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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比스님이 읽어주시는 화엄경(2021.5.10.PM2시)
현수품(賢首品)
현수보살이 게송으로 대답하다
오늘도 화엄경 한단락 공부하겠다.
공부할 때 몇 페이지 공부하는지 알려달라고 요청이 왔다. 오늘은 화엄경 강설 15권 페이지 수로는 52페이지 [희(喜)의 광명] 중간단락부터 공부할 차례다.
15권 52쪽 [희(喜)의 광명]
[희(喜)의 광명]
우방광명명낙법(又放光明名樂法)이니 차광능각일체중(此光能覺一切衆)하야
영어정법상흔락(令於正法常欣樂)하야 청문연설급서사(聽聞演說及書寫)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낙법(樂法)’이라
이 광명이 능히 일체중생을 깨우쳐서
바른 법을 항상 기뻐하고 즐겨서
듣고 연설하고 베껴 쓰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낙법(樂法)’이라
이 광명이 능히 일체중생을 깨우쳐서
즐거울 낙(樂)자 법 법(法)자 법을 즐기고 좋아한다는 뜻이다.
바른 법을 항상 기뻐하고 즐겨서
듣고 연설하고 베껴 쓰게 하나니라
제가 예습하면서 별 표를 해 놓았다.
대승경전에는 으레 수지 독 송 서사 해설 그런 내용이 있다. 수지(受持) 독(讀) 송(誦) 서사(書寫) 해설(解說) 첫째 지니고 다닌다. 경전은 법이니까 지니고 다닌다. 책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다. 그다음에 읽는다. 읽다보면 외우고 사경을 하고, 능력이 되면 그것을 또 한 구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 준다.
바른 법을 항상 기뻐하고 즐겨해서 듣고 연설하고 베껴 쓰게 한다. ‘내가 실천도 못하는데 뭘 이것을 남에게 설명하고 권하겠는가’라고 하지만 좋아하다 보면 당장에 실천이 따르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좋은 것이 있다’ 라고 소개할 수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큰 공덕이 된다. 그것도 일종의 법사다. 5종 법사라고 해서 남에게 권하는 것, 스스로 읽고, 외우고, 사경하는 것, 이것이 큰 공덕이 되고 법사가 된다.
제가 사경책을 많이 내지 않는가?
사경책을 많이 내고 조현춘 거사님하고는 읽기 좋은 <가사체 금강경> <가사체 반야심경> <가사체 염불책> 이런 것들도 여러 권 내고 있다. 그런 것들이 다 경전을 쉽게 읽도록 하고 베껴 쓰기 좋도록 하는 것이다. 쓰다 보면 공부가 깊어진다. 또 야무지게 공부하게 된다. 한 구절을 그냥 읽는 것하고 쓰면서 생각하는 것하고 차이가 많이 난다.
법욕진시능연설(法欲盡時能演說)하야 영구법자의충만(令求法者意充滿)하야
어법애락근수행(於法愛樂勤修行)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법이 다하고자 할 때 능히 연설하여
법을 구하는 자로 하여금 뜻에 만족하게 하며
법을 사랑하고 즐기며 부지런히 수행하게 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법이 다하고자 할 때 능히 연설하여
지금은 부처님 열반하신 지 2600년 2700년에 가까운데 불교가 일반적으로는 널리 알려지기는 했지만 정법은 오히려 줄어드는 현상이 있다. 자기 편할 대로 불교라고 하는 간판을 걸고 불교를 이야기 하지, 정말 순수불교, 부처님 뜻에 맞는 깨달은 사람들의 마음에 딱 맞는 불교를 널리 펴는 일은 어딘가 많이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법이 다하고자 할 때 정법을 능히 연설해서 잘 설명해서 법을 구하는 자로 하여금 뜻에 만족하게 한다.
‘진정 깨달은 사람들의 가르침은 어떤 것일까? 정말 깨달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가르침은 어떤 것일까?’ 이런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또 적지 않다.
불교라고 하는 이름으로 주의주장이 너무 많고 여러 가지고 들어보면 그런대로 일리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또 그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초보자들은 헷갈린다. 그런 것들을 자기 안목으로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까지는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자꾸 공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자기 판단력이 생긴다. ‘아 이것이 이치에 맞구나. 이것은 부처님이 설명하지 아니했더라도, 경전에서 설명하지 아니했다 하더라도 맞는 이치다’ 이런 정도로 주관이 확립되어 진다. 그런 상태까지 이르러야 된다.
