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떡볶이에도 레트로가 있다6월에 더 땡기는 맛, 추억의 6·25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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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여 년 전, 시장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연탄 화덕 위에서 끓어오르는 떡볶이를 먹던 기억이 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메뉴들이 생겨나고, SNS 속 맛집이라 각광받던 곳이 소리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지금,
넘쳐나는 먹거리의 홍수에 지쳤다면 추억 속 그 맛을 찾아 떠나보자.
추억까지 담긴 국물, 6·25떡볶이
80년대 (구)마산시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 치고 부림시장 골목 안 국물에 담겨있던 떡볶이와 목욕탕 의자를 기억하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냄비를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 국물에 숟가락을 담그며 떡볶이와 어묵을 먹는 모습이 마치 6·25 피난민 같다고 붙여진 6·25떡볶이.
언뜻 보기엔 밍밍해 보이는 빨간 국물 속 희멀건 떡에 뭔 매력이 있었을까 싶지만 일단 그 국물 맛을 보게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 당시 부림시장 골목에는 간판도 없는 이런 떡볶이 좌판이 몇 군데 있었다.
지금에야 ‘치즈떡볶이’, ‘자장떡볶이’, ‘카레떡볶이’ 등 그 종류만도 수십 가지가 넘지만 30여 년이 흘러도 6월이면 가끔 빨간 국물이 생각나는 건 6·25라는 이름에 더해 어릴 적 추억까지 그 국물에 담겼기 때문일까.
1981년 시작해 41년째 같은 자리, 같은 맛
그 시절 (구)마산시의 창동과 부림시장은 휴일이면 인파에 밀려 반강제(?) 걸음을 옮겨야 할 정도로 패션과 먹거리의 중심지였다. 지금은 화려했던 그 명성은 기억 속으로 묻혀버렸지만 부림시장 안 6·25떡볶이는 41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억덕(65) 사장은 진주에서 마산으로 시집와 먹고살기가 어려워 사촌언니와 함께 시장에서 떡볶이 장사를 시작했다. 그때 같은 골목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다 떠나고 지금은 강 사장 혼자 남았다. 그 자리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왔고 먹자골목으로 바뀌었다.
앉아서 국물이 찰랑대는 떡볶이를 건네고 떠먹다 보니 국물을 옷에 흘리기 일쑤. 그래서 화분 받침대를 그릇 밑에 받치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2000년 테이블이 놓인 가게로 옮겼지만 국물떡볶이는 예나 지금이나 맛도 모양도 그대로다. 심지어는 담아 주는 화분 받침대 모양까지 똑같다. 이 집 대표 메뉴에서도 밀려난 적이 없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추가 메뉴가 생겼다는 것뿐.
칼칼하고 깔끔한 국물, 행복한 한 끼
가게에 들어서면 오래된 테이블과 의자가 향수를 자극한다. 지금껏 내부수리를 하지 않은 덕에 자연스럽게 ‘레트로풍’이 됐다. 입구에서 커다란 냄비에 보글보글 끓고 있는 떡볶이를 보는 순간 급 허기가 졌다. 90년대 풍 핑크 꽃무늬 원탁에 자리를 잡고 떡볶이, 빨간떡볶이, 튀김, 김밥, 순대 등 종류별로 시켰다. 여기서는 “떡볶이 주세요” 하면 무조건 국물떡볶이를 준다.
떡볶이는 국물과 함께 퍼먹어야 제 맛이다. 칼칼하며 깔끔한 단맛이 30년 전 쪼그리고 앉아 먹던 그 맛 그대로다. 발갛게 투명한 국물이 입에 착착 붙는다. 국물을 마시다시피 반쯤이나 떠먹고 나서야 떡과 어묵에 눈이 간다. 여기서는 국물 인심이 후하기에 아껴먹을 필요가 없다.
빨간떡볶이는 일반적인 고추장 양념이 버무려진 떡볶이다. 쫀득한 쌀떡이 강한 고추장 맛을 중화시켜준다. 통깨가 듬뿍 뿌려진 김밥을 하나 집어 양념에 묻혀 먹으면 고소·달짝·매콤한 맛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튀김은 담백하고 바삭하다. 간식을 넘어 소박하지만 행복한 한 끼 식사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
강 사장에게 국물의 비결을 물었다. “뭐 특별한기 있나? 떡 하고 어묵에 물엿과 고춧가루 넣고 끓인기 다다” 라고 했다.
물엿과 고춧가루가 전부라는데, 이 맛을 잊지 못해 찾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왔으니 40년이 넘었다는 정법륜(59) 씨는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부림시장을 찾는다고. “부림시장에 오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며 “올 때마다 국물떡볶이 한 접시는 꼭 먹고 간다”고 했다. 떡볶이 한 접시를 놓고 친구와 수다를 나누는 것이 영락없이 40여 년 전으로 돌아간 여고생의 모습이다.
가게 바깥 의자에서 혼자 떡볶이를 먹고 있는 한 남성에게 눈길이 갔다. 마산회원구 회성동에 산다는 고대중(44) 씨는 24년 단골이다. “친구가 하도 맛있다 해서 왔다가 마 지금까지 눌러앉았습니더. 술 먹은 다음날 해장에도 그만입니더~”라며 한동안 안 오면 금단현상(?)이 생겨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온단다.
이 집 단골들은 오래된 세월만큼 주인과 손님의 관계가 아닌 한 가족처럼 느껴진다. “다른 데도 국물 떡볶이 많은데 맛이 달라. 세월이 얼만데.” 강 사장의 말이다.
취재협조 6·25떡볶이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서북12길 16-23
055)247-4830
강 사장의 아들 옥성원(41) 씨는 교직생활을 하다가 5년 전부터 6·25떡볶이를 가업으로 이어받았다. 6·25떡볶이 외에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일원에는 대를 이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가게들이 있다.
고려당
70~80년대 휴대전화가 없던 교복 시절, 약속의 아이콘이 되었던 ‘고려당’은 1959년에 생긴 빵집이다. 1982년에 생긴 ‘코아양과’도 2대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 빵집들에는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와 손자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오는 모습도 종종 보인다.
복희집
‘고려당’ 옆 골목 안에 위치한 ‘복희집’은 1971년도 떡볶이 장사를 시작해 지금도 단골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잡다한 재료 대신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깔끔한 팥빙수로 SNS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다.
이 가게들은 단순한 음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옛 마산사람들의 시간을 끄집어내는 기억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625떡볶이'를
동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글 이지언 사진·동영상 김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