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08월 26일 05시 15분에 집을 나서니 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가시거리가 30m가 채 안되는 것 같다
시속 40km 정도를 유지하며 조금 가다 보니 차츰 맑아진다
잠깐 볼일을 보고서 약속장소인 구미시청에 도착하니 05시 50분이다
잠시 기다리니 우리를 태울 버스가 들어온다 베낭을 버스 옆구리에
싣고는 신발주머니와 카메라 가방을 들고서 자리를 잡는다
06시 17분이 되자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금오공대와 4공단을 거쳐
천평톨게이트를 지나 중앙고속국도 상행선으로 올라간다
군위휴게소에 들러 아침밥을 먹는데 무채와 콩나물로 끓인국이
담백하니 좋다 요즘 속이 좀 좋지않아 무국을 자주 먹는데 아주좋다
안동, 영주를 지나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었던
죽령터널(4.6km)를 지나며 시간을 재어보니 3분 25초 걸린다
죽령터널보다 긴 터널은 국도 46호선(인천에서 고성)상에 생겼는데
올해 03월에 개통된 배후령터널로써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와 화천군
간동면 간척리를 잇는 터널인데 그 길이가 5.173m나 된단다
버스가 단양톨게이트에서 내리는 줄 알았는데 그냥 지나친다
산중턱에 가끔씩 구름이 걸쳐져 있는 모습이 정겹게 보여 차창을 거쳐
사진을 몇장 찍어본다 이윽고 제천톨게이트를 나와서 시가지를 벗어나
산길을 한참을 달리다가 어상천면사무소에서 화장실을 빌려 쓰고서
다시 가다보니 남한강 줄기가 나오는데 우측편으로 소백산이 보인다
에고~~ 한참을 돌아왔구만이라 그렇잖아도 왜 단양에서 안내리고
제천으로 갔는지 궁금했었는데 기사아자씨가 초행이라 몰랐는데다가
가끔 거짓말 잘하는 네비아가씨가 엉터리로 가르쳐 주어 그런갑다
기름값 비싼데 기름 더 닳아, 알바 하느라 시간 많이 허비해, 꼬불꼬불한
산길을 많이 가서 사람들이 멀미를 해.. 여러가지로 손해가 막심 하구만..
강에는 드문드문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잔잔한 수면에 비치는
햇살이 반짝 거리는게 마치 잉어가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이 보인다
강가로 난 길을 따라 가다가 고씨동굴 못 미친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하여
김삿갓면 소재지를 지나가다 보니 여성회원들이 멀미를 참느라 고생을 한다
드디어 김삿갓계곡으로 들어가니 새롭게 지어진 팬션들이 보이고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은 맑아서 새파란데 바닥이 훤하게 들여다 보인다
굽이굽이 올라가다보니 조선민화박물관이 보이고 민박집들을 숱하게
지나가니 드디어 김삿갓 문학박물관이 나타난다 구미에서 여기까지
4시간 10분이 걸렸나 보다 오대산 가는 것 보다 더 걸렸네 그려...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들을 하고서 다리 건너편에 만들어 놓은 김삿갓공원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는 옆을 보니 김삿갓 머리와 복숭아를 들고있는 손만으로
만들어 놓은 동상이 이채롭게 보이는데 이 동상은 김삿갓이 어느 노인의
회갑연에 가서 술 한 잔 얻어 마시며 지은 칠언시에 복숭아가 나오는 글이
있는데 아마도 그 글을 모토로 만들었는 것 같다
彼坐老人 不似人 (피좌노인 불사인) 저기 앉은 노인은 사람 같지 않구나
疑是天上 降眞仙 (의시천상 강진선) 하늘에서 신선이 내려와 계신게 아닌가
其中七子 皆爲盜 (기중칠자 개위도) 그 아들 일곱은 전부 도적들이니
偸得天桃 獻壽筵 (투득천도 헌수연) 천도복숭아를 훔쳐와 회갑잔치에 바치는구나
김삿갓의 본명은 병연(炳淵), 호는 난고(蘭皐:개울가의 난)이다.
1807년(순조7년)3월 13일 경기도양주군 회동면에서 출생한 김삿갓은
6세 때 조부 김익순이 선천부사로 있다가 홍경래 난을 진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투항한 것과 관련하여 폐족을 당한 후 황해도 곡산, 경기도 가평,
광주, 강원도 평창등을 전전하다 아버지는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난 뒤
영월 삼옥리(三玉里)에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며 살게 되었다.
