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풍경과 겨울단상
유옹 송창재
오늘은 24절기중
가장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인 대설이란다.
예전에는 소설보다는 덜 추웠지만 눈은 많이 왔었다.
지금이야 우리 나라도 갈수록 사계절의 구분이 모호해져 금수강산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그리고 그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세대들도 많을 것이다.
대설이 지나고 며칠은 어린 악동들에게는
신나는 날들이 되었다.
산더미처럼 쌓인 눈 덕분에 조금이라도 비탈진 언덕 길은 모두 썰매판이 되었고 논바닥과 얼어붙은 농수로에는 까마귀만큼 아이들이 붙어서 썰매들을 타며 팽이도 치고 못치기도 하며 겨울 방학중의 최대의 시즌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최고조에 다다른 겨울 고비에서 나머지 겨울을 나는데 온 정신과 걱정이 집중되었다.
그때의 겨울 나기는 평생 나기였다.
한해 겨울만 제대로 나면 평생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어찌나 추운지 다리 밑에서 부랑자들은 동사를 했고, 언덕 밑에 까마귀가 까맣게 얼어 죽었다.
방 문고리를 잡으면 손가락에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어 오른 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떼어서 방에 들어 다녔다.
방안에 둔 밥상 위에서는 몇개 되지 않는 반찬 그릇들이 미끄럼을 탔다.
워낙 가난했던 우리 집만의 풍경이었는지도 모르지만... 불과 5,60년 전의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느 적 이야기냐고 완전 꼰대 취급을 당하는데 이것이 과연 잊고 살아야 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살아 온 우리들의 이야기인지 생각하며
겨울 따뜻한 방에서 이 글을 적어본다.
요즘 김장 철이다.
길을 가다보면 배추를 실어 문 앞에 둔 집들이 더러 보였다.
그것도 변두리 시골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옛스러운 풍경이 되고 말았다.
편리성과 효율성을 주장하며
김치 공장이 따로있어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리며 돈으로 살지만
그러한 시류의 옳고 그름을 말하려 하는 것은 아니다.
며칠 전에
눈이라도 내리면 가 볼 수가 없는 대아리 저수지를 끼고 넘어 운일암, 반일암을 거쳐 진안으로 혼자 드라이브를 떠났다.
겨울 산촌이 좋아 일부러 산길 도로인 운장산을 넘어 진안으로 갔다.
이 길은 참으로 멋진 길이다.
양쪽으로 산들이 있어 가을에는 온갖 낙엽들이 자동차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 다니고, 봄에는 진달래 개나리들이 만산을 치장하며
군데 군데에 몇 집들 있는 산촌마을의 정다운 풍경들은,
거주하시는 그분들은 생활하기가 버거우시겠지만 여행객들에게는 아주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는 길인 것이다.
그 길을 따라 가보면 용담댐의 절경도 만나게 된다.
산간 마을에는
아직은 겨울이 덜든 양지바른 곳에서
아마 이곳의 모든 여자들이 모였을 듯하게 모여 김장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공동으로 김장을 하는지도 모른다.
머리에는 저마다 수건을 쓰고 손에는 긴 고무장갑을 끼고,
서로 웃으며 이야기하며 배추를 씻어 마루에 놓고 있었다.
길 가다 차를 세우고 우두커니 그 모습을 바라 보았다.
물론 그 속에는 우리 어머니도 계셨다.
그때 엄청나게 추웠던 겨울에는
김장을 하고 연탄을 100장이라도 떼어 놓고 쌀 한 가마니라도 들여 놓으면 그 한 겨울뿐만 아니라 평생을 살 것 같은 행복들을 느꼈다.
쌀은 고사하고 고구마 한 가마니라도 마루 한 켠에 올려 놓으면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신이나 했었다.
그래도 가꾸고 사는 집에서는
깨끗한 알 밴 포기 배추들을 갈라 김장을 하지만, 그것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집에서는 밭에 나가 배추를 자르고 난 작은 찌꺼기 배추들을
또는 배추를 다듬고 남은 푸른 잎들을 주워 모아 남들의 간국을 얻어 절여 김장의 흉내라도 낼 수 있었다.
연탄가스가 새 들어오는 방 구석구석은 오래 묵은 신문 지와 두꺼운 시멘트 종이로 일일이 막느라고 부산을 떨었다.
그렇게 해도 해마다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다리 밑에 얼어 죽은 사람과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을 합하면 아마 지금 출산율 보다 더 높았을지도 모르겠다.
불과 얼마 되지 않은 세월 속에서
우리는 모두를
잊고서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풍부하고 화려하게 살았던 것으로 착각들 한다. 물론 변하는 세월에 굳이 구질구질 했던 과거에 집착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이제는 그때 겨울이 마치 전설따라 삼천리처럼 전설이려니 하고 내지르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한 일상이라고 생각하는 나 조차도,
진안 어느 산골에
허리 굽은 아낙네들의 모습에서 엄마를 보며 그때를 생각해 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쓰면,
마치 내가 엄청나게 늙은 꼰대처럼 보는 사람들도 있고,
진보와 보수를 나누어 예전의 보수에 천착해 있는 피해주의자라고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낭비하고 방만하고 모든 가치를 물질로만 재단하는 것이 올바른 가치이고 세상을 올바로 발전시킨 결과라고 강변 할 수 있겠는가?
발달된 현대에서도
우선 먼저는 인간이다.
우리 이제는 찾아서 생각하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은 꼰대들의 몫이 아닌 진보자들의 몫이다
그래서 그때는
겨울나기가 평생나기였던 것이다.
그해 겨울을 버티지 못하면
살 수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은 무엇으로 사는지
우리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