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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9
과실치사(過失致死) / 김덕복 목사
옛말에“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감정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입었을 때 법에 호소해서 정당한 법적인 심판을 받게 하기보다는 자기 자신들이 스스로 즉각적인 복수를 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이나 또는 가까운 사람이 다른 사람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든지 어떤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법적으로 호소하기보다는 또 그 사건의 사실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무조건 상대방에게 복수를 하려는 그런 경향들이 강하게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독일에 히틀러는 패색이 짙은 것을 알고 독일의 합동 참모본부 지하 벙커에서 자살을 함으로 자기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많은 전범자들은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뉘른베르그 전범재판소에 회부가 되어서 재판을 받고 처벌을 받았던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전범들은 미리 준비해둔 금궤를 잠수함에 싣고 남미로 도주를 해 갔습니다. 그래서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같은 나라에서 변장을 하고 숨어 살았습니다. 물론 잡힌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도 얼굴을 성형수술을 해서 완전히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인생을 마쳐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1960년 5월에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15년이 지난 그 시점에서 2차 세계대전 때 가장 많은 유대인들을 살해하고 죽이는데 앞장섰던 아돌 프 아이히만이라는 사람이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체포가 되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들과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추적을 당하다가 15년이 지난 1960년 5월에 드디어 그가 체포가 되었다는 겁니다.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많은 유대인들은 엄청나게 충격적인 사실 앞에 치를 떨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포로 수용소에 끌려가서 죽을 때는 자기 동족들이 그렇게 많이 죽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고 연합군으로부터 자료를 받아서 그것을 분석해 본 결과 약 600만 명이 나치 전범자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살아남은 유대인 중 시몬 비젠탈(Simon
Wiesenthal)이라는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 유대인 수용소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고 살아났던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사랑하는 아내도, 부모도, 자식도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정말 내가 살아만 나간다면 땅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이 원수들을 복수하리라.”다짐을 하고 복수심을 키우면서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습니다. 2차 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면서 연합군이 진주를 해왔습니다. 연합군들이 이 시몬 비젠탈이라는 사람에게 전범들의 자료들, 특별히 유대인 수용소에 관련되어있는 자료들을 넘겨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오스트리아 린쯔와 비엔나에“전범 기록 연구소”라는 연구소를 설립하고 2차 대전 때 유대인들을 학대했던 사람들의 모든 명단을 수집하고 그들의 모든 범죄기록을 관리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자기의 한 평생을 전범들을 추적해서 잡아죽이는 그 일에 바치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많은 유대인 젊은이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이런 전범자들을 잡아죽이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2차 대전이 끝났을 때는“어떻게 해서든지 이 전범들을 잡아서 자기 손으로 죽여야 되겠다.”는 그런 복수심에 치를 떠는 사람들로 들끓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5년이상 추격하고 추격하고 또 추격해서 결국 그들의 원수이던 이 아돌프 아이히만을 아르헨티나에서 드디어 체포를 하게 되어졌습니다. 이 아이히만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 세계에 뉴스를 타고 전달되었습니다. 세계에 흩어 져서 살아가는 유대인들은“저 아이히만은 찢어 죽일 놈이다. 히틀러보다도 더 나쁜 놈이다.”이렇게 생각을 하면서 아이히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논란들을 거듭하게 되어졌었습니다.
