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이드PS] '에이스 실종' ML 포스트시즌2017.10.11 오전 09:40
해외야구 김형준 메이저리그 방송해설위원

샌디 코팩스(정규시즌 314선발 era 2.76)는 역대 7번 이상 포스트시즌 선발로 나선 투수 중 유일하게 0점대 평균자책점(0.95)을 기록하고 있다. 그가 포스트시즌 57이닝에서 허용한 홈런은 단 두 개였다(코팩스의 사이영상 세 개는 모두 양 리그 통합 만장일치 수상이었으며 7번의 포스트시즌 선발 등판은 모두 월드시리즈였다). 클레이튼 커쇼(정규시즌 290선발 era 2.36)는 지난 디비전시리즈 1차전에서 네 개의 홈런을 맞았다(6.1이닝 4피홈런 4실점). 마운드의 높이가 15인치에서 10인치로 낮아진 1969년 이후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4피홈런을 기록한 투수는 5번째. 내셔널리그에서는 커쇼가 처음이었다. 커쇼의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점은 정규시즌보다 2.27이 높은 4.63에 달한다(95.1이닝 14피홈런).
존 스몰츠는 역대 최고의 포스트시즌 에이스 중 한 명이다(통산 15승4패 2.67 4세이브/1블론). 사이영상을 수상한 1996년, 스몰츠는 정규시즌에서 35경기 24승8패 2.94(253.2이닝) 포스트시즌에서 5경기 4승1패 0.95를 기록하고 올스타전 승리까지 따냄으로써 한 해 29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런 스몰츠조차 가을 야구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 "포스트시즌 마운드에 선다는 것은 콜로라도에서 던지는 것과 같다. 숨쉬는 것부터 다르다."
수비 시프트를 통해 투수의 편을 들어주는 듯했던 과학 기술의 발전은 마음을 바꿔 다시 타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타자들은 자신의 타구와 스윙에 대한 정보를 전보다 훨씬 쉽게 알 수 있게 됐다(잘 맞고도 안타가 되지 않는 타구에 대한 비밀이 풀려가고 있다). 또한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LA 다저스 타자들이 하고 있는 것처럼, 과거에는 경기 전후 또는 이닝 사이 비디오 분석실을 찾아가서 했던 투수 분석을 덕아웃에서 바로 할 수 있게 됐다(실시간 정보를 받을 수 없는 전자 장비는 덕아웃 비치가 가능하다). 각 팀들이 분석 기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 포스트시즌이야말로 투수들에게는 고난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다.
더 어려움을 겪는 것은 선발투수다. 리그 우승을 하면 월드시리즈에 직행하던 시절의 에이스들은 코팩스나 밥 깁슨(세인트루이스)처럼 최대 세 경기(1,4,7차전) 만 더 던지면 됐다. 그러나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해 11승(와일드카드 팀 12승)이 필요해진 요즘에는 한 해 6경기 선발 등판을 하는 투수들이 생겨났다(2001년 커트 실링, 2011년 크리스 카펜터, 2014년 매디슨 범가너, 2016년 코리 클루버). 그것도 완급 조절이 불가능한 6경기다.
특히 이번 포스트시즌에서는 유독 선발투수의 고전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스몰츠의 말처럼 마치 쿠어스필드 등판을 하고 있는 듯하다. 아래는 2012년 이후 포스트시즌 선발들의 평균자책점 변화다.
2012 - 3.04 2013 - 3.64 2014 - 3.92 2015 - 4.33 2016 - 3.88 2017 - 4.94
시카고 컵스(3경기 0.48)와 워싱턴 내셔널스(3경기 1.96) 선발투수들의 대활약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치러진 포스트시즌 16경기에서 선발 32명이 기록한 평균자책점은 4.94에 달한다. 디비전시리즈가 생긴 이래 포스트시즌 선발투수의 평균자책점이 5점대를 넘었던 것은 단 한 번. 5.08을 기록한 2002년이었다.
