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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회(URI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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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洪海里 스크랩 <시인론> 이무원 시인을 말한다
홍해리洪海里 추천 0 조회 90 15.04.18 06:0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시인론> 

 

이무원 시인을 말한다

- 물 같은 사람, 물의 시인

 

洪 海 里 (시인)

 

 

점과

선과 색깔로

우는

새여,

날개는 접어

천상에 두고

수묵색

노래 엮어,

이승의 하늘

무변의 지상

원으로 그리네.

            - 洪海里의「풍경 -李茂原」

 

  위의 글은 1987년엔가 발표한 작품이다. 인물을 시화하는 일이 쉽지도 않으려니와 제대로 되지도 않는 일인 것을 알지만 내 나름대로 이무원 시인을 기려 보았다.

우리가 만난 것이 1960년 봄, 까까머리 겨우 면하고서였으니 벌써 35년이란 기인 세월의 띠가 우리 두 사람을 묶고 있는 셈이다. 그간 우리에겐 아무런 마음의 변화가 없었다. 나는 변했는지 몰라도 그는 내게 있어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우리가 35년이나 우정의 변화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의 인품 덕이다.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사실은 아는 게 없다. 할 말이 없다.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은 누구에게도 펼쳐 보일 수 없다.

청탁을 받고 할 말이 없다고 하니 상대방이 쓰기로 했으니 나도 쓰라는 김규화 형의 명이었다.(『진단시』모임에서는 이렇게 호칭하고 있음) 그러나 목을 조르는 것 같다. 정말 할 말은 가슴속 깊은 바다에 묻어 두어야 한다.

 

  이무원 시인은 돌이다. 바위다, 피가 도는. 따뜻한 피가 도는 살아 있는, 움직이는 돌이다. 『우이동시인들』동인의 작업실 창을 열면 북한산의 인수, 백운, 만경봉이 그대로 가슴에 와 안긴다. 인수봉은 그의 머리요, 백운봉은 그의 가슴, 만경봉은 그의 마음으로 내개 살아 있다. 그는 산이다.

  그는 물이요, 공기와 같아서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물 같은 사람 - 그래서 그는 오래 전부터 瑞雨라는 호를 달고 다닌다. 때로는 그의 호를 거꾸로 ‘우서(웃어)?’하고 놀리기도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그는 정말 비다. 서우瑞雨는 길하고 상서로운 비다. 천둥 번개와 더불어 쏟아지는 폭우가 아니라 필요할 때 조용조용히 내려 온 세상을 포근히 적셔 주는 비다. 기인 겨울잠을 깨우는 봄비요, 여름날 초록빛 숲을 씻어 그늘까지도 투명케 해 주는 시원한 단비요, 가을 저녁 일을 다 마치고 느긋한 마음으로 한잔 할 때 술맛 돋우는 밤비요, 책 펴들고 앉아 삼매경에 들 때 처마 끝에 듣는 느긋한 겨울비가 그다.

  나는 불이라서 물인 그에게 가면 늘 조용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바람이라서 바위인 그에게 가면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불이라서 물(술)에 빠지고 그는 물이라서 담배(불)에 빠져 산다. 나는 그에게 불을 끄라 하고 그도 나를 보면 물을 끄라 한다. 담배는 그에게 독이요, 술은 나에게 독이라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나와 술을 하지 않는 그가 만나면 서로 끊어라 끊어라 한다. 그러나 그가 담배를 끊을 것 같지도 않고 내가 술을 끊을 것 같지도 않다.

  ‘그는 돌이다’라는 말은 앞서 했지만 그 돌 속에는 글과 그림이 보석처럼 박혀 빛을 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내는 일 없이 오랫동안 닦은 그림 솜씨와 글씨는 이미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다.

  이무원 시인은『詩文學』을 통해 등단한 후 1980년에 첫 시집『물에 젖는 하늘』을 내고 나서 7년을 참다 두 번째 시집『그림자 찾기』를 펴냈다. 이제 또 7년이 되는 금년에는 세 번째 시집이 빛을 보리라 믿는다.