조부의 행적을 모르고 자랐던 선생은 20세 때 영월동헌에서 열리는
백일장에서 '홍경래난 때, 순절한 가산 군수 정공의 충절을 찬양하고,
항복한 김익순을 규탄하라'는 제목의 향시(鄕試)에서 장원을 하였는데
어머니로부터 김익순이 조부라는 것을 알게 되자 조상을 욕되게 하여
하늘을 쳐다 볼 수 없다며 그 길로 벼슬을 포기하고 삿갓을 쓰고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로써 고산자 김정호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 전국을 돌아다닌 사람으로 요즘 말로 국토순례자라 할 것이다
김삿갓은 57세로 객사할 때까지 전국 각지를 떠돌아 다니면서 동가숙
서가식을 하였다 지친 몸으로 말년에 들른 곳이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구암리였는데 그곳 명소 "적벽(赤璧)"에 매료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않고
그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는데 삼년후 그의 차남이 영월로 이장하였다
소공원 말미에 있는 당집을 지나 소롯길로 접어들며 오늘의 산행 길에
나서니 10시 38분이다 조금 가다보니 자그마한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우리는 오른쪽 길을 따라 선락골쪽으로 들어선다
얼마가지 않아 시멘트로 포장된 길이 나오는데 예전에 임도로 닦은 길
같이 보인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물길이 임도와 계속 엇갈리며
자그마하게 만들어 놓은 징금다리를 폴짝 거리며 넘는 재미도 솔솔하다
길가에는 물봉선이 줄을 지어 피어있고 이름모를 야생초들이 즐비한데
가산산성 올라가는 길가에 많이 살고 있는 거북꼬리풀도 자주 보인다
올라가는 길은 대부분 그늘인데 가끔 땡볕을 받으며 가기도 한다
좌측 길가에 담장이 쳐져있고 개조심이란 문구가 보인다 이 산중에
생뚱맞게 무슨 개조심이여 하며 가는데 개짖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 것을 보니 예전에 여기서 보신탕용 개를 키웠을랑강 모리긋따
이십여분 갔을까 개울 옆에서 잠시 쉬는데 바닥에 호두 같은게 보인다
호두나무 같은데 확실하지는 않다 원래 호두나무는 중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산속에 야생으로 자라는 것은 없다
마을근처에 사람들이 심은 것 외에는 없다 옻나무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책에서 본 바로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중에 호두나무와
열매가 비슷한데 내용물은 적은 나무가 있었는제 도통 생각이 안난다
옆에서 추자라 카든데 대구에서는 호두를 추자라고 해서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산행후 찾아보니 추자(가래)나무가 맞단다 호두나무에는 열매가
한 개씩 떨어져 열리는데 비해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달리는게 다르단다
그라고 옛날에 민가가 있어서 호두나무를 심었는 것인지도 모르긋다
조금 더 올라가니 한 사람이 다닐 정도로 길이 좁아지며 가팔라진다
갈짓자로 돌아가는 폼이 제법 가파른가 보다 이게 오늘의 할딱고갠강..
두 달여 만의 산행인데다 요사이 운동을 게을리 한 탓인지 힘이 든다
사람은 힘든 일이나 운동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힘이 많이 들지만 고통을
견디며 지나다 보면 어느순간에 고통에 둔감해 지는지 면역이 되는지
모리지만 힘들다는 걸 덜 느끼며 지나가는 때가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든 일도 계속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숭아 한 쪼가리와
맥주를 약간 마시며 쉬다가 가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하늘이 가까워진다
이십여분 정도 오르니 드디어 능선이 나타난다 잠시 쉬다가 주위를 본다
여기는 유난히 굴참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중간중간에 나무껍질을 벗긴
흔적이 많이 보인다 옛날에 화전민들이 굴피집을 짓느라 그랬을 것 같다
이제는 껍질이 벗겨졌던 자국이 거의 원상회복이 다되어 가고있다
소롯길 주위에 커다란 철쭉들이 열을지어 있고 둥글레들이 듬성듬성 보이고
물푸레나무도 가끔씩 얼굴을 내미는데 서어나무는 몇그루 보이지 않는데
혓바닥에 하얀 밥풀떼기 두 개를 엊어놓은 며느리밥풀꽃들이 많이 보인다
시어머니 구박으로 죽은 며느리의 영혼이 많은 동네라서 그런강..??
