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움 산((Museum SAN))
박경선
원주 뮤지움산(Museum SAN)은 제주 본태 박물관과 섭지코지의 유민박물관을 설계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로 물과 빛으로 완성되는 건축물로, 뮤지움의 산은 space(공간), Art(예술) Nature(자연)의 약자를 따 만든 이름이라하니 ‘자연 공간의 예술’이라고 조합해보았다. 산속에 있는 덕에 사방에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다. 워터 가든을 들어서니 빨간 게가 집게발을 벌리고 서 있는 듯한 조형물이 물 가운데 높이 세워져 있는데, 관리인은 장화를 신고 얼어있는 얼음들을 밟으며 얼음의 잠을 깨워내고 있다.
‘그냥 두어도 좋을 텐데?’
생각하며 형님과 빨간 게발 앞 조형물 밑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이 게발 조형물이 뮤지엄산 워트 가든의 상징물인가 싶다. 입구에서는 이 뮤지엄산 도안을 드로잉, 팬 드로잉, 조감도 버전으로 만들어 팔고 있었다. 어쩐지 세련미와 신선미가 느껴지는 건물 앞 물을 들여다보니 빨간 게발 조형물이 주인공이 아니고 게발 조형물을 담고 있는 물이 주인공인 듯 아름다웠다. 물과 빛과 건물이 만나 이뤄내는 예술성에 흠뻑 빠져들어 보았다.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철로 만든 빨간 대형 사람이 두 팔을 양옆으로 벌리고 “야야!” 외치고 있는 포즈로 서 있다. 조각가 세자르가 조각한 작품 <빌 르타뇌즈의 사람>이란다. 설명판을 읽으니 볼트, 너트, 철근, 프로펠러 등을 섞어 인간 형태로 만든 작품이란다. 작은 고철판을 용접하여 거대한 날개를 불균형으로 만들어 산업사회의 일회성을 풍자한 조각이란다.
<밤의 장막>이라는 조각은 입체파와 초현실주의 영향을 받은 루이즈 네벨슨작인데
책상, 의자, 상자 등을 재구성한 아상블라주 작품이다. 어두운 꿈의 세계를 나타내기 위해
광택이 나지 않는 검정색을 사용하였다는 설명판이 서있다.
워터 가든을 걸어 뒤편으로 들어서니 야외 정원에 두 나이 든 연인이 각자 벤치에서 양쪽에 대각선으로 앉아 있는 모습을 흰 석고상으로 만든 작품이 놓여 있다. 석고상 연인이 상징하는 의미는 뭘까? 눈이 올 것 같은 이런 날 야외 벤치에 앉아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담? 좀 서늘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석고상 연인이었다. 조금 더 들어서니 경주 고분 크기만한 돌무덤이 경기도, 경상도 이름을 달고 9개의 돌무더기로 놓여 있었다. 작가는 저 거대한 돌무더기를 설치하여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작가의 품은 뜻은 읽히지 않고, 내가 읽은 것은 이것이었다. 원주 석산에서 채석한 돌이라는데 저렇게 큰 돌을 채석하고 → 운반해서 거대한 돌무더기 산으로 짜 맞추기까지의 과정에서 인부와 작가에 이르기까지 들인 수고가 큰 산처럼 놓여 있는 것만 읽혔다.
큰 산의 의미가 읽혀지지 않는 까닭은 언젠가, 경남 화동군 지리산 청학동 끝자락에 신화를 바탕으로 성벽처럼 쌓아놓은 돌탑(유튜브에서 본)이 떠올라서 이리라. 강민수라는 초로의 남자가 화전민이 살다 떠난 터 120만 평에 곡괭이 하나로 돌을 파고 땅을 낮추어 기를 받으며 50년간 쌓은 돌탑인데 돌탑 구멍마다 얼굴상이 다른 석상 삼천 개가 놓여 있다. 거기에도 뮤지움산같은 능이 하나 있는데 그 능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당이라는 개념으로 앞에는 원방각이 놓여 있다. 언뜻 보면, 요즈음 유행하는 오징어 게임 그림 석 점이 그려져 있는 것 같은데 아니다. 둥근 하늘을 뜻하는(천)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네모 땅(지) 인간을 나타내는 삼각형 (각)의 뜻을 담고 있다. 강민수 씨는 마음에 무엇이 맺혀 여기까지 왔을까 스스로 반문하며 정체성을 찾던 중, 단군을 모신 <건국전> 세 글자를 의식하여 민족의 제대로 된 정체성을 찾으려고 고조선부터 내려온 이야기를 돌 위에 옮겨와 새겼고, 돌탑을 통과 할 때마다 고대 문자가 천장에 펼쳐지도록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를 스케치한 문양을 천장에 그려넣었다. 죽선자 돌부리 능에는 좌 청룡, 우 백호 남 주작 북 현무를 새겼고, 본래 물이 솟아올라 넘치는 분지를 7년 걸려 깊이 10m 넘는 호수도 만들었다. ‘선생님은 신선같아요.’하는 PD에게 ‘신선은 참 나를 찾아서 사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는 신선의 기운을 받아 영혼을 담아 돌탑을 쌓아온 참 조각가였다고 평하고 싶었다. 그가 지어놓은 돌탑은 <신선 선국>이라는 주제가 뚜렷하게 보였다. 그 강민수의 50년간 공부하며 공들인 돌탑에 비하면 이 뮤지움산의 안도 타다오의 9개 능은 제아무리 세계적인 건축 조각가라 해도 영혼 없는 돌무더기, 주제 없이 엉터리로 사기 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지의 소치라 해도 내 눈에는 그렇게만 보였다.
