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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대경상록아카데미과정 문화유적답사 계획
<* 당초 계획에서 일부 변경되었습니다>
2016년 하반기 대경상록아카데미회원 문화유적답사를 아래와 같이 실시 하고자하오니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
일시 : 2016년 11월 4일(금)
장소 : 예천 일원
회비 : 2만원(중식, 간식 포함)
신청기간 : 2016.10.14(금)까지
신청요령 : 각 반별(동아리, 봉사단별) 참가 회망 회원 명단 작성 및 회비 일괄 제출(명단 작성 사무실 비치)
신청 : 대경상록자원봉사단 사무실
참가대상 : 대경상록자원봉사단 아카데미 회원, 동아리 회원, 봉사단 회원
어린이회관(08:00) - 대구은행본점앞(08:10)- 반월당(08:20)- 성서홈플러스(08:50) - (119.6km.1:35 소요) - 회룡포. 장안사(10:25 도착. 관람 1시간.11:25 출발) - (31.5km.0:38 소요) - 풍산명품한우작목목회 황소곳간(12:03 도착. 점심 50분. 12:53 출발) - (6.8km. 0:10 소요) - 경북도청(1:03 도착. 관람 0:40. 1:43 출발) - (30.6km. 0:42 소요) - 예천용문사(2:25 도착. 관람 50분. 3:15 출발) - (4.2km.0:9 소요) - 초간정(3:24 도착. 관람 20분. 3:44 출발) - (127.1km. 1:58 소요) - 반월당(5:42 도착)
* 현지 사정에 따라 변동 될 수 있습니다.
대경상록아카데미 총회장 김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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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대경상록아카데미문화유적답사 자료
회룡포(경북 예천군 용궁면 회룡포길 362(대은리 395외))
강이 산을 부둥켜 안고 용틀임을 하는 듯한 특이한 지형의 회룡포는 한 삽만 뜨면 섬이 되어버릴 것 같은 아슬아슬한 물도리마을로서 전국적으로도 손꼽히는『육지 속의 섬마을』이다. 이곳은 맑은 물과 넓은 백사장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한다. 인근 비룡산은 숲속 등산로와 원산성, 봉수대 등 역사적 정취가 숨 쉬는 자연공원으로 산책과 등산코스로 적합하다. 또한 이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운명선사가 세운 천년고찰 장안사가 산중턱에 있으며 이 사찰의 뒷산에 올라가면 팔각정의 전망대가 있어 회룡포 마을의 절경이 한눈에 들여다 보인다.2000년도에 방영되었던 KBS 인기드라마 『가을동화』의 초기배경이 이곳 회룡포와 용궁면 소재지로 하여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장안사(경북 예천군 용궁면 향석리 산54)
삼계(三界)는 유심(唯心)이요 만법(萬法)은 유식(唯識)이라.신라가 삼국을 통일한뒤 국태민안을 염원하여 전국 세곳의 명산에 장안사를 세웠으니, 금강산과 양산 그리고 이곳 국토의 중간인 용궁 비룡산 장안사이다.초창주는 신라 경덕왕때(759) 운명조사 이시며, 그 후 고려 명종때의 지도림 화상, 조선 인조 5년(1627) 덕잠대사, 영조 31년(1755) 법림대사 등 고승 대덕들이 주석하시면서 중창하셨다.근래에는 두타화상(頭咤和尙)이 약관의 나이로 수행정진차 전국을 행각 하던중 사세(寺勢)의 퇴락함을 보고 이곳 지역 신도들과 힘을 모아 오늘의 가람을 일으켰으니(1984~1992), 이는 불자들의 간절한 원력의 소산이라.일찌기 고려의 문인 이규보선생이 장안사에 머무르면서 글을 지었으며, 또한 지역의 많은 인물들이 이 도량에서 원(願)을 성취하고 밖으로 역량을 발휘하기도한 유서깊은 도량이다.현재 본당(本堂)은 대웅전이며 석가여래,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과거에는 본당이 극락전이었으며 아미타삼존불을 모셨었다.
