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편지 | 오늘도 아침 6시 30분에 산보에 나선다. 속이 불평하다. 자꾸 트림을 한다. 시술한 지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완쾌하지 않는다. 어디 다른 곳에 고장이 났는가? 의심을 해본다.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렇다고 부산대병원을 갈 수도 없다. 시술받고 일어나는 사소한 문제는 환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모양이다.
트림은 위에 가스가 생산되는 야채, 과일, 사이다,맥주 등이다. 천천히 먹고 식사하면서 말을 줄이라고 한다. 나는 특히 식사를 빨리한다. 식사시간은 최소 15분 한 번에 30회 씹으라고 한다. 오늘부터 실행해보자 아침 마당을 보니 기러기아빠라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기러기 아빠>
자녀 교육을 위하여 배우자와 자녀를 외국으로 떠나보내고 홀로 국내에 남아 뒷바라지하는 아버지. 기러기가족 · 국제적 비동거 가장 · 신글로벌 별거 가족.
<인원 및 변천>
기러기 아빠는 1990년대 조기유학 열풍에서 생겨난 현상으로, 평소에는 한국에 머물며 돈을 벌다가 일 년에 한두 번씩 가족이 있는 외국으로 날아간다는 점에서 철새인 기러기와 비슷해 이름이 붙여졌다. 우리 사회에 새롭게 등장한 ‘기러기 아빠’라는 용어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독특한 가족형태를 일컫는 신조어로 학술적으로 규정·합의되지는 않았지만, 사회학, 복지학, 가족학 분야에서는 이미 널리 활용될 뿐 아니라 새로 출간된 국어사전 『훈민정음』에 수록되었고, 국립국어원『2002년 신어』 보고서에도 신조어로 포함되었다.
<내용>
기러기가족은 자녀들을 조기 유학 보내는 과정에서 부인마저도 자녀와 함께 보내고 국내에 홀로 남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족의 생활비 및 교육비를 송금하는 아버지들, 속칭 ‘기러기 아빠’들과, 외국에서 공부하는 자녀와 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따라간 기러기 엄마로 가구 분리 형태를 나타낸다. 기러기 아빠가 등장한 가장 큰 원인은 조기 유학이지만, 그 배경에는 무너진 공교육과 치솟는 사교육비라는 교육 문제가 있다. 자녀에게 좀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초중고생 자녀들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정작 아버지 자신은 경제적 뒷받침을 위해 국내에 남는 것이다. 기러기 아빠 중에는 자식에 대한 투자만큼 확실한 노후보장이 없다고 주장하며 중년의 솔로생활을 최대한 즐기자는 사람들도 있지만, 스스로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듯한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면서 부부 관계가 소홀해져 이혼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고, 서구권 문화에서 유학한 자녀들과 아버지가 문화적 갈등을 일으키는 일도 빈번하여 극단적으로는 가족 붕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정신적 외로움과 경제적 중압감을 견디지 못한 기러기 아빠의 자살이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하고, 막대한 외화 유출 역시 기러기 아빠가 빚은 사회 문제의 하나이다.
< 현황 > 기러기 아빠는 1990년대 중반부터 중산층 이상의 30∼40대에서 확산되기 시작했으며, 처음에는 특수 계층에 한해서 제한적으로 나타났지만 점차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1998년 1,562명이던 조기유학생이, 2007년에는 총 2만 9,511명으로 전년도의 2만 400명에 비해 무려 44.6% 증가했다. 조기 유학생 증가뿐 아니라 2003년도에 사상 처음 유학 비용이 2조원을 넘어섰고, 2004년 5월까지의 유학 비용만 10조원에 이른다.
< 의의와 평가> 기러기 아빠는 단순한 가족 현상을 넘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조기 교육, 입시 경쟁, 과도한 교육열, 영어 숭배, 양극화에 따른 계층 재생산 등 다양한 차원의 복합적 사회 현상이다.
~ 본인의 생각~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다. 돈, 명예, 권력, 사랑, 행복, 자기만족을 좆으며 욕망에 매달린다. 국토가 좁고 먹고살기가 만만치 않는 지라 헛된 욕망을 위해 몸부림친다. 우리손자도 조기유학의 길에 나서고 있다. 아들놈은 어언 8년째 기러기아빠 신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자신을 위해, 자식을 위해, 사회적 최면을 위해... 정확한 답은 알 길이 없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로, 일제 간점기에는 일본으로, 해방이후에는 미국으로 근자에 와서는 전 세계로 유학의 길을 떠나고 있다. 유학을 마치면 그곳에 남아 다른나라 사람이 되어 있거나 일부는 돌아와 국네 거주하기도 한다.
2030년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는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물론 외국의 선진 문물을 가져와 국가에 보탬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자간에 정을 잃어버리고 가족이라는 (대가족제도)틀을 깨면서 국가와 학문을 위해 꼭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제는 한번 생각해 볼 시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손자들도 모두 외국 유학을 하여 할애비와 손자와의 친분관계가 사라져 한번 만나도 서먹서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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