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서울대병원 정기검진일입니다. 며칠 전부터 병원가는 날이라고 주지시켰더니 자기만의 행사를 엄마보다 더 잘 챙깁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샤워를 하겠다는 둥, 엄마도 얼른 준비하라고 재촉하고, 서둘러서 준이 옷이며 양말까지 챙겨 밍기적대는 준이를 깨우고 다그치기도 합니다.
새벽 차가운 공기는 현관문이 제대로 열리지않을 정도로 모든 것을 열려놓았고 간밤에 바람은어찌나 강렬했는지 여기저기 눈비피해 마당 물건들 덮어놓았던 덮개마저 흔적도 없이 날아가버리게 했습니다. 철물점에서 구매했던 초록색 방수갑바는 1톤 트럭 2-3개는 족히 덮을만한 큼지막한 것이었는데 그 큰 덩치를 끌고 어디로 날라가버렸는지 집주변에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큰 덩치로 바람에 쓸려다니려면 눈총 꽤나 받을텐데 무사히 어디에선가 쓰임새용으로 자리잡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이렇게 일찍 얼어버린 겨울날씨이기에 더욱 길게 펼쳐질 냉기의 계절이 하늘 가득한 시커먼 먹구름처럼 한동안 공기를 무겁게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찬공기를 뚫고 달려서 준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태균이와 함께 병원에서의 종일있어야 하는 상황을 잘 설계해야 합니다. 쿨하게 한 방에 채혈성공, 팔에 굵은 바늘 꽂아 몇 개의 통을 채워야 했던 그 과정을 너무 무서워해서 수 십번의 시도를 해야하고 어떨 때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거나 보안요원 서너명이 붙자고 겨우 마치기도 했던 시절을 상기해보니 짧은 시간 내 그래도 세상을 대하는 폼이 많이 발전했습니다.
10시간 공복유지하기, 채혈 후에 지하식당에서 김치찌개 먹기, 밥먹고 보충제와 약챙겨먹기, 빵집에서 빵사고 아이스카페라떼 주문하기 등 언제부터인가 병원 검진날의 활동패턴이 만들어졌습니다. 3-4시간 검사결과 기다려 의사진료까지 마치고 약국가서 처방약 받아갈 때까지 하나의 시리즈처럼 잘도 해냅니다. 집에서 보충제챙기기도 스스로 잘하고 엄마 도움없이 한 두가지는 본인이 너무나 잘 해결해가고 있습니다.
길고도 지루하지 짝이 없는 기다림의 시간은 마치 여행을 위한 공항에서의 설렘의 시간처럼 그렇게 여겨주니 감사할 뿐입니다. 요즘 부쩍 말다운 대화가 되어가는 것 같아 이 또한 기쁜 일이기도 합니다. 주변에서 떠드는 사람들의 얼굴도 유심히 눈 속에 담고 그들의 행동을 눈여겨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세상이 보이는가 봅니다...
첫댓글 태균씨의 발전하는 모습이 늘 위안을 줍니다.🙏🍒
태균이 고생했네~ 느려서 그렇지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