용문사(龍門寺.경북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길 285-30(내지리 391))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두운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로 한국관광공사에서 지정한 관광명소이다.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소백산 용문사에는 국내최고를 자랑하는 것이 있다. 맞배기와 지붕의 균형미를 보여주는 대장전(보물 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초건한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이며,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국내유일의 윤장대(보물 684호), 대추나무에 불상을 조각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989호), 불국사의 것보다 규모가 더 웅장한 사천왕상 일주문이 있다. 이외에도 조선 세조의 친필수결의 용문사교지(보물 제729호) 등 보물과 다수의 문화재를 간직한 문화유산의 보고이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태조가 삼한 통합의 큰 뜻을 품고 두운대사를 방문하고자 동구에 이르니 갑자기 바위 위에서 쌍용이 나타나더니 절로 가는 길을 인도하였다하여 태조는 산 이름을 용문산, 절 이름을 용문사라 명명했다고 한다.그리고 2006년에 247평 규모의 성보유물관을 준공 101종 193점의 (서지류, 불화류, 불상 및 공예 등)불교유물을 전시 및 수장하고 있으며 국내유일의 회전식 불경보관대인 윤장대의 모형을 제작 설치하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직접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하였으며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용문사와 연계하여 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인 대동운부군옥', '초간일기'를 보관하고 있는 "예천권씨종택"과 초간 권문해 선생이 건립한 "초간정"이 있어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 (醴泉 龍門寺 大藏殿.보물 제145호)
작은 규모의 건물로 뛰어난 조각 솜씨와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대장전을 지었다고 하는데 대장전의 초창은 알 수 없으나 사적기(史蹟記)에 따르면 조선(朝鮮) 현종(顯宗) 11년(1670)에 중수(重修)되었다고 한다. 장대석 바른층쌓기의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을 세웠다. 공포(공包)는 내(內)·외3출목(外三出目)으로 주칸(柱間)마다 공간포(空間包)를 2구씩 둔 다포식(多包式) 건축(建築)이다. 내부에는 마루를 깔았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의 모서리 부분에는 용머리, 연꽃 봉오리와 같은 조각을 해 놓았고, 안쪽 부분에는 더욱 화려한 장식을 하여 당시의 정교한 조각과 장식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삼존불 뒤의 나무로 조각한 벽체는 건물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으며, 불단 양쪽 옆으로 불경을 보관하는 회전식 윤장대(輪藏臺)를 만들어 놓았다.
예천 용문사 윤장대 (醴泉 龍門寺 輪藏臺.보물 제684호)
예천 용문사 윤장대(醴泉 龍門寺 輪藏臺)는 용문사 대장전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이다. 마루 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놓고 윤장대를 올려놓았으며, 지붕 끝을 건물 천장에 연결하였다. 불단(佛壇)을 중심으로 좌우에 1기씩 놓여있는데 화려한 팔각정자 형태이다. 아래 부분은 팽이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고, 난간을 두른 받침을 올린 후 8각의 집 모양을 얹었다. 8각의 집 모양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각 면마다 8개의 문을 달았다. 문은 좌우로 구분되어 4개의 문에는 꽃무늬 창살이 다른 4개의 문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 문을 열면 8면에 서가처럼 단이 만들어져 경전을 꺼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보존이 잘 되어있고 8각형 모양의 특이한 구조수법이 돋보이는 국내 유일의 자료로, 경전의 보관처인 동시에 신앙의 대상이 되는 귀한 불교 공예품이다. 대장전을 창건할 당시 함께 제작된 것인지 조선 현종 11년(1670) 대장전을 새 단장 하면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醴泉龍門寺 減役敎旨.보물 제729호)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醴泉 龍門寺 減役敎旨)는 세조 3년(1457)에 내린 교지로, 용문사에 잡역을 면제할 것을 인정하는 사패교지(공로가 있는 자에게 나라에서 부역을 면해주는 것을 입증하는 문서)이다. 이 교지의 내용은 ‘일찍이 감사와 수령에게 지시한 대로 경상도 용문사는 다시 심사하여 더욱 보호하고 잡역을 덜어 주라’는 것이다. 이 교지는 가로 44.8cm, 세로 66.5cm로 국왕의 수결(지금의 서명)이 있는 것으로 조선 전기 용문사의 지위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 된다.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醴泉 龍門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989-1호)
