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과의 끝없는 논쟁들
구약성서 예언서를 중심으로
I. 서론
구약성서에는 참과 거짓의 논쟁이 끊임없이 있어 왔다. 이 주제는 아마도 이스라엘의 형성기부터 논쟁으로 시작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출애굽 후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수많은 잡족들(출 12:38; 민 11:4)과 함께 모여 살면서 종교적, 문화적, 이념적인 대립을 통해 민족 공동체를 형성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광야 공동체 안에는 전통에 대한 수구세력 과 변화세력이, 그리고 새로운 종교와 문화에 대한 배척과 수용이라는 대립적 구도가 공존했었다. 문화와 종교와 이념의 이러한 혼재와 혼합은 이스라엘 백성이 땅에 정착한 이후에도 나타났다. 사사시대에 가나안의 종교인 바알 숭배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으며(삿2:13), 야웨 종교의 혼합적인 특징도 나타나게 되었다(삿 8:25-28).이러한 상황은 훗날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이어져 갔다. 제의에서, 제의를 수행하는 자들에게서, 혹은 예언에서,예언을 선포하는 자들에게서 참과 거짓에 대한 논쟁은 계속되었다.1)본 논문에서는 구약성서 예언서에 나타난 참과 거짓 논쟁을 다루고자 한다. 특히 ‘예배’라는 주제와 ‘예언’이라는 주제를 통해 무엇이 ‘참 예배’이고, 무엇이 ‘거짓 예배’였으며, 무엇이 ‘참 예언’이고, 무엇이‘거짓 예언’인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를 통해 예언자2)들이 말하는‘참’의 기준 혹은 ‘거짓’의 기준을 마련하여 오늘날 우리 기독교에 그 결과를 적용해 보고자 한다.
1) 한동구, “규범과 리더십,” 「신학과 선교」 48(2016), 123-152.
2) William T. Purinton, “Prophets without Borders,” 「신학과 선교」 43 (2013), 103-126.
II. 거짓에 대한 논쟁들
1. ‘예배’에 대한 거짓논쟁
‘예배’3)는 일반적으로 “신적 대상을 향한 최고의 경배”로 정의할 수 있다.4) 구약성서에 ‘안식일’이라는 용어가 80회 이상 사용된 것과 절기에 대한 용어들(유월절, 무교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이 90회 이상 사용된 것을 볼 때, 고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예배’는 삶의 일부였고, 이 ‘예배’가 일상에서 매우 강조되어 왔음이 분명하다.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야웨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스라엘은 야웨의 백성’이라는 언약관계를 확인하는 방법은 제의적 행위인 ‘예배’를 통해서였다. 그런데 이 안식일 예배와 절기 예배에 익숙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배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며 논쟁을 불러일으킨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주전 8세기에 활동했던 문서예언자들이었다.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이 알고 있던 전통적인 예배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해석해 주면서 ‘거짓 예배’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켰던 자들이었다.
3) 본 논문에서는 구약성서의 ‘제의의식’을 ‘예배’라는 용어로 대신할 것이다.
4) 김순환, 『예배학 총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21.
1) 아모스서의 거짓예배 논쟁
남왕국 드고아 출신으로 북왕국에서 예언 활동하던 아모스는‘하나님의 정의’인 ‘미쉬파트’(mishpaṭ)를 외쳤던 예언자였으며(암5:7, 15, 24; 6:12),5) ‘하나님의 정의’를 ‘제의’와 연결시켜 ‘제의’를
‘하나님의 정의’ 실현으로 생각했던 예언자였다(암 4:4-5; 5:4-7, 21-27). 불록(C. H. Bullock)은 아모스서의 이스라엘 백성은 종교적 활동이 부족했던 자들이 아니었으며, 이들은 날마다 제사와 십일조를 드렸고, 또한 그것을 즐겼던 자들이었다고 말한다(암 4:4-5).6) 그러나 종교적 행위에 열중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 니”(암 5:21)라고 말씀하고 있고, 또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는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고,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암 5:5). 아모스 5장 5절에 나오는 ‘벧엘’, ‘길갈’,‘브엘세바’는 모두 성소가 세워져 있던 예배의 자리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야웨는 이스라엘에게 예배의 자리로 나가지 말라고 했던 것일까? 이 명령이 야웨의 본심일까?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일까? 야웨가 이스라엘에게 요구했던 것은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는 것이었다.야웨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곧 야웨께 드리는 예배에 대한 암시적 의미이다. 그렇다면 야웨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이스라엘에게 어떤 예배를 요구했던 것일까?
아모스 5장 5절과 5장 21절 본문을 통해 야웨가 계획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야웨는 이스라엘의 거짓된 예배를 꾸짖기 위한 의도로 성소가 있던 ‘벧엘’, ‘길갈’, ‘브엘세바’로 가지 말라고 했던 것이다. 예언자 아모스가 외쳤던 선포 주제들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거짓된 경건’과 ‘미쉬파트의 부재’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정기적으로 제의에 참여하고 있었고, 예배 때 십일조와 제물을 드리던 자들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삶 속에서 ‘미쉬파트’가 빠져 있었고, 경건 이 사라진 삶을 살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아모스 시대에 예배자들은 안식일 예배와 절기 예배만 집중하던 자들이었고, 그들에게는 일상에 서 ‘미쉬파트’와 ‘쩨다카’(ṣedakah)의 실천은 늘 뒷전이었다. 그래서 아모스는 ‘정의’를 물같이, ‘공의’(ṣedakah)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하라(암 5:24)고 외쳤다. 그래서 아모스에게 있어서 올바른 예배는 ‘정의’와 ‘공의’에 입각한 삶을 살아가는 실천적 행위가 있어야 하며, 그런 자들이 안식일 예배와 절기 예배에 참여할 때, 그것이 진정한 ‘참 예배’임을 아모스는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아모스는 안식 일과 절기예배에만 집중하며 십일조와 제물을 바치는 자들을 향하여 거짓 예배자로 낙인찍었고, 일상에서 ‘미쉬파트’와 ‘쩨다카’를 실천한 후에 안식일과 절기예배에 참여하는 자들이 올바른 예배자임을 자신 의 선포를 통해 알려주려 했던 것이다.