  이제 50대 중반으로 진입하면서 그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제발 담배 좀 줄이고 건강에 유의해서 많은 작품을 보여 달라는 것뿐이다.

불이 물에게, 바람이 바위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그냥 가슴에 품고 살리라.

                                                  - 월간『詩文學』(1994년 2월호)에 게재.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위에 인용한 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단편적인 내용을 덧붙인 잡설雜說에 지나지 않을 듯싶다.

 

  이 시인은 1979년『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에 겨우 다섯 권의 시집을 상재했다. 1980년에 첫 시집『물에 젖는 하늘』, 1987년에『그림자 찾기』, 1994년에『빈 산 뻐꾸기』, 2002년에『물 詩』, 생전 처음 안아 본 손녀를 기념하여 2004년에 간행한 시집『서하 일기』가 전부다. 네 권의 시집은 7년을 주기로 해서 발간되었고 다섯 번째 시집은 손녀인 서하瑞河에게 헌정(?)하기 위해 빨리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물의 속성이 변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가 내게 건네 준 시집마다 표지를 다시 넘기면서 알게 된 것은 첫 시집에는 ‘洪海里 兄 惠存/ 李茂原 드림’이라 되어 있고, 두 번째 시집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고, 세 번째 시집에는 ‘洪海里 先生/ 李茂原’, 네 번째 시집에는 ‘홍해리 시인님/ 이무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건네받은 시집에는 ‘洪海里 詩人/ 李茂原’이라고 쓰여 있다는 사실이다. 호칭도 바뀌고 한자로 썼다 한글로 썼다 하면서 변화를 보여 주고 있다. 어찌 하여 ‘형’에서 ‘선생’으로 다시 ‘시인’으로 바뀌었을까? 그의 심정에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언제 한번 조용히 물어볼 일이다. 그냥 빙그레 미소를 짓고 말 것이 틀림없겠지만….

 

  이 시인은 대학 재학 중에도 꾸준히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등단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습작을 하다 1979년에서야 등단을 하게 된 것도 아마 내가 독촉을 해댄 것이 약효를 냈기 때문일 것이다. 두어 번 원고 뭉치를 들고 김윤성 시인을 함께 찾아간 일이 있었다. 원고를 본 김 시인께서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쉽게 추천을 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대학에 다닐 때 그와 늘 붙어 다닌 나는 그의 덕을 참으로 많이도 봤다. 우선 학교를 마치고 안암동에서 제기동을 거쳐 하숙집으로 갈 때 으레 들르는 곳이 옛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옆에 있던 성동역을 따라 늘어서 있던 술집이었다. 나야 고래였고 그는 병아리 눈물이 주량의 전부였다. 요즘도 술을 좀 마시라 하면 애초부터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이유가 모두 내 탓이라나 뭐라나. 내가 너무 많이 술을 마셔 대니 하숙집까지 나를 끌고 가기 위해서 술을 마시지 않다 천상의 음식을 맛보는 멋을 익히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변명이다.

 

 

물살 지을까 고요한 산맥山脈

이윽고 달이 뜨는 깊은 심연深淵

 

다 주고도 모자란 억겁億劫의 원으로 솟아

천상의 피리를 부는 두 봉우리

 

흙으로 빚어 심산深山 계곡溪谷의 폭포를 열고

뉘 볼까 약간 고개든 수줍음

 

오늘도 달빛에 젖어

빛이 고와 어둠이 싫어 불 밝힌 촛불

 

기다림은 그리움으로 다스리는 물결

아스라이 깨어질까 그 고운 수심水心

 

흘러가지 못하고 맴도는 산맥山脈

찰랑 물살 지을까

 

그 영원한 고요

그 화사한 투명

                     -「유방 소묘素描」전문,『물에 젖는 하늘』에서

 

  위의 시는 시인의 첫 시집의 작품이다. 남자마다 여성의 신체 부위에서 특별히 기호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얼굴을, 누구는 방방한 엉덩이를, 누구는 쏙 들어간 배꼽을, 누구는 호수 같은 눈을, 누구는 쭉쭉 뻗은 미끈한 다리를 좋아한다. 그는 대학 시절 큰 유방을 유난히 선호했다. 예쁜 얼굴보다 우선 유방이 커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당시 여배우들 가운데 최은희를 제일로 치고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서 봐야만 직성이 풀리곤 했던 것이다. 그래서「유방 소묘」라는 시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천상의 피리를 부는 두 봉우리’가 솟아 있는 산맥을 보면 금방 그의 유방 선호도를 짐작할 수 있다. 봉오리는 꽃봉오리를 나타내고 봉우리는 산봉우리를 가리키는데 이 시에서 ‘봉오리’가 아니고 ‘봉우리’이니 말이다.

