에 입학하는데 사관생도 시절 반체제 신문을 발행하다
징계를 받고 임관한 후에는 조국과 자유를 뜻하는 “바탄 베 휘리예트”라는 청년장교
비밀조직에 가담했으며 청년투르크 당 은 이스탄불로 진격해 메메드를 술탄 자리에 앉힙니다.
1차세계대전시 터키는 독일측에 가담하니 처칠 은 이스탄불을 점령하기 위해 다르다넬스
해협 돌파작전을 세우니 케말은 제19사단을 지휘해 다르다넬스 해협의 겔리볼루 반도로
진격했는데 영국과 프랑스 해군의 함포사격에 이어 호주, 뉴질랜드등 연합군이 상륙합니다.
1915년 4월 상륙전에서 터키군이 설치한 기뢰 가 위력을 발휘했는데 처칠은 강공을
주장했으니 군함 함포의 일제 사격이 끝나면 육군이 돌격하는데 육군과 해군의
시계가 서로 달라 포연이 사라진후에 육군이 뒤늦게 공격하다 보니 손실이 컸습니다.
4월 25일 해밀턴이 이끄는 연합군 7만 명이 겔리볼루 상륙 을 강행하자 케말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말라! 진격을 바라지는 않는다. 오직 그 자리를 지켜달라!!!
전우를 위해 장렬히 싸우다 죽는 길을 택해달라.”라고 독려합니다.
연합군은 10월까지 6개월간 무차별 공격을 가하며 돌파를 시도했으나 결국 25만 명이 넘는
사상자를 내고 부득불 퇴각하니 양쪽 합쳐 50만명이 이 전투에서 죽은 것인데
하지만 케말은 세계 최강 영국군을 물리쳐 풍전등화의 투르크를 위기에서 구했습니다!
케말은 여세를 몰아 러시아와의 전투에서도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패하는 바람에 1918년 10월 투르크의 술탄은 항복 을 선언합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영토는 갈가리 찓기게 되어 1919년 5월 동쪽에서는 아르메니아,
서쪽에서는 그리스가 침공을 준비하자 케말 파샤는 흑해 북부 삼순에 상륙 합니다.
1920년 8월 세브르조약 으로 투르크 영토는 이스탄불 일대와 아나톨리아 반도로 축소되었으며
연합국은 아나톨리아 까지 차지하려는 욕심을 감추지 않자 케말은 에르주름을 거쳐
시바스에서 독립을 결의하고 앙카라에 수도를 정하자 이스탄불의 술탄은 그를 파문합니다.
하지만 케말은“대그리스” 부활을 외치며 이즈미르에 상륙하여 내륙으로 진공하던
그리스군을 앙카라 서쪽에서 격파 하고 이어 술탄의 정부군과 영국, 프랑스등과
4년간의 전투 끝에 마침내 1,923년 7월에 독립에 성공해 터키 공화국 을 창건합니다.
이교도에 맞서 이슬람교를 수호한 영웅에게 주어지는 “가지”라는 칭호가 덧붙여지는데
그는 정치와 이슬람 종교의 분리 를 선언하니 술탄은 칼리프만 유지해 종교적
권한만 갖도록 하고 인민당을 조직해 앙카라를 새 수도로 삼고 대통령에 올랐던 것입니다.
돌궐족의 후신인 투르크 는 원제국을 건설한 몽골족이나 한반도의 고조선과 삼국 처럼
이름만 있고 성은 없었으므로 모든 국민이 성을 갖는 운동을 전개했으니 1934년
케말 자신도 처음으로 성을 가지는데 터키의 아버지 라는 뜻의 “아타튀르크”입니다.
거리를 둘러보고 아고다에서 출력한 호텔 지도를 보며 시계탑 (칼레카프스 : 성문)
을 지나 골목으로 들어가서는 인터넷에서 예약한 호텔인
Otel Twenty : Tuzcular Mh. Imaret SK No:9 Kaleici 를 찾습니다.
건물 3층으로 올라가서는 리셉션에서 바우처 를 내보이는데 할아버지는 한참 동안이나
장부에서 우리 이름을 찾지 못하고 헤메니.... 아들이 대신 나서서 살펴봅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묻는 말이 “당신 3월 27일에 여기 왔느냐" 라네요???
아니 오늘이 5월 27일 인데 두달전에 내가 이 호텔에 올일이 무엇이겟습니까?
두달 전이면 한국에 있을때인데 무슨 말같은 소리를 해야지..... 그러면서 문득
두달전에 이메일 한통 을 받았던게 떠올라 불안해 집니다.
남자는 우리 바우처를 돌려주며 거기 날자를 확인하라고 하는데 아니???
숙박일자가 체크인이 3월 27일 이고 체크아웃은 3월 29일로 적혀있네요? 멍~~~~
그러니까 3월 25일에 인터넷 아고다에서 호텔을 예약할 때 날자가 보통 이틀후인 3월 27일로
자동으로 나오니 그걸 수정해서 예약하는데 바로 하면 절대로 에러가 생길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예약하지 않고 이 호텔, 저 호텔 또는 아고다외에 부킹콤 등 다른 사이트를
두루 살피다가 최종적으로 아고다에서 이 호텔을 선택하면서 그 동안 페이지가
몇 번 바뀌다 보니 다시 3월 27일로 나오는데 그걸 미처 수정하지 못한 것입니다?
나도 참 어처구니가 없고 한심한 생각에 그만 넋이 나가니.....
남자는 “노 프러블럼 No Problem" 을 외치며 우릴 안심을 시킵니다.
여긴 아침 포함해 2인에 더불룸이 하루 30유로 이틀이면 60유로(186 리라) 이니
한화로 7만 5천원 정도인데..... 돈도 받지 않고 그냥 방을 내줍니다?
하지만 아직도 조금 미심쩍기는 하지만.... 푼돈에도 상심하기 일쑤인 마눌인지라 일부러
우린 참 운이 좋아, 그냥 공짜로 방을 주나 보다 라고 너스레를 떨려 마눌을 안심시킵니다!
그래도 마눌은 “무슨 공짜?” 옛날에 예약했으니 이미 방값은 지불한 것이니
당연한데 공짜라고 좋아한다며 흉을 보는데, 이틀후 뒷통수를 맞을 줄이야....
그건 나중 일이고...... 여기 5층의 우리 방에서 창밖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데
사원과 붉은 지붕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는 “환상” 그 자체입니다.
그동안 여러나라로 무수히 여행을 다녔지만 싸구려 호텔만 돌아다닌지라....
호텔 방안에서 이런 기막힌 경치 를 보게될 줄이야!!!
그리고 방이며 호텔 복도에는 유화 그림 이며 터키 여러 관광지 사진 들이 많이
걸려 있어서 찬찬히 구경하는 것은 또 하나의 보너스 라고나 할까요?
호텔 방에서 간단하게 샤워만 하고는 호텔을 나와 여행전에 작성한 여행계획서 하루치 와
여행 가이드북서 오려낸 한글지도 를 들고는 시내관광을 위해 호텔을 나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