법을 사랑하고 즐기며 부지런히 수행하게 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다
낙법이라고 하는 광명, 즐길 낙(樂)자, 법 법(法)자 법을 즐긴다. 우리는 법을 좋아하고 법을 즐겨야 된다.
부처님 진리의 가르침을 즐겨야 된다. 그것을 즐기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 설사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내세우고 탐진치 삼독을 좀 행사하더라도, 앉아서 공부하는 동안만은 심취하고 ‘아 참 법이 좋다’ 그렇게 해야 된다.
그것이 차츰차츰 번져나면, 일어나서 설사 이해관계를 가지고 다투는 일이 있더라도, 거기에 법을 좋아하는 사람의 어떤 심성이 또 먹혀든다. 그러면 큰 효과를 본다.
우방광명명묘음(又放光明名妙音)이니 차광개오제보살(此光開悟諸菩薩)하야
능령삼계소유성(能令三界所有聲)으로 문자개시여래음(聞者皆是如來音)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묘음(妙音)’이라
이 광명이 모든 보살을 열어 깨우쳐서
능히 삼계에 있는 소리로 하여금
듣는 자가 다 이 여래의 음성이 되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묘음(妙音)’이라
묘할 묘(妙)자 소리 음(音)자 묘음
이 광명이 모든 보살을 열어 깨우쳐서
능히 삼계에 있는 소리로 하여금
듣는 자가 다 여래의 음성이 되게 하나니라
좋은 내용이다. 묘음이라고 하는 광명을 놓았는데 이 광명이 모든 보살을 열어 깨우친다.
어떻게 깨우치느냐?
삼계에 있는 모든 소리로 하여금 듣는 자가 다 여래의 음성이 되게 한다,
그 아래 해설에 소동파의 설법 이야기가 나와 있다.
“시냇물 소리는 부처님의 광장설법이요, 산색은 부처님의 청정법신이라. 밤이 되니 8만 4천 게송이나 되는 것을 다른 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이해시키겠는가”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
야래팔만사천게(夜來八萬四千偈)
타일여하거사인(他日如何擧似人)
이쯤에서 이런 게송을 우리가 한 번 같이 읽는 것도 좋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화엄경 좋다. 금강경 좋고, 법화경 좋고, 유마경 좋고, 다 좋다.
그런데 한 차원 달리해서 경전에 기록되어 있는 이 부처님 말씀 말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부처님의 법문 소리다. ‘일체세간 모든 사물 이것이 그대로 부처님의 법문이다’ 그렇게 깨달아 들어가면 그것은 또 차원이 다른 세계다. 결국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
이대음성칭찬불(以大音聲稱讚佛)하며 급시영탁제음악(及施鈴鐸諸音樂)하야
보사세간문불음(普使世間聞佛音)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큰 음성으로 부처님을 칭찬하며
요령이나 목탁 등 모든 음악을 보시하여
널리 세간으로 하여금 부처님 음성을 듣게 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큰 음성으로 부처님을 칭찬하며
요령이나 목탁 등 모든 음악을 보시하여
널리 세간으로 하여금 부처님 음성을 듣게 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부처님 음성이 무엇이겠는가? 경전소리다. 근래 저도 유튜브로 실시간 방송을 하고 있지만, 유튜브 방송에 보면 참 좋은 염불소리가 많다. 특히 제가 즐겨듣는 유튜브에 올라있는 염불소리는 영인스님이 염불하는 <화엄성중> 그것을 제일 많이 듣는다. 자나깨나 틀어놓고 잠들고 그것을 틀어놓고 잠에서 깨고 ‘화엄성중 화엄성중’ 저는 염불을 잘못해서 염불소리 잘 내는 스님들 소리를 들으면 ‘아 저 스님은 전생부터 염불 많이 한 스님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그정도로 염불소리 좋은 것을 좋아한다.
그 화엄성중 염불하고 또 최근에 금강스님이라고 남원의 아주 깔끔하게 잘 정돈이 되어있는 사찰에서 금강스님이, 그 스님은 비구니스님의 염불강사이기도 한데, 공식적인 강사이기도 한 아주 훌륭한 염불을 하는 금강스님이 하는 <금강경 독송>을 자주 듣는다. 금강스님의 금강경 독송소리가 그렇게 초성이 좋고 청아하고 ‘천생 염불하신 스님이구나’ 하는 것을 그냥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참 잘한다. 그 금강경을 제가 늘 틀어놓고 잘 듣는다. 타고 나기를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은 자기 소질과 재능을 한껏 살려서 그렇게 유튜브에 올려놓으니까 많은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다.