 

  그의 첫 시집 후기에 “‘비어 있으므로 가득한, 가득하므로 비어 있는’ 내 가슴의 말을 찾아 나서면 나는 비 오고 난 겨울 숲에서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음을 본다. 그 기다림의 시간을 탓하진 않겠다. 진실된 사랑의 언어와 그 실현이 내게 허락되기를 기원하면서, 너무 오랜 기다림으로 젖어 올지 모르는 타성을 지우기 위해서도 나는 헤매며 찾고 찾을 것이다.”란 글이 보인다.

  우리가 한세상을 사는 일이나 시를 쓰는 일이 하나같이 기다리며 찾는 일이 아닌가. ‘비어 있음’ 속에서 ‘가득함’을 찾고 ‘가득함’ 속에서 ‘비어 있음’을 찾으면서 비어지기를 기다리고 가득 차기를 기다리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는 시인의 인생이 엿보인다.

 

  청춘에 사랑이 없다면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이다. 아름다운 초등학교 여교사가 고향의 모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옥이라는 국문과 여학생이 있었다. 그 두 사랑은 모두 짝사랑이 아니었나 싶다. 아마 손도 잡아 보지 못하고(‘못하고’가 아니라 ‘않고’가 옳은 표현일 것이다) 가슴만 썩이며 앓다 안타깝고 쓸쓸하게 헤어지고 만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답십리에 있는 하숙방으로 기어들어가기 전에 들르곤 하던 성동역의 주점에 순진하기 그지없는 영자가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갈 때마다 마치 시인의 아내인 양 모든 정성을 다해 수발을 들곤 했다. 물론 수발을 든 것은 우리에게가 아니라 이 시인에게만 그렇게나 지극정성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간단한 사랑의 의식인 구접口接 한 번 못하고 애만 태우다 헤어지고 말았다.

  두 번째 시집에는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이 7편이나 연작으로 발표되어 있다.

 

소리보다 확실한 그의 표정

 

비울 때 비워 소리 내지 않고

 

채울 때 채워 고요한 무늬

 

흰 구름 바라보면 산새소리도 들린다.

                     -「사랑 일기? 1?」전문,『그림자 찾기』에서

 

  참으로 많이도 생략하고 압축한 사랑이다. 여기서도 비우고 채우고 있다. 사랑이란 그렇지 않은가. 늘 목이 말라 물을 찾아도 샘은 말라 있고 물을 아무리 마셔도 목마름은 가시지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쩌자고 흰 구름장만 무심히 떠가고 있는 것인가. 그런데 산새소리가 또 들려온다. 일상이면서 가장 비일상적인 것이 사랑이요, 이성적이면서도 가장 비이성적인 것이 바로 사랑의 속성이 아니겠는가.

  이 시집 서문에 시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내게 있어 그림자는 진실이며,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이며, 우리의 삶을 이어가는 생명이며, 자신을 일깨워주는 거울이다. 나를 찾기 위한 그림자 찾기, 그것은 방황이며 아픔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뻐꾸기를 한 번만이라도 보기 위해 더욱 찾고 찾아볼 생각이다.’

  그렇다. 사랑은 그림자다. 그의 사랑은 사랑으로서 진실했을 뿐 일탈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방황과 아픔의 세월을 보이지 않는 뻐꾸기를 찾기 위해 그는 시의 길을 열심히 걸었던 것이다.

