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하는 일이 오락산업이었으니 폭력배로 보는 거죠. 하지만 부 하를 둔 적도, 조직을 만든 적도 없어요. 업소 주변 깡패들에게 돈을 주거나 취직을 시켜준 적도 없습니다.”
그 예로 그는 ‘속리산 카지노’로 알려진 사건을 소개했다. “‘족 제비’라는 조폭 두목이 부하들에게 술을 진탕 먹이고는 버스를 타 고 속리산 호텔 앞으로 왔습디다. 호텔에 있던 다른 손님들도 모두 도망가고 난리가 났죠. 저는 버스 앞에 가서 섰습니다. ‘네가 원하 는 게 돈이나 지분, 아니면 부하 애들 취직인 모양인데 기대하지 마 라. 내 돈 들인 사업장이다. 나는 문을 닫으면 닫았지 너희들 말 못 들어준다. 대신 나중에 이 사업 정리하고 싶을 때는 딴 사람이 아니 라 너한테만 팔겠다’며 큰 소리를 쳤더니 슬그머니 물러나더라구 요.”
정씨는 1980년대 들어 사업을 확대하면서 호신용으로 권총을 구입해 다녔다. 일이 험해 호신용으로 구한 것이라고 했다. 세간에 알려진 ‘김태촌이가 무릎을 꿇었다’는 말은 바로 이 권총에서 나왔다.
“정확한 연도는 모르겠고 1980년대 초였습니다. 저를 보자고 해 ‘또 깡패놈이 업소 뜯어가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홀리데이인 호텔 2층 커피숍인가에서 만났는데 밖에 부하 60여 명이 서 있었어요. 앉자마자 권총부터 꺼냈습니다. ‘야. 네가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이거 하나면 너 먼저 죽어’ 하니까 태촌이 얼굴이 노랗게 질리더라구요.”
이후로 김태촌은 정씨를 형님으로 깍듯이 모셨다고 한다. 당시의 그 권총은 올림픽 직전 불법무기 자진신고 기간에 서울 강남경찰서에 신고했다. 김태촌과의 만남은 정씨가 조폭 대부 혐의로 조사를 받는 단초가 됐다.
김태촌은 그 뒤 정씨를 형님으로 따르며 돈을 빌리기도 했다고 한 다. 한참 뒤 정씨를 찾아온 김태촌은 “광주 신양호텔 슬롯머신 업 소를 사려는데 돈 3억원만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정씨는 그러나 곧바로 빌려주지는 않고 업소측에 먼저 연락을 취했다. 어찌된 영문 인지 알아야 했던 것이다. 업소측으로부터 ‘누구한테든 업소를 넘 겼으면 좋겠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돈을 빌려줬다.
“그 뒤 6개월 동안 단 한 푼도 빼먹지 않고 3억원을 돌려받았습니 다. 만약 그때 제가 업소에 알아보지 않고 돈을 그냥 턱 빌려줬으면 태촌이를 시켜 업소를 강제로 빼앗은 것으로 됐을 겁니다. 그럼 조 폭 수괴 혐의가 성립됐겠죠.”
홍준표 검사 “당신이 정덕중인 줄 알았다”
정씨는 “정치권 암투에 의한 희생양이냐”고 묻자 손을 내저었다. 다 지난 일이어서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고, 또 생각하고 싶지도 않 다는 것이다. 그러다 정씨는 “형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씨의 친형 덕중씨가 박철언씨의 월계수회에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홍 검사가 조사를 하다 ‘당신이 정덕중인 줄 알았다’고 합디다. 박철언과 관련된 인물을 걸려고 했는데 저를 형으로 잘못 알고 걸었 던 거죠. 평소 형보고 월계수회 그만 드나들라는 말도 많이 했는 데….”
정씨는 구속 당시 홍 검사나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 서운한 감정 이 있지 않았느냐는 말에 “그때는 있었다”고 말했다. 수사과정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는데 줄곧 원망하는 것 같았다.
“하루는 조사 도중 홍 검사가 ‘드라마 작가를 데리고 올 텐데 그 동안 지내온 생활을 쭉 설명해주라’고 합디다. 말이 됩니까. 뒤에 보니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더군요.”
당시에는 또 정씨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에 대해 정씨는 와전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정씨는 “홍 검사가 재산 을 사회에 환원하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며 그에 대해 “‘있 는 재산 다 내놓으면 모두 무죄로 해주겠느냐’고 반문한 것일 뿐” 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사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면서 이건개·박철언·신 건·전재기씨 등의 인사들은 만난 적도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대신 인터뷰를 마치면서 “박철언씨에게 전해졌다는 돈도 동생 덕일 이에게 준 것인데 그 돈을 덕일이가 마음대로 사용한 것”이라고 설 명했다. 그는 줄곧 슬롯머신 사업을 했고 그 과정에서 탈세를 한 것 외에 다른 커넥션은 전혀 없다는 말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