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빛나는가 (1) 재능의 진정한 비밀은, 자기 자신에 대한 뜨거운 믿음
인정받지 못해도 좋다. 돈을 벌지 못해도 좋다. 누가 뭐라 하든, 내 마음이 가리키는 꿈의 화살표를 따라가자. 그때부터는 재능보다도 열정이 관건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재능보다 열정이 중요했고, 열정보다 성실함이 중요했다. 재능과 열정과 성실이 하나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하나의 재능을 갖고, 하나의 재능을 위해서 태어난 자는, 그 속에 그의 가장 아름다운 생존을 발견해낸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건 바로 ‘재능’
며칠 전 술자리에서 ‘재능’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루어졌다. 타인의 숨겨진 재능을 어떻게 발견하는가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수다를 떠는데, 선배 한 분이 좌중의 두서없는 수다를 한 칼에 정리해주셨다.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건 바로 ‘재능’이라고. 인간이 끊임없이 매력적인 다른 인간을 찾는 한, 재능은 저절로 발견되는 것이라고.
정말 사람들의 무의식에는 타인의 재능을 발견하는 무의식의 감별장치가 달려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질투심 많은 사람들은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의 재능을 발견하면, 그 사람을 무턱대고 증오하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의 재능이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고통 없이 바라볼 줄 아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 그런 사람들은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압도적인 재능을 가졌거나, 타인의 재능을 인정하고 키워주는 일이야말로 우정의 제1요건임을 아는 사람들이다. 재능은 그 자체로 관능적이고 매혹적이기에, 언젠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어 있다.
타인의 재능을 바라보는 일은 기쁨과 질투를 함께 동반하지만, ‘나의 재능’이라는 문제에 부딪히면 우리는 쉽게 소심증에 빠지곤 한다. 20대 시절의 나는 항상 재능에 대한 불안에 시달렸다. 일단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재능이 있든 없든, 일단 내가 원하는 것을 찾는 일이 시급했던 것이다. 평소에는 그토록 영혼의 멘토를 찾아 헤매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 나는 내 문제를 혼자 결정하기를 원했다. ‘내가 어디에 재능이 있을까’를 집요하게 찾기보다는,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아 그곳에 나를 던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시즌, 내 마음을 사로잡는 화두는 바로 ‘재능과 직업을 일치시킬 수 있는가’였다. 나는 사실 글쓰기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글로 밥을 벌어먹고 싶지 않았다. 왠지 수치심이 들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그것으로 밥벌이를 걱정해야 한다면 정말 원하는 글을 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열정, 재능을 불태우는 연료 photographed by Seungwon Lee
재능을 발견하는 것은 ‘감각’이지만, 재능을 실현하는 것은 ‘열정’이다. ‘저 사람은 재주가 참 많은데, 왜 저렇게 인생이 안 풀리지?’라는 평가를 듣는 사람들의 특징은 열정과 재능을 일치시키는 뚝심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열정이야말로 재능의 연료이고, 성실이야말로 재능의 보호자가 아닐까. 플라멩고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열정이야말로 최고의 재능이라는 것이다. 춤의 열정에 흠뻑 빠져서 온몸의 소름끼치는 고통조차 망각하는 엑스터시를 느끼는 춤꾼의 지극한 순수함을 배우고 싶다.
돌이켜보면, 인생에 대한 그런 지레짐작은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속이고 있었다. ‘내가 재능이 있든 없든, 난 열심히 글을 쓸 거야’라는 것이 ‘의식’의 선택이었다면, ‘무의식’의 진심은 이런 것이었다. 정말 열심히 글을 쓴다 해도 인정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나의 길을 갈 만큼 나는 과연 용기 있는 사람일까? 칭찬받으면 금세 기분이 날아갈 듯 하고, 비판받으면 언제라도 절망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나는, 정말 나약한 인간이 아닐까. 도대체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그 두려움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아, 그냥 글쓰기는 취미로 삼아야지’라는 식의 비겁한 비상구로 도망치고 있었던 것이다.
재능의 발견은 나에 대한 뜨거운 믿음에서 온다
나의 뿌리 깊은 두려움을 인정하고 나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칭찬은 보약일 수 있지만, 매일 먹는 ‘밥’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인정받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평생 원하는 걸 하지 못한다면, 결국 잃어버린 꿈을 보상받을 길은 영원히 닫힐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기이한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인정받지 못해도 좋다. 돈을 벌지 못해도 좋다. 누가 뭐라 하든, 내 마음이 가리키는 꿈의 화살표를 따라가자. 그때부터는 재능보다도 열정이 관건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재능보다 열정이 중요했고, 열정보다 성실함이 중요했다. 재능과 열정과 성실이 하나되는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매일매일, 그 자리에 있는 것 photographed by Seungwon Lee
작년 여름, 베니스에서 유리 공예에 몰두하는 한 청년의 모습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청년은 매일 아침 공방에 나와 청소를 하고, 가게문을 열고, 손님들을 기다리며, 아름다운 유리구슬을 만든다. 그 하루하루의 노동이 그의 재능을 만들고, 그의 미래를 만들 것이다. 비가 오고 눈이 와도, 가끔은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어도, 결국은 매일매일 그 자리에 묵묵히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재능이 탄생하는 비밀의 화원이 아닐까. 매일매일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영롱한 유리구슬은 팔찌가 되고, 목걸이가 되고, 장식품이 되어, 사람들의 몸에, 집에, 일터에 존재할 것이다. 길을 걷다가 청년 자신이 만든 작품을 멋들어지게 착용하고 있는 낯선 사람을 보면, 청년의 가슴이 얼마나 뿌듯해질까. 재능의 힘이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내가 가진 솜씨를 타인을 위해 발휘하는 것, 그리하여 나만이 아니라 남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일상의 기적말이다.
스물네 살, 진로를 결정하던 그 시절의 나는 두려움도 많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첫 마음’이 있었다. 글을 처음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미칠 듯한 떨림과 설렘, 그 순간은 생애 딱 한 번뿐인 열광의 순간이다. 내 안의 문턱을 오직 내 힘으로 넘는 순간의 짜릿한 희열. 칭찬받고 싶은 욕심, 인정받고 싶은 열망의 늪을 조금씩 벗어나니, 무엇보다도 글쓰기의 과정 자체를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원고 마감일이 찾아오면 괜히 온몸이 욱신욱신 아플 때도 많지만, 원고를 끝내는 그 순간마다 날아갈 듯한 해방감은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그 해방감은 내가 책임져야 하는 원고를 힘겹게 써야만 느낄 수 있는 짜릿한 기쁨이다. 그리고 이제는 아주 조금 알 것 같다. 재능은 타인에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숨은 보석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믿는 자의 자발적인 열정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재능의 진정한 비밀은, 자기 자신에 대한 뜨거운 믿음이라는 것을.
p.s. 다음 주에는 20대에 소중히 간직해야 할 키워드 4/20, ‘재능’, 그 두 번째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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