5)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아모스 시대에는 자연법(Naturrecht) 보다 강자의 힘의 논리가 더 익숙하던 시대였다고 본다. J. Jeremias,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ATD Ergänzungsreihe 6)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5), 18.
6) 하젤 불록, 『구약 선지서 개론』, 류근상 역 (고양: 크리스챤 출판사, 2001),103.
2) 호세아서의 거짓예배 논쟁
북왕국에서 예언 활동하던 호세아7)는 주전 8세기 다른 문서 예언자들에 비해 ‘언약’(2:18; 6:7; 8:1; 10:4)과 ‘제사’(호 3:4; 4:13; 6:6; 11:2; 12:11; 13:2)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했으며,8) 또한 ‘음행’(호2:2, 5; 3:3; 4:10, 11, 12, 13, 14, 15, 18; 5:3; 6:10; 9:1)과 ‘간음’(호 4:2, 13, 14; 7:4)이라는 용어도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다. 고웬(D. E. Gowan)은 구약성서에서 우상숭배가 자주 ‘음행’으로 대치되었음 을 지적하고 있는데,9) 호세아서 또한 이스라엘의 ‘언약파기’와 ‘거짓된 제사’가 ‘음행’과 ‘간음’이라는 은유적 언어로 대신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호세아가 외쳤던 선포에서 주목할 본문이 있는데, 호세아6:6이다. 야웨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고 말씀하 고 있다. 여기서 ‘인애’는 히브리어 ‘헤세드’(ḥesed)로 볼프(H. W. Wolff)에 따르면 하나님과 올바른 언약관계는 ‘에토스’(Ethos)에 기초 하고 있는데, 이 ‘에토스’가 바로 ‘헤세드’라는 것이다.10) 고대 근동에 서 행해졌던 계약체결 의식은 단순히 문서작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 라, 계약준수를 위한 법조항을 토대로 봉신국은 주국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정기적으로 조공을 바쳐야 했다.11) 고대 근동의 주국과 봉신국의 관계를 야웨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로 이해한다면, 고대 근동 법조항의 계약이행에 해당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헤세드’ 실천이 라 할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호세아 6장 6절은 하나님이 ‘제사’를 원치 않았던 것이 아니었으며, 하나님이 ‘번제’를 거절했던 것이 아니었다. 호세아서는 다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헤세 드’(인애)를 실천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삶을 꾸짖으려는 의도였다.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제사’를 드렸었다. 다만 이스라엘의 ‘제사’가 잘못된 제사, 거짓된 제사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호세아 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이방신 제사에 참여하여 바알에게 제사(호 4:13; 11:2)하는 혼합종교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결국 호세아 6장 6절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이웃에게 ‘헤세드’를 실천한 사람이 야웨께 번제로 제사 할 때 야웨는 그 제사를 기쁘게 받는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제사가 아니라면 호세아에게 있어서 그 예배는 거짓 예배가 되는 것이다.
7) 예레미야스(J. Jeremias)는 호세아 시대 일반인들에게는 바알화 된 야웨 신앙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J. Jeremias,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17-18.
8) 도널드 E. 고웬, 『구약 예언서 신학』, 차준희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5), 112
9) 앞의 책, 113.
10) H. W. Wolff, Hosea (BKAT XIV/1)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76), 153.
11) G. E. Mendenhall, Law and Covenant in Israel and the Ancient Near East (Pittsburgh: The Biblical Colloquium, 1955).
3) 이사야서의 거짓예배 논쟁
주전 8세기 남왕국 유다에서 예언활동을 하던 이사야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의 세 가지 주요 사건들인 ‘사마리아 멸망’과 ‘예루살렘 함락’ 그리고 ‘약속된 땅’으로 귀환이라는 주제를 선포하던 예언자였 다.12) 예언자 이사야의 긴 예언기간(주전 750-700년)13) 만큼이나 그의 예언의 분량이 많은데, 1970년대 이후 이사야서의 최종 형태(Endtext)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14)일부 학자들의 경우, 이사야 1장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포러(G. Fohrer)는 이사야 1장이 이사야서 전체의 서론이면서 요약이라고 말했고,15) 고웬은 이사야서의 최종 형태는
12) 도널드 E. 고웬, 『구약 예언서 신학』, 150. 이사야서의 편집과 관련해서 다음의 글들을 참고하라. J. Barton, Isaiah 1-39 (OTG)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J. J. Schmitt, Isaiah and His Interpreters (Mahwah: Paulist Press, 1986); A. G. Auld, “Poetry, Prophecy, Hermeneutic: Recent Studies in Isaiah,” SJT 33 (1980), 567-581.
13) 존 와츠, 『이사야 1-33장』 (WBC 24), 강철성 역 (서울: 솔로몬, 2002), 32. 14) M. A. Sweeney, “The Book of Isaiah in Recent Research,” Currents in Research: Biblical Studies 1 (1993), 141-163 등; 참고. 임시영, “구약성서 적 노동이해에 대한 연구 – 창조신학 안에서의 이분법적 노동관의 통합 논의,”
「신학과 선교」 48(2016), 87-122.
15) G. Fohrer, “Jesaja 1 als Zusammenhang der Verkündigung Jesajas,”
소형근, 거짓과의 끝없는 논쟁들: 구약성서 예언서를 중심으로 49
주전 701년에 있었던 산헤립 침공과 관련이 있는데, 이사야 1장은 이사야 1-39장 전체를 읽는 열쇠라고 주장한다.16) 이처럼 전체 이사야 서를 읽는 데 있어서 이사야 1장의 비중이 매우 중요함이 분명하다.이런 이사야 1장의 주제는 ‘정의’와 ‘공의’(사 1:17, 21, 27)이다. 흥미로 운 것은 예언자 이사야도 주전 8세기 다른 예언자들처럼 이사야1장에서 ‘거짓 예배’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사야 1장11-15절은 제물과 거짓 예배자들에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해 주고 있다.17) 다음의 도표는 ‘제물’과 ‘예배 및 예배자’에 대한 예언자의 비난을 정리한 것이다.
