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이사야(65)/기도
제목 : 기도는 벽에도 문을 만든다!
성경 : 사 38:1~8
찬송 : 363장
저자 : 이삼규 목사
출처 : 20230510 낙양교회 수요예배
사 38: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 38: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사 38: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사 38:4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 38: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사 38: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사 38:7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사 38:8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이사야 36~37장은 앗수르 왕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위태했던 국가적인 위기 상황을 다루었는데, 38~39장은 히스기야의 질병으로 인한 개인적인 위기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라는 말이 있지요. 예루살렘과 히스기야의 상황에 꼭 맞는 말입니다. 이 두 이야기에서 중요한 공통점은 위기에 빠진 히스기야가 기도함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는 것입니다. 앞 단원들은 구원이 신뢰와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기도는 바로 신뢰의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1~8절)은 히스기야의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그의 기도에는 직접적으로 병을 고쳐달라는 요청은 없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물론 히스기야가 완전하고 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애굽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 과오가 있었고(30:1~2; 31:1~3), 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처음 쳐들어왔을 때는 조공을 바쳐 위기를 모면하려고도 했었습니다(왕하 18:1~16). 그러나 그의 생애는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큼 하나님 앞에 신실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삶을 사는 것은 중요하지만, 히스기야가 구원을 받은 것은 그의 신실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과 세우신 언약 때문이며, 그의 눈물과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선한 행위가 보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다윗의 이상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겸손하게 그의 도우심을 구할 때 은혜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죽을병이 든 히스기야
사 38:1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그 때에’는 히스기야가 병에 걸린 것이 앞 사건과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즉 히스기야가 통치하던 시대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많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온 사건입니다. 앗수르 군대가 유다를 침공했던 기간이 몇 년 정도인 것 같은데 그동안 유다 백성과 히스기야 왕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전쟁이 발발했고 히스기야 자신은 중병에 걸려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오늘날로 말하면 암에 걸렸을 확률이 높습니다.
히스기야가 유다 왕으로 재임한 시기가 29년 인데 본문 말씀처럼 15년을 더 살게 된다면 그가 병에 걸려 죽게 된 때는 왕이 된 지 14년째였고 그의 나이는 39세쯤으로 추정합니다. 아직 마흔도 안 되어 병으로 죽게 되었고 이때는 자식도 없을 때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침공과 개인의 심각한 질병, 이 두 가지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믿음의 사람도 감당하기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히스기야에게 두 가지 절망적인 상황을 모두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아예 사망 통보를 하셨습니다.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곧 죽을 테니 유언을 하고 모든 일을 정리하라고 하십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내가 죽을 것을 명확하게 알려 주시면 더 속이 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다 마치지 못한 채로 죽는다면 얼마나 많은 아쉬움이 남겠습니까? 또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이 받을 큰 고통을 생각하면 죽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그렇게 신실한 하나님의 종 히스기야를 죽을병에 걸리게 하셨고, 또 이사야를 보내셔서 죽음을 통보하게 하셨을까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유다 백성과 히스기야의 신앙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하게 우려하시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즉 유다 귀족과 왕족은 별로 신앙이 없었고 심지어는 히스기야도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신실한 사람이었지만 못마땅하게 보시고 ‘네가 그렇게 흐리멍덩하게 일을 할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하시며 사망 선고를 내신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길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상황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때로 성도는 최악의 상황에 놓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온실 속 화초로 키우지 않으십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들도 언제나 고난과 역경에 직면합니다. 다만 믿음으로 극복할 뿐입니다.
히스기야가 벽을 향해 기도하다
사 38:2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사 38:3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유다의 대표적인 성군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몸부림치는 히스기야에게 통보된 시한부 선고는 너무도 가혹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 가운데서 히스기야는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는 낙망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벽을 향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일대일로 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다른 것을 보지 않겠다는 신앙의 결단이기도 합니다. 이 기도는 이내 통곡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만큼 히스기야의 기도는 간절했습니다. 히스기야가 본 벽은 꽉 막힌 그의 상황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가 의지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 하나님 한 분만이 그 상황을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 기대는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음을 히스기야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눈물의 기도는 무엇이었습니까?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이 기도는 자신의 공로를 근거로 사망 선고를 취소해 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았는지 고백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신실하게 살았던 지난날을 돌이켜 보며, 죄에 빠졌던 최근의 영적 상태에 대해 심히 마음 아파했을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통곡은 회개의 통곡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오직 하나님의 긍휼밖에는 소망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드리는 진신 어린 회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입니다. 통회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통곡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입니다. 위기가 닥쳐올 때, 정신을 차리고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해답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절망의 벽에서 소망의 문이 열리다
사 38:4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사 38:5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
사 38:6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히스기야의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벽을 보고 기도했는데, 그 벽에서 소망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간절한 기도는 막힌 벽에도 문을 만드는 법입니다. 그 문은 위기를 맞기 전보다 넓게 열립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통곡의 기도를 들으시고 풍성하게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보셨습니다. 여전히 그의 의로운 행위와 경건한 삶에 대해서는 말씀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치유하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습니다. 이렇게만 응답하셨다면 반쪽 응답이 되었을 것입니다.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히스기야가 죽을병에 걸린 것은 사실이지만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어 나라는 풍전등화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사 38:7 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는 너를 위한 징조이니 곧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그가 이루신다는 증거이니라
사 38:8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히스기야의 아버지 아하스가 만든 해 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십도를 물러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해 시계가 뒤로 물러간다는 것은 지구의 자전이 반대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놀라운 기적이 어떻게 이루어졌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사야 선지자의 기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왕하 20:11 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이와 같이 간절한 기도는 막힌 벽에도 문을 만드는 법입니다.
성경에 보면 천체를 움직이게 했던 역사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수 10:12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수 10:13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수아가 기브온 전투를 할 때 태양과 달을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간구하여 지구가 역회전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레드 크리스는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 삶에 초청하는 가장 강력하고도 효율적인 방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상황을 역전시키고 이전보다 더 풍성하게 부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의 방법일 때가 많습니다.
솔로몬도 지혜를 구했을 때, 부와 명예와 장수의 복까지 얻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더 많은 은혜를 주시려고 위기의 시기에 히스기야의 믿음을 시험하셨습니다. 만일 히스기야가 죽음의 위기에서 체념하거나 원망만하고 있었다면 본문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위기 가운데서 기도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었습니다. 위기 뒤에는 하나님의 놀랍고도 풍성한 은혜가 넘칩니다. 이 모든 일이 믿음의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네가 죽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에 낙망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너는 기도하지 마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일을 당하고 있는지, 고난 가운데라도 기도드릴 수 있다면 그것은 끝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끝은 기도할 수 없을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시험은 죽음이 아니라, 기도마저도 포기하려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절망의 벽에서 소망의 문이 열릴 것입니다. 기도로 승리하는 우리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