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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고난이 왔을 때 배워야할 신앙의 교훈입니다.(시69:1-36),(1-6절 읽음)
2014, 8/10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시69:1-36절 말씀으로“고난이 왔을 때 배워야할 신앙의 교훈입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선포하겠습니다.
이 말씀, 선포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함께하길 원합니다.
휴가들 잘 다녀오셨는지요? 건강한 모습들 보니 반갑습니다.
지난주에 우리학생들이 집회 가서 은혜 받고 왔는데 기도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절기상 말복도 지나고 입추도 지나 이제 가을의 문턱으로 들어갔지만 그래도 낮에는 덥습니다. 끝까지 건강관리 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앞뒤,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 나누겠습니다. 샬롬.
시편은 오랜 시간, 여러 명의 저자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말씀으로 우리를 깊은 영적세계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경륜과 삶의 지혜, 그리고 어떤 고난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위대한 신앙의 모습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특히 본문은 다윗이 큰 위기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보인 신앙이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로 은혜를 주셨습니다.
첫째로, 무고한 고난을 이겨야합니다.(4절)
둘째로, 고난 중에 형제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6-7절)
셋째로,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해야합니다.(30-31절)
사랑하는 여러분!!!
요즘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윤일병사건을 보면서 인간이 참 잔혹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인간본능이 악한데 그 같은 짓거리가 군대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리스도안에서 새사람으로 변화되지 못했거나 변화되었어도 성령이 충만하고, 주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우리는 자신의 본능을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군대는 훈련을 통해 전쟁을 대비하는 곳입니다. 그래야 전쟁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고 배운 대로 신속하게 전투에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영적상황들을 예상해 미리 대비한다면 위기가 왔을 때 무난히 잘 넘길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위기가 닥쳐왔을 때 그는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그의 태도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다윗은 어떤 고난 앞에서도 결코 신앙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고난이 왔을 때 다윗과 같은 방법으로 고비를 넘기시고 복 받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고난이 왔을 때 다윗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무고한 고난을 이겨야합니다.(4절)
본문4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無理)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주게 되었나이다.”아멘.
다윗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양치는 목동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있는 형들의 안부를 물으러갔다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을 보고 참지 못하여 전쟁에 참여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거구인 골리앗을 물맷돌 하나로 이기고 졸지에 사울왕의 사위가 됐지만 왕이 죽이려는 것을 알고 예루살렘을 떠나 광야를 유리방황합니다. 광야에서도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블레셋 라기스왕 앞에서는 미친척까지 하며 생명을 부지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대적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됐지만 아들의 반역으로 또 다시 큰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반란을 평정하고 무사히 여생을 마감합니다.
그가 수많은 역경 속에서도 살아남아 엄청난 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에 대한 그의 견고한 믿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삼하7장을 통해서 다윗에게 지위와 엄청난 복을 약속했음에도 그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걸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믿음이 신실한 백성들에게도 고난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의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열정, 그의 영성은 단연 최고입니다.
그런 다윗에게도 오늘 본문을 보면 감당키 어려운 고난이 찾아 왔다는 겁니다.
① 도처에 다윗을 미워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고, 훔치지도 않은 물건을 물어내라고 강요를 하며, 심지어 다윗을 죽이려드는 사람들까지도 있습니다.
다윗의 생애를 보면 남에게 원한 살만한 삶이 아닙니다.
오갈 곳 없는 백성들을 돌봐주고, 전쟁에서 전리품을 얻으면 백성들과 함께 나누었으며,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왕을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서도 기름부음 받은 종을 죽일 수 없다는 하나님말씀에 순종하여 두 번이나 그를 살려줍니다.
이렇게 선한다윗을 왜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고 죽이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건 공중권세를 장악한 사단의 실체를 모르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사단이 구원받은 백성들을 실족시키려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알아야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 나와 예배하는 것 자체가 주님이 도우셨다는 증거입니다.
때문에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애매한 고난당한다면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벧전4:13-14절에서“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위에 계심이라”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고난이 축복입니다.