11절
이스라엘의 행위
무수한 제물
숫양의 번제
살진 짐승의 기름
수송아지의 피
제물
야웨의 반응
무익함
배부름
12절
13b
절
월삭
예배 & 예배자
이스라엘의 행위
보이러 오는 예배
야웨의 반응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더냐
안식일
가증히 여김
대회
어린양의 피
숫염소의 피
기뻐하지 않음
14절
성회
월삭
견디지 못함
싫어함, 무거운 짐
13a절
헛된 제물
분향
가져오지 말라
가증히 여김
15절
정한 절기
손을 펼 때
기도할 때
눈을 가림
듣지 않음
위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이사야 1장은 주전 8세기 이스라엘이 드리는 제물과 예배 및 예배자에 대한 하나님의 다양한 반응을 알려주고 있다. 이스라엘이 무수히 많은 제물을 드리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무익한 제물일 뿐이며, 또한 가증한 제물이기 에 하나님께 가져오지 말라고 예언자는 선포한다(사 1:13). 또한 하나 님께 보이러 오는 예배는 마당만 밟는 예배이며(사 1:12b), 월삭,안식일, 대회, 성회, 정한 절기는 가증한 것이고(사 1:13), 하나님이 견딜 수 없는 예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제물과 예배 및 예배자에게 하나님은 어떤 변화를 요구하고 있을까? 예언자는 이사야 1장 16-17절 에서 다양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스스로를 씻어 정결케 할 것이며, 악한 행실을 버리고, 행악을 그쳐야 하며(16절), 선행을 배우고,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고, 고아를 위하여 신원할 것이며, 과부를 위해 변호해야 한다(17절). 예언자가 이사야1장 16-17절에서 요청한 내용들을 정리하면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일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리고 삶 속에서‘정의’와 ‘공의’가 실현되지 않는 삶은 아무리 많은 제물을 가지고 제사를 드리더라도 그 예배는 가증한 것이 된다. 즉, 거짓 예배가 되는 것이다. 컬버(R. D. Culver)에 따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예배’는 하나님이 요구한 것에 순종하는 것이며(19절),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떠는 자(사 66:2, 5)가 ‘참 예배자’인 것이다.18) 결론적으로 이사야는 기존의 전통적인 예배개념을 깨뜨리고, 새로운 예배이해를 도입하여 삶 속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한 자가 드리는 안식일과 절기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 예배’로 이해했고, 이에 반하는 예배를 ‘거짓 예배’로 이해했다.
12) 도널드 E. 고웬, 『구약 예언서 신학』, 150. 이사야서의 편집과 관련해서 다음의 글들을 참고하라. J. Barton, Isaiah 1-39 (OTG)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J. J. Schmitt, Isaiah and His Interpreters (Mahwah: Paulist Press, 1986); A. G. Auld, “Poetry, Prophecy, Hermeneutic: Recent Studies in Isaiah,” SJT 33 (1980), 567-581.
13) 존 와츠, 『이사야 1-33장』 (WBC 24), 강철성 역 (서울: 솔로몬, 2002), 32.
14) M. A. Sweeney, “The Book of Isaiah in Recent Research,” Currents in Research: Biblical Studies 1 (1993), 141-163 등; 참고. 임시영, “구약성서 적 노동이해에 대한 연구 – 창조신학 안에서의 이분법적 노동관의 통합 논의,”「신학과 선교」 48(2016), 87-122.
15) G. Fohrer, “Jesaja 1 als Zusammenhang der Verkündigung Jesajas,”ZAW 74 (1962), 251-268.
16) 도널드 E. 고웬, 『구약 예언서 신학』, 165.
17) 와츠는 이사야 1장 11-16절에 예배 용어들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고 말한다.존 와츠, 『이사야 1-33장』, 99.
18) R. D. Culver, “Isaiah 1:18-Declaration, Exclamation or Interrogation?,” JETS 12 (1969), 133-141.
4) 미가서의 예배논쟁
주전 8세기 예언자 미가는 북왕국의 사마리아가 아시리아로부터 점령당하면서 남왕국 유다 또한 곧 정복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하나님 의 말씀을 선포했던 자였다.19) 물론 남유다는 곧바로 망하지 않고, 1세기 이상 지속되었다. 그러나 유다 사람 미가는 북쪽에서 활동했던 아모스와 호세아의 선포의 영향 가운데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예로써,호세아가 즐겨 사용하던 ‘음행’이라는 단어를 미가가 사용했었고(미1:7), 아모스서의 핵심용어인 ‘정의’를 미가가 수용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미 3:1, 8, 9; 6:8).20) 미가가 북왕국 전승인 아모스와 호세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사마리아 멸망 이후 북왕국 난민들이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유입되어 인구수가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이다.21) 이처럼 미가는 북왕국 전승에 익숙해 있었던 예언자였다. 동일한 맥락에서 미가는 아모스와 호세아의 거짓 예배에 대한 논쟁대열에 참여하고 있다.22) 이에 대한 정보를 미가6장 6-8절이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미가 6장 6절에서 예배자는 하나님 이 원하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이때 예배자는 세 가지 질문으로 하나님께 묻는다.
예배자의 첫 번째 질문은 최고의 제물(best Quality)인 일 년 된 송아지를 바치면 야웨가 기뻐하는 예배가 될 것인지 이다. 예배자의
두 번째 질문은 셀 수 없이 많은 양(Quantity)을 바치면 야웨가 기뻐하 는 예배가 될 것인지 이다.
예배자의 세 번째 질문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녀를 인신제사로 드리면 야웨가 기뻐하는 예배가 될 것인지 이다.
그러나 예배자의 이런 세 가지 질문에 야웨 또한 세 가지로 답변한다. 그러나 야웨의 답변은 예배자가 기대했던 내용과 전혀 다른 것들이다. 야웨는 첫째, ‘정의’를 행하고, 둘째, ‘인자’를 사랑하며,셋째, ‘겸손하게 하나님과 행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아모스가‘거짓 예배’를 지적하면서 언급한 ‘정의’(mishpaṭ)와 호세아가 지적한‘인자’(ḥesed)를 지금 예언자 미가 또한 말하고 있다. 결국 미가는 북왕국 전승인 아모스와 호세아의 영향 가운데 있었음을 ‘거짓 예배’에 대한 논쟁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가가 말하는 ‘참 예배’는 ‘미쉬파트’를 행하고, ‘헤세드’를 실천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 다가 희생제사에 참여하는 예배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이 다.23) 이것이 예언자 미가가 말하는 ‘참 예배’의 정의이고, 이런 예배에 반하는 예배는 ‘거짓 예배’인 것이다.24)
20) 앞의 책, 137-138.
