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소야곡(追憶의 小夜曲)』(작사 한산도, 작곡 백영호)은
1955년 「남인수」(南仁樹)선생이 '빅토리 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
『추억의 소야곡』은 '애수의 소야곡', '눈물의 소야곡'과 함께
「남인수」의 3대 소야곡 중 한 곡으로, 작사가 '한산도'가
「남인수」와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을 주인공으로 만든
노랫말에 작곡가 '백영호'가 곡을 붙였습니다.
"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 싶어라"로 시작되는 이 노랫말에서
'그 얼굴'의 주인공은 「남인수」의 첫사랑 '이난영'입니다.
그들은 1934년 '목포 가요제'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 이난영이
18세, 「남인수」가 16세로 연상, 연하의 만남이었다고 하네요.
1936년 '이난영'이 작곡가 '김해송'과 결혼하면서 두 사람은 멀어
졌습니다. 그 후 20여 년이란 세월이 흐른 1955년, 「남인수」는
고향인 경남 진주에서 폐병(肺病)으로 요양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작곡가 '백영호'가 악보를 들고 진주로 달려왔는데,
「남인수」는 건강을 이유로 노래 녹음을 거절했으나, 끈질긴
'백영호'의 부탁으로 결국 이 곡을 발표하게 되죠.
작사가 '한산도'는 애초에 「남인수」와 '이난영'을 주인공으로
노랫말을 썼다고 하네요. 「남인수」가 피를 토하면서도 이 곡을
녹음한 이유는 노래의 첫 소절, '그 얼굴' 때문이라고 전해집니다.
원래 3절까지 작사했으나, 3절을 녹음하지 못하여, 1·2절 녹음만
존재한다고 하네요.
「남인수」역시 '이난영'이 결혼한 후, 동료 가수였던 '김은하'와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남인수」는 이 노래를 부른 후, 1958년에
결국 '김은하'와 이혼을 하고, 남편 '김해송'이 월북(越北)하여
또한 혼자였던 '이난영'에게 돌아갔다고 하죠.
1962년 '이난영'의 무릎을 베고 작고(作故)할 때까지 「남인수」는
그녀의 지극한 병 간호를 받았다고 합니다.
「남인수」의 음색(音色)은 100년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뛰어났다고 합니다. 음역(音域)도 넓고 감정도 풍부하여 그가 떠난
가요계의 빈자리는 유난히 컸다고 하네요.
어쨌거나, 『추억의 소야곡』은 「남인수」가 안 좋은 건강 상태에서
힘겹게 부른 노래지만, 그 만큼 혼신을 다해 불렀기 때문인지 그가
해방 후에 취입 한 노래 중 가장 큰 히트를 날렸습니다.
노래가 좋아 '배 호, '주현미', '유지나' 등 여러 가수가 따라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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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번 그 얼굴이 보고 싶어라
몸부림치며 울며 떠난 사람아
저 달이 밝혀주는 이 창가에서
이 밤도 너를 찾는
이 밤도 너를 찾는 노래 부른다
바람결에 너의 소식 전해 들으며
행복을 비는 마음 애달프구나
불러도 대답 없는 흘러간 사랑
차라리 잊으리라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 섧구나
다시 못올 옛 사랑이 안타까워라
못생긴 내 마음만 원망하건 만
그래도 못 잊어서 이 한밤에도
그 이름 불러보는
그 이름 불러보는 서글픈 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