이때 이 시몬 비젠탈이라는 사람이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용서하자. 그러나 절대로 잊지는 말자.”정말 그를 잡아서 갈가리 갈가리 찢어 죽이고 싶은 복수심으로 그를 추격하고 그를 잡았는데 그리고 온 세계 유대인들이 그 한사람을 처벌함으로 말미암아서 그들의 복수심을 불태우려고 했는데 그가 정작 체포되었을 때 거기에 앞장섰던 시몬 비젠탈은 용서하자. 그러나 절대로 잊지는 말자는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두 권의 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아마 우리 나라에도 그 중에 한 권은 번역이 되어져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는“나는 아이히만을 사냥했다.”(Ich jagte Eichmann)는 책과 “복수가 아닌 법으로..”(Recht, nicht Rache)라는 제목의 유명한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러면서“우리가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아이히만에게 복수를 할 것이 아니라 정당한 재판 절차를 통해서 이 아이히만이 처벌을 받도록 하자.”이렇게 호소함으로 말미암아 유대인들의 그 복수심을 가라앉히고 1961년 그를 재판에 회부했고, 1962년 5월 그가 체포된지 2년만에 그를 사형장에 세울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유대인들의 감정은 그대로 어떻게든지 이스라엘에 이 아이히만을 끌고 가서 아주 잔혹하게 처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몬 비젠탈은“그들이 우리를 함부로 죽이고 함부로 학살했다고 해서 우리들조차도 그래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정당한 법 절차를 통해서 그를 처벌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대 사회에는 법제도가 제대로 정착이 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여러 가지 많은 문제를 야기케 했습니다.
늘 우리가 읽었던 여호수아 20장에 있는 이 기록도 바로 이런 복수에 대한 악순환을 단절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조치라고 이렇게 보시면 되겠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서부 활극을 아주 즐겁게 보아왔습니다. 어느 날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말을 탄한 젊은이가 먼지를 뽀얗게 일을 키고 나타납니다. 그 젊은이는 악당들을 좇는 그런 정의의 사나이입니다.
그 젊은이가 어렸을 때 평화롭던 어느 목장에 갑자기 무법자들이 난입을 해서 자기 아버지를 총으로 쏴 죽이고 어머니를 겁탈하고 그리고 가축들을 다 빼앗아 가는 그런 장면을 이 어린 꼬마는 마차 바퀴 뒤에 숨어서 보면서 그 범인들의 인상착의를 하나씩 하나씩 자기의 뇌리 속에 각인시켜나갑니다.
“어떻게 하든지 저놈들을 찾아서 우리의 부모의 원수를 갚고 말겠다.”는 그런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이 꼬마는 자라납니다. 소위 말해서 맥주깡통을 뒤집어 놓고 열심히 사격연습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기 사격수준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했다 싶을 때 그때부터 이제 자기의 생업을 다 포기하고 이 악당들을 쫓아서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쫓아다닙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그 무법자들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들과 아주 통쾌하게 결투를 벌이고 그 무법자를 쓰러뜨립니다. 그리고는 석양이 넘어가는 그 황야를 황량하게 다시 떠나는 그 장면이 서부 영화의 일반적인 스토리입니다. 대부분 보면 그 당시에 순회판사도 있었고 보안관들도 있었습니다만 이런 공권력이 그 무법자들에게, 그런 서부 개척 사회에 제대로 먹혀들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어떻게든지 원수를 내 손으로 갚아야 되고, 내 신변에 안전을 내 스스로 지켜야 된다.”는 그 정신들이 미국 사람들이 일반인들도 총기를 소지할 수 있는 전통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서부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들었다면 아마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서부 영화 열편 가운데 아홉 편은 원수를 직접 갚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한편쯤은 잡아서 보안관에게 넘기면 보안관이 가두어 놓았다가 순회 판사가 오면 재판을 해서 목을 달아매는 이런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만약 직접 원수를 안 갚고 사법제도에 원수갚는 것을 맡기면 재미가 없어서 아마 영화 관중들이 많이 줄 것입니다. 서부 영화도 그렇지만 중국 무술 영화를 봐도 원수를 갚고 죽이고 죽고 또 죽이고 죽고 하는 이 복수의 악순환에 현장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이런 일들을 우리가 많이 경험을 하다 보면 내 손으로 원수 갚는 것이 아주 정당한 것처럼 착각을 하게 만드는 겁니다.
성경에도 보면 내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는 것이 정당한 것처럼 오해받을 수 있는 그런 구절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1.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여둔 곳이었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소개되어지는 도피성 제도는 과실치사를 범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의 법적인 안전 장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도피성은 오래 전에 미리 하나님이 직접 정해두셨습니다.