21) M. Broshi, “The Expansion of Jerusalem in the Reigns of Hezekiah and Manasseh,” IEJ 24 (1974), 21-26.
22) 랄프 스미스, 『미가-말라기』 (WBC 32), 채천석ᆞ채훈 역 (서울: 솔로몬, 2001),82.
23) 앞의 책, 84.
24) 참고. 이사야, “미가 6장 6-8절에 담긴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의 예배 비판과 사회윤리,” 「대학과 선교」 35 (2017), 103-130.
2. ‘예언(자)’에 대한 거짓논쟁
구약성서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자로서 ‘예언자’의 활동이 소개되고 있는데, 이 예언자들 중에는 ‘참 예언자’가 있는가 하면,그와는 거리가 먼 ‘거짓 예언자’가 있다. 신명기에는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분하면서 ‘증험’과 ‘성취함’이 기준이 되어 ‘참과 거짓’으로 나누고 있다(신 18:22). 즉, 예언자의 예언이 ‘증험’과 ‘성취함’이 있으 면 ‘참 예언’이 되고, ‘증험’과 ‘성취함’이 없으면 ‘거짓 예언’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예언자가 1000년 후의 일을 예언했다면 이 예언자 를 당대에 ‘참 예언자’ 혹은 ‘거짓 예언자’라고 결정할 수 있을까?이런 예언이라고 한다면 당대에 예언자를 참으로도, 거짓으로도 평가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런 난제 때문에 놀(K. L. Noll)은 성서의 예언자를 포함해서 고대 근동의 예언자들이 미래를 알리려고 예언했지만, 그러나 거의 예외 없이 가까운 미래 사건을 예언했다고 주장한다.25) 그리고 미래 사건을 예언했던 예언자들 중에는 부정확한 예언을 말했던 자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26) 한 예로써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조차도 미래 예언이 정확하지 않았다. 주전 605년에 바빌론의 느부갓네살은 이집트와 갈그미스(Carchemish) 전투를 승 리로 이끌었다.27) 이후 예레미야는 이집트가 바빌론에게 망하여 수치 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렘 46:13-24). 그러나 예레미야의 예언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만들어졌다. 즉, 주전 601년에 느부갓네살 이 이집트를 공격했으나 믹돌(Migdol)에서 두 나라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느부갓네살은 바빌론으로 되돌아갔다.28) 예레미야의 예언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다고 성서는 예레미야를 거짓 예언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미래 예언은 실패했으나, 예레미야는 여전히 하나님이 세운 참 예언자이다. 따라서 이런 이유 때문에 헴펠(D. J. Hempel)은 ‘증험’과 ‘성취함’의 기준으로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29) 헴펠의 이런 주장을 이후 크렌쇼(J. L. Crenshaw)30)와 헤어미숀(H.-J. Hermisson)31) 등이 지지 한다. 그렇다고 참과 거짓 예언에 대한 논쟁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한편 폰 라트(G. von Rad)는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는 참 예언자이고,구원을 선포하는 예언자는 거짓 예언자라고 말하며,32) 볼프(H. W. Wolff) 또한 예언의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영적인 분별을 통해 참과 거짓을 구별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33) 이후 폰 라트나 볼프를 지지하는 학자들이 참 예언과 거짓 예언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여 다양한 주장들을 펴고 있다. 그러나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분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들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에 나온 강승일의 논문이 주목을 끈다. 강승일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예언자들, 특히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의 예언을 언급하면서 이들의 예언들 중 일부가 성취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이들을 거짓 예언자로 매도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것을 인간 활동에 구속받지 않는 하나님의 자율성과 초월적 경륜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예언자는 하나님의 거시적 역사의 도구일 뿐이지,참 예언자라고 해서 그의 말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는 절대적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34) 결국 강승일은 고대 이스라엘의 예언을 참과 거짓으로 나누는 일은 큰 의미가 없으며, 고대 예언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분해서 말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구약성서 예언서 본문에 ‘거짓 예언’이라는 표현이 반복해서 언급되기 때문이다. 특히, 예레미야서에는 ‘거짓 예언’35)이라는 표현이 빈번하 게 나온다(렘 5:31; 14:14; 20:6; 23:25, 26, 32; 27:10, 14, 15, 16; 29:9, 21). 이것은 구약시대 일반인들이나 혹은 성서 기록자들이 예언 을 ‘참’과 ‘거짓’으로 구분해서 평가하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물론‘참’ 예언을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비해 ‘거짓’ 예언을 규정하기란 상대적으로 쉽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예언에 대해 ‘거짓’ 혹은‘거짓말’이라고 명명하는 구약성서의 본문들36) 중에서 특별히 미가서 와 예레미야서와 스가랴서를 통해 어떤 예언이 ‘거짓’을 말하는 것인지 를 살펴보고자 한다.
25) K. L. Noll, Canaan and Israel in antiquity: an introduction (Biblical Seminar 83) (London: T & T Clark, 2006), 274.
26) 앞의 책, 274-278; 이와 관련하여 다음 책을 참고하라. R. P. Carroll, When Prophecy Failed: reactions and responses to failure in the Old Testament prophetic traditions (London: SCM Press, 1979).
27)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 역사 (3판)』, 박문재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6), 448.
28) 앞의 책, 449.
29) J. Hempel, “Vom irrenden Glauben,” ZSystTh 7 (1930), 631-660.
30) J. L. Crenshaw, Prophetic Conflict: Its Effect Upon Israelite Religion (BZAW 124) (Berlin & New York: Water de Gruyter, 1971).