씁쓰레한 기분으로 외부 명상관의 문을 여니 내부 바닥이 따뜻하고 요가 매트를 둘러서 동그랗게 둘러앉도록 자리를 만들어 두었는데 앉으니 모니터 화면에 명상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나왔다.
제임스 터렐의 시각 예술 감상법 그림이 화면에 비쳤다. 설명서에는
<하늘과 빛을 관조하는 가운데 명상과 사색의 시간을 누리며 그 시간을 통해 내면의 영적인 빛을 마주하는 빛으로의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고 적혀있다. 그래서 제임스 터렐 감상 방법을 찬찬히 읽어보고 한 번 좋은 경험을 해보리라 집중해보았다.
스카이스 페이스/스스페이스 디비전
① 의자에 앉아 타원형 하늘빛을 본다
② 스카이스페이스 내부를 걸어본다
③ 중앙에서 바닥을 보면 하늘빛이 보인다
④ 출입구 통로에서 위를 보면 동그란 원형이 보인다
호라이즌룸
① 의자에 앉아 사각형의 하늘을 본다
② 하늘을 보면서 계단을 통해 걸어 올라간다
③ 호라이즌 룸 외부를 걸으며 자갈 고리를 들어본다
웨지워크
① 어둠에서 안개가 낀 붉은 색의 공간을 감상한다.
② 푸른색 선이 선명해지는 것을 경험해 본다
간츠펠트
① 의자에 앉아 색의 변화를 확인한다.
② 계단을 통해 4각형의 화면 안쪽으로 들어간다
③ 왼쪽/오른쪽 벽을 보며 무한한 공간의 확장을 경험한다. (내구 공간 끝에는 낭떠러지가 있어 위험하니 안내선 이내에는 들어가지 마라)
설명서에서 내면의 영적인 빛을 마주하는 빛으로의 여정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 깊이에까지 끌려들지 못하는 내 수준과 감성이 안타까웠다.
내부로 들어와 실내 미술관에 들어섰다. 한국 미술의 산책 방에 들어서니 친근한 이중섭의 게를 그린 작품과 박수근의 아이 업은 여인 모습 등 눈에 익은 명화 들 몇 점이 보여 반가웠다. 구상과 회화 대작들도 보였지만 그보다 식물의 방이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방이라면서 <멈춤, 그리고 바라보기> 제목 밑에 설명을 적어 두었다.
“힘든 상황을 벗어나고자 치유 힘을 갈구할 때 자연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다. 호기심 있는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그저 바라보고 관심 기울이면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움을 우리는 발견하게 될 것이다.
STOP
- 반응하지 않고 잠시 멈춘다
- 호흡하며 숨을 몸으로 들여 마시고 내쉰다.
- 관찰한다.
- 신체 감각으로 떠오르는 생각을 관찰한다.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라고 쓰여 있다.
그대로 따라 해 보기로 하고 식물을 둘러보았다. 웅장한 건물 한 방에 나뭇잎을 채집해서 채집한 날짜와 장소가 적힌 채집 물을 압화로 눌렀다가 그것을 사진으로 찍어 전시한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나뭇잎 한 개씩 주워 와서 종이에 붙이고 자기만의 생각을 일기로 적은 종이가 학교 교실 뒷벽처럼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떠오르는 생각에 집중한 뒤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 보라.’는 뜻일 텐데, 결과물들을 읽어보니 초등학생들의 평범한 학습물 같은 전시물로 보였다. 야외 안도 타다오의 9개 돌무덤과 합해서 19,000원(경로 할인은 15,200원)들인 관람료가 아까웠다.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해 속이 상했다. 긴 복도를 돌아 나오니 의자들을 놓아놓고 의자의 변천사를 설명해둔 코너도 보였다.
⑨ <뮤지움산(박물관)에서 종이 박물관 관람>
옆 건물은 종이 박물관이었다. 종이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이야기로 종이의 가치를 재발견을 할 수 있도록 옛날 종이 제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종이 관련 유물들과 옛 종이 제작 기구들도 있었다. 닥종이 제작 방법도 닥나무 채취→ 씻기 → 삶기 →한지 뜨기 → 물 짜기 →한지 말리기 과정별로 설명해두었다. 한지는 100번의 공정(한 제품이 완성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하나하나의 작업 단계)을 거친다고 백지라고 하였다하니 종이 한 장 만드는데 드는 수고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갔다. 닥종이로 만든 민속 공예품 중에서도 비 오는 날 신을 신발을 만들기 위해 한지에 방수 효과가 있는 기름을 먹이거나 옻칠을 하거나 콩 땀을 먹이고 징을 박아 진신을 만들어 둔 것이 한참 동안 마음에 끌렸다. 물건이 흔하지 않던 그 옛날에 신발 한 컬레를 만들기 위해 공을 들이느라 모인 종이며 수고가 얼마나 되랴 싶으니 그 신발 한 켤레가 참으로 귀중하게 여겨졌다. 호랑이 모양의 한지 베개도 보였다. 호랑이 모양 베개를 베고 자면 편안한 잠을 잘 수 있다는데 호랑이가 지켜준다고 믿어서 그럴까? 한지를 기름을 먹여 아코디언 식으로 간편하게 접어 쓰는 접등도 인상적이었다.
내 취향에서 보자면, 이 박물관에서 가장 공들인, 제대로 된 전시장이라면 이 종이 박물관이라 할 수 있겠다. 25쪽.2021.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