숙종 10년(1684)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후불탱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기본구조는 상하가 긴 사각형이지만 좌우로 구름무늬 광선을 표현한 둥근 모양의 조각을 덧붙여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중앙에 모셔진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여 사바세계를 굽어 살피듯 평담하게 묘사되었다. 두 손은 모두 무릎 위에 올렸는데 왼손은 손가락을 위로, 오른손은 아래로 하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불의 손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두꺼운 편이며,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신체와 옷을 구분하여 주름이 없다면 신체의 근육으로 여길 정도다. 본존불 이외의 상(像)들은 상·중·하 3행으로 배치시키고 있다. 아랫줄에는 사천왕상이 본존의 대좌(臺座) 좌우로 2구씩 일렬로 서 있다. 가운데 줄과 윗 줄에는 각기 좌우 2보살씩 8대 보살이 배치되고, 윗줄의 보살 좌우에는 다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모습의 2대 제자를 배치하여 구도의 미를 살리고 있다. 보살은 본존불과 동일한 기법을 보여주며, 불과 보살상 사이의 공간에는 구름, 광선 등을 배치했다. 목각탱의 앞면에는 삼존목불좌상이 놓여져 있는데 본존상의 경우 머리에는 반달 모양이 표현되었고, 신체는 둥글며 옷은 두꺼워 신체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다. 목각탱과 같은 기법으로 동일한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임에는 확실하지만, 목각탱의 상에 비해 가슴표현이 유기적이며 조각기법에서 조각가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하단에 표현된 조성기(造成記)에 의하여 숙종대의 작품이 분명하며, 17세기 후반 조각양식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醴泉 龍門寺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보물 제989-2호)
숙종 10년(1684)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후불탱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기본구조는 상하가 긴 사각형이지만 좌우로 구름무늬 광선을 표현한 둥근 모양의 조각을 덧붙여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중앙에 모셔진 얼굴은 앞으로 약간 숙여 사바세계를 굽어 살피듯 평담하게 묘사되었다. 두 손은 모두 무릎 위에 올렸는데 왼손은 손가락을 위로, 오른손은 아래로 하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어 아미타불의 손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두꺼운 편이며,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신체와 옷을 구분하여 주름이 없다면 신체의 근육으로 여길 정도다. 본존불 이외의 상(像)들은 상·중·하 3행으로 배치시키고 있다. 아랫줄에는 사천왕상이 본존의 대좌(臺座) 좌우로 2구씩 일렬로 서 있다. 가운데줄과 윗줄에는 각기 좌우 2보살씩 8대 보살이 배치되고, 윗줄의 보살 좌우에는 다시 무릎을 꿇고 손을 모은 모습의 2대 제자를 배치하여 구도의 미를 살리고 있다. 보살은 본존불과 동일한 기법을 보여주며, 불과 보살상 사이의 공간에는 구름, 광선 등을 배치했다. 목각탱의 앞면에는 삼존목불좌상이 놓여져 있는데 본존상의 경우 머리에는 반달 모양이 표현되었고, 신체는 둥글며 옷은 두꺼워 신체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다. 목각탱과 같은 기법으로 동일한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임에는 확실하지만, 목각탱의 상에 비해 가슴표현이 유기적이며 조각기법에서 조각가의 정성을 엿볼 수 있다. 하단에 표현된 조성기(造成記)에 의하여 숙종대의 작품이 분명하며, 17세기 후반 조각양식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므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다.
예천용문사영산회괘불탱(醴泉龍門寺靈山會掛佛幀.보물 제1445호)
예천용문사영산회괘불탱은 입상의 삼존불상을 배경으로 본존불상 머리 좌우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배치시켜 5존도 형식을 취하였다. 삼존불상 가운데 통견(通肩)의 적색 대의(大衣)에 밝은 회청색 내의를 착용한 본존 불상은 머리 높이가 180㎝이고 머리 광배의 폭만도 무려 273.㎝에 이르러 10미터가 넘는 화면 전체를 다 차지할 정도로 큼직하게 그려져 있다. 적색 대의에는 봉황문과 화문, 격자문, 연화문 등의 둥근 무늬가 전체에 걸쳐 정연하게 시문되어 있으며, 내의에는 흰색의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본존불 하단 좌·우로는 협시보살상을 배치하였는데 두 상 모두 손 모습과 천의(天衣)의 표현만 약간 다를 뿐 본존불을 향해 몸을 틀고 있는 신체의 자세 및 벌리고 서 있는 발의 모습, 인물의 크기와 형태, 보관, 지물 등이 거의 대칭을 이루고 있다. 화면 상단 본존불상의 머리 좌·우에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가 자리하였으며, 배경으로는 황·적·청·녹색의 색구름대(彩雲帶)를 깔고 감청색의 하늘을 두어 공간감을 부여해주고 있다. 또한 그림 내부 하단 가운데 쪽에 왕실의 안위를 발원하는 내용의 글이 있으며, 테두리 하단부에는 화기가 남아 있다. 이 괘불탱은 괘불탱으로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해당하는 1705년 조성의 작품으로, 둥글넓적해진 얼굴에 근엄함이 엿보이며, 어깨가 약간 올라가는 등 17세기로부터 18세기로 넘어 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살상이 아닌 부처상으로써 지물(연꽃가지)을 드는 새로운 도상의 예를 보여주어 조선시대 불화 연구에 학술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醴泉 龍門寺 木造阿彌陀如來坐像.보물 제1637호)
