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감(難堪)한 이야기
수필가 덕전 이응철
내륙 토박이가 모처럼 바다와 해후를 하였다.
바닷가 화진포에 근무한 이후로 해마다 한번씩 다녀왔는데, 하숙집 아주머님이 돌아가시고는
한번 다녀오기 조차 어려웠다. 3년동안 바다를 외면하던 전형적인 내륙의 토박이로 세월 속에 흘러가며 산다.
옥계 휴게소ㅡ.
1박 2일로 울진 위 덕구온천에서 딸들이 호강스럽게 부모를 초대해 폭염에 찌든 육신을 온천물에 보내고 귀가할 무렵이었다.
바다는 마치 첫사랑 여인처럼 나를 보며 수줍게 몸을 떤다. 왜 이제서야 오셨냐고. 69년 동해안 최북단 대진에 첫발령을 받고 찾아간 고성은 제 2의 고향으로 자리매김할 정도였다. 푸른 내 청춘을 어머니와 바다가 합세해 나를 빚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바다의 생명인 파도가 없는 날이다.
멀리 강릉이 보이는 옥계휴게소 전망대에 올라 힘없이 넘실대는 바다에 한창 귀를 기울일 때였다.
갑자기 막내딸이 엄마에게 보여주는 핸드폰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못 본체하고 수평선너머 던진 눈길을 거두지 않았다.
ㅡ아빠! 큰일 났어요
ㅡ언니가 죽변에서 내차에 짐을 옮길 때, 차 열쇠를 뒷트렁크에 놓았대요? 어쩌지?
아내와 막내는 발을 동동 구르며 차 트렁크에 떨어진 키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죽변은 경상북도 울진군에 속해 옥계에서도 두어 시간 잔뜩 걸린다.
큰딸은 정선 K랜드에 벌써 21년째 근무하고 있다. 오퍼레이션 1팀 차장으로 항상 배우며 요즘 대학 강의까지 나가고 있다.
오늘 저녁 타임이라ㅡ. 3시! 빨리 가야할 시간인데 아뿔싸!!
갑자기 평화스럽던 바다는 파도가 거꾸로 치솟고 끓탕이다. 세식구는 해결책 고심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ㅡ빨리 차를 돌려오던 길을 다시 갈 수 밖에!!
막내는 언니 저녁 출근에 지장이 없게 서두르고 있다.
어찌해야 할까?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막내차로 원거리를 달려오니 다시 돌아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죽변은 빨리 오라고 채근하지만, 아내는 중간지점에서 만나자고 엉뚱한 제안을 하다가 실소를 금치 못한다.
무엇을 타고 누가 올 것인가? 그야말로 소리 한마당에서나 나오던 난감하네 였다. 머리 속은 갈길을 몰라 방황하고
갈바람조차 외면한다. 큰일이었다. 무슨 묘안은 없을까?
그 때였다.
큰딸 전화였다. 모두 무겁게 구세주라도 온 것처럼 폰을 받는다.
그래ㅡ .아니라고? 기다릴 께, 응ㅡ.
갑자기 막내딸의 표정은 안정을 찾는다. 폭풍속에서 난파선이 한줄기 불빛을 발견한 것 처럼-.
부모는 좋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오로지 막내 표정에 승부를 건다.
-뭐라고 하던? 간다고? 온다고 ? 가지 않아도 돼? 빨리 말해 봐! 두늙은이는 연실 채근이다.
우리를 살려준 것은 퀵 서비스 이용이었다.
잠시 후 오토바이를 탄 기마병 같은 청년이 옥계휴게소에 나타났다. 걱정 마시라며 키를 건너받는다.
당시 그 표정은 진정 우리를 구해준 구세주임이 틀림 없었다. 죄진 사람처럼 몇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하니 벌써 청년은 사라졌다.
동해에서 퀵서비스를 하는 청년은 7만원에 단 한시간도 못되어 키를 전했다니 놀랍다.
생소했던 퀵서비스ㅡ.심부름 센터와는 다른 엄중한 직업이 일상에 막힌 구멍을 명쾌하고 뚫어주다니 !
무사히 키를 넘겨받아 저녁 타임을 차질없이 근무한 큰 딸의 순간 기지에 놀랐다.
돌아와 전혀 나와 생소한 퀵서비스를 두드려 본다.
ㅡ인기 추천 1위, 세상 편한 퀵서비스, 빠른 속도로 물품이나 서류 등을 배송, 기업퀵 전문, 후다닥 퀵,
과거 우리 세대는 급히 전할 물건이 있으면 장거리 운전사를 찾아 칠염드는 게 고작이 아니던가!
살면서 저마다 인간이기에 실수를 저지른다. 창이 있으면 방패가 있는 법, 최근 우리나라는 퀵서비스가 어느나라보다 발달되어 편리하다고 강조한다. 난감難堪하다고 한탄만 할 것은 아니다. 어려울 난難 견딜 감堪ㅡ.현자는 방법을 찾고 우둔한 사람은 구실을 찾는다는 격언을 다시 되새긴 하루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