 

내 유년의 검정 고무신 한 짝을 가득 채운

뻐꾸기 소리

그것은 배고픈 한나절 햇살 덩어리였을까

앞산에서

뒷산에서

파란 숲 속 하얀 꽃으로

뻐꾹뻐꾹 피던 소리

이제는 허연 아파트 숲에서

초록빛으로

초록빛으로 울고 있다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기는 소리

뻐꾹뻐꾹

어머니 묘소에도 우는 뻐꾸기

아버지 묘소에도 뻐꾸기는 울어

내 심장의 고동도

뻐꾹뻐꾹

떨어진 고무신 한 짝 주워들고

나는 오늘도 달려간다

              -「빈 산 뻐꾸기」전문,『빈 산 뻐꾸기』에서

 

  이 시집에도 사랑을 노래한 시편이 9편이나 연작으로 실려 있다. ‘빈 산 뻐꾸기’가 노래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어찌 이성에 대한 것뿐이겠는가. 돌아가신 어버이에 대한 애틋함도 사랑일시 분명하다. 이 시집 4부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9편의 작품으로 채워져 있다.

이 시인의 어머니! 그분은 술과 노래를 좋아하고 잘 노시는 활달한 분이었다. 방학 때마다 그 댁에 가서 며칠씩 귀찮게 해드려도 싫단 내색 한 번 하신 적이 없는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이 시인이 술을 못하는 것은 참으로 별일이다. 아니, 별종이랄까, 천연기념물이라 해야 옳을까? 우리 두 사람은 네 집 내 집 없이 오가며 형제처럼 지내왔다.

  그런 어머니를 그리는 시인의 그리움은 ‘어머니 아버지는/ 한 이불 덮고 누워 계신다// 누가 간지럼을 태우시나/ 햇살이 깔깔깔 웃으며/ 배꼽을 잡고 있다// 생전에 심으신 낙엽송/ 가로 세로 칸 맞춰/ 하늘 높이 키를 재고 있다// 나는 어머니 무덤 옆에 누워/ 한숨 자고 싶다/ 풀물이라도 내 옷에 들이고 싶다’ (-「어머니 · 9」전문)에 명명하게 드러나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시퍼렇게 풀물 들이고 싶은 것이 자식의 마음이다.

 

물과 물이 몸을 섞는다

비운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완전한 합일合一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확인은 사랑의 병

물은 확인하지 않는다

헤어지면서도 물은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간절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포옹

억겁을 돌아도

추락을 모르는

절정의 꿈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생명生命

               -「물 詩 · 9 - 절정」,『물 詩』에서

 

  그는 충북 청원군 가덕면 청용리 능갓마을에서 태어났다. 주변에 누군가의 능이 있었는지 그가 태어난 마을을 능갓이라 불렀다.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명기요, 죽어서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명당자리가 아닌가. 능갓마을은 산자수명한 그런 곳이었다. 한여름 밤에 땀을 들이려 논 가운데 있는 샘물에 가서 등목(목물)이라도 할라치면 뼛속까지 얼어붙는 듯했던 기억에 지금도 온몸이 서늘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의 집은 축대를 쌓아올린 위에 지어져 있었고 마당가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집이 이제는 이 시인의 집이 아니다.

 

  이 시인을 말하면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이 시인은 물 같은 시인이다. 네 번째 시집에는 ‘물 詩’ 연작이 23편이나 된다. 물이 무엇인가. 사랑이 아닌가. 사랑은 완전한 합일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늘 확인하려 드는 것이 그 속성이다. 그러나 ‘물은 확인하지 않는다’고 시인은 설파하고 있다.

 

맨 위에 인용한 글에서 ‘그는 물이요, 공기와 같아서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물 같은 사람 - 그래서 그는 오래 전부터 서우瑞雨라는 호를 달고 다닌다.’라고 했듯이 그는 한결같이 물의 삶을 살고 있다. 아니 물이 되어 물로 살고 있다. 푸른 산 아래를 물로 흐르고 있다. 이와 같이 물 같은 그의 성품은 아마도 어머니보다는 사람 좋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그의 정신은 소요유逍遙遊를 즐기고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해 적선謫仙으로 살 수밖에 없는 천생天生 시인이다.