요령이나 목탁 등 모든 음악을 보시하여
했는데 그 스님들 독경하는 소리, 염불하는 소리 그대로 보시를 많이 한다. 그래서
널리 세간으로 하여금 부처님 음성을 듣게 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그런 사람들은 바로 묘음(妙音) 아름다울 묘(妙)자 소리 음(音)자 묘음이라고 하는 광명을 놓는다.
그것보다 더 확실한 광명이 어디 있는가?
금강경을 잘 읽는다든지 아니면 화엄성중을 몇날며칠 들어도 싫증이 안나게 염불하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그 스님들 염불소리는 그렇다. 그야말로 묘음이다.
[사(捨)의 광명]
우방광명시감로(又放光明施甘露)니 차광개오일체중(此光開悟一切衆)하야
영사일체방일행(令捨一切放逸行)하고 구족수습제공덕(具足修習諸功德)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시감로(施甘露)’라
이 광명이 일체 중생을 열어 깨우쳐서
일체의 방일(放逸)한 행을 버리고
모든 공덕을 구족히 닦아 익히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시감로(施甘露)’라
감로법을 베푼다는 뜻이다. 감로법은 죽음이 없는, 생멸을 떠난 이치다. 그러한 도리를 법문으로 베풀다 하는 것이 시감로다.
이 광명이 일체중생을 열어 깨우쳐서
일체의 방일(放逸)한 행을 버리고
모든 공덕을 구족히 닦아 익히게 하나니라
좋은 법, 감로법을 보시하면 중생들이 깨우침을 얻게 되고 방일하려고 하려다가도 또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염불 한 자리라도 더 듣게 되고, 경전 한 구절이라도 더 듣게 된다.
우리 생명이 지금은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누가 보장해 주는가? 부처님도 보장을 못하는 상황이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 세상사고 인생사다.
그래서 제행무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의식이 초롱초롱할 때 염불소리 한마디라도 더 하고 더 듣고 이 훌륭한 화엄경 공부도 한 구절이라도 더 하고 화엄경 읽어주는 이런 이치를 한 구절이라도 더 듣고, 들었던 것 또 듣고, 들었던 것 또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 유튜브에 제가 금요법회에서 신도들에게 강의한 것도 올리고, 스님들에게 강의한 것도 올리고, 이렇게 실시간 방송으로 하지만 그 외 매일 한 꼭지씩 신도님들에게 한 것, 스님들에게 한 것을 다 올리는 것이 그런 뜻이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소중한 법이고 정말 아까운 법이고 가치 있는 법이다. 이 좋은 기술을 개발해서 보시한 사람들이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이 좋은 기술을 활용해서 이렇게 법문을 듣게 해야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것을 열심히 들으셔야 된다. 열심히 듣고 거기서 듣다 보면 또 깨우치는 것이 있고, 어느새 내가 달라져 있고, 나의 복력도 자꾸 성장을 하게 된다.
일체의 방일(放逸)한 행을 버리고
모든 공덕을 구족히 닦아 익히게 하나니라
부처님 법은 그냥 ‘한 구절 듣는 것이 무슨 영험이 있으려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결코 헛 것이 아니다.
만반장불거(萬般將不去)요 유유업수신(唯有業隨身)이라
우리가 죽을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오직 내가 닦은 업만 가져간다. 선업이 됐든 악업이 됐든 업만 가져간다. 이왕이면 선업을 많이 닦고 선업을 가져가야 한다.
선업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뭔가? 바로 이 화엄경 한 구절이라도 더 읽고 더 쓰고 더 사유하고 그것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으면 더 좋은 일이다. 그런 업만 따라간다.
설유위법비안은(說有爲法非安隱)이라 무량고뇌실충변(無量苦惱悉充徧)하고
항락칭양적멸락(恒樂稱揚寂滅樂)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유위법(有爲法)은 안은(安隱)이 아니라
한량없는 고뇌가 모두 충만하다 말하고
적멸락(寂滅樂)을 항상 즐겁게 일컬어 드날릴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유위법(有爲法)은 안은(安隱)이 아니라
유위법은 안은이 아니다. 편안한 것이 아니다.