여러분, 출애굽기 21장이나 민수기 35장을 보시면 도피성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21장 13절에는“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손에 붙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하면서 도피성을 하나님께서 직접 창설하심을 말합니다. 그 다음 민수기 35장 10절∼12절에“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땅에 들어가거든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하면서 아직 요단강을 건너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이전에 지도자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은 출애굽기 21장에 그리고 민수기 35장에서 요단강 건너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도피성을 설정하라고 명령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2절을 보시면“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부지중 오살한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하면서 과거에 모세에게 명령했던 도피성 제도를 이 여호수아 대에 와서는 구체적으로 시행을 하도록 명령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전쟁도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 땅 분배도 다 끝났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 성읍에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어디 어디에 여섯 개의 도피성을 설정하라. 그리고 부지중에 오살한자 실수로 다른 사람을 죽게 한 사람을 복수자의 손에 내버려 죽게 하지 말고 도피성에 피신해서 정당한 재판절차를 밟도록 하라.”는 명령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피할 피난처였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합니다.
2.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이 피할 곳이었습니다.
민수기 35장 11절∼12절에“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했고 오늘 본문에는“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배려는 아주 철두철미했습니다. 그래서 이 도피성 제도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정착된 제도임과 동시에 역사를 거쳐가면서 많은 지역에 이 도피성 제도와 유사한 그런 제도가 생겨났던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의 터키 서부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던 에베소에는 유명한 다이아나 신전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방 신전이었습니다.
이 다이아나 신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도피를 와서 피신을 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살인을 했던 자, 다른 곳에서 빗을 갚지 못해서 처형을 당할 그런 위기에 있던 사람들이 터키의 이 다이아나 신전에만 들어오면 어떤 사람도 그 사람을 잡아서 처형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런 불문률이 있었습니다. 중세 역사를 보면 비엔나에 있는 스테판 대 성당이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 리옹 대성당이 있었습니다. 이두 성당은 살인한 자라든지 범인들이 이 성당에 찾아 들어오면 어떤 공권력도 그 성당에 들어와서 그를 체포하지 못하도록 했던 그런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중세에 유행했던 말이 있는데“비엔나의 공기는 자유를 제공한다.”는 그런 유명한 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여러분 아마‘노틀담의 꼽추’라는 소설이나 영화를 보신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집시 여인을 노틀담 성당으로 피신을 시켜 놓은 후에 그를 추격하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이 꼽추가“성역이다.”하는 고함을 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노틀담 성당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서있는 그런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나라에 명동성당도 수많은 정치범들이나 시국 사범들이 숨어들었던 곳입니다. 한국에 큰 파업이라든지 어떤 쟁이가 일어나면 그 지도부들은 대부분 명동성당에 숨어 들어와서 그 파업을 주도하는 그런 일들이 아주 자주 있습니다. 무자비하기 짝이 없었던 군사 정권아래에서도 이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 때 명동성당에 한국통신 노조의 노사 파업이 있을 때 공권력을 투입했다가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 도피성의 본래 목적은 부지중에 살해한자 그러니까 실수로 말미암아서 다른 사람을 죽게 한 사람이 복수를 당하지 않도록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은 그런 하나님의 제도였습니다. 이렇게 실수한 자가 도피성까지 빨리 쫓아가서 도피성 입구에서 장로들에게 자기의 과실 사실을 이야기하면 이 도피성의 장로들은 빨리 문을 열어서 그를 들이고 복수자의 손이 그에게 미치지 못하도록 안전하게 보호해주 는 그런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그래서 이 도피성은 가장 지상에서 안전한 곳이고 누구도 해칠 수 없는 그런 성역이었습니다.
3. 정당한 재판 때까지 보호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다음 도피성은 정당한 재판 절차를 거치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놓은 하나님의 안전장치였다.
재판 받을 때까지 사람을 보호하는 처소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신명기 19장 21절을 찾아보겠습니다.“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
얼마나 무섭습니까?
