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 [다큐온]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정원 200배 넘게 태울 수 있었던 비밀부터 사라진 라루선장의 행적까지! “1950년 흥남철수의 비밀 2부” (KBS 210626 방송) - YouTube
다큐ON (토요일 밤 11시 40분 KBS 1TV) “1950년 흥남철수의 비밀 - 2부. 라루 선장의 마지막 항해” (2021년 6월 26일 방송) ■ 최초 공개 -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항해일지 92세의 멜 스미스는 21살의 나이에 2등 기관사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올랐다. 그곳엔 2등 항해사인 로버트 러니, 3등 항해사인 벌리 스미스도 함께 있었다. 그들은 71년 전 흥남에 도착한 날, 배에 전달된 기묘한 명령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화물선인 배에 화물 대신 사람을 가득 태울 수 있겠냐는 요청. 사실 그들의 배는 군함이 아니었기 때문에 군의 명령을 얼마든 거절할 수 있었지만, 흥남부두의 상황을 지켜본 배의 책임자 ‘레너드 라루’ 선장은 곧바로 그 명령을 받아들인다. 그 날의 상황이 기록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항해일지를 <다큐on>에서 최초 공개한다.
■ 정원의 200배를 넘긴 승객, 그리고 김치 5의 탄생 당시 13살 소년이던 ‘양승권’씨는 흥남부두에서 라루 선장의 결단으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승선하게 된 피난민 중 하나였다. 그는 나무로 만든 임시 갑판을 세우고 쉴 새 없이 광주리에 사람을 실어 올리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모습을 또렷이 떠올린다. 그렇게 정원 60명의 배에 누울 자리도 없이 서로를 껴안은 채 빽빽하게 올라탄 14000명의 피난민. 그들을 태운 선원들마저 물도, 난방시설도 없는 이 열악한 항해에 남쪽에 도착하면 절반 이상은 죽을 거라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3일 동안 누구도 다치지 않았고 오히려 배 안에서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다.
■ 선장에서 수사로, 47년 만에 밝혀진 선장의 마지막 행적 14005명을 살린 기적의 항해로 불리며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던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레너드 라루’ 선장. 그러나 라루 선장은 흥남에서의 항해 이후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리고 47년 뒤, 그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곳은 놀랍게도 미국 뉴저지에 위치한 한 수도원이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카톨릭 수사 ‘마리너스’ 신부가 되어 성물방에서 제2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 평생 신도들에게조차 선장으로서의 삶을 알리지 않았던 마리너스 신부는 생의 마지막이 가까워지자 47년 만에 처음으로 스스로 흥남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그가 건넨 마지막 부탁은 한국인이 보고 싶다는 것. 마리너스 신부의 장례식엔 한국인 신도들이 참여해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영면에 든 후에도 그가 이어준 한, 미 수도원의 특별한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20210626
(386) [다큐온] 6.25한국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작전으로 손꼽히는 대규모 해상철수작전 ‘흥남철수작전’ “1950년 흥남철수의 비밀 1부” (KBS 210619 방송) - YouTube
#메러디스빅토리호 #흥남철수작전[다큐온] 6.25한국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작전으로 손꼽히는 대규모 해상철수작전 ‘흥남철수작전’ “1950년 흥남철수의 비밀 1부” (KBS 210619 방송)
“1950년 흥남철수의 비밀 1부” (2021년 6월 19일 방송) 『1950년 흥남철수의 비밀』1부. 작전명, 크리스마스 카고 ‘흥남철수작전’은 미 10군과 국군, 그리고 10만 명이 넘는 민간인 피난민까지 함께 구해낸 6.25전쟁 사상 가장 위대한 작전으로 손꼽히는 대규모 해상철수작전이다. ‘다큐on’은 1950년 12월 9일부터 24일까지, 작전이 진행된 보름 간 흥남부두에서 벌어진 다양한 사건들을 발굴, 추적한 다큐멘터리 ‘1950년 흥남철수의 비밀’을 2부작으로 방송한다. 가장 작은 배로 가장 많은 인명을 구한 사례로 기네스북에 오른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정원의 200배가 넘는 사람을 태울 수 있었던 피난민 배치의 비밀. 독일, 미국, 일본까지 세계 각지의 구조선박을 긁어모은 한미연합군의 기지. 방송 최초 공개되는 미 해군 10군단 보고서에 공식 기록된 구조 선박의 명부와 흥남에서의 항해 후 사라진 메러디스 빅토리호 라루 선장의 마지막 행적까지... 수십만 피난민들의 목숨과 미래를 바꾼 1950년 12월의 흥남부두.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찬 71년 전 그 겨울로 되돌아가 본다.
■ 23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액션리포트’ 맥아더 기념관에 보관된 한 장의 서류. 액션리포트(작전보고서)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6.25전쟁이 끝난 후 무려 23년 간 기밀에 부쳐져 있다가 70년대에 세상에 공개되었다. 액션리포트에는 보름간 진행된 흥남철수작전의 진행 과정이 매우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작전에 동원된 배는 군함부터 세계 각지에서 달려온 상선, 심지어 어선까지 다양했다. 그들이 각종 무기와 짐, 기름까지 버리고 실은 것은 '크리스마스 카고'라는 별칭으로 기록된 특별한 화물, 바로 민간인 피난민들이었다.