② 8절에서는 동족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형제들까지도 왕따를 시키며 그림자취급을 합니다. 이런 왕따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만큼 왕따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커서 인격을 망가뜨리고, 영혼까지 죽이는 중대범죄입니다. 교회에서 이런 생각과 행위는 철저히 비판받아야합니다.
교회가 약한자를 품지 못하면 세상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우리는 달라야합니다. 그런데 내가 잘못해서 그런 일을 당한다면 그래도 감수하겠는데 단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미움을 받는다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저도 신앙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런 기분 잘 압니다.
그런데 핍박받는 것도 아니고 미리눈치 봐서 타협하거나 신앙이 약화된다면 하나님보다 그 사람을 더 믿거나 핑계를 삼는 것이겠지요. 그러면 안 됩니다.
③ 더 심한 것은 10-12절에 다윗이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는데 왜 그랬을까요?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오직 영혼의 거룩함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면 기도응답도 바로바로 해주시고 빨리 이 고난을 넘겨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럼에도 악인들은 다윗을 욕하고 조롱하고 상항은 변화가 없고 고난은 여전합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다윗의 처지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시는지요?
나도 다윗처럼 애매한 고난을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여러 가지 고민이 있겠지만 그 결과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더욱 붙드는 것입니다. 고난이 꼭 마지막 때 양과 염소를 가르고,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작업처럼 느껴집니다.
ex)제가 아는 분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들어왔는데 그동안 엉망으로 살다가 갑자기 믿음이 생겼는지 아버지를 살려주면 신학하겠다고 서원하고 그때정말 간절하게 기도했답니다. 아버지가 살아났을까요?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하나님이 없다고 원망하며 6년 동안 마약과 술집기도로 폭력에 쩔어살다 결국 하나님을 만나 지금은 영적세계에 깊이 심취해 있는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또 한 경우는 초등학교 때 어려운 가정형편을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반응이 없자 하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떠나 살다 교회 다닌다는 조건으로 결혼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교회는 나오지만 하나님은 믿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릴 때 새 신발을 신고 교회 갔는데 누가 바꿔 신고 갔다고 70살이 넘도록 지금까지 교회안티로 살고 있습니다. 신발과 영혼을 바꿔버렸습니다.
이 세 경우는 지극히 작은 것 때문에 하나님을 시험하고 지옥을 선택한 경우입니다. 여러분!!! 다윗에게 극심한 고난이 왔을 때 그는 고난 앞에 굴복했나요?
아닙니다. 그는 정말 힘든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다윗의 이런 모습이 우리가 배워야할 첫 번째 신앙의 교훈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로 우리가 배워야할 신앙의 교훈이 무엇일까요?
고난 중에 형제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6-7절)
본문6-7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만군의 주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로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로 나를 인하여 욕을 당케 마옵소서. 내가 주를 위하여 훼방을 받았사오니 수치가 내 얼굴에 덮였나이다.”아멘.
교회공동체 사람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은 하지만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가면 두 번 놀란답니다. 한번은 천국에 올 것 같은 사람이 못 온 것에 놀라고, 또 한 번은 천국에 못 올 것 같은 사람이 온 것에 놀란답니다.
여러분들은 누가 봐도 천국에 올라갈 사람이고, 또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각자의 신앙의 깊이는 언제 알 수 있는가? 고난이 왔을 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다윗에게 극심한 고난이 왔을 때 그는 어떻게 했습니까?
주님 때문에 내가 욕을 먹고 온갖 모욕을 받는 것은 좋으나 형제들이 나 때문에 수치를 당하거나, 욕먹지 않도록, 신앙이 무너지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주를 바라는 자(가) 나(때문에) 수치를 당케 마옵소서. 주를 찾는 자(가) 나(때문에)욕을 당케 마옵소서. 이처럼 다윗은 자신이 위급한 상항에서도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의 신앙을 더 챙기고 연약한 자를 세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 하나님이 감동하지 않을까요?