31) H.-J. Hermisson, “Kriterien ‘wahrer’ und ‘falscher’ Prophetie im Alten Testament: Zur Auslegung von Jeremia 23:16-22 und Jeremia 28:8-9,” ZThK 92 (1995), 121-139.
32) G. von Rad, “Die falschen Propheten,” ZAW 51 (1933), 109-120.
33) H. W. Wolff, Discovering the Old Testament’s New and Contemporary Significance: ‘How Can We Recognize False Prophets? Criteria for the Difficult Task of Testing the Spirits’ in Confrontations with Prophet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93), 67.
34) 강승일, “성취되지 않은 예언의 문제 – 고대 이스라엘 예언을 중심으로,” 「장신논 단」 46-1 (2014), 13-36.
35) 거짓 예언(자)의 유형과 규정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고하라. 김한성, “예레미야서 의 거짓 예언자 규정과 그 의도,” 「신학논단」 60 (2010), 7-36.
36) 구약성서에서 ‘예언’을 거짓 혹은 거짓말로 규정하고 있는 본문은 앞서 지적한 예레미야서 본문들과 미가 2장 11절, 그리고 스가랴 13장 3절 정도이다.
1) 미가서의 거짓 예언들
미가 2장 11절은 사람들에게 허망하게 행하고, 거짓말로 포도주 와 독주에 대해 예언하는 백성의 ‘예언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11절의 ‘예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는 ‘마티프’(matiph)로 구약성서에서 유일하게 한 번 사용되는 아주 낯선 용어이다. ‘마티프’는 미가 3장에 나오는 ‘느비임’(nebiʾim [“선지자들”], 5, 6절), ‘호 짐’(ḥozim [“선견자들”], 7절), ‘코스밈’(qosmim [“술객들”], 7절)과 동일하거나, 유사한 자들로 보인다. 미가 본문(BHS)에서는 이들을‘거짓 예언자’로 규정하지 않지만, 탈굼(Targum)에서는 이들을 ‘거짓 예언자’(נבייא דשקרא)로 명명하고 있다. 이들의 행동이나 말을 보면‘거짓 예언자’로 규정할 만하다. 예를 들면, 이들은 이에 물 것이 있으면 평강을 외치지만,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케 한다(미 3:5). 이 거짓 예언자들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이 주는 돈을 받고 ‘평화’를 외치지만, 돈을 줄 수 없는 가난한 자와 돈을 주지 않는 의로운 자들에게는 ‘전쟁’과 ‘두려움’을 줌으로 약자들 에게 억압과 고통만 더해주는 자들이다.37) 그와는 달리 미가 3장8절에는 참 예언자의 자격조건에 대해 언급해 주고 있다. 8절의 히브리 어 본문에 나오는 첫 번째 단어는 ‘코아흐’(koaḥ), 즉 ‘능력’이다.이 ‘능력’은 하나님께서 미가에게 주시는 예언의 능력을 말한다.38)참 예언자의 두 번째 조건은 ‘정의’(mishpaṭ)이다.39) 미가서에서 사용 하고 있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사회적 약자를 향한 책임이며,40)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돌보는 의미이 다.41) 참 예언자의 세 번째 조건은 ‘용기’(gebudah)이다. 이동수는‘정의’를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불의를 고발하고,책망하는 것을 ‘용기’라고 말한다.42) 결국 미가가 말하는 참 예언자의 조건은 ‘야웨의 영’(ruaḥ YHWH)으로 충만하여 예언의 ‘능력’을 행하 고, 사회적 약자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의를 고발하고, 책망하는 ‘용기’를 가진 자이어야 한다. 이런 참 예언자에게 주어진 임무가 있는데,그것은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알도록 선포하는 것이다(미3:8b). 미가서에서 말하는 참 예언자는 허물과 죄를 가진 이스라엘이 그것을 알도록 선포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이런 선포에서 벗어나 있는 자들이 미가가 말하는 거짓 예언자이고, 거짓 예언이다.43)
37) 이동수,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미가 3:5-8,” 「장신논단」 11 (1995), 224.
38) 앞의 논문, 228.
39) 미가서의 ‘미쉬파트’ 용례에 대해서는 김래용의 글을 참고하라. 김래용, “미가서에 나타난 미쉬파트와 쉐에리트,” 「구약논단」 57 (2015), 10-37.
40) L. C. Allen, The Books of Joel, Obadiah, Jonah and Micah (Grand Rapids: Eerdmans, 1976), 302.
41) H. W. Wolff, Micha (BKAT XIV/4)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82), 75-76.
42) 이동수,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230.
43) 주전 8세기 문서 예언자들 가운데 이사야는 ‘거짓 예언자’의 한 형태로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사 9:15)와 “환상을 잘못” 푸는 자(사 28:7)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사야서는 이 두 본문 외에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언급을 찾기 힘들다
2) 예레미야서의 거짓 예언들
요시야 통치 13년(주전 627년)에 예언활동을 시작했던 예레미야 는 남왕국 유다가 멸망할 때(주전 587년)까지 예언활동을 했던 예언자 이다. 그의 예언활동은 유다 지역에서 그치지 않았고, 포로 이후에도 이집트로 내려가 예언을 지속했던 것을 알 수 있다(렘 44장). 예레미야는 아나돗 출신의 레위 제사장 자손이었다(렘 1:1). 이러한 사실은 그가 엘리 제사장 계열 출신임을 의미하며,44) 아나돗이라는 지역이 역사적으로 솔로몬 시대 제사장 아비아달이 귀향 갔던 곳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훗날 예루살렘 제사장 그룹과 대립관계를 형성할 것임 을 짐작케 해준다. 예언자로서 사역 중에 예레미야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거짓 예언자’와 싸움이었다. 이 ‘거짓 예언자’에 대한 묘사가 예레미야 23장과 27-28장에 집중되고 있다. 예레미야는 예언자와 제사장이 다 사악했다(렘 23:11)고 말하면서 이들이 예루살렘 예언자 들이었고, 이들로부터 나온 사악함이 온 땅에 퍼지게 되었다고 선포한 다(렘 23:15). 즉, 유다 땅에 있는 모든 사악은 예루살렘 예언자로부터 나왔다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들을 ‘거짓’을 예언하는 자들로 규정하 고 있다(렘 23:25, 26, 32; 27:10, 14, 15, 16; 28:15).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예언자를 거짓 예언자로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차준희 는 예레미야 23장의 거짓 예언자들을 셋으로 정리한다.