■ (최초공개) 피난민을 구한 13척의 배 장진호 인근에서 중공군에 포위된 미 10군과 국군을 구하기 위해 막힌 육로 대신 해상철수를 결정한 한미연합군. 남한군이 흥남부두에서 철수한다는 소문을 들은 북한 피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흥남부두에 집결한다. 그러나 피난민들을 위한 구조계획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때 나선 사람이 연합군 소속 민사부 통역관으로 흥남에 있었던 현봉학 선생이다. 동포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외면할 수 없었던 그는 포니 대령과 함께 아먼드 장군을 설득했고, 극적으로 민간인 수송 허가를 받아내기에 성공한다. ‘다큐on’에서는 이 순간을 기록한 미 해군 10군단의 보고서와 흥남철수작전에 참가한 배들의 명부까지 최초 공개한다.
■ 운명을 바꾼 항해 흥남을 떠난 배들의 목적지는 부산과 거제도. 배들이 정박한 곳에는 여지없이 대규모의 피난민촌이 생겨났다. 빈손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은 그곳에서 다시 처음부터 새 삶을 쌓아올려야 했다. 피난민 중에는 화가 이중섭. 현재 대전의 명물로 손꼽히는 ‘성심당’의 창립자도 있었다. 1950년 흥남부두를 떠난 뒤 71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은 삶은 저마다 다르지만, 또 닮아있다.
한국전쟁 흥남 철수의 영웅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선장 이분에게 늦었지만 국가의 이름으로 훈장이나 휘장을 수여하는 것을 청원합니다.
미국 대통령이 수여한 APOSTLATOS MARIS Star of the Sea Award |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이 수여한 향군대휘장 |
라루 선장은 1914년 1월 14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고, 바다에서 22년을 보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대서양에서 상선을 타고 민간인으로서 작전에 참가했다.
1950년 12월 22일 부터 25일까지 빅토리아호의 기적은 레너드 라루 선장 덕분에 가능했다. 당시 36세이던 선장은 배에 실린 물자와 무기를 버리고 인명을 구했다. 최대2,500명까지 승선이 가능하였으나 22일 밤9시 30분부터 23일 오전11시 10분까지 발디딜 틈 없이 1만4000명의 피난민을 승선시켰고, 흥남에서 거제도 장승포항까지 3일간의 항해 동안 수많은 어뢰를 무사히 지나 만사천의 피난민을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거제까지 이동시켰다. 그의 용기가 1만4000명에게 자유를 선사했고 그 후손은 10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 후손 중 한 사람이라고 2017년 방미 때 고백했다. 휴전 후 그는 수사가 됐고, 뉴저지주 베네딕토회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살다 2001년 별세했다. 최근 미국에선 그를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라 한다. 국가보훈처는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1914년 1월 14일~2001년 10월 14일) 미국 선장을 2020년 1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이런 분에 대해 우리나라는 너무 대접이 소홀한 것이 아닐까? 그 분이 거의 평생을 이름 없는 수사로 지낸 수도원에는 한국정부가 수여한 것이 아닌 재향군인회가 수여한 휘장증이 있을 뿐이다.(본 휘장의 사진은 숭문고등학교 27회 동기생인 김승길씨가 미국 방문 중 촬영해온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곁에 있는 미국대통령이 수여한 Star of the Sea Award 와 비교되어 더욱 미안하고 초라하게 보인다.
레너드 라루 선장 (메러디스 빅토리호) 성인 추대 본격화, 흥남철수 (tistory.com)
크리스마스의 기적, 레너드 라루 선장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소문과 진실 | 레너드라루 선장 관련 자료 모음 - Daum 카페
경상남도김해6.25전몰군경유자녀회 | 12월의 6.25 전쟁영웅 레너드 라루선장 - Daum 카페
라루 선장은 1914년 1월 14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고, 바다에서 22년을 보냈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대서양에서 상선을 타고 민간인으로서 작전에 참가했다.
빅토리아호의 기적은 레너드 라루 선장 덕분에 가능했다. 당시 36세이던 선장은 배에 실린 물자와 무기를 버리고 인명을 구했다. 최대2,500명까지 승선이 가능하였으나 22일 밤9시 30분부터 23일 오전11시 10분까지 발디딜 틈 없이 1만4000명의 피난민을 승선시켰고, 흥남에서 거제도 장승포항까지 3일간의 항해 동안 수많은 어뢰를 무사히 지나 만사천의 피난민을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거제까지 이동시켰다. 그의 용기가 1만4000명에게 자유를 선사했고 그 후손은 100여만 명으로 불어났다. 문재인 대통령도 그 후손 중 한 사람이라고 2017년 방미 때 고백했다. 휴전 후 그는 수사가 됐고, 뉴저지주 베네딕토회 성 바오로 수도원에서 살다 2001년 별세했다. 최근 미국에선 그를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라 한다. 국가보훈처는 레너드 라루(Leonard Larue, 1914년 1월 14일~2001년 10월 14일) 미국 선장을 2020년 12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이런 분에 대해 우리나라는 너무 대접이 소홀한 것이 아닐까? 그 분이 거의 평생을 이름 없는 수사로 지낸 수도원에는 한국정부가 수여한 것이 아닌 재향군인회가 수여한 휘장증이 있을 뿐이다.(본 휘장의 사진은 숭문고등학교 27회 동기생인 김승길씨가 미국 방문 중 촬영해온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럽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곁에 있는 미국대통령이 수여한 Star of the Sea Award 와 비교되어 더욱 미안하고 초라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