한량없는 고뇌가 모두 충만하다 말하고
고뇌가 모두 충만하다 말하고
적멸락(寂滅樂)을 항상 즐겁게 일컬어 드날릴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편안하다는 광명, 유위법은 편안한 것이 아니다. 허망한 법이고 세상법이기 때문이다. ‘유위법은 세상법이다’ 이렇게 알면 된다. 우리의 망상으로 지어내는 모든 일들이 유위법이다. 그것은 편안한 것이 아니다.
한량없는 고뇌가 모두 충만하다고 했다.
저절로 떠오르는 것이긴 하다. 자녀들 일, 사업에 대한 일, 온갖 이해관계, 남 잘잘못한 것에 대한 생각, 이런 것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우리 수행하는 불자들, 화엄학인들은 세상사에 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이 뭐라고 하든지 국회의원이라든지 장관들이 정책을 어떻게 하든지 우리가 한 두 번 경험한 것인가? 일 이십 번 경험한 것도 아니고 일 이백 번 경험한 것도 아니다. 60, 70 이라는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수백 번 수천 번 경험한 일이다.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들이 뉴스에 떠오르는데 그것은 답이 없다. 그냥 그 순간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덕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쫓아가다 보면 한량없는 고뇌가 모두 충만하다. 세상법은 고통만 가득 찬 것이다. 그렇게 알아야 된다.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도 없다.
내가 해결할 수 있으면 고민도 하고, 시시비비하고 말도 할 것이다. 절대 내 한마디가 조금도 먹혀들지 않는다.
적멸락(寂滅樂)을 항상 즐겁게 일컬어 드날릴새
적멸락이 무엇인가? 불법의 낙이고 이 화엄경의 낙이다.
화엄경을 읽다 보면 그런 세상사는 떠올랐다가도 조용히 가라앉지 않는가? 잠잠해진다.
우리 마음을 그렇게 다스리는 것이다.
그 길 밖에 답이 없다.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현수품은 전편이 시형식으로 되어있고 훌륭한 내용이다.
ㅇ. 한 광명이 삼학(三學)을 나타내다
삼학은 계(戒) 정(定) 혜(慧) 불교 공부의 기본이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가 여기 나온다.
우방광명명최승(又放光明名最勝)이니 차광개오일체중(此光開悟一切衆)하야
영어불소보청문(令於佛所普聽聞) 계정지혜증상법(戒定智慧增上法)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최승(最勝)’이라
이 광명이 일체 중생을 열어 깨우쳐서
부처님 계신 곳에서
계와 정과 혜의 높은 법을 널리 듣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최승(最勝)’이라
가장 수승한 광명이다.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이 불법의 광명 가운데는 가장 수승한 광명이다 이렇게 해놓았다. 물론 다른 주장도 있을 수가 있지만 이것 또한 아주 훌륭한 답이다.
이 광명이 일체 중생을 열어 깨우쳐서
부처님 계신 곳에서
계와 정과 혜의 높은 법을 널리 듣게 하나니라
계정혜 삼학이 나오기 때문에 ‘한 광명이 삼학(三學)을 나타내다’ 그래서 그 광명 이름이 ‘가장 수승하다’ 그렇게 표현했다.
아침 저녁으로 부처님께 예배를 드릴 때도 맨 처음에 계향 정향 혜향 이 세 가지 삼학의 향기인데 이것은 상징적이다. 부처님 앞에 향을 꽂으면서 코로 맞는 향기이기는 하지만 그 의미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계의 향기요, 선정의 향기요, 지혜의 향기라는 것이다.
주변에 좋지 아니한 냄새가 날 때 향을 사르면 그 냄새가 다 사라진다. 그 향기에 모두 물러간다. 그와 같이 우리 인생사는 늘 탐진치 삼독이라고 하는 독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에 그 독기를 어떻게 해서 잠재울 것인가? 계향 정향 혜향으로 잠재운다.
계(戒) 정(定) 혜(慧) 삼학(三學)의 향기를 피움으로 해서 탐진치 세 가지 독한 기운, 독기를 잠재울 수가 있고, 그것을 물리칠 수가 있다는 뜻이다. 이치가 너무 잘 되어 있다.
그 삼학을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한다면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이라고 해서 계(戒) 정(定) 혜(慧)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으로 나아간다. 계정혜 삼학을 통해서 해탈을 성취하고, 내가 해탈을 성취했으면 다른 사람도 해탈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해탈지견향이다.