여러분!!! 주변에서 큰 고난이 닥치면 믿음도 하나님도 없는 불신자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가끔 봅니다. 큰 일이 터지면 황망하고 경황이 없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수습하고 나의 행동을 하나님이 어떻게 판단할 것이며, 불신자나 형제들에게 어떻게 비치고, 어떤 영향을 마칠 것인지를 생각해야합니다.
나 때문에 다른 영혼들이 실족하여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 뒷감당이 안 됩니다.
막9:42절 말씀에“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비록 우리 눈에 가치 없는 사람이라도 실족케 하면 하나님이 책임을 묻겠답니다.
그런데도 쉽게 신앙인의 신분을 벗어나 사람들에게 악한모습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번 세월호사건으로 딸을 잃은 목사님, 장례식장에 갔는데 딸이 천국갔다면서 평안한 말로 오히려 저를 위로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만약 목사님이 과도한 슬픔으로 천국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습니다. 지난번 김종열집사님도 병원에서 장례를 준비하라 했을 때 권사님이 편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 걱정이 안 되고 가족을 떠나보내는데 슬프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천국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면서 과도한 슬픔을 억제하고 불신자와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 좋은 안수집사님이 주일날 직장가서 일하다 사고로 죽었는데 왜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느냐는 핑계로 실족하는 그런 모습을 보이면 정말 안 됩니다.
고난은 신앙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통과의례입니다.
이때가 바로 하나님께 내 믿음을 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고, 복받을 수 있는 찬스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나중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영토를 확장하고 나라가 부강해지며 큰 복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신앙 때문이 아니겠는지요?
하나님은 절대로 공짜가 없는 분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이란 말에는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뜻을 갖고 있는데 성경 여러 곳에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내 고난 때문에 이웃과 형제들에게 부끄러운 모습보이면 안 됩니다.
더 당당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증명하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공짜가 없으신 하나님께서 풍성함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끝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해야합니다.(30-31절)
본문30-31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아멘.
이 말씀을 보면서 다윗이 정말 하나님께 복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지금 다윗은 정말 말도 안 되는 무고를 당하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한 배에서 나온 형제들에게까지도 멸시와 조롱을 당하고 있는데도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게 제 정신일까요? 예 제 정신 맞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지금 당장 내 앞에서 태산이 무너지고, 세상이 뒤집어져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고난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있으면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에게 얼마나 큰 고난과 어려움이 닥쳤습니까?
다윗이 지금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만한 어떤 좋은 일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는 절대적인 확신과 믿음으로 감사와 찬양을 하는 것입니다. ex) 어떤 사람이 폭행당했다고 고소를 했지만 상대방이 부인해 기소가 안 되자, 내가 그 사람을 찾아가 말할 때 숨어서 폭행하는 것을 보라고 경찰관을 대동하고 갔는데 또 때리는 겁니다. 이때 이 사람이 맞는 것은 아픔일까요? 기쁨일까요? 기쁨이겠지요. 왜냐면 경찰관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아시고 기억해주시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있어도 감사와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본문 19절 말씀에“주께서 나의 훼방과 수치와 능욕을 아시나이다....”바로 이 믿음 때문에 다윗이 그 어려움과 고난 중에도 신앙을 잃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모든 고난과 수치를 아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만왕의 왕이시고, 천지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의 형편과 처지를 아신다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 감사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 며느리들이 시집살이를 많이 했는데 남편이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고 감싸주면 아내는 시어머니의 어떤 구박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지금도 역사하고 계시며, 한 번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얼마나 믿느냐가 바로 믿음이며 그 믿음이 이 땅의 축복과 내세의 상급을 결정합니다.
지금은 예수 믿기 참 어려운 시대며, 갈수록 믿음 지키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이 땅에 하나님이 남겨두신 남은 자 7천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남은 자 7천을 통해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가실 겁니다.
여러분들이 마지막 이 시대에 남은 자 7천이 되어서 다윗처럼 맡겨진 사명 잘 감당하며, 어떤 고난이 와도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