첫째, 거짓 예언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들이다.45) 16절에 거짓 예언자 들은 헛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며, 그들의 묵시는 자기 마음에서 나온 것이지, 야웨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둘째, 거짓 예언자들은 근거 없는 평화를 남발하는 자들이다. 17절에 하나님을 멸시하면서 마음에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평안(shalom)을 확언하고,재앙이 결코 임하지 않을 것을 말하는 자들이다.
셋째, 거짓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파송(Sendung)과 위임(Auftrag) 없이도 잘도 달려가고,잘도 혀를 놀리는 자들이다(21절). 결국 거짓 예언자의 구원 예언은 모두를 죽이고, 참 예언자의 심판 예언은 모두를 살리는 셈이 된다.46)
예레미야의 거짓 예언 논쟁은 27-28장으로 이어진다. 이 논쟁의 중심에는 예레미야와 하나냐가 서 있다. 하나냐는 베냐민 지역 기브온 태생이었으나(렘 28:1),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예언자였다.예레미야 28장에 묘사된 하나냐와 예레미야의 바빌론 포로 2년과70년 논쟁의 시점은 시드기야 4년(주전 594년)이었고(렘 28:1), 바빌 론 포로는 7년 후에 일어날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 28장에서 누가 참 예언자이고, 누가 거짓 예언자인가?에 대한 논쟁은 7년 후에 결판날 사항이었다. 그러나 예레미야 본문은 그 결정을 앞당겼다.결국 하나냐의 죽음으로 참과 거짓 논쟁은 결판이 났다. 유다 백성이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지만 2년 안에 돌아올 것이라는 하나냐의 예언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렘 28:16), 예언했던 그 해에 갑작스럽게 죽게 된 것이다(렘 28:17). 흥미로운 것은 신명기 18장에서 참과 거짓 예언의 기준을 그 예언의“증험”과“성취함"(22절)으로 삼고 있는데 비해, 예레미야 28장은 예언자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예언했 던 당해 연도에 갑작스럽게 죽음으로 참과 거짓이 가려지는 새로운 기준안47)을 제시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냐에게 어떤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하나냐에 대한 평가는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온다. 두 가지인데, 하나는 야웨께서 하나냐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나냐가 백성으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했다는 것이다(렘28:15).이것이 거짓예언자를 구분하는 예레미야 28장의 기준이었다.48)
44) 마빈 A. 스위니, 『예언서』, 홍국평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5), 111. 45) 예레미야처럼 에스겔 또한 ‘거짓 예언자’를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들이라고 규정하고 있다(겔 13:2, 17). 이런 거짓 예언자들은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겔 13:7)를 말하는 자들이고, 또한 이들은 의인을 거짓말로 근심하게 하며, 악인이 회개하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다(겔 13:22). 참고. 임시영, “Eine Studie zum Vergleichen die Grenzfixpunktliste in Ez 47:15-20 mit Num 34:1-12,” 「신학과 선교」 45 (2014), 39-83
46) 차준희, 『예레미야서 다시보기』 (서울: 프리칭 아카데미, 2008), 259-261.
47) 더 흥미로운 것은 포로 이후의 저서인 역대기는 예언자에 대한 참과 거짓 논쟁이 없고, 예언자에 대한 무한신뢰를 요청하고 있다(“너희는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 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 하 20:20]). 딜라드(R. B. Dillard)는 역대하 20:20의 ‘예언자’를 ‘레위인 음악가’ 이자, ‘전투 행진을 위해 찬양하면서 예언하는 레위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역대기에는 앞선 신명기 역사서에 언급되지 않은 다양한 예언자들이 언급되고 있고, 그들의 책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리 크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역대하 20:20절 에서 말한 ‘예언자’를 ‘레위인’으로 한정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 레이몬드 B. 딜라드, 『역대하』 (WBC 15), 정일오 역 (서울: 솔로몬, 2005), 261-262.
48) 예언자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사상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 이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언급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에스겔은 예레미야처럼 ‘거짓 예언자’를 자기 마음에서 나는대로 예언하는 자(겔 13:2), 자기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예언자(겔 13:3),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된 점괘를 말하는 자(겔 13:6, 7, 9; 22:28)로 규정하고 있다. 참고. J. Jeremias,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188-190
3) 스가랴서의 거짓 예언들
스미스(R. L. Smith)는 스가랴 13장 2-6절을 ‘구원 신탁’ 혹은‘종말론적 정화에 대한 신탁’으로 보면서, 스가랴 13장 1절을 앞선 본문의 통곡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해야 할지, 아니면 2절 이하에 나오는 우상과 거짓 예언자들과 온갖 더러운 것을 정화시키는 본문과 연결해야 할지 난해하다고 말한다.49)
그러나 스가랴 13장 2-6절은13장 1절과 함께 읽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그 이유는 스가랴 13장2-6절의 ‘종말론적 정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1절에 나오는 ‘샘’에서 나오는 물이며, 1절에 나오는 ‘샘’이 다윗 집안과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의 죄와 더러움을 씻어 줄 것이기 때문에 스가랴 13장 2-6절을1절과 연결해서 읽는 것이 옳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2절에 ‘예언자 들’(nebiʾim)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들의 정체가 궁금하다. 2절에서 말하는 ‘예언자들’은 1절의 ‘샘물’로 씻어 정결해져야 하는 자들이기에‘참 예언자들’이 아닌, ‘거짓 예언자들’이 확실하다.50) 그래서 이런 맥락을 간파한 탈굼에서는 마소라 본문의 ‘예언자’를 ‘거짓 영의 예언 자들’(נביי רוח שקרא)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3절의 마소라 본문 또한 예언하는 자를 ‘거짓말을 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가랴 서의 ‘거짓 예언자’는 어떤 존재인가? 스가랴 13장 2절에는 야웨가 이 땅에서 쫓아버릴 대상 둘을 언급하고 있는데, 첫 번째가 “예언자”이 고, 두 번째가 “더러운 귀신”이다. 예언자가 하나님의 추방목록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예언자의 타락상을 시사한다.51) 이런 예언자가 예언할 때 그를 낳은 부모는 그를 칼로 찔러 죽여도 좋은데, 이유는 그가 거짓을 예언했기 때문이다(4절). 결국 종말의 때에는 거짓을 예언한 예언자를 부모가 죽이고, 야웨는 거짓 예언자를 그 땅에서 추방시킬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예언자는 어떻게 타락했던 것일까? 스가랴 13장에는 거짓 예언자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거짓 예언자는‘야웨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는 자’이며(3절), 거짓 예언자는 ‘환상’을 말하지만, 거짓된 ‘환상’을 말하고, 또한 거짓 예언자는 사람을 속이기 위해 털옷을 입지 않는 자이다(4절). 그리고 스스로를 가리켜 예언자가 아니라고 하며, 농부라 하고,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한다(5절).