소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처녀봉에 도착하니 12시 12분이다
소나무에 기대어 잠시 쉬며 생각해 보니 여기를 왜 처녀봉이라 이름을
지었는지 궁금해 진다 며느리들 한이 많아서 시집가지 말고 처녀로
늙어 죽으라꼬 처녀봉으로 지었을까 하는 씨잘떼기 없는 생각을 하다가
마대산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정상까지 거리는 없고 30분이라고 써 놓은
표지판을 뒤로 하고는 내리막 길을 가는데 총각봉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처녀가 있으니 총각도 있어야 되긋지 구색은 맞추어 놓았네 하며
다시 오름 길을 간다 거의 삼십분 왔는데 정상은 도무지 보일 기미도 없다
그러다 좌측 위에 소나무 한 그루와 바위 하나가 보이는데 여그가 전망댄지
총각봉인지 카는덴갑다 전망은 짜더러 볼 것도 없고 사진만 한 장 박고는
내리막 길을 쪼매 가다가 다시 오름길을 가다 보니 일행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서 김밥으로 배를 채우고 쏘맥 석 잔으로 입가심을 한다
다른 분이 가져온 고추가 내가 먹기에 가장 적당한 매운 맛이라 아주 좋았다
회장님이 준비해온 돼지 수육도 맛이 일품이었다 성사장 직업 바까도 되긋따
이윽고 마대산 정상에 오르니 14시 02분이다 처녀봉에서 정상까지 삼십분이라꼬
적어 놓았더만은 한 시간은 족하게 걸리긋따 이정표 맹그는 너그는 날라 댕기냐..??
정상은 시야도 트이지 않아 별로 볼 것도 없고 예쁘장한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들을 박으며 놀다가 다시 하산 길로 접어든다
조금 내려가니 가파른 길이 계속 나온다 무릎보호대를 끼우고서 내려간다
간혹 밧줄을 메어놓은 곳도 있고 속이 빈 나무들이 쓰러져있는 것이 자주 보인다
그리고 우리나라 소나무의 자랑거리인 금강송들이 쭉쭉 뻗어 있는게 보이는데
그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옛날에 금강송 한 그루로 전봇대 세 개를 만든다고
할 만큼 곧고 튼실한 나무다 그리고 송이버섯도 금강송에서 나는게 그 향이
가장 좋다고 하여 금강송이 많은 봉화나 울진에서 나오는 송이를 더 귀하게
여기는데 이곳 마대산에도 송이가 유명할 것이다 금강송이 많은 걸 보니...
삼사십분 내려오다 보니 서서히 싫증이 나기 시작한다 산길이 지겨워 지면
왜 덕유산 중봉에서 오수자굴을 지나 백련사를 거쳐 삼공리 주차장까지의 길이
생각나는지 모리긋다 여태까지의 산행 길에서 가장 지겨웠던 길이라서 그럴랑강...
계곡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이제 거의 내려왔나보다
조용한 곳에 들어가 반바지 같이 생긴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좀 더 내려가다가
개울물에 좀 들어가 땀을 식힐라꼬.. 한 시간 가량 내려왔나보다
드디어 김삿갓 할배의 생가가 나온다 난고당이라 붙은 방 한 칸과 초가집 한 채..
그런데 벽에 붙어있는 액자에 한글로 읽으면 발음이 묘한 시가 적혀있다
自知면 晩知고, 補知면 早知라 (자지면 만지고 보지면 조지라)...
그 뜻은 '혼자 알려고 하면 늦게 알고, 도움을 받아 알려고 하면 일찍 알게된다'
참으로 좋은 말인데 쫌 거시기하다 뽀나스로 삿갓 할배 배알 꼴려 지은 시 한 수
서당 욕설시(辱說某書堂)
어느 추운 겨울날 김삿갓이 시골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을 하며 내쫓으니 화가 치민 김삿갓이 시를 한 수 써 붙이고 나온다
물론 뜻은 별로 상관 없고 한글 발음만 중요한 시구이다
書堂來早知 (서당내조지) :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왔는데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 방안엔 모두 높은 분들 뿐이고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 되는데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 선생은 찾아와 보지도 않네
생가를 둘러 보고 내려오다보니 개울에 몇분이서 발을 담그고 있기에 거기에
합류하여 개울에 들어가 누우니 잠시만 있어도 추워서 발가락이 곱아진다
잠시 밖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이리저리 뒤척이다 나왔다
올여름 내내 물속에 몸을 담기는 처음이다 얼마전 문경새제에 가서 2관문까지
거닐다 오면서 발만 잠깐 담구었는게 올여름 피서의 전부였었는데 드디어
올해 처음으로 물속에 몸을 다 담구었다 아이고 시원해라..!!
내려오다 보니 상수원 보호구역이라꼬 현수막을 붙여 놓은게 보인다
에고 억수로 미안해진다 진즉 알았으마 안들어갔을낀데 죄송혀유..
김삿갓 공원에 내려와 물을 한 잔 마시고서 주차장에 들어서니 15시 48분이다
화장실에 가서 바지를 갈아입고는 쏘맥 한 잔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친다
산행을 준비하느라 애쓰신 운영진과 함께하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산행기, 잘 봤습니다.
마치 내가 여행, 산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나머지 여름 건강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