소위 모세의 율법이 그 당시에 보편적으로 퍼져있던 동에 보복 법을 지시하고 있다는 것입니. 물론 이 말씀은 출애굽기에도 있고 그리고 레위기서에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였던 폰 라드라는 사람은“이 법은 본래 전통적인 유대인의 법이 아니고 그 당시 근동 지방에 유행했던 보편적인 법을 차용해서 성경에 기록한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법에 근원을 따져 가보면 여러분 기억하시는 법전에도 이런 유사한 법이 있고 흔히들 말하는 탈리오 법칙이 있습니다.
Lex talionis라는 탈리오 법칙에 골격은“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렇게 죄에 대해서 똑같은 동일한 벌을 가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신명기 19장 21절에는“네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봐주지 말라는 겁니다. 그대로 사람을 죽인 자는 그대로 죽이고, 눈을 상하게 한 자는 눈을 상하게 하고, 이를 상하게 한 자는 이를 상하게 하고, 손을 자르게 한 자는 손을 자르고, 발을 자르게 한 자는 발을 자르게 하라는 겁니다. 얼마나 엄한 법이 시행이 되어졌습니까? 그 당시에 이런 엄한 법이 시행이 되어짐으로 말미암아서 많은 사람들은 실수로 죄를 저지른 다음에 정당한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때로는 가족들에 의해서 팔이 잘려 나가기도 하고, 눈이 뽑히기도 하고, 목숨을 잃는 그런 일들이 너무도 흔하게 자행이 되어 졌었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재판 절차를 거칠 때까지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든 엄청난 죄를 저지른 사람이든 보호를 받아야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살인자가 제사장 앞에 나와서 자기의 모든 죄를 고하고 정당한 재판을 받아서 무죄가 선언이 되든 유죄가 선언이 되든 이 도피성에서 피신해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는 겁니다.
여러분, 고대 사회로 올라갈수록 법의 처벌은 아주 강했습니다. 현대 사회로 이 법이 발전
해 오면서 사람을 보호하고 인간을 존중하는 그런 정신과 이 법이 상당히 순화되어진 것을 볼 수가 있
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2절에“사람을 쳐죽인 자는 반듯이 죽일 것이나”정상 참작이 없었습니다. 오살한자, 실수로 과실 치사케 한자는 바로 도피성에서 정당한 재판절차를 밟아서 구제하는 방법이 있었지 만 그 외에 살인한자는 무조건 죽이도록 되어있다는 겁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형법 250조가 살인죄에 대한 조문입니다.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사람을 살해한자는 최고형이 사형이지만 가장 가벼운 형은 5년 이상의 징역이라는 겁니다. 조금 더 이것보다 무거운 살인 죄는“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 징역에 처한다.”가족들의 경우에는 조금 더 법이 무겁습니다. 그러나 과실치사에 대해서는 아주 가볍습니다. 형법 267조 과실치사 제는“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백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아주 약하지 않습니까? 그냥 사람을 살해한 자는 최소한 5년이상의 징역이나 또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에 처하지만 과실로 말미암아 사람을 죽게한 사람은 2년이하의 금고 또는 7백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우리 현행 대한민국형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사회에서는 이렇게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무조건 죽이는 것입니다. 그런 아주 엄한 법 체계하에서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 고의가 아닌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했는데 그 장치가 바로 도피성 제도라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해줍니다.
도피성은 누구나 찾아올 수 있는 그런 곳에 위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성경을 보시면 도피성은 요단강 동편에 세 곳, 요단강 서편에 세 곳 이렇게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있었을까요? 요단강 서편이나 동편, 어느 한쪽에만 도피성을 만들어 놓으면 요단강 동편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요단강 서편에 있는 도피성으로 도망을 가려고 하다가 요단강이 흐르기 때문에 제대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잡혀서 죽을 수도 있고, 요단강 서편의 사람이 죄를 지으면 요단강 동편으로 도망을 가다가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공히 요단강 동편에 세 곳, 요단강 서편에 세 곳, 그것도 적당한 위치에 전체 여섯 개의 도피성을 설정해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도피성은 성이 있으면 그 성의 가장 중앙지역에 위치하도록 했습니다. 누구든지 쉽게 그 성에 찾아 나올 수 있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눈에 잘 띠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도 록 했습니다. 그래서 그 도피성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다가 다른 사람의 복수의 칼날에 죽는 일이 없도 록 했습니다. 누구든지 쉽게 찾아와서 누구든지 쉽게 발견하고 누구든지 쉽게 나오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장정들을 일년에 한번씩 총 동원을 해서 도피성읍으로 이르는 길을 깨끗이 닦게 했습니다.
