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타인은 나의 거울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동시에 모두 나와는 별도로 독립적인 의식을 가진 존재이기도 합니다. 왜 자체적으로 의식을 가진 존재를 내가 창조했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이 사람들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의 믿음 체계라는 필터를 거친 나만의 느낌과 판단 및 평가로 이루어진 이미지, 나만의 버전으로 전환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뇌는 자동적으로 그 작업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화상 통화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한 강사가 진행하는 온라인 강의를 여러 명의 사람들이 동시에 시청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십시요. 스마트 폰이든 컴퓨터든 그 강사의 모습은 기술적 원리를 거쳐 각기 다른 기기의 화면에 투영이 되게 됩니다.
즉, 그 화면에 나타나는 강사는 실재가 아니라, 그 강사의 실제 모습을 전기적 신호 및 데이터로 환산하여 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은 각각 자신들의 기기를 통해 나타나는 인터넷 강사의 버전을 보고 있는 것이지 실재가 아닌 것입니다.
그 강사의 버전은 10명이 보고 있으면 10개가, 100명이 보고 있으면 100개가 각기 다른 해석과 판단의 형태와 버전으로 다르게 존재하게 됩니다. 우리가 상호 작용하게 되는 사람들도 우리 각자의 의식이 투영된 하나의 상이자 버전입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두고도 모두 다르게 느끼고 판단하게 됩니다.
상호 교류하는 대상들은 나의 버전, 혹은 나의 해석이 탄생시킨 이미지이지만 이들의 원형이 존재하는 것과 나와 상호 작용을 한다는 것은 실재입니다. 이들이 나의 에너지로 만든 나의 버전이라는 말은 나의 의식을 반사하는 존재, 즉, 나를 비추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서 오만함, 무례함, 불친절, 배타적 등등 분리 의식에서 나오는 여러 부정적 성질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도 그러한 진동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없는 진동은 느낄 수도 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것에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그렇다면 내 주위에 나타나는 부정적인 사람들이 1:1로 나를 그대로 비추지 않는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것은 정도의 차이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이 나의 이슈로 발현이 될 만큼 크지 않다는 뜻입니다. 나에게도 상대에게서 발견한 그 이슈와 같은 성질이 있지만 나의 지배적인 진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못에 떨구어진 잉크 한 방울처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일 정도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1:1로 비추는, 즉,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이슈를 그대로 비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제 3자를 비난하는 누군가가 자신이 비난하는 제 3자와 비슷한 행동을 하면서 본인은 그것을 모르는 현상을 종종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 역시 내가 만나는 부정적인 사람들은 내가 모르고 있는 나의 이슈를 비추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할 것입니다. 이것은 혹 내가 자주 이러한 피드백을 듣지 않았는지 살피고 솔직한 자기 탐구를 통해 찾아 내어야 할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그대로 비추는 경우가 아닐 때, 나는 이러한 피드백을 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 상대의 현실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즉, 그가 진정한 자신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현실을 공동 창조하기 위해 보다 높은 의식에서 함께 동의하여 서로의 현실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비난하게 되면 최소 그 순간 만큼은 그 대상의 진동과 내 진동이 같아지게 됩니다. 친절함, 너그러움, 정의로움, 거만함, 무례함, 가식적 등등 이렇게 누군가에게서 알아볼 수 있는 모든 진동은 잠재적으로 나에게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각각의 모습을 비춰주는 다양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내가 선호하는 나 자신과 그렇지 않은 나 자신을 선택할 수 없을 것입니다.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이들에게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것, 기능하지 않는 것이러 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 사람들의 깊은 믿음은 '두려움' 입니다. 나는 이들을 바꿀 수 없지만 내가 선호하는 세상으로 이동하는데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주위 사람들을 내가 창조했다면 그들은 의식이 없는 허상인가?
「이 세상은 환상이다. 가상 현실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내가 창조한 것이다. 」 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모든 사람들은 위식이 없는 나를 위해 프로그램 된 가상의 존재라는 말일까요? 만일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면 그것은 아주 큰 오해입니다. 주위 사람들은 나 자신이 만들어 낸 허수아비 같은 환상이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이 아닐 뿐만 아니라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을 진지하게 믿을 경우 주위 사람들은 감정이 없고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여겨 함부로 대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생명을 빼앗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과장이나 상상력에서 나오는 기우만은 결코 아닙니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창조했다" 라는 말이나 "다른 사람은 내가 만든 버전 중의 하나이다" 라는 말의 의미는 그들이 자유의지나 의식이 없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경험하는 사람의 관점과 인식의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는 말일 뿐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대상에 대한 판단을 가지며 감정을 일으키게 되는 것을 경험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내 에너지로 일어나는 해석을 반드시 거쳐야 가능해집니다.
즉, 나의 믿음 체계를 거쳐 일어나는 판단이 바로 그 대상이나 사람에 대한 나의 버전이고 이것은 내 고유의 에너지를 통해서 일어나는 나만의 경험이기에 나의 창조, 혹은 나만의 현실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내 믿음 체계를 통하지 않거나 내 에너지를 거치지 않으면 어떠한 경험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나에 의해 인식된 대상으로 나의 버전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사람 뿐만이 아니라, 모든 대상을 인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상대에게 있어서도 똑같습니다. 누군가가 나와 교류하기 위해서는 나 역시 그들만의 해석을 통해 인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믿음 체계를 통해 나를 판단하기에 그들은 나에게서 그들의 버전을 창조하게 됩니다. A라는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A의 여러 버전의 평행 현실 중 나의 진동과 매치가 되는 버전이 내 현실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A는 다시 나의 믿음 체계로 필터링 되어 나 자신의 에너지로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늘 무시받는 사람이다. 이것은 내가 가치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라며 나의 가치가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 된다는 믿음이 있다면 여기에 맞는 진동을 내게 됩니다. 그러면 내 진동과 맞는 대상이 내 현실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렇게 진동이 맞아야 누군가와 경험이 일어날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고, 두 번째는 그 대상의 행동을 내 의식의 필터링에 의해 판단하게 됩니다. 상대가 정말 의도를 가지고 나를 무시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나를 무시했다' 라는 내 믿음이 있는 한 상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시 당하고 내 가치를 박탈 당하는 경험이 되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호감이 가는 사람, 같이 있기도 싫은 사람, 사랑하는 사람, 신뢰가 가는 사람 등등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예외 없이 내 믿음 체계의 필터링으로 만든 나만의 버전, 내가 창조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와 똑같이 감정과 의식이 있는 독립적인 존재들입니다.
☞ 여기에 오시는 모든 분들이 우리는 나와 상대방 이미지의 창조자임을 깨달으시고 내가 원하는 내 삶의 창조자가 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