끝으로 ‘거짓 예언자’는 “두 팔 사이에 상처”가 있는 자였다(6절). 6절에는 이 거짓 예언자의 이 ‘상처’를 “나의 친구의 집에서 받은 상처”라고 말하고 있는데, 스미스는 ‘거짓 예언자’의 두 팔 사이에 난 ‘상처’를 황홀경 속에서 입은 ‘상처’라고 말한다(왕상 18:28).52)스가랴 13장 2-6절에서 묘사되고 있는 ‘거짓 예언자’에 대한 설명은 모두가 ‘거짓’ 투성이인 셈이다. 예언도, 환상도, 행동도, 자기변명도 모두가 거짓말이다. 이런 거짓 예언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 날’에 열리는‘샘’이며, 그 ‘샘’이 그의 죄와 더러움을 씻게 될 것이다. 스가랴서에는‘참 예언자’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나 묘사가 빠져 있다. 다만 야웨의 영을 받아 외쳤던 무명의 “옛 예언자”(슥 7:7, 12)와 성전건축을 위해 지대를 쌓던 날에 활동했던 예언자들(슥 8:9)은 ‘거짓’이 아니었다.
49) 랄프 스미스, 『미가-말라기』 (WBC 32), 채천석ᆞ채훈 역 (서울: 솔로몬, 2001), 400.
III. 결론
고대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된 후 국가의 위상과 체계가 확립되 어 갈 무렵 이스라엘의 야웨 종교는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민간에서 행해지는 혼합 종교적 요소들이 야웨 신앙의 근간을 뒤흔들 게 된 것이다. 그 원인은 야웨 종교에 대한 확실한 정의와 실행의 부재가 주원인이었다. 야웨 신앙의 이러한 틈새를 공략했던 자들이 주전 8세기에 활동했던 네 명의 문서 예언자들이었다.
주전 8세기 문서예언자들은 전통적인 예배의식에 빠져서 ‘미쉬파트’와 ‘헤세드’를 내팽개친 자들에게 새로운 예배에 대한 개념을 심어주려고 노력했다.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미가가 그랬다. 이 네 명의 문서 예언자들은 전통적인 ‘제의’방식에만 집중하고 있는 자들을 ‘거짓 예배자’로 규정 했고, 반면에 일상에서 ‘정의’와 ‘인애’를 실천한 후에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와 소제를 ‘참 예배’요, ‘참 예배자’로 인식했다. 그런 면에서 주전 8세기 문서 예언자들에게는 일상에서 실천적 삶이 예배의 한 요소였으며, 이 ‘미쉬파트’와 ‘헤세드’의 실천이 예배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였음을 서로가 공감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왕정시대에 예언자 학교53)를 통해 수많은 예언자들이 양산 되었고, 이들이 서로 다른 예언을 하다 보니, 과연 참 예언은 무엇이고,거짓 예언은 무엇인가? 그리고 참 예언자는 누구이고, 거짓 예언자는 누구인가?에 대한 모호한 기준이 첨예화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참’예언과 ‘거짓’ 예언에 대해 정의를 제시해준 예언자가 있었는데, 미가,예레미야, 스가랴였다.
미가는 ‘참’ 예언자를 야웨의 영으로 충만하여 예언의 ‘능력’을 행하고, 사회적 약자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해 ‘정의’를 실천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의를 고발하고,책망하는 ‘용기’를 가진 자라고 규정한다.
이에 비해 예레미야서에는 자기 마음대로 예언하는 자, 근거 없는 평화를 남발하는 자, 하나님의 위임이나, 파송을 받지 않은 자,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했던 자가 거짓 예언자였다.
또한 스가랴는 ‘참’ 예언자 보다, ‘거짓’ 예언자에 집중하며, 고발한다. 거짓 예언자는 야웨의 이름을 거짓으로 말하며,거짓된 환상을 말하고, 사람을 속이기 위해 털옷을 입지 않는 자이며,스스로를 예언자가 아닌, 농부라고 말하면서 어려서부터 사람의 종이 었다고 거짓말하는 자들이다(슥 13:3-6).
이러한 참과 거짓 논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해 볼 수 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 역할을 오늘날 교회 목회자들이 대신한다고 볼 수 있는데, 오늘날 참 예언자는 말씀에 근거한 케리그마(Kerygma) 선포와 성서를 균형감 있게 해석하는 부름 받은 자이어야 한다.54)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의 참 예배 또한 주일예배만이 예배가 아니라, 6일 동안의 삶이 곧 예배의 자리이며,55) 이 예배의 자리에서 ‘미쉬파트’와 ‘헤세드’를 행한 후,주일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참 예배가 되는 것이다.
52) 401; 참고. R. C. Dentan, The Book of Zechariah (Interpreter’s Bible) (Nashville: Abingdon, 1956), 1109
53) 구약성서에는 ‘학교’라는 개념이 나오지 않고, 외경문서인 집회서(“배우지 못한 사람들아, 나에게로 와서 내 학교에 들어오너라”[51:23])와 마카베오하서(“자기 의 권한으로 체육관과 청년 학교를 설립하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안티오키아 시민으로 등록하도록 [...][4:9])에서 비로소 나온다. 그렇다고 구약시대에 교육이 없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하지만 건물로서의 학교와 시스템화 된 학교의 모습은 후기에 나타났던 것으로 보인다.
