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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9-24
흔들리지 않는 맘이 능력입니다 / 김영주 목사
1. 유다의 세 번째 왕, 아사에 대한 기록
잘 한 것-종교개혁, 무엇을 개혁한다는 것은 쉬운 일 아니다. 기득권 세력들과 생명 걸고 싸워야 한다. 대개 사람들은 웬만하면 그냥 받아들이고, 조용히 살고 싶어 한다. 안정을 추구하며 변화를 싫어한다. 갈등하고 싶지 않고, 충돌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와 개혁을 원하면 엄청난 싸움을 해야 한다. 순탄하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하면 개혁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개혁의 제 일 대상이다. 성령님은 새롭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신앙에 있어서 개혁해야 할 두 가지
1)신앙의 선을 긋고 믿는다.
-여기까지만 하고 선을 그어 버린다. 그 선 너머에는 또 다른 은혜, 또 다른 역사가 기다리고 있는데 그 선을 넘지 못하니까 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가지 못하는 것이다.
-주변에만 머물지 말고,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야한다. 한 번 쯤은 도전해봐야 한다.
최소한 연탄재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겠는가?
시)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기도도 수요기도, 새벽기도, 금식기도가 각각 맛이 다르다.
목원 때, 목자 때, 초원지기 때 다르다. 섬김 받을 때 다르고 섬겨줄 때 다르다.
기도도 10분 기도 다르고, 30분, 1시간, 3시간이 다르다. 늘려 보고, 깊이 해봐야 한다.
일반기도, 통성기도, 침묵기도, 방언기도, 통역기도 다 다르다.
찬양, 방언찬양....등 아직 경험하고 만나야 할 부분이 너무 많다.
선 긋지 말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가면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기로 하는 것이다.
2)안주하기 원한다.
변화를 싫어한다. 과거에 묻혀 산다. 추억에 의지해서 산다.
장래를 보며 사는 것 아니라 과거를 보며 살고 있다. 이제 좀 편하게 살아보자.
이런 사람에게 어찌 전진이 있으리요?
예화)
공부, 옛날-교과서만 공부하면 됐다. 지금은 안 된다. 학원도, 인터넷 강의도 받아야한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영적 성장이 있으려면 도전하고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새롭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이 계신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전통, 규율, 과거에 묶여있는 사람, 그저 안주하기 원하는 사람은 절대 따를 수 없다.
성령님은 시대를 앞서서 인도하시기에 지금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따를 수 없다.
예)예수님- 안식일 개념을 바꿨다. 율법의 가장 중요한 정신을 외쳤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그런데 이것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우리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믿는다 하면서 하나님 대적 노릇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가장 대적하고 힘들게 했던 사람들-종교인들이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대제사장, 종교적인 틀에 갇혀있었고,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락함,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 조용히 살고 싶다. 이제 할 만큼 했다. 이런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다. 갈렙처럼 살아야 한다. 85세가 되어서도 하나님을 위해 청년처럼 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시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다음 세대는 다음 세대를 들어서 쓰실 것이다.
2. 아사의 종교개혁(12-15절)
15:11 “아사가 그의 조상 다윗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15:12 남색하는 자를 그 땅에서 쫓아내고 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15:13 또 그의 어머니 마아가가 혐오스러운 아세라 상을 만들었으므로 태후의 위를 폐하고 그 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나
15:14 다만 산당은 없애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으며
15:15 그가 그의 아버지가 성별한 것과 자기가 성별한 것을 여호와의 성전에 받들어 드렸으니 곧 은과 금과 그릇들이더라“
1)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했다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사람에게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했다. 이 의식을 갖고 산다는 것 쉬운 일 아니다. 많은 것 감수해야 한다.
2)남색 하는 자 정리
동성연애자가 아니라 이교 의식에 동원되는 남창을 말한다.
3)우상을 없앰
문제-“...그의 조상들이 지은 모든 우상을 없애고....”
조상들이 해왔던 일과 손 뗄 각오 했다. 조상 때부터 대대로 해오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처리해버리면 조상들, 어른들, 주변 사람들과 관계 깨질 수 있는 것이다. 아스다롯, 밀곰, 그모스, 바알등을 다 없앴다.