 

  몇 해 전 그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어쩌면 한평생을 함께 해온 불(담배)의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담배를 끊으라는 의사의 말 한마디가 주효奏效했는지 그는 그때부터 담배를 칼같이 끊고 그렇게 즐기던 기초嗜草를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건강을 되찾은 지금도 그는 불을 멀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가 병원에 입원한 사실조차 까맣게 모른 채 지나치고 말았다. 그가 누구에게도 전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병원에 들어가 있으면 귀신같이 알아서 문병을 오곤 한 사람이 이 시인이었다. 그것도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무려 다섯 번이나 전신마취를 한 경험을 내 몸은 훈장처럼 달고 있으니 그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기억이 내 마음속에 짙게 배어 있다. 그는 이런 사람이다. 이런 시인이다. 그가 늦게나마 담배와 결별을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인데 비해 나는 아직도 주효酒肴(물)를 즐기고 있으니 어쩔 것인가.

 

  그에겐 아들이 둘, 딸이 하나 있다. 내게도 역시 아들이 둘, 딸이 하나 있다. 우리 두 사람의 두 아들들은 모두 짝을 찾았지만 딸은 아직 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어찌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지 참으로 기이한 우연의 일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는 큰아들에게서 얻은 손녀 하나가 전부다. 내겐 손자 두 명, 손녀 두 명이 있다. 그러니 하나밖에 없는 손녀인 서하瑞河가 얼마나 예쁘고 소중하겠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고 잠시라도 못 보면 눈에 밟혀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하는 그의 말이 괜한 과장이 아닌 듯하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다. 손녀의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다. 본 것, 느낀 것을 그대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고운 마음을 가지고 어여쁜 눈을 가지고 아름답게 보고 느낀 그것이 아름다운 말로 굴러 나올 때, 나오는 모두가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고 한 소파 방정환의 <어린이 찬미>를 상기하’면서 손녀에게 바치는 시집을 한 권을 내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서하 일기』이다.

  이 시집의 해설을 쓴 임보 시인은 ‘『서하 일기』는 이무원 시인의 맑고 고운 마음씨가 어린 손녀의 천진무구함과 서로 만나 빚어내는 아름다운 협주곡이다. 어린 아이의 천진을 볼 수 있는 눈과 가슴이 없다면 어찌 이런 작품들이 생산될 수 있겠는가. 화자 스스로는 자신을 때 묻었다고 부끄러워하지만 작자는 어린이에 버금가는 순수함을 아직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환갑이 지난 나이임에도 그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음이 부럽기 그지없다.’라고 이 시인의 심성을 표출하고 있다.

 

나는 집에 들어갈 때마다

손가락을 빗 삼아

머리를 잘 다듬어 빗고

복장도 한 번 살펴본다

웃을 준비를 하고 입술의 긴장을 푼다

 

멋진 하버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하버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훌륭한 하버지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뛰쳐나와 품에 안기면서

우리 서하 하는 말

하버지, 수염이 따가워

 

다음엔 수염도 깎고 들어가야지

                        -「다짐 -서하 일기·44」전문

 

  이것은 손녀 서하의 충복인 시인의 다짐이다. 이런 다짐은 아마 평생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에게 시집 한 권을 헌정 받는 손녀가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또 손녀에게 시집을 만들어 줄 수 있는 할아버지가 어디 그리 흔할 수 있겠는가. 서하도 축복 받은 손녀요 이 시인도 복이 많은 시인임에 틀림없다. 부디 오래오래 손녀의 재롱을 즐기는 여생이기를 기원하고 싶다.

우리 두 사람의 만남이 오십 년을 넘었으니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지음知音은 못 되더라도 그 비슷할 만큼은 마음이 통하면서 우정이 이어지기를 바랄 따름이다. 물론 이런 욕심은 순전히 나만의 독선기신獨善其身임을 잘 안다.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남은 생을 건강하게 보내면서 물 같은 작품을 많이 써서 혼탁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맑게 정수하여 사람이 살맛나는 세상이 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뿐이다. 물은 모든 것을 다 해낼 수 있으니까.

  이 글이 올해 고희古稀를 맞는 이 시인에게 주는 한 친구의 정표로 읽혀졌으면 좋겠다.

 

                                             - 월간《우리詩》(2011.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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