그것을 우리가 예불할 때 염불로 읊조린다.
우리 불교적인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계(戒) 정(定) 혜(慧)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이 다섯가지다. 그것을 늘 잊지 말고 실천하도록 하라는 뜻에서 예불이 그렇게 되어있다.
상락칭양일체불(常樂稱揚一切佛) 승계승정수승혜(勝戒勝定殊勝慧)하야
여시위구무상도(如是爲求無上道)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항상 즐겨 일체 부처님과
수승한 계와 수승한 정과 수승한 혜를 일컬어 드날려서
이와 같이 위없는 도를 구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최승(最勝) 가장 수승하다고 하는 광명이다.
불법은 우리 삶에 광명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광명이라는 말을 쓰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수승한 광명이 무엇인가? 계정혜 삼학의 광명이다.
최승광명 가장 수승한 광명이다.
항상 즐겨 일체 부처님과
수승한 계와 수승한 정과 수승한 혜를 일컬어 드날려서
이와 같이 위없는 도를 구할새
여기 아주 못을 박아 놓았다. 가장 높은 도다.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최승(最勝)이라고 하는 광명을 얻었다.
ㅈ. 여덟 광명이 만행(萬行)과 공양을 나타내다
우방광명명보엄(又放光明名寶嚴)이니 차광능각일체중(此光能覺一切衆)하야
영득보장무궁진(令得寶藏無窮盡)하야 이차공양제여래(以此供養諸如來)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보엄(寶嚴)’이라
이 광명이 능히 일체 중생을 깨우쳐서
다함이 없는 보배창고를 얻어서
이것으로써 모든 여래께 공양하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보엄(寶嚴)’이라
보배 보(寶)자 장엄할 엄(嚴)자 보엄(寶嚴) 이름 좋다.
이 광명이 능히 일체 중생을 깨우쳐서
다함이 없는 보배창고를 얻어서
이것으로써 모든 여래께 공양하게 하나니라
이제종종상묘보(以諸種種上妙寶)로 봉시어불급불탑(奉施於佛及佛塔)하며
역이혜시제빈핍(亦以惠施諸貧乏)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모든 갖가지 최상의 묘한 보배로써
부처님과 불탑에 받들어 보시하며
또한 모든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게 보시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좋은 내용이다.
모든 갖가지 최상의 묘한 보배로써
부처님과 불탑에 받들어 보시하며
며칠 안있으면 4월 초파일이 돌아온다. 우리는 기껏해야 향을 올리고 음식을 올리고 돈을 올리고 등을 올린다.
특히 지혜의 상징인 등을 켜고 부처님과 불탑에 보시한다.
그런데 우리 문수선원에서는 등을 다는 데 그 이름이 ‘법공양등’ 이다.
법공양등, 단순하게 부처님께만 올려서 복을 받자는 것이 아니고 바로 법공양,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법공양을 의미하는 등이다. 문수선원에서는 ‘법공양 운동’이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제가 운동이라고 한다. 법공양 운동, 그래서 법공양실을 마련해 놓고 거기다 법공양할 만한 좋은 책들을 잔뜩 찍어놓고, 스님들이 한 차씩 싣고 가고, 한 걸망씩 가져가고, 택배로 부쳐주고 하면서 법공양 운동을 한 지가 벌써 여러 해다.
맨 처음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인데 그 해 내가 범어사에 왔는데 봄이었다. 와보니까 이 큰 절에서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는데 아무것도 베푸는 것이 없었다. 아무 것도 주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안타까왔다. 소임 보는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서 허락을 얻고 ‘내가 이러이러한 법공양을 하겠다’ 해서 A4 용지에 부처님 법문을 한 페이지씩 찍어서 일주문에 쌓아놓고 법공양을 하는 운동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법공양을 한다.
초파일 등을 다는 것도 이것은 법공양을 위한 등이다. ‘법공양 하는 등이라서 최고 비싼등이고 최고급등이고 부처님 뜻에 잘 맞는 등이다’ 라고 저는 자부심을 갖고 그렇게 이름을 지어서 한다.
모든 갖가지 최상의 묘한 보배로써
부처님과 불탑에 받들어 보시하며
또한 모든 가난하고 궁핍한 자에게 보시할새
이것도 중요한 일이다. 의식주가 급한 사람들에게는 비록 한끼라도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제일 급한 일이다.