길이 험해서 도피성에 접근해가지 못하도록 하지 않고 도피성에 쉽게 접근해 갈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 놨다는 겁니다. 다른 어떤 성읍에 들어가는 길보다도 탄탄대로로 닦아 놓았습니다.
여러분, 이 도피성 제도는 구약에 있었던 범인들을 보호하기 위한곳이었고, 부지중 오살한 자를 위한 하나의 제도였지만 이 도피성이라는 제도는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의 교회를 상징하는 구약의 제도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될 줄 믿습니다.
4. 누구나 쉽게 찾아 올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교회 나오기가 너무 힘들고, 교회 찾기가 힘들고, 교회에 접근하기가 힘들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교회는 언덕 위에 눈에 확 띠는 그런 곳에 자리잡은 교회입니다. 도피성은 언덕 위에, 산 위에 어디에서 봐도 보이는 그런 곳에 위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그 성읍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도피성은 그 도피성에 이르는 길을 잘 닦아서 누구나 쉽게 도피성에 접근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도피성에 들어갈 때 절차가 복잡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이런 이런 잘못을 저질러서 사람을 죽였다고 시인만 하면 장로들은 빨리 문을 열어서 그 사람을 도피성으로 피신하도록 만들었고 그 사람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교회가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 험난한 세상에 서 죄짓고 실수하고 이 세상에서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됩니다. 이 세상에서 유리 방황하는 사람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 교회여야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보호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교회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도피성 제도 가운데
이런 범인이 재판을 받습니다. 이제 도피성안에서 피신을 해 있다가 복수자들에게 내어주지 않고 보호를 받고 난 뒤에 이제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재판을 받습니다. 이 사람이 과연 실수로 사람을 죽였는지 아니면 고의로 사람을 죽이고 도피성에 피신을 해 와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이것을 면밀하게 검증을 하고 난 뒤에 대제사장은 판결을 내립니다. 이 사람은 아무런 고의적인 살해 혐의가 없다라고 판정을 내리면 그 시간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은 이 사람을 죄 없다고 인정을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제약이 있었습니다. 죄 없다고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 사람을 자기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참 기가 막히는 일 아닙니까?
예를 들어서 신탄진 성읍에 살던 어떤 사람이 거기서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대전에 있는 도피성으로 도망을 와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이 이 사람을 무죄하다고 판결을 내려도 신탄진에 돌아가서 살수가 없었습니다. 이 대전이라는 도피성에서 살아야했습니다. 언제까지 살아야 했느냐면 이 대전이라는 도피성에 대제사장이 죽고 새로운 대제사장이 세워질 때까지 대전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대제사장이 세워지면 그 새로운 대제사장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고향에 돌아가서 살도록 했습니다.
여러분, 신약성경 히브리서 9장 11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장래에 좋은 일에 대제사장으로 오사”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고 우리를 해방시켜주셨다는 겁니다. 우리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얽매여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마귀의 권세아래 포로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 오심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대제사장 안에서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바로 이 도피성에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도피성에서 보호받는 자들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악이 이 세상의 사탄 마귀의 권세가 나를 잡아죽이려고 한다 할지라도 이 도피성에 있는 사람들, 도피성에 거하는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해주심을 우리가 믿어야 될 줄 믿습니다. 우리 한밭교회가 이 대전에, 이 충청지역에, 이 대한민국에 도피성의 역할을 온전하게 감당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