54) 박영범, “교회의 삶을 돕는 교회론을 향하여,” 「신학과 선교」 46(2015), 77-115. 55) 조기연, “예배역사적 관점에서 본 성결교회 예배의 기원과 방향,” 「신학과 선교」46(2015), 45-76.
참고문헌
강승일. “성취되지 않은 예언의 문제: 고대 이스라엘 예언을 중심으로.” 「장신논단」46-1 (2014), 13-36.
김래용. “미가서에 나타난 미쉬파트와 쉐에리트."「구약논단」 57 (2015), 10-37.
김순환. 『예배학 총론』.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김한성. “예레미야서의 거짓 예언자 규정과 그 의도.” 「신학논단」 60 (2010), 7-36.
도널드 E. 고웬. 『구약 예언서 신학』. 차준희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5.
레이몬드 B. 딜라드. 『역대하』 (WBC 15). 정일오 역. 서울: 솔로몬, 2005.
랄프 스미스. 『미가-말라기』 (WBC 32). 채천석ᆞ채훈 역. 서울: 솔로몬, 2001.
마빈 A. 스위니. 『예언서』. 홍국평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5.
박영범. “교회의 삶을 돕는 교회론을 향하여.” 「신학과 선교」 46 (2015), 77-115.
이동수. “참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 미가 3:5-8.” 「장신논단」 11 (1995),209-232.
이사야. “미가 6장 6-8절에 담긴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의 예배 비판과 사회윤리.”「대학과 선교」 35(2017), 103-130.
임시영. “구약성서적 노동이해에 대한 연구: 창조신학 안에서의 이분법적 노동관의 통합 논의.” 「신학과 선교」 48 (2016), 87-122.
_____. “Eine Studie zum Vergleichen die Grenzfixpunktliste in Ez 47:15-20 mit Num 34:1-12."「신학과 선교」45 (2014), 39-83.
조기연. “예배역사적 관점에서 본 성결교회 예배의 기원과 방향.” 「신학과 선교」46 (2015), 45-76.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 역사 (3판)』 박문재 역. 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6.
존 와츠. 『이사야 1-33장』 (WBC 24). 강철성 역. 서울: 솔로몬, 2002.
차준희. 『예레미야서 다시보기』. 서울: 프리칭 아카데미, 2008.
하젤 불록. 『구약 선지서 개론』 류근상 역. 고양: 크리스챤 출판사, 2001.
한동구. “규범과 리더십.” 「신학과 선교」 48 (2016), 123-152.
Allen, L. C. The Books of Joel, Obadiah, Jonah and Micah. Grand Rapids: Eerdmans, 1976.
Auld, A. G. “Poetry, Prophecy, Hermeneutic: Recent Studies in Isaiah.” SJT 33(1980), 567-581.
Barton, J. Isaiah 1-39 (OTG).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5. Broshi, M. “The Expansion of Jerusalem in the Reigns of Hezekiah and Manasseh.” IEJ 24 (1974), 21-26.
Carroll, R. P. When Prophecy Failed: reactions and responses to failure in the Old Testament prophetic traditions. London: SCM Press, 1979. Crenshaw, J. L. Prophetic Conflict: Its Effect Upon Israelite Religion (BZAW 124). Berlin & New York: Water de Gruyter, 1971.
Culver, R. D. “Isaiah 1:18-Declaration, Exclamation or Interrogation?” JETS 12 (1969), 133-141.
Dentan, R. C. The Book of Zechariah (Interpreter’s Bible). Nashville: Abingdon, 1956.
Fohrer, G. “Jesaja 1 als Zusammenhang der Verkündigung Jesajas.” ZAW 74 (1962), 251-268.
Hempel, J. “Vom irrenden Glauben.” ZSystTh 7 (1930), 631-660. Hermisson, H.-J. “Kriterien ‘wahrer’ und ‘falscher’ Prophetie im Alten
Testament: Zur Auslegung von Jeremia 23:16-22 und Jeremia 28:8-9.”ZThK 92 (1995), 121-139.
Jeremias, J.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s (ATD Ergänzungsreihe 6).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5.
Mendenhall, G. E. Law and Covenant in Israel and the Ancient Near East.Pittsburgh: The Biblical Colloquium, 1955.
Noll, K. L. Canaan and Israel in antiquity: an introduction (Biblical Seminar 83). London: T & T Clark, 2006.
Purinton, William T. “Prophets without Borders.” 「신학과 선교」 43 (2013),103-126.
von Rad, G. “Die falschen Propheten.” ZAW 51 (1933), 109-120.
Schmitt, J. J. Isaiah and His Interpreters. Mahwah: Paulist Press, 1986.
Sweeney, M. A. “The Book of Isaiah in Recent Research.” Currents in Research: Biblical Studies 1 (1993), 141-163.
Wolff, H. W. Hosea (BKAT XIV/1).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76.
_____. Micha (BKAT XIV/4).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82.
_____. Discovering the Old Testament’s New and Contemporary Significance:‘How Can We Recognize False Prophets? Criteria for the Difficult Task of Testing the Spirits’ in Confrontations with Prophets.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93.
소형근
첫댓글 후원참여가 없습니다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공과금을 내야만 계속 카페를 운영합니다
월세를 내야 한달을 삽니다 여러모로
힘든시기지만 후원을 해주시길 부탁합니다^^
카페에 후원참여가 없습니다.....
한달에 두세분 후원으로 카페를 계속할수가 없어요
방 월세와 공과금을 내야합니다 공과금을
못내고 있습니다 후원으로 도와주세요....
카페지기는 지병.때문에 매달 치료비가 많이듭니다
매월 공과금과 LH.주거임대 임대료 관리비 마련이 어렵습니다
먹을것 반찬거리도 사야 살아가는데 지병과 장애 나이도
들다보니 수입이 없습니다
카페지기 전화입니다 010.2261~9301
국민은행 229101-04-170848 예금주.황종구
농협 233012-51-024388 예금주.황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