이런 고로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보배 보(寶)자 장엄할 엄(嚴)자 보엄(寶嚴)이라고 하는 근사한 장엄을 얻었다.
단돈 만원으로 등을 달더라도 그 의미를 어떻게 가지고 등을 다느냐에 따라서 그 복이 천양지차가 될 수가 있다.
도둑놈에게 보시하면 동타지옥(同墮地獄)간다는 옛말이 있다. 같이 지옥에 떨어진다. 그 돈을 제대로 못쓰면 동타지옥에 간다. 보시한 사람도, 그것을 받아서 함부로 쓰는 사람도, 같이 동타지옥에 간다. 어릴 때 그런 말을 많이 들어왔다.
우방광명명향엄(又放光明名香嚴)이니 차광능각일체중(此光能覺一切衆)하야
영기문자열가의(令其聞者悅可意)하야 결정당성불공덕(決定當成佛功德)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향엄(香嚴)’이라
이 광명이 능히 일체중생을 깨우쳐서
그 향기를 맡는 자로 하여금 마음에 기뻐해서
결정코 마땅히 부처님 공덕을 이루게 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향엄(香嚴)’이라
향엄(香嚴) 향기 향(香)자 장엄 엄(嚴)자, 앞에서는 보엄(寶嚴)이라고 했는데 여기는 향엄이라.
이 광명이 능히 일체중생을 깨우쳐서
그 향기를 맡는 자로 하여금 마음에 기뻐해서
결정코 마땅히 부처님 공덕을 이루게 하나니라
향엄(香嚴)이라고 하는 광명이다. 향을 피우는 일, 그것도 계정혜 삼학의 향, 오분법신향의 향, 그것이다.
이 광명이 능히 일체중생을 깨우쳐서
그 향기를 맡는 자로 하여금 마음에 기뻐해서
결정코 마땅히 부처님 공덕을 이루게 하나니라
부처님의 공덕을 이루게 한다.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이것을 모두 ‘향엄이다’ 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인천묘향이도지(人天妙香以塗地)하야 공양일체최승왕(供養一切最勝王)하고
역이조탑급불상(亦以造塔及佛像)일새 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사람과 천신의 묘한 향으로써 땅에 발라
일체 가장 수승한 왕께 공양하고
또한 탑과 불상을 조성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사람과 천신의 묘한 향으로써 땅에 발라
일체 가장 수승한 왕께 공양하고
가장 수승한 왕이 누구인가? 부처님이다. 가장 수승한 왕, 부처님을 성중성(聖中聖) 성인 가운데 성인, 왕중왕(王中王) 왕 가운데 왕, 이런 표현을 한다. 가장 수승한 왕, 부처님께 공양하고
또한 탑과 불상을 조성할새
탑도 조성하고 불상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탑을 조성하는 데 우리가 동참하든지 불상을 조성하는 데 동참을 하든지 바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든지 법에 공양을 올리든지 법공양을 하든지 그렇게 하면 다 이렇게 향엄이라고 하는 광명을 얻는다, 그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방광명잡장엄(又放光名雜莊嚴)이니 보당번개무앙수(寶幢幡蓋無央數)며
분향산화주중악(焚香散華奏衆樂)하야 성읍내외개충만(城邑內外皆充滿)이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잡장엄(雜莊嚴)’이라
보배깃대와 깃발과 일산이 한량없으며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온갖 음악을 연주하여
도성과 고을의 안과 밖에 모두 가득하나니라.
또 광명을 놓으니 이름이 ‘잡장엄(雜莊嚴)’이라
장엄을 한 가지 두 가지 소개하다 보니까 ‘이것 가지고는 안되겠다’ 싶어서 여러 가지 장엄, 잡장엄이라고 했다.
우방광명잡장엄(又放光名雜莊嚴) 염불에 이 대목이 들어있는데 이쯤 오면 염불이 신난다.
보배깃대와 깃발과 일산이 한량없으며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온갖 음악을 연주하여
이것이 여러 가지 장엄이라는 것이다. 잡장엄(雜莊嚴)
도성과 고을의 안과 밖에 모두 가득하나니라
초파일이 되면 산어귀에서부터 등을 단다. 며칠 전부터 등을 달아서 법당에까지 달고, 법당 안에도 달고, 법당 마당에도 달고, 화장실 가는 길에도 달고, 요사채 부근에도 달고, 온 도량을 전부 등으로 장엄한다.