예) 조상제사 못 없애는 이유? 재앙을 당할까봐? 노! 관계 때문이다. 어른들 싫어할까봐, 부부관계 깨질까봐, 가족들의 미움 살까봐, 가문에서 나가라 할까봐.
4)태후의 위를 폐함
아사의 어머니-마아가, 그러나 어머니가 아니라 할머니가 맞을 것이다. 아사의 아버지 아비얌의 어머니가 마아가로 나오니까, 아비얌이 일찍 죽은 후, 할머니인 마아가가 태후의 위치에 앉아 섭정을 했던 것이다. 그래서 태후란 말은 지위나 기능의 명칭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다. 그런 할머니가 우상숭배를 했다. 그리고 개혁하려는데 할머니가 반대한다.
인간의 정 때문에 개혁할 수 없다.
우상 숭배자들은 태후의 빽을 믿고 버티면서 저항했을 것이다.
할머니를 치는 것은 인륜에 어긋난다.
이건 종교를 떠나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종교 때문에 집안 싸움하는 것은 문제 있다. 집안 화합이 중요하지 종교가 뭐가 중요하냐? 말한다.
그런데 태후의 위를 폐해버렸다. 눈물 흘리면서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가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정 때문에 못하는 것, 진리를 붙들고 작심하고 결단했다. 헌신이란? 인간적인 정을 떼는 것이다.
예)민25:1-13절, 새 번역 성경으로.
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무는 동안에, 백성들이 모압 사람의 딸들과 음행을 하기 시작하였다. 25:2 모압 사람의 딸들이 자기 신들에게 바치는 제사에 이스라엘 백성을 초대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은 거기에 가서 먹고, 그 신들에게 머리를 숙였다.
25:3 그래서 이스라엘은 바알브올과 결합하였다.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크게 진노하셨다.
25:4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백성의 우두머리들을 모두 잡아다가, 1)해가 환히 비치는 대낮에, 주 앞에서 그것들의 목을 매달아라. 그래야만 나 주의 진노가 이스라엘에서 떠날 것이다." 또는 '여러 사람 앞에'
25:5 모세는 이스라엘 재판관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제각기 당신들의 남자들 가운데서 바알브올과 결합한 자들을 죽이시오!"
25:6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 어귀에서 통곡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한 남자가,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한 미디안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25:7 아론의 손자이자 엘르아살의 아들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이것을 보고 회중 가운데서 나와, 창을 들고,
25:8 그 두 남녀를 따라 장막 안으로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의 배를 꿰뚫으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서 그쳤다.
25:9 그러나 그 염병으로 이미 죽은 사람이 이만 사천 명이었다.
25:10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5:11 "아론의 손자이자 엘르아살의 아들인 제사장 비느하스가 한 일을 보아서, 내가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에게 화를 내지 않겠다. 그는, 이스라엘 자손이 나 밖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이스라엘 자손을 홧김에 멸하는 일은 삼갔다.
25:12 그러므로 너는, 내가 비느하스와 평화의 언약을 맺으려 한다고 말하여라.
25:13 그와 그 뒤를 잇는 자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보장하는 언약을 세우겠다. 그는 나 밖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자손의 죄를 속해 주었기 때문이다."
신앙은 결단이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인간적인 정을 떼는 것이다. 정 때문에 못하는 것, 믿음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단한 사람들은 다들 잘 됐다.
5)우상을 찍어 기드론 시냇가에 불살랐다.
기드론 시내는 과거 솔로몬 왕 당시, 우상 숭배를 하던 신당이 있던 곳이다. 그리하여 멸망산이라고 이름하고 있는데, 여기는 통상, 여호와 신앙과 우상 숭배의 결전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기드론 시내에 가서 우상들을 찍어 불살라버렸다. 여호와 신앙의 승리를 선포한 것이다. 우리 삶에도 결단할 것들이 있다.
예)집에 있는 부적, 그림, 선물, 책...다 없애야 한다. 두 마음 정리해야 한다. 한 마음만 갖고 믿어야 한다.
