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맞이하여 아들의 놀이터 친구들과 가족들이 함께 여주에 있는 세종대왕릉 나들이를 떠났다. 한글날인 10월 9일은 비소식이 있어서 전날인 10월 8일(토)에 떠난 이번 나들이는 정말 뜻깊은 날에 화창한 날씨가 더해져 우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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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옆에 있는 카페 "스승"에 조성된 자음 "ㅈ", "ㅎ"으로 디자인된 조형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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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방문할 당시 조선왕릉문화제가 개최되고 있었다. 이 행사를 알리는 상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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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자랑스런 유산인 조선왕릉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다.
비록 오가는 길에 교통체증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기분좋은 날씨 덕분에 비교적 덜 짜증이 난듯했다. 한글을 배우고 있는 아들을 비롯한 친구들은 한글의 소중함과 더불어 세종대왕이라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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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역사문화관 앞 틀에 전시된 한글 도자기 전시회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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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을 맞이하여 조선왕릉문화제가 개최되고 있음을 알리는 안내소의 모습.
세종대왕릉(영릉)은 시기별로 운영시간이 다른데, 이번처럼 10월이면 09:00 ~ 18:00까지 관람할 수 있고,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무일이다(월요일이 공휴일일 경우 화요일이 휴일). 무료개방일은 [문화가 있는 날] 매월 마지막 수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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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를 지나서 왕릉으로 향하는 길의 모습. 천고마비의 계절에 어울리는 높고 푸른 하늘이 압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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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동상의 모습. 한글을 붓글씨로 작성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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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요금은 대인 기준 500원이며, 소인(만 7세~만 18세)은 무료다. 예상 관람소요시간은 영릉의 경우 대략 50분, 효종 영릉까지는 산책로를 이용할 경우 1시간 30분 가량 소요되니 일정에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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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실의 모습. 제 6회 전국 세종 한글 디자인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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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글씨로 작성된 "여주한글"이라는 문구의 모습. 영릉이 있는 지역답게 한글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글귀였다.
한글은 같은 단어지만 어떤 필체로 쓰여졌는지에 따라 그 단어가 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다양한 감정과 생각을 글씨체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다른 글자들과 다른 점인 것 같다.
휴식공간의 경우 세종대왕역사문화관 내 카페 스승이라는 곳이 마련되어 있으며, 휴게 의자 30개, 휴게 쉼터 7개소가 설치되어 있고 유모차 및 휠체어도 대여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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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실의 모습. 재실 안에는 책방이 조성되어 있어서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이 좋은 가을날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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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실의 정문을 안에서 바라본 모습. 정말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구)재실의 기와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주요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다. 주차장 및 매표소와 함께 첫 번째 보이는 건물은 1. 세종대왕역사문화관이며, 2. 세종대왕동상, 3. 재실(위토답), 4. (구)재실(연지), 5. 금천교 및 홍살문, 6. 정자각(이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수라간, 오른쪽에는 수복방), 7. 영릉 순으로 관람할 수 있다. 참고로 영릉에 오를 수 있는데, 수라간 방향으로 향하면 영릉에 오르는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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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실 맞은편에 조성된 연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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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에서 홍살문으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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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 옆에는 피크닉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영릉 소개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1469년(예종1)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하였으며,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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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교를 지나면 볼 수 있는 영릉의 입구인 홍살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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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으로 만들어진 영릉의 조감도와 시각장애인용 설명문의 모습.
경복궁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궁궐의 돌길이 울퉁불퉁한 이유는 바로 이곳에 대기하고 있는 신하들이 햇빛에 눈이 아프지 않기 위한 배려라는 일설이 있다. 기술력의 부족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묻어 있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곳이다.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하여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하였다. 입지는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하였으며, 좌우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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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 앞 정자각의 모습. 뒤에는 영릉이 살짝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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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이 아래에서는 온전한 모습이 보이지 않도록 한 이유는 영험한 기운과 신비로움을 나타내고 싶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능의역사
1446년(세종 28)에 세종의 비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당시 광주(廣州, 현재의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헌릉의 서쪽에 쌍실의 능을 조영하였다. 이 때 오른쪽 석실은 세종을 위해 미리 만들어 놓았다가 세종이 승하하자 합장하였다. 세조대에 영릉의 자리가 불길하다는 이유로 능을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하다가 1469년(예종 1)에 이곳 여주로 옮겨 왔다. 여주로 천장하면서 원래의 영릉 터에 있었던 상석, 망주석, 장명등, 문석인, 무석인, 석수, 신도비 등은 그 자리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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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야기
세종은 1397년(태조 6) 조선 3대 임금 태종과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418년(태종 18) 양녕대군이 폐세자가 됨에 따라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같은 해에 22세의 나이로 조선 4대 임금으로 등극하였다.
세종대왕은 54세로 승하할 때까지 31년 6개월의 재위 기간 동안 많은 업적을 남겼다. 1420년(세종 2) 집현전을 설치하여 유망한 인재를 양성하고, 학문을 진흥하여 유교정치의 기반이 되는 의례와 제도를 정비하였다.
민본 정치를 중요시하였는데, 당대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는 훈민정음의 창제 역시 백성들과의 소통을 바라던 세종의 고민이 낳은 산물이었다. 유교 정치와 자주적인 문화의 융성을 통하여 조선시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큰 번영을 가져왔다.