여기에는 ‘보배깃대와 깃발과 일산이 한량없으며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온갖 음악을 연주한다’ 그랬다.
우리는 등 한가지로써 장엄하는데 말하자면 ‘등장엄’이다.
우리 어릴 때는 초파일 되면 등을 만들고, 종이를 사다가 물을 들여서 말리고 잘라서 붙이고, 그 등에다가 그림도 그리기도 하고 글씨를 쓰기도 하고 여러 날 걸렸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서 했는데, 요즘은 음식도 공장음식이 있듯이, 등도 공장등이 많다. 그렇지 않고 정성을 들여서 만드는 사찰도 있지만, 대개 등을 많이 다는 큰 사찰에서는 80%는 공장등이고 20% 정도는 사찰에서 만드는 등이다.
그런 것들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서 많이 변화해 왔다.
우리 문수선원에는 등도 종이 색깔을 아주 튀지 않고 천하지 않은 색깔 아주 준수한 색을 고르느라고 어떤 해는 그 색깔, 등 색깔, 종이 색깔 가지고 큰소리가 오가면서까지 연구를 하였다.
작년에는 우리가 새 등을 못했는데 금년에는 새로운 등을 달았다. 등 색깔도 아무리 1년동안 보아도 싫증이 안나는 색으로 연구를 해서 정했다. 무엇보다도 그 등을 ‘법공양등이다’라고 이름하였다.
또 문수선원의 등에는 전세계적으로 제일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 있다. ‘개지’라고 축원의 뜻으로 이름을 써서 등에 붙이는데, 그 이름 쓰는 필체가 아주 명필이다. 정말 제대로 글씨를 배운 사람이 한자한자 이름을 썼다. ‘그것만으로 훌륭한 축원이 된다’ 나는 늘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것은 세계 어디에도 자랑거리다. 내용을 알만한 분들은 ‘아 그럼, 그럼’ 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우리 문수선원에 등을 다는 것 중에 제일 자랑스러운 것이 등 색깔도 자랑스럽지만 그보다도 개지 축원 이름 붙이는 것이 명필인데 그걸 뜯을 때는 뜯기 아깝고, 태우기 아까울 정도로 명필이다.
문수선원은 <사경수행도량>이라고 해서 글씨를 잘 쓰는 분들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글 이름을 깨끗이 잘 쓰는 신도님이 그렇게 늘 써서 붙인다. 아무리 자랑해도 넘치지 않는 자랑거리다. 여기도 보면
보배깃대와 깃발과 일산이 한량없으며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고 온갖 음악을 연주하여
도성과 고을의 안과 밖에 모두 가득하나니라
이런 것이 잡장엄(雜莊嚴) 여러 가지로 장엄하다 하는 광명의 내용이 되겠다.
본이미묘기악음(本以微妙妓樂音)과 중향묘화당개등(衆香妙華幢蓋等)으로
종종장엄공양불(種種莊嚴供養佛)일새 시고득성차광명(是故得成此光明)이니라
본래 미묘한 기악음(妓樂音)과
온갖 향과 묘한 꽃과 깃대와 일산 등으로
갖가지 장엄으로 부처님께 공양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기악음 하면 춤과 노래다.
본래 미묘한 기악음(妓樂音)과
온갖 향과 묘한 꽃과 깃대와 일산 등으로
갖가지 장엄으로 부처님께 공양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부처님께 공양할 거리가 너무 많다.
춤도 공양이고 음악도 공양이고 그것을 ‘부처님께 공양한다’고 하면, 법당에서 아무리 노래하고 춤을 추더라도 그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다. 그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온갖 향과 묘한 꽃과 깃대와 일산 등으로
그것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올려야 한다. 자기 이름 내려고 올리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데 그러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다’
갖가지 장엄으로 부처님께 공양할새
이런 까닭에 이 광명을 얻었느니라
초파일을 앞두고 향공양 등공양 등 많은 공양 이야기가 나왔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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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신 분들 한 번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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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성불하십시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_()()()_
https://www.youtube.com/watch?v=rhS9A4SpvF4
PLAY
감사합니다^^ 임형주도 노래 샐리가든도 버드나무도 좋아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_()()()_
‘일체세간 모든 사물 이것이 그대로 부처님의 법문이다’
화장장엄 아닌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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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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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_()()()_
어디를 가더라도 외롭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