3. 아사의 잘못
1)위급할 때 하나님대신 아람의 도움을 구함
북 이스라엘이 유다를 칠 때, 다급해진 아사왕은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고, 인간적으로 힘 있는 아람 왕 벤하닷을 의지하고 원군 요청함. 와서 도와줌으로 유다는 전쟁에서 살아남았으나 이로 인해 선지자 하나니의 맹비난을 받음-하나님 앞에 잘못되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려면 끝까지 의지해야지 다급하고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 대신 다른 사람을 찾아? 대하16:7-9절,
대하16:7 그 무렵 하나니 선견자가 유다의 아사 왕에게 와서 말하였다. "임금님께서 시리아 왕을 의지하시고, 주 임금님의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셨으므로, 이제 시리아 왕의 군대는 임금님의 손에서 벗어나 버렸습니다.
16:8 에티오피아 군과 리비아 군이 강한 군대가 아니었습니까? 병거도 군마도 헤아릴 수 없이 많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임금님께서 주님을 의지하시니까, 주님께서 그들을 임금님의 손에 붙이지 않으셨습니까?
16:9 주님께서는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셔서, 전심전력으로 주님께 매달리는 이들을 힘있게 해주십니다. 이번 일에, 임금님께서는 어리석게 행동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임금님께서는 전쟁에 휘말리실 것입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아람 왕을 불렀지만 그것이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로 들어가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2)병들 때 하나님 찾지 않음(대하16:12-13, 왕상15:23절)
16: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구 년이 되던 해에, 발에 병이 나서 위독하게 되었다. 그렇게 아플 때에도 그는 주님을 찾지 아니하고, 의사들을 찾았다.
16:13 아사가 죽어서 그의 조상과 함께 잠드니, 그가 왕이 된 지 사십일 년이 되던 해였다.
아사가 발에 병이 든 것은 39년째였다. 그리고 41년째 죽었으니까 2년간 병을 앓은 것이 되었다. 병 생기고 2년 지나서 죽은 것이다. 이 병은 피부병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 병이란 단어가 히브리어로는 ‘하라’인데, 이 말뜻은 문질러 없앤다는 말이다. 발에 생긴 가려움증을 이기기 위해 발을 문지르면서 악화된 것 같다.
본문의 여운 두 가지
1)이 병은 나을 수도 있었다.
병들어 힘들고, 죽을 것 같을 때 전심으로 하나님 찾고 매달렸다면 하나님이 살려주실 수도 있었는데 아사는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병들고, 아프고 힘들 때, 특별히 불치병일 때 더 하나님 찾아야 하지 않나? 불치병은 하나님이 안 고쳐주시면 누가 고칠 수 없다. 의사도 못 고친다. 죽기 살기로 찾아야 한다. 그런데 더 멀어져버렸다. 그래서 낫지 못했다.
2)불신이 그를 죽게 했다.
하나님의 능력과 전능하심을 믿지 않은 것이다. 믿었다면 기도했을 것이다. 하나님 찾았을 것이다. 다리에 병났다고 바로 죽지 않는다. 정 문제되면 잘라내면 될 것이다. 그런데 다리에 병 났을 때,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오지 않았다. 찾지 않았다. 아마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약 좋으니까, 의료기술 발달했으니까, 훌륭한 의사들 많으니까. 그 사람들이 하라는대로 하면 낫겠지?
하나님의 종들의 말은 잘 안 들어도, 의사들 말은 아주 잘 들었을 것이다. 물론 여기 의사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메디칼 닥터가 아니다. 신비술에 의지하여 병을 고치는 일종의 마술사 같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병들었을 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이런 마술사같은 사람을 찾은 것이 문제였다. 살려고 찾았지만 죽게 만들었다.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찾아야지 마술사를 찾아서 낫겠는가? 발병, 2년 만에 죽었다는 것은 병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병이 문제 아니라 불신이 문제다. 스스로 심판을 자초한 것이다. 하나님은 살려주고 싶었는데 본인이 죽기를 선택한 것이다.
아사의 문제? 평소에는 하나님 잘 믿고, 담대했다. 그런데 갑작스런 위기가 닥치면 믿음이 힘을 못 쓴다. 그냥 무너지면서 힘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 영향력 있는 사람을 찾았다.
건강할 때는 하나님 잘 믿었다. 그런데 병드니까 형편없이 무너져버렸다. 그나마 찾던 하나님도 찾지 않았다. 의사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다. 그 믿음 좋은 아사가 이렇게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 우리도,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을 개혁해야 한다.
신앙의 선을 긋지 말고, 편하게 살려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