이 여래상의 몸 안에서는 원문과 시주자 목록 두 장이 발견되었는데, 1515년 4월 9일에 고쳐 만들었다는 개조(改造)이라는 개조기록을 비롯하여 이를 만든 화원과 목수 철장의 이름 그리고 수백 명에 이르는 시주자의 이름들이 기재되어 있다. 상화원(上畵員) 이영문(李永文)의 주도하에 만들어졌음을 밝혀 승려가 아닌 일반 장인에 의해 주도된 16세기 전반의 중요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이중의 대의를 걸친 불상으로 가슴과 옷주름, 무릎과 발 등의 표현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신체의 볼록한 양감이 강조된 모습이 특징이다. 특히 눈 꼬리가 길고 앞으로 튀어 나온 양감 있는 얼굴 모습과 자연스러운 옷 주름 등은 조선전기인 15세기의 전통이 남아있어 16세기에 이르러 평면적인 경향으로 변하는 과도기적 요소를 보이는 작품이다. 이 불상은 16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명문불상이 극히 적게 남아 있는 조선전기의 조각 상황, 우수한 조형성 등에서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예천 용문사 천불도(醴泉 龍門寺 千佛圖.보물 제1644호)
천불도는 유존 사례가 극히 드물어, 1709년에 화승 도문(道文), 설잠(雪岑), 계순(戒淳), 해영(海英)이 제작한 용문사 천불도는 그 중요성이 부각된다. 이 천불도는 석가팔상도와 같은 시기인 1709년 제작된 그림으로 당시 불사와 후원자의 상황을 잘 알려주고 있다. 질서 정연한 배치, 이지러짐이 없는 형상과 필선 등 18세기 초반의 화풍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현존하는 천불도는 선운사와 동국대학교박물관에 분산 소장되어 있는 1754년 작품이 있을 뿐 매우 희귀하다. 또한 1754년 선운사 천불도가 모두 5폭으로 그려진데 반하여 한 폭에 천불을 모두 그린 것으로, 현존 천불도 가운데 시기가 가장 앞설 뿐 만 아니라 많지 않은 18세기 초반 불화라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조선후기 천불신앙을 전해주는 예로서도 중요하다
예천 초간정 원림 (醴泉 草澗亭 園林.명승 제51호.경북 예천군 용문면 죽림리 350번지 등)
초간정은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초간 권문해(1534~1591)가 오랜 관직생활과 당쟁에서 벗어나 자연을 즐기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창건한 정자로 맑은 계곡과 푸른 소나무림 사이의 암석 위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 사림의 은일(隱逸)생활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바탕으로 하는 선조들의 자연관을 보여주는 명승지로 바위를 휘돌아 흐르는 계류가 시원한 운치를 자아내는 등 경관적 가치가 크다
경상북도청사
(1) 안민관
경상북도는 찬란한 신라 천년의 불교문화와 신비의 가야문화 그리고 선비정신의 유교문화 등 민족 문화의 본산지이자 한국 문화의 얼굴이다. 또한, 호국충절의 고장으로 국난극복의 보루였으며, 새마을운동과 자연보호운동 등 국민정신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도민들은 화랑정신과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의리와 뚝심, 정의감을 중시하는 굳건한 기상과 아울러 산업근대화의 주역으로서 드높은 미래개척정신도 가지고 있다.
면적은 19,029㎢ (전 국토의 19.1%)로 전국 최대로서 서울의 31배에 달하며, 행정구역은 23개 시·군(10시, 13군) 331 읍·면·동이다.
죽령, 조령, 추풍령 등 큰령의 이남에 위치하여 예로부터 영남으로 불려왔으며, 동쪽은 청정동해안, 북쪽은 강원, 서쪽은 충북, 전북, 남쪽은 경남, 울산과 연접해 있으며, 대구를 둘러싸고 있다. 대체로 산지가 많고 고도가 높은 편이며, 특히 북부와 서부의 높고 험준한 소백산맥이 낙동강 유역의 광활한 평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남쪽으로는 운문산, 비슬산 등이 있어 전체적으로 거대한 분지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
수려한 자연경관, 335km에 달하는 긴 해안선과 청정 동해 등 다양한 잠재력과 개발수요를 간직하고 있고, 세계적인 철강 섬유산업의 중심지로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 왔으며, 수도권 다음으로 많은 대학(38개)이 소재하여 풍부한 연구인력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풍부한 문화자원(전국 문화재의 20%)과 천혜의 관광자원, 지역의 높은 문화적 역량을 바탕으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세계적인 문화·관광중심지로 가꾸어 나가고 있다.
참고자료 : 문화재청 자료. 경상북도 자료 .예천군청 자료
첫댓글 대경상록아카데미과정 협의회에서 자율적으로 추진합니다만 추진을 위한 모든 업무는 대경상록자원봉사단에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각 반 회장님 총무님 신청회원 명단을 봉사단 사무실로 제출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오 멋져요 문화유적답사! 감사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 드립니다.
모두가 함께 하는 유적 답사 기다려집니다.
알찬 문화유적답사계획 감사드립니다. 기대가 큽니다.
당초계획을 참가회원님이 많으심에 따라 단체 식사장소관계로 일부변경 변경함을 양지하시기 바랍니다. 대경상록자원봉사단 최상순드림.
단장님
수고 많으시겠어요
합창부까지 합세하니 더더욱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