또한 이들의 평균 이닝은 4⅓에 불과한 4.32이닝으로, 네 명 만이 7이닝 소화에 성공한 반면(카일 헨드릭스, 스티븐 스트라스버그, 다나카 마사히로, 루이스 세베리노) 37.5%에 달하는 12명이 4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내려갔다. 그에 비해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4이닝 이전 강판 당한 선발투수의 비중은 18.6%(13/70)였다. 그렇다면 선발투수들이 유독 고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홈런이 나왔던 올해, 선발투수들은 정규시즌에서 9이닝당 1.34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는 더 뛰어난 선발들이 나서고 있음에도 9이닝당 1.89개를 내주고 있다. 정규시즌에서 전체 득점의 42.3%였던 홈런 득점의 비중은 포스트시즌에서 51.7%로 크게 치솟았는데, 특히 선발투수들이 집중적으로 홈런을 얻어 맞고 있다(불펜투수 평균 - 정규시즌 1.16개, 포스트시즌 1.13개). 포스트시즌 선발투수 포심 평균 구속
2014 - 93.2마일 2015 - 93.8마일 2016 - 92.8마일 2017 - 93.8마일
포스트시즌 불펜투수 포심 평균 구속
2014 - 95.2마일 2015 - 94.8마일 2016 - 95.5마일 2017 - 95.8마일
자료 출처 - 베이스볼서번트
2015년 포스트시즌은 뉴욕 메츠의 영건 트리오 노아 신더가드(98.7마일) 제이콥 디그롬(96.5마일) 맷 하비(95.8마일)와 캔자스시티 요다노 벤추라(97.0마일)의 강속구 폭격이 이루어졌던 해다. 그런데 올해는 이들이 없이도 2015년과 같은 구속이 나오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2015년 선발과 불펜의 평균 구속 차이가 1.0마일이었던, 반면 올해는 2.0마일이라는 것이다. 아롤디스 채프먼(뉴욕 양키스)은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 무려 10개의 102.0마일(164km/h) 이상 공을 뿌리기도 했다.
포스트시즌에서 선발투수들은 보다 전력 투구를 한다. 그런데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그들의 강속구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2008년에 100마일 공을 한 개라도 던진 투수는 17명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 두 배인 36명이었다(마이너리그에서는 무려 80명이 100마일을 던졌다고 한다). 정규시즌 내내 불펜투수들의 100마일 폭격에 맞서고 있다 보니 95마일 공에 대한 메이저리그 타자들의 적응력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 점에서 지금까지 치러진 포스트시즌 경기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선발투수는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다. 다나카는 올해 규정이닝 투수 중에서 패스트볼 비중(27.6%)이 두 번째로 낮았다. 가장 적었던 R A 디키(18.0%)가 너클볼투수였으니 사실상 패스트볼을 가장 적게 던진 투수였다. 세 번째로 낮았던 코리 클루버(42.5%)와도 큰 차이였다(메이저리그 평균 55.6% 류현진 36.8%).
다나카는 팀이 3연패 탈락의 위기에 몰린 디비전시리즈 3차전에서도 패스트볼(포심+투심&싱커)을 29%밖에 던지지 않았다. 특히 마지막 3이닝 동안 기록한 40개 중에서 패스트볼은 단 7개(17.5%)였다. 다나카가 이런 피칭이 가능했던 것은 주무기 스플리터 외에도 커브, 슬라이더, 컷패스트볼 등 다양한 공을 가지고 여러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 투수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 중 상당수가 패스트볼을 적게 던지는 팀이라는 것이다. 뉴욕 양키스와 클리블랜드는 메이저리그에서 패스트볼 비중이 가장 낮은 두 팀이며 휴스턴(4위) LA 다저스(7위) 애리조나(8위)도 최소 순위에서 10위 내에 들어 있다. 이들이 패스트볼을 줄인 이유는 간단하다. 패스트볼은 투수가 던지는 공 중에서 홈런 허용률이 가장 높은 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메이저리그는 이미 홈런의 시대가 시작됐다.
다나카는 5승1패 1.29를 기록한 정규시즌 마지막 홈 6경기에서 패스트볼 비중을 평소보다도 더 낮추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그 6경기에서 홈런을 세 개밖에 맞지 않았다. 궁금한 것은 다나카가 다음 등판에서도 이렇게 패스트볼을 최소화하는 피칭을 가지고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느냐다.
정말로 메이저리그는 네 명의 선발투수가 4이닝 75구를 던지는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과거 콜로라도가 했던 실험 중 하나다). 1991년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10이닝 완봉승을 따냈던 잭 모리스(미네소타)와 그에 버금갔던 포스트시즌 에이스들의 모습은 더 이상 기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일시적인 현상인 것일까. 그럴수록 더욱 궁금해지는 것은 매디슨 범가너(샌프란시스코)의 다음 포스트시즌이다.
기사제공 김형준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