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예인(yain9297) 씨는 말씀하시길
조선실록에 근거하여 세종대왕이 홀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하는군요.
우리는 보통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만든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서지현(scskor) 씨는
세종혼자 만든것이지만 성삼문과 신숙주등의 노력도 약간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십니다 .
장봉규(jbg223) 씨는
세종혼자서 만들었다 주장 하십니다. 세종이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맏기고 편전에서 집현전을 오가며 문자에대한서적을 홀로 공부하시며 엄청난 노력끝에 만들었다 합니다. 그만큼 반발이 심했다는것입니다.
당시 사대부에게는 문자란 권위이자 권력이였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문자를 만든다는것은 비밀리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를 증명하는것이 반포후 집현전학사도 대거반대했다는 기록이있습니다.
이상은(shin2727) 씨는
홀로 훈민정음을 창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십니다.
당시에 한글창제는 워낙 비밀리에 진행시켜야하는것이였으며
세종은 신하들의 엄청난 반대를 크게 염려하여 반포전까지도
이를 비밀에 붙입니다...한글창제프로젝트는 세종의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왕세자 이향 수양 유 그리고 정의공주가 가장 많은 도움을 주게됩니다 특히 정의공주의 경우는 워낙 총명하여 다른 왕자들이 해석하지못하는것을풀어내어가장많은도움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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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슬옹씨는 인물] 최만리와 장영실은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 과정의 공로자 란 글에서
(출전: 김슬옹(2008), 한글(훈민정음) 공로자 28인 선정과 그 의미. 한글새소식 425호(1월호). 한글학회. 11-13쪽)
한글을 지켜 온 사람을 뽑으면서 한글 창제와 초기 보급에 큰 공적을 남긴 사람들을 먼저 뽑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먼저 다음 열네 사람을 먼저 뽑는다.
(1) 세종(이도) (1명)
(2) 정인지․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선로. (8명)
(3) 왕세자(이향, 문종), 수양대군(이유, 세조), 정의공주. (3명)
(4) 최만리, 장영실. (2명)
정인지를 포함한 여덟 사람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집필한 공동 저자들이다. 세종의 뜻을 이어 거의 완벽하게 풀이한 문자 해설서를 펴냈다. 정인지는 총 책임자로 세종보다 한 살 많은 50살이었다. 최항이 30대, 나머지는 20대 젊은 학자들이었다. 이들은 그 당시의 주요 문화사업,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이들이 풀이한 부분이 ‘해례’이기 때문에 ‘해례본’이라 부른다. 문종과 수양대군(세조), 정의공주는 창제 과정에서 많은 공로를 세웠다. 문종은 세종의 개인 비서로 책임연구원으로 큰 일을 하였다. 문무에 모두 출중했던 수양대군은 언문으로 번역하고 집필하는 일과 언문 관련 책 보급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정의공주는 세종의 둘째 딸로 정사 기록에는 없지만 야사나 정의공주 남편 쪽 족보 등에 의하면 세종의 새 문자 연구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한다. 최만리와 장영실은 간접 공로자들이지만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최만리는 비록 훈민정음 보급을 반대했지만(반대 상소는 창제 이후이다.), 그의 반대 상소 덕에 창제 과정과 그 당시 시대적 갈등, 세종의 생각 등이 잘 드러나게 되었다. 그의 문제 제기는 훈민정음 창제 동기, 목표, 과정을 역사 기록으로 남게 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장영실은 훈민정음 창제 직전까지 문자 창제와 직접 관련된 과학, 인쇄, 악기 연구와 개발을 세종과 공동으로 진행하여 훈민정음이 음률문자이면서 과학문자가 되는데 큰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