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은 동기들이 어느 때보다 새 희망에 가슴 설레나 보다. 1월 둘째 주 월요일 영호의 제안으로 부산에 사는 초등학교 동기 여덟 명이 모였다. 일흔 중반의 초딩 동무들이 새로 들어선 목장원에서 무광이가 점심을 사고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올해로 60년 만이네.”라고 말문을 열자 “이제 우리 동기도 얼마 남지 않았제”라고 받는다. 그런가하면 누군가는 “우리가 다닌 학교가 곧 폐교 된다더라”며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10여 년을 투병하던 정직이를 보낸 지 달포만의 모임이었다. 문제가 산 초클릿을 입에 물고 우일, 무광, 종두, 영호, 봉국, 태용이 등 여덟 명이 갈맷길을 따라 바닷가를 걸은 뒤 동삼동 중리 쪽으로 올라가 벌교할매집의 전라도식 팥칼국수를 나눠 먹은 뒤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봉래산 둘레길을 걸었다. 이름만 불러도 그리운 우리가 차례로 산을 올랐다. 봉황이 깃든다는 명산, 영도섬 한가운데 자리 잡은 봉래산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에 오르는 산길이 몸에 부쳤다. 더구나 구두를 신은 우일이는 산길을 걷기가 불편했을 텐데 동무들과 어울려 걷는 즐거움이 더 큰 산행이었나 보다. 늙는 줄 모르고 어느새 늙어버린 어린 날의 동무들이 나이 들수록 고향의 황토빛 물빛과 질펀한 갈대밭을 닮아가는 것 같았다. 동무들을 만나면 어린 날의 추억과 고향의 흙내음, 그리고 서리를 함께 하던 우정의 따뜻한 체온이 느껴진다. 산을 오르는 길에 쉬어가면서 옛 초딩시절의 추억이 화제가 되었다. 우리는 1,2학년 때 효주의 어머니이자 담임이었던 안정자 선생님을 비롯해서 3,4학년 때 조삼현 선생님과 5,6학년 때 박창수 선생님까지 담임선생님의 이름을 모두가 기억하고 있었다. 참 자랑스런 기억력이다. 돌이켜보면 안정자 선생님은 철부지 우리의 어리광을 받아주시던 엄마 같은 분이었고 우리가 찾아 모셔야할 은사님이셨다. ‘ㄱ’, ‘ㄴ'반 두 반으로 동기생이 120여 명인 우리 명지초등학교 제32회 졸업생 중 절반인 60여 명이 남학생이다. 헤어보니 먼저 간 동무들이 벌써 30여 명으로 절반이 넘었다.
우일이가 먼저 간 동무들의 이름을 적은 한 장의 메모지를 내놓았다. 학우, 익준, 춘남, 성부, 근수, 화남, 상근, 판성, 우길, 문복, 호철, 창근, 청조, 백천, 용모, 정행, 찬길, 종보, 종섭, 인호, 중근, 구남, 일대, 정갑, 진곤, 종태랑, 금대, 성길, 강수, 정직이까지 모두 설흔 명에 달했다. 그 명단에 없는 친구들의 안부를 물으며 스스로를 확인하는 시간이 한동안 길었다. 동삼동 바닷가에서 조개무지의 발굴로 신석기 때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영도섬에는 해발 394.6m 높이의 봉래산 정상인 조봉에 오르는 길은 손봉(360m)과 자봉(391m)의 산봉우리를 차례로 거친다. 유호, 승대, 회성, 배율, 서울에 사는 입웅이가 빠지고 거의 다 모였다. 목장원이라는 이름도 신라시대 이후 명마를 기른 목마당이 있었다는 삼국사기와 고려사의 역사기록에서 유래한다.
영도는 부산에서 가덕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북항대교와 남항대교로 이어진 뒤로는 부산의 외곽순환도로가 좌우로 시원하게 뻗었다. 절영도라는 말도 말(馬)과 관련이 있는 지명의 유래를 가졌다. 이곳 목마당에서 자란 말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한번 뛰기 시작하면 자신의 그림자도 따라오지 못한다 해서 절영도라 불렀다고 한다. 제주도 전설에 설문대할망이 등장하듯 영도에도 할매바위 전설이 전해진다. 영도 할매는 영도 주민을 보살피다가도 영도를 떠나면 짓궂은 심술을 부린다고 한다. 지난 60년대까지는 영도의 주봉을 고갈산이라고 불렀다. 고갈산의 유래는 일제가 조선인의 정기를 말살시키려고 산이름 마저 고갈산이라고 불렀다는 아프고 슬픈 역사를 가졌었으나 60년대초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
우리가 다닌 명지초둥학교는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인 지난 1909년 당시 구한말 조정의 칙령에 따라 공식인가를 받은 사립 동명학교가 전신이다. 개교 이후 1923년 4월 명지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다가 1938년 명지공립상심소학교로 이름이 고쳐졌다. 1941년에는 다시 명지공립국민학교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해방이 되고 명지국민학교로 불리다 문민정부가 광화문 들머리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면서 1996년 3월부터 명지초등학교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초라한 교정의 늙은 향나무 한 그루가 100년이 넘는 이풍 진 세월을 말없이 머금어 왔다. 올해 3월이면 명지초등학교는 폐교되고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의 국제신도시로 옮겨간다고 한다. 명지초등학교 자리에는 금정산 청소년 수련원의 분원이 들어서면 그 향나무는 새로 지은 학교에 옮겨 심는단다.
봉래산 허리길 따라 솔숲과 편백산림욕장의 나무 가지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부산 남항 앞바다 묘박지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물이 흐르는 물길 쪽으로 일제히 뱃머리를 향하고 있다. 닻을 내린 배들이 하나같이 바다를 그리워하고 지나온 뱃길의 노스탤지어에 젖어 머리를 같은 방향으로 조아렸나 보다. 남항 저편으로부터 바다 냄새를 실은 해풍이 신춘(新春)의 기별을 머금은 듯 싱그럽게 불어온다. 병신년 새해 첫 번째 모임을 아름다운 섬, 영도에서 가진 초딩 동무들의 산행은 우리들의 초상을 돌아보게 한 해맑은 자기성찰의 하루였다. 우리나라 연령별 인구수는 74세의 생존인구가 20만 2천 376명이라고 한다. 우리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어느새 서산마루에 걸린 저녁 해가 붉게 타 망망대해에 눈부신 윤슬을 펼쳤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붉은 노을이 우리의 어린 날 추억과 옛이야기를 말없이 긴 꼬리를 물고 섰다.
귀 천
천 상 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첫댓글 추억담긴 이야기 잘 보고 나갑니다.^^
추억을 함께 나눌 오랜 친구가 있다는 것...그것이 행복인 것같습니다...모두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영도 앞바다가 정말 아름답지요.
국장님 주님의 평화 안에서 건강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어릴적 함께 했던 친구들...오랜 친구들과 함께 하신 시간들이 얼마나 행복하셨을까요?
제 입가에도 미소가 번지네요~ ^^*
정겨운 초등친구들과 새해맞이 산행으로 아름다운 추억 남기셨네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일 많으시길 기원합니다.^^*
서울에서는 초등학교 모임이 없는데...
가끔 시골이 고향이 친구들이 초등학교 동창모임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먼나라 얘기 같았는데. 좋은 만남같아요.
아름다운 추억, 정겨운 동무들...그림 같아요...
항상 건강하시고..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