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륙장치 수동으로 내려놓을 수 있을 것」 한국·무안공항 사고 5가지 의문점 / 1/1(수) / 조선일보 일본어판
12월 29일 일어난 제주 항공기 폭발 화재 사고는 충격적이었다. 최고 수준의 안전장치를 갖췄다고 믿었던 항공기가 바퀴 없이 활주로에 동체 착륙해 감속하지 않은 채 활주로를 미끄러지다가 외벽에 충돌해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보게 됐기 때문이다. 본보는 현역 및 전직 조종사와 항공학 전문가를 취재해 이번 사고에 대한 의문점을 정리했다.
[표] 주요 한국기 사고와 세계의 버드 스트라이크 사고
①버드 스트라이크에서 바퀴가 왜 안 나왔나 이번 사고를 두고는 기체가 새와 충돌하는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일어난 엔진 이상이 원인이라는 증언과 분석이 유력시되고 있다. 그런데 왜 엔진에 문제가 생기자 착륙장치(랜딩기어, 이착륙용 바퀴)가 작동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든다. 착륙장치만 제대로 작동했다면 피해 규모가 훨씬 작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버드 스트라이크로 엔진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항공기의 다양한 기능이 연쇄적으로 마비될 수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익명의 현직 기장은 "엔진에 고장이 생길 경우 착륙장치도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항공 전문가나 국토교통부의 입장은 "버드 스트라이크와 바퀴가 내려가지 않은 것에 연관성은 거의 없다"는 시각이다. 국토부는 기자회견에서 "통상 엔진 고장과 착륙장치 고장이 서로 연동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보다 정밀한 조사가 요구된다.
②수동으로도 내릴 수 있었던 바퀴 항공기는 보통 2400~2500피트에서 바퀴를 내린다. 바퀴가 잘 내려가지 않을 경우 수동으로 조작할 수도 있다. 부기장의 조종석 뒤쪽에 수동으로 착륙장치를 조작하는 레버가 있기 때문이다. 수동 장치는 길이 27cm의 끈을 당기는 방식이다. 현역 조종사는 「수동으로 레버를 당기면 잠금이 해제되어 중력으로 차륜이 내려간다. 바퀴가 내려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매뉴얼에는 수동으로 착륙장치가 작동하는 데 17~18초가 걸린다고 적혀 있는데 막상 해보니 더 빨리 내려간다"고 지적했다.
바퀴가 내려가지 않는 사실을 조종사가 몰랐을 가능성은 있을까. 일부 현역 조종사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현역 조종사는 1000피트 이하까지 바퀴가 내려가지 않으면 투로(고도가 너무 낮다), 랜딩기어라는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린다고 설명했다. 최영철 한서대 항공인재개발원장은 "수동장치를 작동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가 없었는지 등에 대해 관제탑과의 교신 내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③ 왜 바다가 아닌 단단한 활주로에 동체 착륙을 시도했을까 사고기는 활주로에 동체 착륙했다. 전문가들은 동체 착륙이 "조종사가 최악의 상황에서 택하는 마지막 방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체 착륙은 기체를 최대한 수평으로 유지한 채 속도를 줄이고 활주로에 접지해야 하는 등 고난도 조종 기술이 필요하다.
동체 착륙이 불가피했다고 해도 그 장소가 왜 딱딱한 활주로였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무안공항 주변에는 바다가 있었고 활주로 주변에는 잔디밭 등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통칭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2009년 US항공 불시착수 사고를 떠올리며 왜 바다에 강하하려 하지 않았느냐는 의문을 지적하기도 한다. 당시 미국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US항공 1549편은 이륙 2분 만에 새떼와 충돌해 두 엔진이 고장. 조종사의 침착한 대처로 맨해튼 허드슨강에 불시착해 탑승자 155명이 모두 생존했다. 최영철 원장은 "허드슨강의 기적의 경우 버드 스트라이크로 인해 엔진 2개가 고장난 이례적인 상황에서 경력이 40년이 넘는 베테랑 조종사가 기적적으로 불시착수에 성공한 것이다. 해상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추락하면 바위에 부딪히는 듯한 충격을 받아 매우 위험해 쉽게 시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윤철 항공대 교수는 "활주로 옆 잔디밭에도 새를 쫓기 위한 구조물이나 간판이 있어 오히려 위험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④ 활주로에 화재를 막는 물질을 뿌리거나 소방대를 대기시키지 못한 것일까 동체 착륙 등 긴박한 상황에서 공항은 기체를 감속시키기 위해 활주로의 마찰계수를 높이고 불꽃을 식히기 위한 거품 형태의 물질을 뿌린다. 그러나 이번 사고에서는 그런 사전 조치가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현역 조종사는 동체 착륙 전 관제탑과 의사소통이 이뤄지면 소방차가 항공기 착륙과 동시에 접근해 화재가 나면 즉각 진압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윤철 항공대 교수는 "동체 착륙을 할 경우 충분히 선회하고 남은 연료를 줄여 가장 낮은 속도로 착륙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럴 여유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⑤ 착륙 후에 왜 감속할 수 없었나 사고기는 동체 착륙을 한 뒤 외벽에 충돌할 때까지 그다지 감속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점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항공기에는 3개의 브레이크가 있다. 착륙장치, 스피드 브레이크, 엔진의 역분사다. 이 중 확인된 것은 착륙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착륙장치는 착륙 시 충격을 줄여주는 동시에 브레이크 역할도 한다. 착륙할 때마다 활주로에 짙은 스키드마크(타이어 자국)가 남는 것은 그래서다.
또 스피드 브레이크는 날개 일부를 세워 공기저항을 만들어 감속하는 것이다. 현역 조종사 교관은 "바퀴가 제대로 내려갔다면 바퀴가 활주로에 닿는 동시에 자동으로 스피드 브레이크가 작동한다"며 "이번에는 바퀴가 내려가지 않아 조종사가 스스로 스피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야 했는데 실제로 그런 과정을 밟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엔진 역분사'는 엔진의 출력을 이용해 엔진 뒤쪽으로 배출되던 기류를 앞쪽으로 바꿔 브레이크 역할을 해 활주 거리를 단축하는 것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안오성 박사는 역분사하면 (뒤로 분사하는 공기가 막혀) 엔진 덮개가 열리고 (분출된 기류로) 공기 저항이 커져 감속한다. 이번 사고에서는 엔진의 역분사 기능이 작동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